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 7화 (115/513)

6권 - 7화

자리를 향해 움직이던 최치곤이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민정이.’

입 모양으로 상대를 알려준 강성태는 다용도실에 들어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오빠? 나야, 민정이.

“그래. 어디야?”

- 퇴근하는 길인데 잠깐 들러도 돼?

“퇴근이 왜 이 시간이야? 원래 오전이었잖아?”

- 사건 하나가 지금 끝나서 그래. 바빠?

“잠깐 들르는 건데 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 엄마 알잖아. 오빠가 연락 없다고 들여다보고 오래.

강성태는 김민정이 들을 정도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잘 지내더라고 해.”

- 엄마 몰라? 내가 그런 말 하려는 순간 너, 거짓말하지 마. 하실 분이잖아. 그러게 오빠가 전화 좀 해주지. 요 며칠 계속 꿈이 안 좋다고 걱정이 많으셨어.

김민정의 말에 근심이 담겨 있어서 강성태는 웃음을 지우고 통화에 집중했다.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지?”

- 그런 건 아냐. 조금 이따가 들를게, 오빠.

“그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종료버튼을 누르고 다용도실을 나섰다.

라테를 마시고 있던 최치곤이 잔을 내려놓으며 목을 길게 빼고는 시선을 주었고, 그 안쪽에서 여중생들이 강성태를 힐끔거렸다.

아직 한가한 시간이었다.

“은주 씨. 치곤이랑 잠깐 있을게요. 조금 뒤에 민정이 온다네요.”

“네.”

이은주에게 양해를 구한 강성태는 최치곤이 앉은 자리로 움직였다.

“집에서 쉬라니까 병렬이한테는 왜 가서 이 고생을 해? 정 마음이 그러면 차라리 2층 사무실에 가서 편히 있어.”

“이따 봐서. 아, 쓰발 거. 팽팽하기만 하고 아무런 일도 없으니까 오히려 그게 더 걸린다.”

거친 말을 뱉은 최치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 봐야 안쪽에 여중생 둘과 창가로 앉은 직장인 두 명이 전부일 정도로 카페 안은 한가했다.

“태완이파라고 졸라 센 척하더니 뭐 이렇게 조용해? 그렇게 당했으면 뭐라도 해야지.”

“뜨거운 물에 있는 개구리 꼴이라 그래. 당장은 견딜 만하니까 버티는데 물이 끓기 시작하면 결국 움직일 거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머리가 까맣게 타고 있을걸?”

“너한테 연락할 거 같냐?”

최치곤의 질문을 받은 강성태는 잠시 주차장을 바라보며 조태완을 떠올렸다.

“조태완의 재산이 얼마나 되지?”

고개를 돌린 강성태의 질문에 최치곤은 눈만 끔벅였다.

“짐작은 할 거 아냐? 소문도 있을 테고?”

“클럽 영업 마치면 태완이파 애들이 현금을 따로 쓸어간다더라. 그거로 손님 불러온 애들 커미션을 주고 남은 건 따로 보관한다니까, 한 달에 아무리 못 챙겨도 업소당 30억은 챙기지 않았겠냐?”

들었던 내용을 전한 최치곤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고개를 까딱였다. 아마도 클럽 세 개를 합친 금액에 영업한 기간을 곱하는 눈치였다.

“너한테 그런 현금이 있는데 죽게 생겼어. 그럼 어떻게 할래?”

“뭐?”

양손 손가락을 연달아 접어가며 금액을 계산하던 최치곤이 고개를 불쑥 들었다.

“돈을 빌려 간 채무자가 약속을 세 번 어겼다고 숙소 앞 나무에 죽여서 매달 정도로 독한 놈들이 광룡이다. 그런 놈들이 30킬로그램이나 되는 마약을 가져오는 걸 조태완이 불었어. 솔직하게 말해도 죽고, 들통나도 죽게 돼.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돈 있겠다, 조직 있겠다, 씨발! 한번 붙는 거지.”

“그래! 나라도 그렇게 하겠다. 그러려면 첫 번째가 지용호를 재끼는 건데 그놈이 도망갔으면 조태완은 이미 밥상 엎어진 꼴이다.”

“죽였으면 어떻게 돼냐?”

“뒤를 수습하느라 정신없겠지. 그 와중에 날 죽이려고 들어?”

