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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 10화 (118/513)

6권 - 10화

나이트 입구에 도착한 승용차를 향해 덩치들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아직 나이트가 한가한 시간이어서 시선이 몰리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문도진까지 상대하려면 조용하게 모일 장소가 하나쯤 있었으면 싶었다.

강성태는 운전석에서 내려 기다리는 최치곤과 함께 나이트 계단을 내려갔다. 화려한 조명이 무대와 홀을 비추었고, 익숙한 멜로디가 요란하게 울렸는데 아직 손님은 없었다.

복도를 지키는 덩치들의 인사를 받으며 걷는 강성태의 앞으로 움직인 최치곤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왼편 기다란 소파에 앉아 있던 이병렬이 눈인사를 건넸고,

“오셨습니까, 형님?”

소파 뒤편에 서 있던 김진용이 상체를 숙였다.

“시간이 그러니까 바로 가자. 우리 차는 치곤이가 운전하기로 했고, 진용이가 애들 데리고 뒤따르기로 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이병렬이 바로 소파에서 일어섰다.

“치곤이 너 연장 챙겼어?”

“예, 형님.”

이놈이 회칼을 가지고 있었어?

강성태는 새삼스러운 심정으로 최치곤을 돌아보았다.

재킷이나 허리춤에 회칼을 담고도 그렇게 편한 자세로 샌드위치를 먹었다는 거지?

강성태의 시선을 본 최치곤의 눈에 장난기가 스치고 지났다. 둘만 있었으면 ‘장사 하루 이틀 하나요, 서방님.’ 하며 느끼한 장난을 던졌을 눈빛이었다.

“가자.”

밖으로 나가는 이병렬을 따라 강성태는 걸음을 옮겼다.

“세븐 우드 호텔 뒤편에 달수가 애들 여섯 명 데리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출발하면 진용이가 또 여섯 명하고 따라올 거고.”

복도를 걸으며 이병렬이 준비한 일들을 알려주었다.

“나부터 애들 전부, 연장 하나씩 챙겼다. 도진이 형님이든, 신호남파든, 하고 싶은 대로 해.”

계단을 올라간 이병렬이 주차장을 돌아보았다.

전에도 이랬었나?

아치 형태로 달아놓은 나이트 네온사인을 온몸에 받은 이병렬은 강한 남자의 기운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최치곤이 운전석에 올라타는 것을 지켜본 이병렬이 시선을 돌렸다.

“뭐 해?”

강성태를 재촉한 이병렬이 운전석 뒤편으로 움직이자 덩치 한 명이 문을 열었다.

오늘 좀 유난히 멋있다, 이병렬.

조태완의 목에 회칼을 들이대고, “칼 드리겠습니다, 형님.” 할 때보다도 더.

주변의 덩치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옅게 웃은 강성태는 걸음을 옮겨 조수석 뒤편 좌석에 몸을 실었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문을 닫으며 김진용이 상체를 숙였고, 그 뒤에 있던 덩치들이 서열에 따라 줄줄이 인사했다.

“도진이 형님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 관리로 시작해서 지분 조금씩 긁으면서 큰 양반이다, 운 때가 맞으려고 그랬는지 성인 오락실 허가가 풀렸거든. 그때 기계 납품 독점하면서 강남 삼대장 중 하나가 됐지.”

핸들을 오른쪽으로 감아 방향을 튼 최치곤이 올림픽 도로에 들어섰다.

“일본 쪽 조폭들하고 친분이 두터워서 그쪽 돈으로 대부업에도 손대는 모양이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우리 바닥에서 평판은 안 좋아. 조태완은 그래도 옛날 형님들 챙기는데 도진이 형님은 기존에 있던 호남 식구들하고 선 긋고 신호남파로 혼자 먹고살거든.”

말을 마친 이병렬이 재킷 안쪽에 손을 넣어서 사진 두 장을 꺼냈다. 각각 다른 남자 사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정장에 타이를 맨 것으로 봐서 소위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이 양반이 문도진 형님,”

사진을 받아든 강성태는 문도진을 눈에 담았다.

째진 눈과 매부리코가 인상적이었는데 강남이란 지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촌사람의 느낌을 풀풀 풍겼다.

조금 뒤에 만나기로 하긴 했지만, 강남의 호텔이 아니라 시골 어느 한적한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총각김치 시켜놓고 기다린다는 게 훨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시선을 돌리자 이병렬이 다음 사진을 넘겨주었다.

“이 인간이 송대길, 태완이파에 김동팔이 있다면, 신호남파에는 송대길이 그 역할을 한다.”

송대길의 첫 느낌은 짧은 머리 아래로 드러난 이마가 몹시 좁아서 성질 참 더럽겠다 싶은 정도였다. 거기에 눈의 양 끝이 위로 올라가 있어서 입술은 웃고 있는데 얼굴 전체는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인상이었다.

“신호남파가 워낙 세력이 강해서 함부로 입에 올리지는 않지만, 언제고 송대길, 이 인간이 도진이 형님 재끼고 올라갈 거란 말이 돌 정도니까 참고해 둬.”

