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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 18화 (126/513)

6권 - 18화

강성태가 앉았던 자리에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애송이가 나는 말할 것 없고, 광룡마저 안중에서 죽치는 양아치로 알던데 말이지. 이게 다 조태완이 병신 짓을 하는 바람에 그런 거긴 한데. 버릇을 고쳐줘야지?”

문도진은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긁어대는 게 분명했다.

“장소는 정했어?”

“그보다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듣고 싶습니다.”

“고민할 게 있나? 죽여서 파묻어야지. 아니면 광룡 방식대로 조각내서 뿌리든가.”

“그걸 우리더러 알아서 하란 말씀입니까?”

문도진이 작은 눈을 우그러트리며 묘한 웃음을 보였다.

“그 새끼 간덩이가 남산만 해. 이번에도 분명 이병렬이 똘마니 애들 몇 명하고 친구인가 하는 놈만 데리고 올 거거든. 차에서 내리기 전에 덮치면 어때?”

맞은편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트럭 하나만 준비해. 그래서 차가 서는 순간에 그냥 들이받아 버리자고. 죽이는 건 우리 애들이, 뒤처리는 광룡이. 어때?”

“태완이파에서 함께 올 수도 있습니다.”

“흐히히.”

웃음을 터트렸던 문도진이 미안하다는 투로 손을 들었다.

“송원이라고 했지? 내가 동생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조태완이 강성태의 똘마니마냥 따르는 모습을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와서 그랬어.”

“괜찮습니다.”

강성태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송원의 얼굴을 악착같이 눈에 담았다.

“내일이든, 모레든, 강성태를 잡을 시간을 정해. 그러면 조태완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조태완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잣 까는 소리는 달나라 가서나 하고.”

조태완을 높게 평가하는 소리에 감정이 상했는지 문도진의 대꾸가 거칠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동생은 트럭 큰놈 하나만 준비하면 돼.”

“제 입장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용호 형님 작업하고 처음으로 맡는 일입니다. 막말로 강성태 제대로 처리하면 윗분들께 이름 제대로 심습니다.”

“그래서?”

“조태완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려주시면 함께 움직이겠지만, 끝까지 알아서 하시겠다면 저도 제 방식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야? 송원?”

“씨발.”

송원의 대꾸가 만만치 않았다.

문도진의 인상이 날카롭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송원은 품에서 등산용이라고 해도 될 커다란 칼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주변 테이블에 있던 덩치들이 벌떡 일어서자, 복장이 촌스러운 덩치들이 비슷하게 몸을 세웠다.

“형님이라고 불러드리니까 광룡이 어디 구석에 처박힌 조직으로 생각하시나 본데 진짜 어떤 조직인지 한 번 보여드릴까?”

시선을 내려 칼을 보았던 문도진이 쭉 찢어진 눈 속에서 눈알만 위로 들었다.

“조태완과 강성태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나도 죽어. 깍두기 크기로 잘려서 바다에 뿌려지는 거로 끝난다고. 그런데 나더러 그냥 믿고 준비하라고? 그러다가 용호 형님이 물고기 밥이 된 게 며칠 전이야.”

염병할!

고통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강성태의 의식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강성태는 깨물었던 반대편 볼살을 이 사이로 넣으며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부릅떴다.

“조태완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들어보고 목숨을 걸 만하면 함께하는 거고, 아니면 따로 가. 아니면 여기서 종 치는 거로 하든가. 나한테 얻을 거 많은 사람이 누군지는 좀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아.”

시간을 너무 끈 모양이었다.

중요한 대목에서 어둠이 서서히 밀려들면서 주변을 덮었다.

말을 할 거면 좀 빨리 하든가!

문도진은 눈알을 굴릴 뿐 입을 다물었다.

벌써 주변을 완전히 뒤덮은 어둠이 문도진의 등에 닿아 있었다.

문도진, 제발 좀 빨리 말하라고!

“씨발 거!”

어둠이 문도진과 송원의 등을 삼켜서 몸통의 절반만 보였다.

“김동팔이가 칼 먹일 거다. 그러면 되겠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송원은 진실을 알아내겠다는 눈으로 노려볼 뿐, 대꾸를 내놓지 않았다.

“조태완이가 죽고 못 사는 계집애가 있거든. 그 집 지하실에 현금하고 약이 있는 거 아는데 욕심나지. 지난번에 강성태란 놈에게 당한 이후로 조태완이 애들 앞에서 김동팔을 욕한 게 컸어.”

말하는 문도진의 눈과 코, 입이 겨우 보이는 단계였다.

“그런데 조태완이가 강성태랑 붙으려니까 김동팔이 심정이 어떻겠냐고?”

문도진과 송원의 모습을 완벽하게 삼킨 어둠이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무식하게 생긴 칼만을 남겨두었다.

