6권 - 20화
조태완의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들여다본 조직원이 김동팔이었다. 거기에 한강이 보이는 빌라에 함께 머물며 호위하는 덩치들 또한 김동팔이 관리하는 숙소에서 동원했다.
더할 수 없이 든든했던 조태완의 심복이었다.
강성태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분노를 누른 조태완은 냉정한 눈으로 빌라를 돌아보았다.
‘너무 흥분했어.’
오세아를 떠올리는 바람에 평소답지 않았다.
둘이서 특실에 있자고 할 거였다면 차라리 도끼나 전기톱을 준비하라고 해야 했다. 아니면 적당하게 검찰에 연락하라든가. 그게 조태완이었다.
그런데 마약을 먹겠다고 떠들다니, 조태완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헛소리였다.
만약,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김동팔은 아예 빌라에서 달려들 거다. 김동팔에다가 숙소에서 불러온 덩치들이 일곱이니까, 최악의 상황에 달려들 놈들이 모두 아홉 명이었다.
창으로 뛰어내릴 수도 없으니 쓸데없이 흥분한 탓에 완벽하게 죽을 구덩이에 빠진 꼴이었다.
‘우선 숫자라도 줄여야지?’
볼을 길게 늘인 채 방법을 고민하던 조태완이 눈알을 빠르게 돌렸다.
김동팔이 거실 가장 안쪽의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아서였다.
‘저 새끼가 혹시?’
문도진에게 보고하는 건 아닌가 싶은 조태완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김동팔의 번호를 찾아놓았다.
문도진과 통화를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 거라면 잠시 기다려주는 게 좋았다.
됐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다.
통화버튼을 누른 조태완은 독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 고객이 통화 중이어서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스마트폰을 내려 종료버튼을 누른 조태완은 이를 힘껏 씹었다.
나오기 무섭게 스마트폰을 뺏어 통화했던 번호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문도진과 통화한 거라면 오히려 김동팔과 덩치 일곱이 일제히 달려들 위기를 스스로 불러오는 꼴이었다.
‘은혜도 모르는 개호로 새끼.’
조태완은 이를 씹으며 스마트폰에서 김종수의 번호를 찾았다.
**
화장실에 들어간 김동팔은 문고리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창을 향해 바싹 다가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김동팔입니다, 형님.”
- 이 시간에 전화한 거 보면 급한 일인가 본데 인사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강성태가 태완이 형님께 전화했었습니다. 오늘 밤 10시에 아우라 호텔 특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형님.”
- 강성태가 조태완을 만난다고? 왜?
“지난번 일이 있고 나서 꼬봉처럼 부리려고 했답니다. 꼬냑에 약을 타서 함께 마실 테니까 그때 묶으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냄새가 이상합니다.”
- 무슨 소리야 그게? 알아듣게 다시 말해봐.
문 쪽을 힐끔 돌아본 김동팔은 조태완이 했던 말을 좀 더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다른 애들은 다 밖에서 기다리고 저하고 둘만 방에서 기다리자고 하십니다, 형님.”
- 조태완이가 스스로 약을 처먹는다고? 그 인간이? 입장을 바꿔놓고 너라면 그렇게 하겠냐?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입니다, 형님?”
김동팔이 확신을 얻기 위해 질문을 건네 직후였다.
우우웅.
손에 든 스마트폰이 울었다.
“형님. 태완이 형님이 전화하셨습니다, 형님.”
- 분위기 쎄하네, 씨발. 전화 끊는 대로 통화 목록 지워.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래?
“예? 형님?”
- 들어보고도 몰라? 조태완이 냄새 맡은 거잖아. 너 혼자 호텔 방에 따라 들어갔다가 강성태랑 이병렬이 달려들면 감당할 수 있것어?
상황이 급하다고 여겼는지 문도진의 말끝에 사투리가 달렸다.
- 내가 애들 보내서 수습할 테니까 조태완이 작업해.
김동팔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 잘 생각해라. 조태완이 냄새 맡았다면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후우.”
어지간해서는 문도진과 통화 중에 이렇게 한숨을 내쉬지 못한다. 그런데 한숨이 나왔고, 그걸 또 문도진은 탓하지 않았다.
“동생들 보내주시면 얼마나 걸립니까, 형님?”
- 강남이니까 30분이면 된다. 방이야 그렇다 치고 빌라 입구나 주차장에 애들 더 있냐?
“태완이 형님께 말씀 안 드리고 주차장 앞에 서른 더 세워뒀습니다, 형님.”
- 작업하고 우리 애들 올라갈 수 있게 주차장에 연락해 놔. 그럼 내가 깨끗하게 수습해 줄 테니까.
김동팔은 또 답을 하지 못했다.
