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 11화
어둠을 배경으로 한 커피숍의 창이 답을 기다리는 문도진과 송대길, 그리고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 이병렬을 거울처럼 담았다.
문도진은 흥미로운 표정이었고,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게 불편한 투로 송대길이 눈 끝을 꿈틀거렸다.
“아시겠지만, 저는 좀 늦게 뛰어들었습니다. 말끝에 형님 소리도 붙이지 않습니다.”
“그럼 사업가다?”
“상대방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하는 거 봐서 마음에 안 들면 깡패가 될 수 있다는 말이네?”
“하시기에 따라서 그럴 수 있습니다.”
강성태가 답을 한 직후였다.
“말을 가려서 해.”
송대길이 쫙 깐 음성으로 경고를 던졌고,
“야, 이 씨발 새끼야.”
그 말을 덥석 문 것처럼 이병렬이 대뜸 욕을 뱉었다.
“도진이 형님과 우리 보스가 이야기하는데 왜 씨발놈아, 네가 껴들어?”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돌린 문도진이 오른손을 들어 송대길의 입을 막았다.
“이병렬이?”
“예, 형님.”
“대길이가 나선 건 알겠는데 그래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욕을 하면 서로 섭하지, 안 그래?”
“실례했습니다, 형님.”
이병렬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래놓고는 또 ‘자신 있으면 해 봐.’하는 투로 송대길을 향해 얼굴을 똑바로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송대길 역시 적대감 가득한 눈으로 눈꼬리를 올리고 있어서 시선이 마주친 테이블 중간에 살벌한 긴장이 불꽃처럼 튀었다.
신기하게도 문도진은 침묵했다.
세븐 우드 호텔이다.
여기에서 신호남파의 송대길과 이병렬이 붙으면 어떻게 될 거 같냐?
문도진의 시선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막말로 싸움이 붙으면 신호남파는 숙소에 있는 애들이 줄줄이 달려 나오는데 이쪽은 형님들한테 욕만 졸라리 먹고 끝나게 되니까 더러워도 눈 감는 거지.”
강성태는 이곳에 오는 차 안에서 이병렬이 전해주었던 설명을 떠올렸다.
이런 경우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신호남파의 보스 문도진의 비위를 맞추려면 이병렬에게 욕을 퍼부은 뒤에 사과해야겠지. 문도진의 지금 눈빛이 바라는 게 그거니까.
이병렬은 소위 족보 있는 깡패였다.
그런데도 강성태를 보스라 불렀고, 건방 떠는 송대길과 맞섰다. 강성태가 아니었다면 출발 전 나이트에 보았던 대로 멋진 보스의 모습을 지켰을 이병렬이 말이다.
조태완의 목에 회칼을 대고 “칼 드리겠습니다, 형님.” 했던 이병렬에게 욕을 하고 이 자리를 모면하라고?
사람 잘못 봤어, 문도진.
내가 원래 내 사람 건드리는 걸 보면 독해지거든.
송대길을 돌아본 강성태는 대놓고 픽 웃었다.
“차라리 이게 낫네.”
강성태의 툭 던진 말에 송대길의 눈이 달려왔고, 눈가를 좁힌 문도진이 의도를 알기 위해 눈알을 굴렸다.
강성태는 위협적인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도진이 상체를 뒤로 빼는 순간, 맞은편에 있던 송대길이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고, 맞서는 모양으로 이병렬이 몸을 일으켰다.
“힘을 보이고 싶으면 닥치고 그냥 밀고 들어오지, 뭐 깡패 새끼들이 어쭙잖게 커피숍에서 보자느니 헛짓을 해? 지금부터 내가 독해질 건데 특히 너.”
강성태는 시선으로 턱짓으로 송대길을 지적했다.
“내 앞에서 함부로 주둥이 놀리지 마라.”
말을 마친 강성태가 몸을 돌리자 이병렬이 통로로 빠져나갔다. 강성태가 이병렬의 의자가 있던 곳을 지날 때였다.