“내가 사인하면 김동팔이 조태완 작업할 거다. 대신 김동팔이 태완이파 삼키게 내가 지원하기로 했다. 됐냐? 이제 속이 후련해?”

문도진의 말을 끝으로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강성태를 괴롭히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약을 하면 이런다던데.

고통 끝에 달려온 평온이 강성태를 부드럽게 감싸고는 허공으로 떠올리는 느낌이었다.

구름에 누운 것도 같고,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숨결 같은 작은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느낌도 들었다.

이대로 몸을 맡기고 싶었다.

나쁘지 않지, 이런 세상이라면.

그런데 최치곤은 어쩌지?

강성태를 인정받기 위해 멕시코로 가겠다는 안다미는?

의식 속에서 픽 웃은 강성태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오른쪽 이를 세차게 깨물었다.

으드득.

부엌칼이 볼을 뚫고 들어와 머리를 관통한 듯한 고통이 불처럼 일어났다.

“끄윽!”

비명을 토해낸 강성태의 상체를 누군가 붙들었다.

“성태야!”

무서울 정도로 인상을 찌푸린 강성태는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씨발! 죽은 줄 알았잖아!”

“푸후.”

픽 웃으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새빨간 피가 튀어나가서 최치곤의 재킷과 셔츠를 점점이 물들었다.

“하후.”

많이 놀랐던 모양이었다.

운전석 문을 열어놓은 채 뒷좌석에 앉은 최치곤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기다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러워하길래 이쪽에 내려와서 차를 세웠거든. 의식이 있으니까 혹시 미래를 보는 건가 싶어서. 그랬는데 좀 전에 느닷없이 축 늘어지더라.”

독백처럼 앞을 보며 말을 쏟아내던 최치곤이 힘이 쭉 빠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하후, 씨발. 진짜 놀랐다.”

허탈하게 웃은 최치곤이 손을 뻗어 티슈를 연달아 뽑았다.

“입 좀 닦아. 드라큘라랑 마주 앉은 거 같아서 섬뜩하다.”

자동차의 문을 연 강성태는 입에 잔뜩 고인 피를 먼저 뱉어냈다.

양쪽 볼을 깨물어서 그런지 정말 입에 가득 머금고 있다가 뱉어낸 것처럼 피의 양이 많았다.

“물 좀 있냐?”

“잠깐만.”

발음이 이상한 강성태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최치곤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트렁크를 연 최치곤이 물병을 찾는 사이 강성태도 차에서 내렸다.

“여기 있다.”

최치곤이 건네주는 커다란 물병을 받은 강성태는 입을 연달아 헹궜고, 입가를 세수하듯 닦았다.

“뭐 좀 봤냐?”

“적어도 피를 흘린 보람은 있는 거 같다.”

입가를 닦은 강성태를 위해 최치곤이 빠르게 움직여 티슈곽을 아예 들고 나왔다.

건너편 아파트와 오목교 사이로 기울어진 해가 강성태의 다음 말을 들으려는 것처럼 고수부지에 온통 노을을 펼쳐놓은 시간이었다.

궁금해 미칠 것 같을 텐데도 최치곤은 강성태에게 티슈를 건네고는 기다렸다. 입가를 닦은 강성태는 어둠이 보여준 문도진과 송원의 대화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퇴근길에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해 지기 전에 걷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고인 피를 자꾸만 뱉어내는 강성태와 인상 더러운 최치곤을 피해 멀찍이 떨어져 지나갔다.

미안한 일이기는 했는데 솔직히 조용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편했다.

“뭐야, 씨발! 김동팔이 조태완을 작업한다는 거 아냐? 문도진 이 새끼, 졸라 양아치네!”

“문도진은 형님이라며?”

“이 씨발. 밑에 애 꼬드겨서 작업시키는 게 무슨 형님? 이 개새끼. 그렇게 작업시킨 다음에 태완이파 먹게 하면 동팔이 새끼는 그냥 문도진이 꼬마 되는 거잖아!”

“아무래도 뒤처리를 문도진이 맡으면 그렇게 되겠지.”

“햐, 이 씨발. 이런 개호로 새끼가 없네!”

기울어진 해를 노려보며 씩씩대던 최치곤이 노을에 붉게 물든 얼굴을 강성태에게 돌렸다.

“어떻게 할 거냐?”

“뭘?”

“조태완이 어떻게 할 거냐고?”

“장난질 치면 김동팔의 손에 죽게 두는 거고, 약속대로 하면 살려주는 거지.”

붉은 노을을 받은 최치곤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조금 전에 들은 말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진짜로 죽고 산다는 점이 다르지, 바로 아랫사람을 꼬드겨서 윗사람을 치는 건 사회생활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조건은 납치범들에게도 먹혔다.