막말로 문도진의 식구들을 불러올렸다가 김동팔까지 당하면 태완이파는 오늘 밤에 머리를 모두 잃게 된다.
- 왜 대답이 없어?
“잠시 뒤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형님.”
김동팔의 답이 건너가자 픽 웃는 소리가 바로 건너왔다.
- 알아서 해라.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스마트폰을 내려 통화 목록을 지운 김동팔은 세면대 앞에 달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너무 번들거리는데?
몇 번이나 입을 쩍쩍 벌려 표정을 푼 김동팔이 숨을 길게 내쉰 뒤에 화장실을 나섰다.
**
스마트폰을 귀에 댄 조태완이 볼을 씰룩일 때였다.
- 김종수입니다, 형님.
기다리던 답이 있었다.
“너 어디냐?”
- 사무실입니다, 형님.
“저녁은?”
- 먹었습니다, 형님. 형님은 드셨습니까, 형님?
급한 상황에서도 조태완은 태연함을 잃지 않았다. 오늘의 조태완을 만든 생존본능이 끌어낸 모습이었다.
“내가 말이다. 오늘 강성태를 아예 아작 낼 생각이거든. 거기 고영주란 계집애 있지?”
- 논현동에 있습니다, 형님.
“그년 좀 데리고 와.”
- 빌라로 말씀입니까, 형님?
“그래. 그리고 영권이한테 전화해서 애들 전부 연장 채워서 데리고 오라고 해.”
- 알겠습니다, 형님.
조태완의 지시를 들은 덩치들이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개새끼들.’
조태완은 보이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 끊고 나서 10분이다. 그 안에 벨이 안 울리면 관리하는 업소 전부 물린다고 전해.”
- 예, 형님.
종료버튼을 누른 조태완은 화장실을 한번 힐끔 살피고는 스마트폰의 문자 칸을 열었다.
두꺼운 엄지를 움직여가며 어색하게 문자를 입력한 조태완이 발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화장실 문이 열렸다.
“찾으셨습니까, 형님?”
거실로 나온 김동팔이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시선을 든 조태완은 태연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 일은 안 보고 무슨 전화질을 하고 지랄이야?”
“부산에 아는 동생이 행사가 있다고 연락해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변명을 늘어놓은 김동팔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고영주란 년이 생각나서 종수한테 데려오라고 했다. 이왕 날 잡은 거, 영권이 숙소 애들도 모두 불렀고. 10분 안에 올 거다.”
“예, 형님.”
고개를 숙이는 김동팔의 눈 끝이 흔들리는 것을 조태완은 분명하게 보았다.
“김동팔이?”
“예, 형님.”
“아래에 있는 애들한테 연락해서 영권이네 애들 오면 바로 올려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형님.”
“그냥 여기서 해, 이 새끼야. 도착할 때 됐다니까!”
다그치는 조태완 앞에서 김동팔은 굳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
저녁을 해결한 뒤에 서달수와 조봉진이 커피를 내놓았다.
물론 이병렬은 강성태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강성태의 입장에서는 매운 육개장으로 한 번 죽이더니 좋아하던 커피를 이용해 확인 사살을 하는 꼴이었다.
“신경 써서 구한 커피다.”
자랑하는 표정이던 이병렬이 눈을 찌푸리며 강성태의 상체를 살렸다.
“육개장 국물은 아닌 거 같은데? 그거 피지? 뭐야? 왜 피를 묻히고 와?”
“오는 길에 소리 나는 도로가 있더라. 밀동에 다녀오면서 봤지? 그래서 볼을 씹었다.”
“그럼 씨발 말을 하지. 아니? 볼을 씹었는데 육개장은 어떻게 먹었대?”
“그냥.”
황당하다는 눈으로 최치곤을 돌아보았던 이병렬이 시선을 가져왔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강성태는 문도진과 송원의 계획과 조태완을 만나기로 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서 육개장을 먹도록 기다렸냐? 10시라고 했지?”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여 답한 다음이었다.
우우웅.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확인한 강성태는 빠르게 문자를 열었다.
[동팔이가 구상하다. 김종수 줄렀고, 다른 숙소 애들 불렀는데 전화부터 해주라. 약곡 장소를 바꾸것다고 말해. 그럼 내가 질라로 오라고 하겠다. 5층. 별 33970704 별. 급하다.]
조태완이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를 오타가 설명만큼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강성태는 둘러앉은 다섯 명에게 조태완의 문자를 읽어주었다. 마지막은 디지털 도어록의 비밀번호가 분명했다.
“얼른 전화부터 해 봐.”
이병렬의 재촉을 받은 강성태는 통화버튼을 누른 뒤에 스마트폰을 입 앞에 세웠다. 그리고는 바로 스피커 통화버튼을 눌렀다.
