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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 12화 (120/513)

6권 - 12화

제5장. 문도진인데?

이병렬을 내려준 강성태는 최치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이트를 빠져나왔다.

“성태야. 출출해서 그런데 뭐 좀 먹고 가자.”

도로에 끼어들기 위해 뒤쪽을 살핀 최치곤이 지나가는 말처럼 부탁한 이야기였다.

“어디? 생각해 둔 곳이 있으면 가.”

“그래. 숨 좀 쉬자.”

카페에서는 손님이, 나이트에서는 이병렬과 김진용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국수 한 그릇 할까 하는데 어떠냐?”

“술 마실 거 아니지?”

“차가 있는데 어떻게 마셔? 너 나으면 그때 마실란다.”

어차피 카페 다음 사거리 왼편에 실내포장마차가 있어서 최치곤은 늘 가던 길을 따라 달렸다.

간단하게 저녁을 때웠으니 배가 고프기도 했겠다.

“웬일이냐? 샌드위치가 아니라 국수를 먹고 싶게?”

“어쩌다가 군것질하고 싶은 날 있잖아. 꼼장어 구이에 계란찜도 먹고 싶고. 아, 오늘 내 마음 나도 몰라다.”

“지랄.”

둘이서 킬킬거리는 사이 신호를 받은 최치곤이 포장마차가 있는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저녁 8시에서 10시까지가 골목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어서 차를 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도로를 따라 쭉 지나간 최치곤은 작은 공원 주변의 공터에 차를 세웠다.

퇴근 시간 이후에는 주차가 가능한 자리였다.

원래 추적을 피할 때 복잡한 길을 따라가다가 이렇게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최치곤이 그걸 알 리는 없을 테니 퇴근 시간이 준 우연 정도로 여기면 되겠다.

둘이서 차에서 내려서 함께 걸었다.

“집에 들러서 옷이라도 갈아입고 올걸.”

“좋은데 뭘 그래? 포장마차 이모한테 팬서비스 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정장이 부담스러운 강성태에게 최치곤이 넉살 좋은 대꾸를 던지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볼링장 앞을 지나자 사람들이 북적였다.

근처의 식당들과 선술집들이 연달아 있어서 부담 없이 식사와 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조태완과 문도진을 염려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렇게 복잡한 거리를 방심한 채 걷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골목을 걷는 동안, 강성태는 주변을 슬쩍슬쩍 살폈다.

‘병신들.’

한두 놈이 눈에 띄었으나 강성태는 무시하고 걸었다.

저런 놈들은 기습을 노리는 게 아니라 움직임을 살피는 수준이어서 굳이 아는 척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렇게 길을 걸은 강성태는 실내포장마차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안쪽은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어머? 삼촌?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

최치곤을 알아본 포장마차 이모가 반가움의 표시로 팔을 때리고는 놀란 눈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뭐야? 아휴, 눈부셔? 좋은 일 있어?”

“그렇지? 좋은 일 있어 보이지?”

“뭔데?”

이모와 최치곤의 너스레가 아니어도 강성태를 향해 손님들의 시선이 몰려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강성태는 왼쪽 벽에 붙은 칸막이 자리를 택해 안쪽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최치곤이 메뉴를 집어 들었다.

“우리 잔치국수 두 개하고, 꼼장어 구이, 계란찜, 뼈 없는 닭발, 주먹밥, 이렇게 줘요.”

“술은 소맥?”

“오늘은 술 못 마시거든. 사이다 있어요?”

“있지.”

“그럼 콜라 두 개 줘요.”

주문을 받던 이모는 물론이고 강성태까지 실없는 웃음이 나오는 주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다.

사람 많은 포장마차에서 할 건 아닌 것 같았고, 배불리 먹은 뒤에 어디 조용한 곳으로 옮기자는 뜻으로 보였다.

그래서 술을 주문하지 않은 걸 거다.

어쩌면 형님이라고 부르는 동안 강성태가 멀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 곤잘레스 이두안의 방문에 관해서도 말해야 하니까.

“치곤아. 우리 한 잔씩만 할까?”

“뭘?”

“모르는 척한다. 일대일 딱 한 잔씩. 어때?”

“너 되겠어?”

“설마 죽기야 하겠냐?”

강성태의 짓궂은 표정을 본 최치곤이 씨익 웃었다.

답답했겠지.

갑자기 멀어진 것 같았을 테고.

“차는 어떻게 하지?”

“걸어가면 되지. 카페 가깝고 집도 멀지 않고.”

“흐히히히히!”

희한한 웃음을 터트리는 최치곤 앞에서 강성태는 고개를 돌렸다.

“이모! 소주하고 맥주 한 병씩 주세요. 잔은 알죠?”