“사진은 어디에서 구했냐?”

“그게 말이지.”

설명을 하려던 이병렬이 먼저 재미있다는 투로 가볍게 웃었다.

“태완이파가 우리한테 개망신당했다는 말이 쫙 돈 거 아니냐. 그쪽 애들이 어깨 뽕 잔뜩 들어가서 설치다가 박살나니까 이번에는 도진이 형님 애들도 좀 두들겨줬으면 싶었나 보더라. 애들이 알아서 줬단다. 신호남파 애들이 어지간히 밉상으로 굴었어야지.”

“어떻게 해야 깡패들 사이에서 밉상이 되냐?”

“다 된 밥에 숟가락 들고 끼어들거나 먹으려던 밥상 가져가는 게 제일 크지.”

강성태의 표정을 읽은 이병렬이 얼른 말을 이었다.

“업장을 가지지 못한 애들이 돈을 만드는 제일 좋은 방법이 시비에 끼어드는 거거든. 막말로 너랑 치곤이가 이런저런 일로 시비가 붙는 바람에 내가 끼어든 거야. 서로 조금씩 양보합시다, 하면서 나는 양쪽에서 돈을 받아먹지.”

그 정도야 이해한다.

“겨우 일 수습했는데 느닷없이 치곤이가 신호남파 식구를 데려오면 지랄 같거든. 치곤이한테서 내가 받으려던 몫 뜯기는 건 당연하고, 여차하면 너한테 불리한 조건으로 합의하게 되니까.”

“너라면 그 꼴 안 볼 것 같은데?”

이병렬이 비릿하게 웃었다.

“아래 애들은 달라. 막말로 싸움이 붙으면 신호남파는 숙소에 있는 애들이 줄줄이 달려 나오는데 이쪽은 형님들한테 욕만 졸라리 먹고 끝나게 되니까 더러워도 눈 감는 거지.”

강성태는 송대길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 뒤에 사진을 돌려주었다.

“도진이 형님이 너를 만나자고 하는 것과 별개로 송대길이 이 새끼는 조심해. 느닷없이 애들 시켜서 너나 나, 연장질 할 수 있는 놈이니까.”

“문도진이 허락도 안 받고?”

“이 새끼가 그런 식으로 컸거든. 자기 자리 위협할 거 같으면 느닷없이 작업해서 밀쳐내는 방법으로. 아래 애들을 불러오고 관리하는 게 이놈이라 도진이 형님이 서너 번 참아 넘어간 것도 있다.”

“참 어렵게들 산다. 그 정도면 송대길이 벌써 작업했을 거 같은데 왜 여태 문도진 아래에서 고개 숙이고 있어?”

대답 대신 이병렬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위로 들어 보였다.

“이걸 도진이 형님이 꽉 쥐고 있거든. 카지노 지분부터 일본에서 들어오는 돈까지. 그거 넘어가는 순간, 작업 당한다고 봐야지.”

상황을 이해한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진짜 괜찮은 거냐? 걷는 것만 보면 많이 좋아진 거 같은데?”

질문을 던진 이병렬이 강성태의 배 부분으로 시선을 주었다. 피가 배어 나오는 건 아닌지 염려하는 눈치였다.

“주사가 좋은 게 있다더라고. 그걸 맞았더니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어디서?”

“강남에 있는 방지병원.”

“그럼 우리 애들 심하게 다쳤을 때 그리 가면 되겠네. 진용이가 거기 알잖아?”

강성태가 된다, 안 된다를 정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올림픽 도로를 달린 승용차는 한남대교를 타기 위해 꼬리를 문 승용차의 뒤에 붙었다.

아직 시간이 여유 있었고, 도로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어서 8시까지 도착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강성태가 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끼이익!

차가 급하게 멈추며 이병렬과 강성태의 몸이 앞으로 급하게 쏠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화를 누르느라 이를 꽉 깨문 최치곤이 앞을 노려보며 건넨 사과였다.

꼬리를 물고 기다리던 앞으로 꽂아넣듯이 머리를 집어넣은 승용차를 보고 있으려면 최치곤 성격에 화가 꼭지에 닿았을 게 분명했다.

올림픽 도로에서 한남대교로 빠져나가는 건 한 차선밖에 없어서 그 뒤로도 비슷한 꼴을 두 번 더 보고서야 최치곤은 한남대교에 끝단에 들어섰다.

“운전하다 시비 걸리면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고 피해.”

강남을 향해 끼어드는 최치곤을 향해 이병렬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운전하는 사람 중에 가족들 데리고 가는 가장, 부모 모시고 가는 자식, 마지막으로 애인 태운 남자를 보면 특히 머리 숙이고.”

“예, 형님.”

운전하는 최치곤의 뒤통수를 보며 픽 웃은 이병렬이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인간은 보면 볼수록 괜찮네.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강남의 거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2주 뒤에 안다미가 하루 쉰다고 했다.