“뭐 하자는 거야? 형님 앉아 계신 거 안 보여?”
으르렁거리는 송대길의 음성이 강성태를 향해 날아들었다.
꼭 얻어맞아야 정신이 드는 놈들이 있는데 이렇게 교육해야 할 순간을 건너뛰면 증세가 심해지는 공통점을 지닌다.
의자를 지나쳐 통로로 나선 강성태는 입구가 아닌 송대길이 서 있는 반대편으로 몸을 틀었다.
‘어?’
놀란 송대길이 오른발을 뒤로 빼내며 자세를 잡았다.
준비도 했으니까.
강성태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콱!
송대길의 반응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깡패들 중 가장 빨랐다. 강성태가 날린 주먹이 송대길의 귀 위쪽 머리를 때린 직후였다.
쩌어억!
왼손 주먹이 놈의 눈과 콧대 사이에 꽂혔고,
쩌어어어억!
다시 오른손 주먹이 송대길의 왼쪽 눈 안쪽에 제대로 박혔다.
버티려 했던 모양이었다.
억지로 몸을 세우려던 송대길이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
콰등. 털썩!
불행하게 공간이 좁았다.
쓰러지던 송대길은 창에 머리를 부딪쳐 더욱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강성태가 시선을 돌렸을 때, 문도진은 의자에서 몸을 반쯤 돌려 등받이와 탁자에 팔을 하나씩 걸친 자세였다.
“속 풀었으면 좀 앉어. 아직 쌍화차도 안 나왔어.”
문도진은 확실히 조태완과는 달랐다.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도 느물거리는 말투는 변하지 않았다.
“아, 앉으라니까. 몸에 좋다는데 마시고 가야지.”
호남 억양이 묻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문도진은 처음처럼 사투리를 쓰지는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강성태가 답답한 모양이었다.
“어허!”
문도진이 탄식을 뱉어냈다.
“광룡이라고 알지? 그쪽에서 연락을 했더라고. 강성태라는 영등포 깡패가 자꾸 사업을 막는데 중재를 좀 해달라, 뭐 그런 건데. 어째? 이제 앉을 마음이 생겨?”
문도진이 이렇게 양보했고, 광룡의 이름이 나왔다면 앉을 이유와 명분은 충분했다. 숨을 길게 내쉰 강성태는 테이블을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강성태가 의자에 앉은 다음이었다.
“너도 앉어.”
문도진이 턱으로 이병렬의 자리를 가리켰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고개를 숙여 인사한 이병렬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한 번 일어서면 지시를 받을 때까지 다시 못 앉는 거였나?
더럽게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그걸 내색할 때가 아니었다.
이병렬이 앉는 틈에 문도진은 고개를 돌려 송대길의 상태를 확인했다.
“저놈은 언제 일어날까?”
“사람마다 달라서.”
안부를 묻는 듯 가벼운 문도진의 질문에 강성태는 어깨를 슬쩍 들어 보이며 역시나 편하게 답했다. 질문과 답이 오간 직후에 트레이를 밀며 매니저가 다가왔다.
“주문하신 차를 올리겠습니다.”
공손하게 인사한 매니저가 세련된 태도로 쌍화차를 올려놓았다. 오목하고 둥그런 찻잔이 테이블에 올라올 때마다 쌍화차 특유의 향이 좀 더 짙게 풍겼다.
테이블에 붙어 서 있으니 구석에 처박힌 송대길이 안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초인적인 의지로 태연함을 유지한 매니저는 찻잔 네 개를 올려놓고 세련된 인사와 함께 통로를 거슬러 움직였다.
기껏 쌍화차를 마셔야 한다던 문도진은 향기가 진하게 올라오는데도 잔을 잡지 않았다.
“그 누구라드라?? 어! 지용호! 지용호라고 하드만. 그 인간이 이렇게 됐으니까.”