“그럼 그렇지! 알았어.”

강성태의 주문을 이모가 시원하게 받았다.

**

조태완은 치질이 심한 사람처럼 자꾸만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이래도 불편하고, 저래도 편치 않았다.

몸은 괜찮다.

턱 아래 갈라진 상처에 딱지가 앉아 거북한 거 말고는 딱히 쑤시거나 통증이 느껴지는 곳도 없었다.

마음이, 빌어먹을 마음이 불편한 게 문제였다.

화려한 거실의 소파에 앉아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에 시선을 돌렸는데 오늘따라 칙칙하게 보이는 강물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빠드득.

이를 얼마나 심하게 뒤틀었는지 조태완의 입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나왔다.

9시가 되었을 때였다.

구석에서 입을 가린 채 통화하던 김동팔이 곧장 조태완에게 다가왔다.

“문도진이 지금 막 집에 들어갔답니다. 거기까지 함께 움직였던 송대길은 지금 세븐 우드 호텔 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도착하면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후-.”

김동팔의 보고에 조태완은 뜨거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강성태는?”

“다른 말 없는 것으로 봐서 포장마차에 있는 모양입니다.”

하긴, 들어간 지 10분밖에 되지 않았다.

“스토락에 있는 광룡 간부 놈들은?”

“아직 그곳에 묵고 있습니다.”

“미치겠네, 씨발.”

답답한 속을 뱉어낸 조태완이 손을 들어 손등을 바깥으로 휘저었다. 고개 숙여 인사한 김동팔이 현관 쪽 자리로 걸을 때였다.

“그 싸가지 없는 년은 어떻게 됐어?”

김동팔의 뒤통수를 휘갈기는 것처럼 조태완이 질문을 던졌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영상 찍고 있을 겁니다. 확인해볼까요, 형님?”

“됐어. 확실히 처리해.”

“예, 형님.”

김종수의 손아귀에 걸렸으니 온갖 변태적인 포르노 찍는 거로 고영주 인생은 끝난다. 거기에서 재능을 발휘한다고 해도 돈은 김종수가 다 처먹을 테니까.

그나마 한 가지는 후련하게 처리된 거고.

조태완은 다시 한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광룡이 문도진을 꼬드긴 건 분명했다. 그래서 문도진이 오늘 강성태를 만났을 테고.

조태완은 오른손을 들어 양쪽 볼을 잡고는 아래로 길게 쓸었다.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경찰까지, 조태완과 문도진의 영향력은 비슷했다. 무력으로 따지면 오히려 선배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조태완이 조금 더 위일 거다.

문제는 맞붙었을 때 벌어질 사회적 파장이었다.

클럽과 외국인 전용 카지노 앞에서 칼부림이 벌어지면 한 번이야 서로 덮을 수 있겠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면 결국 경찰이 나서고 검찰과 언론이 고개를 들이밀게 돼 있다.

조태완과 문도진이 사라지면 김동팔과 송대길만 살판나는 세상이 된다. 정치, 법조, 언론은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김동팔과 송대길에게 손을 내밀며 행복하게 지낼 거다.

“문도진 이 새끼를 어떻게 제낀다?”

조태완은 입술을 뒤틀며 문도진을 떠올렸다.

문제는 문도진도 지금 조태완을 어떻게 제낄지 고민할 거라는 데 있었다.

그나저나 강성태 이 새끼는 도대체 어쩌려는 거지?

“씨발!”

강성태를 떠올린 조태완은 대뜸 욕을 뱉었다.

- 기회는 네게 가장 먼저 줬다. 전에 약속했던 대로 지용호가 죽었다면 영상도 세상에 나갈 일 없고. 하지만 나를 노린다면 말이 달라져. 그러니 알아서 행동해.

강남의 삼대장 중 한 명이라는 조태완이 영등포 구석의 꼬맹이에게 묶여 꼼짝 못 하게 된 꼴이라니.

속에서 일어나는 불길을 잠재우기 위해 조태완은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오냐. 전화를 기다려주마.

마음 같으면 당장 영등포를 박살내고 싶지만, 세븐 우드 호텔 커피숍에서 송대길을 두들겨 처박았다는 말을 듣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문도진이 참았다고 하는데 조태완이 보기에는 개망신당하기 싫어서 피한 거라는 데 빳빳한 현금 1억쯤 걸 자신 있었다.

조태완은 시선을 내려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직접 받으라고 했었지?

일단 받는다.

그런 뒤에 뭐라 하는지 들어보고 결정한다.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 기다리는데 포장마차에 처 앉아 술을 먹는다고?

“이런 씨발!”

지켜보던 덩치들과 김동팔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욕을 조태완이 거칠게 뱉어냈다.