두루루룩. 두루루룩.
- 여보세요?
문자와는 다르게 태연한 조태완의 음성이 나왔다.
일단 원하는 대로 끌어준다.
“내가 10시에 급한 일이 생겨서 전화했다.”
- 그래서? 어쩌자고?
“시간을 당겨. 장소도 바꾸고.”
- 그래?
주변을 돌아보는 모양이었다.
조태완은 답을 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끌었다.
원하는 게 뭐냐, 조태완?
강성태를 비롯해 둘러앉은 다섯 명이 귀를 쫑긋 세우며 기다릴 때였다.
- 내가 빌라로 초대하지. 이리와. 여기 우리 애들이 좀 있는데 불편하면 장소를 바꿔주마.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프리 스테이션에 울려 나왔다.
“빌라 주소를 불러.”
- 강성태? 하여간 배짱 하나는 인정이다.
“적당히 하고 주소나 불러.”
통화를 듣고 있던 이병렬이 눈짓을 하자 서달수가 카운터로 달려가 급하게 볼펜을 들었다.
- 주소 필요 없다. 네비에 빌라 이름을 찍어.
거만한 음성에 비해 정말이지 또박또박 조태완이 빌라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 언제 올래?
이병렬이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눈앞에 들이댔다.
“30분이면 간다.”
- 기다리지.
묘한 느낌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종료버튼을 눌렀다.
“가자.”
“잠시만.”
성질 급한 이병렬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일이 꼬였다. 원래는 조태완과 김동팔만 호텔 특실에서 만나기로 했었던 건데 지금 가는 빌라에는 다른 놈들도 많아.”
“그래서?”
“조태완이나 김동팔,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갔을 때 이미 하나는 죽어 있을지도 모르고. 거기에 인원이 몇 명인지도 모르잖아.”
김진용을 돌아본 이병렬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이제야 강성태의 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오늘 태완이파를 정리하려는 거냐?”
강성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김진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병렬이와 둘이 올라갈 테니까 밖에 애들 데리고 움직여. 올라오려는 놈들을 막아. 그러면 오늘 끝난다. 대신 조태완이든, 김동팔이든, 하나는 죽는 상황이라 앞뒤 안 가리고 칼질할 테니까 독하게 버텨.”
강성태가 이 정도 임무를 주는 게 고마운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예, 형님.”
삽시간에 눈에 힘을 잔뜩 올린 김진용이 앉은 상태에서 고개를 깊게 숙였다.
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 있는 덩치들을 더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입을 단속하지 못하면 오히려 일을 키울 수 있었다.
최치곤과 서달수까지 비장한 표정으로 침묵하는 강성태를 바라보는 앞이었다.
“병렬아. 끝장을 볼 건데 빨리 끝낼수록 진용이가 편해. 좁은 빌라에서 애들이 떼로 덤비면 내가 지켜주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네 몸은 네가 챙기고.”
“씨발! 이런 거 바란 거지. 맡겨놓으라니까.”
이병렬의 다부진 답을 들은 강성태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성태랑 치곤이가 운전하는 차로 갈 테니까, 진용이 네가 달수랑 애들 데리고 와.”
“예, 형님.”
비장하게 일어서는 다섯 명 옆에서 따라나서고 싶은 조봉진이 끙끙대는 표정으로 이병렬을 보았다.
“한 놈은 남아서 영업해야지, 장사 접을래?”
이병렬이 말 한마디로 조봉진을 떼어내는 동안, 카운터로 급하게 달린 서달수가 상체를 숙여서 신문지로 날을 싸놓은 회칼을 꺼냈다.
계단을 올라간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최치곤이 운전하는 승용차의 뒷좌석에 올랐다.
네비에 빌라 이름을 입력한 최치곤이 도로에 끼어들자 김진용이 탄 승용차와 승합차가 줄줄이 따라붙었다.
“조태완이 죽었으면 어떻게 할 거냐?”
“김동팔을 해결해야지.”
“김동팔이 죽었으면?”
“조태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나직하게 답을 한 강성태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태완과 김동팔, 과연 누가 죽어 있을까?
일이 꼬이려면 피에 흥분한 놈들이 강성태와 이병렬을 향해 물불 못 가리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
강성태는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미친놈처럼 날뛰겠지?
“헛소리 할 거면 집어치워. 씨발, 너 혼자 올라가는 꼴을 보느니 깡패 접고 만다.”
독하게 변해 있는 이병렬의 눈매를 보며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오늘은 잔인한 장면이 많을 거 같다. 마음 독하게 먹어.”
“그래! 그렇게 말해야 보스지!”
노들길에 들어선 최치곤이 있는 대로 속도를 높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