말끝에서 강성태는 그럴 리가 없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보기에 조용히 흘러가지만, 강남 대가리들끼리는 지금 팽팽 돌아갈 거다. 태안으로 마약이 들어오는 일도 없을 테고. 기다려 보자. 광룡, 조태완, 그 외에 강남의 대장이라는 나머지 두 놈 중 누가 가장 먼저 움직이는지?”

“광룡이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데?”

“누군가 찾아오겠지.”

설마 하는 최치곤을 향해 강성태는 가볍게 웃었다.

**

송원은 파라 호텔에서 지용호를 기다렸던 수하였다.

안중까지 함께 온 그는 지용호가 옥탑방으로 올라간 뒤에 3층의 가정집에서 머물렀다.

그가 앉아 있는 거실의 TV에서도 건물의 입구와 층을 비추는 CCTV 화면이 올라와 있었다.

1층과 옆 건물에는 중국에서 넘어온 무식한 덩치들이 잔뜩 있어서 이 건물에 있는 동안 지용호는 안전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송원은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국을 책임진 지용호가 안중에서 강성태에게 개박살 났고, 이어서 조태완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알았다.

총을 사용하지 못하는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광룡의 근거지인 안중에서 일방적으로 당했던 사건은 지용호에게 치명적이었다.

알아서 하겠지.

조직이 버튼을 누르면 그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거고.

짧은 머리, 움푹한 볼, 앞으로 밀고 나온 턱을 지닌 송원이 CCTV에 시선을 집중할 때였다.

찌르릉. 찌르릉. 찌르릉.

그의 폴더폰이 울었다.

번호를 확인한 송원은 얼른 폴더폰을 펴서 귀에 가져갔다.

“송원입니다.”

- 듣기만 해.

“예, 형님.”

- 지용호가 옥탑방에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가서 작업해.

덤덤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섬뜩한 지시가 건너왔다.

- 시간 끌 것 없다.

“알겠습니다, 형님.”

- 끝나고 보고해.

답을 하기도 전에 통화가 뚝 끊겼다.

폴더폰을 내린 송원은 액정에서 깜박이는 번호와 통화시간을 확인했다.

영등포 따위에 마약 넣는 일로 온갖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더니 결국, 조직은 지용호를 버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폴더폰을 주머니에 넣은 송원은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몸을 숙여 싱크대 아래를 연 그는 강철로 만들어서 반짝이는 칼을 꺼냈다. 집게손가락 넓이에 등 쪽이 톱날로 돼 있어서 몸에 박으면 살점을 뜯어내지 않는 한, 빠지지도 않는다.

몸을 일으킨 송원은 날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본 뒤에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하아-.”

입김이 뿌옇게 앉기 무섭게 점퍼 안쪽의 티에 쓱쓱 문지른 그는 칼을 허리춤에 꽂았다.

지용호에게 가려면 쇠로 된 문을 거쳐야 하고 다시 5미터 정도 옥상을 걸어야 해서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잔인한 눈빛으로 몸을 돌린 송원은 거실 TV 옆 화병을 들어 그 아래에 있는 열쇠를 집었다.

준비는 끝났고.

열쇠를 왼손에 쥔 그는 폴더폰을 꺼내 번호를 찾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철우입니다, 형님.

“용호 형님 작업하란 지시다. 건너편 건물에 있는 애들 전부 옥상에 올려. 그리고 1층에 있는 애들 모두 데리고 올라와.”

- 예, 형님.

통화를 마친 송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3층 주택을 나섰다. 그가 옥상을 향해 계단을 올라갈 때, 아래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문에 열쇠를 꽂는 순간에는 2층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덩치들의 모습이 보였다.

딸캉.

열쇠를 돌렸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용호가 가로로 거는 걸쇠까지 건 모양이었다.

픽 웃은 송원은 다시 폴더폰을 꺼내서 다른 번호를 찾았다.

- 섭문입니다, 형님. 옥상에 올라왔는데 용호 형님이 나와 계십니다.

CCTV를 보고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야 상관없는 일이었다.

“건너와서 문 열어.”

- 용호 형님이 회칼을 들고 계신데요.

“알아서 밀어. 죽이지는 말고.”

- 예, 형님.

아래에서 달려온 덩치들이 송원의 뒤에 줄줄이 늘어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였다.

“이 개새끼들이!”

지용호의 악쓰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누군지 모를 비명이 두 번쯤 터졌다.

철컹!

그 직후에 옥상 문이 열렸다.

강하게 달려든 햇살에 인상을 찌푸린 송원은 거칠 것 없이 옥상으로 향했다.