**

포장마차의 시끌시끌한 분위기, 비싸지 않은 음식들 냄새, 잔을 가득 채운 소주와 맥주의 색까지, 최치곤은 모처럼 만족한 얼굴이었다.

“캬흐! 이게 얼마 만이냐?”

최치곤이 개를 잡아놓은 호랑이처럼 웃고는 잔을 들었다.

강성태 역시 잔을 들어서 최치곤과 함께 부딪쳤다.

맥주잔 특유의 소리와 찰랑이는 술의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둘이서 시원하게 술을 들이켰을 때, 꼼장어 구이가 나왔다.

최치곤이 안주를 집을 때였다.

강성태는 소주병을 들고 두 번째 잔을 만들었다.

“한 잔만 하자며?”

“소주 한 병에 딱 두 잔 나와. 이걸 버려?”

“그렇지? 이래서 내가 우리 서방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여기 안주 드셔요. 자, 아앙!”

“확!”

둘이서 킬킬대며 술을 만들었고, 안주도 먹었다.

술이 한 잔 들어가자 최치곤은 갑갑했던 속이 좀 풀린 모양이었다.

조금 뒤에 나온 잔치국수를 후련하게 먹었다.

맛있게 들라는 인사를 하지 않아서 좋았고, 김치를 집어 먹는 데 눈치 볼 이유 없어서 편한 자리였다.

계란찜이 나오는 것을 본 강성태는 두 번째 잔을 잡았다.

사양할 최치곤이 아니었다.

강성태는 잔을 든 최치곤을 향해 픽 웃었다.

“왜? 뭐?”

“고맙다.”

“괜히 수작 부리지 말고 오늘 술값이나 내.”

“그러지 뭐.”

둘이 웃는 얼굴로 잔을 가져갔고, 역시 단숨에 비워냈다.

“카흐, 사는 거 같다, 진짜!”

잔을 내려놓은 최치곤이 빈 소주병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너라도 한 잔 더 할래?”

“됐어. 오늘은 이 정도가 딱 좋아.”

사양한 최치곤은 뜨거운 계란찜을 숟가락으로 퍼 넣으며 연신 김을 뿜어냈다. 잠시 뒤에 만족한 얼굴로 최치곤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가자.”

여기까지가 좋았다.

최치곤이 술을 자제할 정도로 아직은 경계를 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계산을 마친 강성태는 최치곤과 함께 포장마차를 나섰다.

“카페로 갈까 했는데 술 마셨으니까 집으로 가자.”

“그러지 말고 저기 편의점에서 뭐 하나 마신 뒤에 대리 부르자. 아침에 빼려면 일찍 나와야 하는데 그거 자신 없다.”

“그럴래?”

강성태는 최치곤과 함께 편의점에 들러 물 한 병과 음료 하나를 사서 바깥의 테이블에 앉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강성태를 힐끔거려서 불편했는데 최치곤이 모처럼 후련한 얼굴이어서 충분히 참을 만했다.

“낮에 일이 있었는데…….”

편의점 탁자에 앉은 강성태는 곤잘레스 이두안의 방문에 관해 최치곤에게 들려주었다.

“그 사람 갑부라고 했잖아? 그런 사람이 너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로라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지 모른다고 하던데 자세한 건 내일 만나봐야 알 것 같다.”

“거참, 졸라 신기하네.”

“뭐가?”

“우리나라로 따지면 재벌이 널 찾아온 거잖아. 그게 신기한 거지. 그러지 말고 돈 좀 빌려달라고 해 봐. 한 100억만?”

“미친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최치곤을 보며 강성태는 기가 막힌 웃음을 쏟아냈다.

“괜히 복잡한 일에 휘말리는 거 같으면 딱 거절해라. 너 지금도 정신없는 건 알지?”

강성태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곤잘레스 이두안이 한국에 와서 강성태를 찾았을 정도라면 무슨 일을 말하든 쉽지 않으리란 짐작에서였다.

물을 마시던 강성태는 편의점 맞은편 차를 힐끔 살폈다.

“왜? 저 차에 뭐 있어?”

“아까부터 따라오던 놈들 같아서.”

“뭐? 어디? 저 새끼들이지?”

“놔둬. 저놈들 쫓아내 봐야 또 붙을 테니까 차라리 내가 알아보는 놈들이 편해.”

최치곤을 다독인 강성태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이제 대리 부르자.”

강성태의 권유에 최치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번호를 뒤진 최치곤이 통화버튼을 누른 직후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강성태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울었다.

“뭐냐?”

“잠깐만.”

액정을 확인한 최치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문도진인데?”

“뭐? 얼른 받아봐.”

최치곤이 대리운전을 부르기 위해 걸었던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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