검지와 중지를 길게 펴서 목을 긋는 시늉을 보인 문도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일단 그거로 화 풀었으면 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고. 조태완이 운영하는 클럽을 우리 강 사장이 인수하면 어떤가 하고 묻더라고.”
워낙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었다.
“웃을 일은 아니지. 강 사장이 오케이하면 광룡이 알아서 태완이파 싹 정리해서 알짜배기 업소 쥐여주겠다드만.”
“중재해주는 대가로 문 회장이 받는 건?”
“나? 나야 강남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것이지. 내가 원래 박애주의, 평화주의, 뭐 그런 거 좋아하니까. 글고 말이지.”
이병렬을 힐끔 돌아본 문도진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 입, 특히 이 문도진, 내 입에 들어오는 건 신경 쓰는 거 아니다.”
독한 눈으로 경고를 마친 문도진이 상체를 다시 등받이에 기댔다.
“태안 거래는 없던 거로 했으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 인수하려면 답은 이틀 안에 달라드만.”
강성태는 조건을 되짚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은 나쁘지 않은데 내가 다짐받을 게 있으니까 광룡더러 직접 보자고 했다고 전해.”
“뭐? 조태완이 때문에 그래?”
문도진이 내내 감추었던 야비함이 그의 눈에서 번개처럼 스쳤다.
“오케이만 하면 그 인간 조용하게 사라질 것 같은데? 자다가 추워서 깨보니까 중국의 수술대에 누워있다던가, 그런 방법 있잖아?”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이틀 안에 광룡과 만나면 오케이. 아니면 지금 들은 이야기는 없던 거로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그렇게 전하지. 대신에 말이야. 다음에는 말투를 좀 조심해.”
뜻밖에도 순순히 강성태의 말을 받았던 문도진이 끝에 경고를 달았다.
“문도진.”
강성태는 느물거리는 문도진을 나직하게 불렀다.
“개가 날뛰면 주인이 욕을 먹어. 대우를 받고 싶으면 개 줄을 제대로 매고 손에 꼭 붙들고 다녀.”
“너는 훈련 잘 시켰다?”
감정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이병렬을 돌아보았던 문도진이 비웃음을 단 얼굴로 이죽거렸다.
“개랑 사람을 비교하면 되나? 그 정도는 구별하는 눈을 가지는 게 좋아. 그래야 다음번에 망신 안 당해.”
말을 마친 강성태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병렬이 함께 몸을 일으켰다.
문도진을 향해 꾸벅 인사한 이병렬이 통로로 나섰고, 강성태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통로 좌우의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강성태와 이병렬을 힐끔거렸고, 입구에서 기다렸던 매니저는 안도하는 얼굴로 몸을 숙였다.
강성태와 이병렬이 커피숍을 나선 직후였다.
차에서부터 여기까지 안내했던 덩치가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가십니까, 형님?”
“응.”
답은 이병렬이 했다.
고개를 한 번 더 숙인 덩치가 입구를 향해 걸었고, 문을 열어주었다.
입구 바깥에 있던 두 놈이 강성태와 이병렬을 향해 인사한 뒤에 기다리던 승용차의 뒤쪽 문을 각각 열었다.
“살펴가십시오, 형님.”
문을 열어준 두 놈은 탈 때도 인사, 앉은 뒤에도 인사, 마지막으로 차가 출발하는 순간에 세 번째로 상체를 깊숙하게 떨궜다.
염병들 한다, 진짜.
인사 못 해서 죽은 귀신이 씌운 것도 아니고.
호텔을 빠져나온 승용차는 바로 도로에 합류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이병렬은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걸 씨발!”
밑도 끝도 없는 욕을 뱉어낸 이병렬이 기가 막힌 얼굴로 강성태를 보았다.