스물이 넘는 덩치들에게 둘러싸인 지용호는 옥탑방 문에 기대 있었다. 배를 움켜쥔 왼손 사이에서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오는데도 지용호는 독기 가득한 눈과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송원, 너 이 개새끼!”

거친 욕에 상관없이 송원은 태연하게 좌우를 돌아보았다.

“잡아!”

송원이 지시하자 덩치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지용호는 만만치 않았다.

“이 개새끼들아!”

배를 누르던 왼손으로 칼날을 잡아가며 버틴 그는 악착같이 회칼을 휘둘러 덩치 셋을 쓰러트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푹! 푸욱! 푹!

세 번이나 옆구리와 배를 찔린 지용호는 회칼을 놓치고 다시 옥탑방의 문에 기대 버텼다.

“크윽!”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린 지용호가 신음을 토해낼 때였다.

송원은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칼을 꺼내 다시금 “하아.” 소리를 내며 입김을 불었다. 그러면서도 시선만큼은 지용호를 잔인하게 노려보았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지용호를 둘러싸고 있던 덩치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지용호의 눈을 들여다본 상태에서 송원은 힘껏 칼을 밀어 넣었다.

지용호는 확실히 만만치 않았다.

꽈악!

오른손으로 칼날을 붙들었고, 피범벅인 왼손으로 송원의 얼굴을 밀쳐냈다.

서걱.

송원이 칼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하자 칼날을 붙든 지용호의 손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때부터였다.

칼날을 붙든 지용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칼끝이 점점 더 배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용호는 악착같이 왼손으로 송원의 얼굴을 밀쳐내고 있었다.

마침내 칼끝이 배에 닿을 때였다.

“이런 씨발…….”

지용호가 뱉은 외마디 욕이 터져 나왔고,

푸욱.

그 직후에 칼이 배를 파고들었다.

“커흑!”

검지 길이의 넓이에 20센티미터나 되는 칼이 칼자루 바로 앞까지 모두 지용호의 배에 박혔다.

비명을 지른 지용호와 칼을 악착같이 찌른 송원 모두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끅! 끄윽!”

그 상태에서도 지용호는 왼손으로 송원의 얼굴을 밀치고 있었다.

독하게 인상을 찡그린 송원이 칼날의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빠르게 돌리면 단숨에 힘이 빠져 쓰러질 텐데, 송원은 고문하듯 서서히 비틀었다.

“끄아악! 끄으!”

고통을 견디지 못한 지용호의 비명이 옥상에 가득 메우면서 송원의 얼굴을 밀치던 왼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개새……끼…….”

날을 완전히 옆으로 눕힌 송원이 이를 악물고는 배를 썰 듯이 힘껏 밀었다.

서거걱.

비명은 없었다.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던 지용호의 왼손이 스르륵 아래로 늘어졌고, 벽에 기대며 버티던 그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지용호의 고개가 완전히 옆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송원은 가슴을 꽉 밀친 상태에서 거칠게 칼을 뽑아냈다.

털썩!

옥탑방 문 앞에 쓰러진 지용호는 배가 완전히 갈라져서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의 몸 아래에서 넓게 퍼져나오는 피를 보며 송원은 칼을 허리춤에 꽂았다. 그리고는 피 묻은 폴더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작업 끝났습니다, 형님.”

- 사진을 찍어서 조태완에게 보내. 나머지는 잘게 썰어서 바다에 버리고.

“예, 형님.”

통화는 거기까지였다.

폴더폰을 들어 지용호의 사진을 이리저리 찍은 송원이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으로 넣어서 깍두기 크기로 잘라.”

“예, 형님.”

지켜보던 덩치들이 아직 꿈틀대는 지용호를 들고 옥탑방 안으로 들어갔다.

“후-.”

숨을 길게 내쉰 송원은 몸을 돌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안중은 송원의 세상이었다.

눈부신 태양 탓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송원이 헤벌쭉 웃었다.

**

강성태와 최치곤이 이야기를 나눌 때, 김민정이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이은주와 인사한 김민정은 곧장 강성태와 최치곤이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민정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오빠?”

“나야 뭐.”

김민정은 최치곤과 인사를 나눴고, 자몽차를 주문했다.

“내가 자리를 피해 줄까?”

“아냐. 우리 오빠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해서 들른 거야.”

“내가 이렇게 지키고 있잖냐. 누구도 못 훔쳐가.”

“그래서 우리 오빠가 연애를 못 하는 거잖아.”

“너 모르는구나.”

의미심장한 최치곤의 말에 김민정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직후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강성태의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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