두목이 내건 조건을 들어주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 이대로 가면 너희 모두 죽는 거 말고 없다. 두목 머리와 인질을 데리고 나와라. 그러면 두목이 요구한 금액의 절반을 보장하고, 신분을 완전히 바꿔주마.

안 먹힐 것 같은 방법인데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두 가지를 해결해야 했다.

다른 사람은 절대 모르게 접촉해야 하고, 접촉한 이쪽 사람을 범인이 신뢰할 수 있어야 했다.

김동팔과 조용하게 접촉하는 건 문도진에게는 일도 아니었을 거다. 그렇다면 남은 건 김동팔이 어떻게 문도진을 신뢰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문도진의 말 한마디를 믿고 김동팔이 조태완을 작업하지는 않을 텐데…….

물병을 들어 물을 입에 머금은 강성태는 그렇게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또 한 번, 지하차도를 지나가봐?

강성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조태완이 죽는 걸 지켜보고 말지, 절대로 사양하고 싶은 방법이었다.

죽고 못 사는 여자와 그 집 지하실에 있는 현금과 마약?

문도진이 했던 말이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떠들었다면 이유가 있을 일이었다.

어차피 문도진과 송원이 서로 오케이 한 마당이니까 이쪽도 누가 죽을지 결정하자. 조태완이 강성태의 말에 따라오면 김동팔이 죽는 거고, 거부하면 본인이 죽고.

입에 머금은 물을 뱉어낸 강성태는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조태완이 직접 받는다는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디에 거는 건데?’

‘조태완.’

최치곤에게 입 모양으로 답을 한 직후였다.

- 여보세요?

쇳소리 묻은 조태완의 음성이 들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어련하겠어?

강성태가 보스의 위력을 보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빈정대는 말투가 단박에 넘어왔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표정을 읽을지 모르니까 벽이나 다른 곳으로 몸을 돌려. 절대 내가 하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말고.”

- 푸하.

기가 막힌 조태완의 심정이 풍선 터지는 듯한 웃음으로 건너왔다.

“조태완이 죽을지 살지를 결정하는 거니까 일단 말대로 해. 들어본 뒤에 아니면 그만인 거고, 살아나면 감사하게 되겠지. 안 그래?”

코로 웃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몸을 돌리며 내는 ‘끙’ 하는 소리가 과장되게 넘어왔다. 강성태가 들으란 듯이 말이다.

- 됐다. 이젠 아무도…….

“말하지 마.”

조태완이 내놓을 말을 자른 강성태는 바로 말을 이었다.

“여자가 있더구만. 거기 지하에 현금하고 마약을 보관 중이고.”

너무나 뜻밖이어서인지 스마트폰 너머에서 대꾸는 넘어오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으로 하는 통화인데도 조태완이 뿜어내는 무거운 분위기가 강성태를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문도진이 사인을 주면 김동팔이 작업하기로 했다더라고.”

- 끄응.

“돌아보지 마. 다른 말도 하지 말고. 내가 워낙 함부로 말해서 성질난 거야. 그렇게 보이게 해. 아니면 넌 오늘 밤에라도 죽어.”

-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던 말이나 계속해 봐.

“지하에 있는 현금과 마약을 보장하고, 태완이파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건이란다. 여자와 지하에 있는 현금과 마약을 아는 사람이 김동팔 말고 더 있어?”

- 두 번째는…. 병렬이란 놈 숙소 애들 몇 명이면 되지 않나?

이를 꽉 문 상태에서 씹듯이 뱉어낸 말이었다.

눈이 홱 뒤집힐 만한 일인데도 조태완은 절묘하게 말을 바꾸는 얍삽한 재능을 발휘했다.

“김동팔이 옆에 있어?”

- 그렇지.

“함께 있는 놈들이 김동팔의 숙소 애들이고?”

- 그런 거 같다.

“내가 문도진을 만나러 가는 순간 작업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 그 말을… 어떤 새끼가 그래?

“말해줘도 못 믿을 테니까 다음에 하고. 나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고 9시에 나와. 그건 할 수 있겠어?”

강성태의 질문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껄끄러운 느낌으로 한숨을 뱉어낸 조태완이 시간을 끌면서 잠시 틈이 있었다.

- 그러지 말고 자신 있으면 특실로 오지?

확실히 잔머리가 뛰어난 인간답게 조태완은 의심받지 않을 장소를 정했다.

- 겁나? 나는 동팔이만 데리고 있을 테니까 편한 대로 데리고 와도 좋다.

김동팔이 옆에서 들으면 완벽하게 착각할 멘트도 덧붙였다.

“몇 시가 좋아?”

- 10시.

“그때 보자.”

어쩌면 오늘 밤에 태완이파 정리를 끝낼지 모를 통화였다.

종료버튼을 누른 강성태는 다리 바로 위까지 떨어진 해를 보며 피 냄새 가득한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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