“뭐 그렇게 화가 난다고 도진이 형님 앞에서까지 대길이를 그렇게 두들기냐? 진짜 강남 삼대장을 전부 적으로 돌릴 거 아니면 적당히 좀 하자.”
거짓말 조금 보태면 최치곤의 귀가 뒤를 향해 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쫑긋 서 있었다.
이병렬은 그런 최치곤의 반응을 알아본 눈치였다.
“우리 보스가 말이다. 건방 떨던 송대길을 두들겨서 커피숍 구석에 처박았다. 우리가 나올 때까지 뻗어 있는 걸 봐서는 김동팔이보다 맷집은 약한 거 같더라.”
강성태가 심했다는 투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툴툴거리는 이병렬의 눈에 분명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나는 도진이 형님이 그렇게 인내가 강한 분인 줄 처음 알았다. 하기는! 여차하면 도진이 형님도 두들길 기세였으니 내가 그 입장이라도 개망신당하느니 한번 참았겠지.”
말을 한 이병렬이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개하고 사람을 비교하면 되나? 와! 나 참! 그 말을 하는데 진짜 고맙더라.”
농담을 던지며 긴장을 푼 이병렬은 한숨과 함께 표정을 가라앉혔다.
“그나저나 광룡은 무슨 생각일까?”
“이간질.”
“이간질?”
“광룡이 원하는 건 이간질이다. 내가 문도진을 만난 것을 조태완에게 알리겠지. 그런 뒤에 조태완과 내가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할 거고.”
설마?
이병렬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원하면 클럽을 넘겨주겠다고 했잖아?”
“이간질하기 전에 한 번 양보하는 거지. 개인이든, 조직이든, 건드려서 귀찮을 거 같으면 먹을 걸 하나 주고 해결하는 게 편하고 빠르거든.”
“하기야 우리도 봉투를 찔러주니까.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아직 결정 못 했다.”
뭔가 의미 있는 답이라고 여겼는지 이병렬이 눈가를 좁혔다.
“조태완? 아니면 문도진? 그것도 아니면 두 놈 모두?”
“그건 또 뭔데?”
“어떤 놈을 죽일지 결정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강성태의 시선을 받은 이병렬이 마른침을 삼켰다.
진심으로 고민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병렬의 반응이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전화를 걸어 김진용과 서달수를 부른 이병렬은 커피숍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최치곤에게 들려주며 도로를 달리는 지루함을 밀쳐냈다.
궁금해하는 최치곤을 위한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이병렬은 당시의 상황을 하나씩 되짚는 눈치였다.
신월동 나이트 앞쪽의 도로에 도착한 것은 오후 9시 10분쯤이었다.
“나는 치곤이와 바로 돌아갈게. 내일까지는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진용이, 달수와 함께 움직여.”
“너는?”
“조태완이나 문도진, 광룡이 움직인다면 가장 먼저 노릴 타깃이 너다. 다음은 치곤이, 그 뒤가 진용이.”
주차장을 향해 방향을 트는 승용차의 뒤에서 이병렬은 방금 전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 상태에서 너나 치곤이, 진용이가 당하면 내가 어떻게 할 거 같냐? 그래서 내가 광룡을 직접 보자고 한 거다. 우선 만날 때까지 다른 일을 저지르지 못할 테니까 시간을 벌고.”
“그다음은 이간질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냐?”
“아니. 그 자리에 나온 놈을 죽여야지.”
주차장에 차를 세운 최치곤이 얼마나 놀랐는지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화들짝 앞으로 되돌렸다.
“조태완, 문도진, 광룡에서 나온 놈. 누가 죽어도 죽어. 이건 그런 싸움이다. 송대길을 두들긴 거? 문도진에게 경고한 거다. 내 식구 건드리면 누구든 죽는다고.”
덩치들이 몰려와 인사하는 차 안에서 강성태는 이병렬에게 분명하게 생각을 전했다.
“진짜 죽이냐?”
확인처럼 꺼낸 이병렬의 질문에 강성태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