그때 어딜 데려가야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주변에 떠오르는 인물이 마땅치 않았다.

최치곤은 무조건 벽이 많은 곳에 가라고 할 테고, 이병렬은 나이트클럽이나 프리 스테이션을 권할 것 같은 불안감이 피어나서였다.

김민재와 김민정이라면 정상적인 조언을 해주겠다만, 또 이모에게 조잘조잘 떠들어서 기대감만 한껏 부풀려놓을 테니 그마저도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높게 선 건물들을 보던 강성태는 내일 만나기로 한 곤잘레스 이두안을 떠올렸다.

로라를 한국에 둘 정도로 위험한 상황인가?

“뭘 그렇게 생각해?”

밝아진 로라의 모습을 그리던 강성태의 시선을 이병렬이 당겼다.

“거의 다 왔다.”

이병렬이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치곤아. 혹시 모르니까 차에서 기다려. 바로 움직일 수 있게 공간 만들어두고.”

“예, 형님.”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7시 45분이니까 호텔 커피숍에 들어가면 50분쯤 되지 싶었다.

이병렬이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 10분쯤 일찍 들어가는 게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오르막의 중간에 서 있는 세븐 우드는 아우라 호텔보다 새 건물 느낌이었고, 그만큼 화려한 외관을 뽐냈다. 앞쪽에 카지노란 글자를 휘갈겨 써놓은 듯 매달아 놓은 네온사인도 신월동의 나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최치곤이 입구에 차를 세운 직후였다.

도어맨과 함께 덩치 셋이 다가왔다.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던 셋 중 하나가 강성태가 앉은 뒷자리 문을 열었고, 다른 둘은 이병렬과 운전석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안녕하십니까?”

문을 연 덩치가 강성태를 향해 고개 숙인 뒤에 내리기를 기다렸고, 이병렬 쪽으로 움직인 덩치 역시 문을 열고는 깊게 상체를 숙여 인사했다.

여기에서 이병렬에게 어쩌면 좋겠냐는 말을 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강성태는 태연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깊게 인사하는 덩치들의 모습에 호텔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약속한 것처럼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재벌 3세가 보디가드로 깡패를 데리고 다니는 건가, 아니면 연예인?

뒤늦게 내린 이병렬에게 향했던 시선들이 호기심을 가득 담고는 다시 강성태에게 돌아왔다.

“우리 차는 그냥 둬.”

“예, 형님.”

이병렬이 지시하자 운전석 쪽에 있던 덩치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모시겠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앞에서 기다리던 덩치가 한 손으로 재킷의 앞을 누르는 공손한 자세로 입구를 가리켰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운전석 앞에서 인사하는 최치곤을 향해 짧게 시선을 준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호텔 문을 향해 움직였다.

저녁 시간이었다.

로비에 제법 많은 손님들이 있었는데 아우라 호텔의 조태완과는 달리 덩치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형님.”

앞서 걷던 덩치가 오른편에 있는 커피숍 앞에 도착한 뒤에 고개를 깊게 숙였다.

더는 함께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 명만 나온다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것처럼 커피숍에 들어서자 매니저인 듯한 중년 남자가 강성태와 이병렬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매니저는 커피숍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벽을 등지고 칸막이를 둘러서 공간을 확보한 안쪽에 테이블이 보였고, 자리에 있던 두 명 중 한 명이 몸을 일으켰다.

통로 방향에서 몸을 일으킨 건 송대길, 창 쪽에 앉아서 고개를 든 사람이 문도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인사하는 이병렬을 바라보던 문도진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강성태여?”

“그렇습니다.”

“뭐, 깡패들이 지역 따지지 말고 인사, 소개하기로 한 뒤부터 우리 바닥은 무조건 나이로 가거든. 이광준이허고, 이병렬이 인정했다니까 나도 받아들이기는 허겠는데, 대신 우리 애기들한테 강요는 못 해. 알지?”

생김새가 그렇더니 말투는 더 시골 아저씨였다.

“앉어.”

문도진이 눈짓으로 권하는 대로 강성태가 안쪽에 앉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인사한 이병렬이 자리하고 나서야 고개를 반쯤 숙인 송대길이 자리에 앉았다.

“여기!”

손을 든 문도진이 커다란 소리로 매니저를 불렀다.

“오늘은 뭐가 맛있을까?”

“쌍화차가 괜찮습니다.”

“쌍화차가 괜찮다는데? 워쪄?”

“그거로 하겠습니다.”

“들었지? 우리 쌍화차로다가 네 개. 여기도 노른자 띄워준가?”

“준비하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매니저가 깍듯하게 인사하고 계산대로 움직였다.

“식사는?”

“하고 왔습니다.”

“그런디. 동생은 깡패여, 아니면 사업가여?”

의자에 등을 기댄 문도진의 질문이었다.

“시비 걸려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어. 동생이 깡패인지, 사업가인지에 따라 할 이야기가 달라져서 그려. 워쪄? 깡패여, 사업가여?”

재차 질문을 던진 문도진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강성태의 답을 기다렸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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