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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 5화 (113/513)

6권 - 5화

위압적인 태도로 들어선 두 명이 입구 안쪽 좌우에 서서 손을 앞으로 잡았다.

시선을 가리기 위한 짙은 선글라스부터 통로를 지키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경호를 위한 복장과 동작이었고, 특수부대 경력이 상당해 보일 정도로 훈련받은 움직임이었다.

경호 대상은 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여덟 명쯤 있던 손님들의 시선마저 완벽하게 끌어갈 정도로 요란하게 들어선 두 명의 뒤편에서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중간에 멈춘 차를 둘러싸고 시간을 끌었다.

강성태는 먼저 이은주를 향해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 뒤에 주문대 앞에서 잠자코 요란한 등장을 지켜보았다.

이해한다. 저렇게 시간을 지체하는 상황을.

지금 보이는 승용차는 세 대밖에 없지만, 주차장 바깥에 배치된 인원이 이상 없다는 보고를 해야 움직인다.

문제는 저 정도로 엄중하게 경호할 대상이 과연 누구일까 하는 점이었다. 이쪽을 지나던 대통령이나 삼부요인이 느닷없이 강성태가 만드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들른 건 절대 아닐 거다.

경호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일단 잠시 더 지켜본다.

다만,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자리에 앉든지, 아니면 나가달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

강성태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할 때였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승용차의 조수석 문이 열렸다.

내린 사람은 흑인 남자였다.

갈색 머리에 선글라스, 검은색 정장은 같았는데 팔뚝이 이은주의 허벅지만큼이나 굵어 보일 정도로 체격이 대단했다.

주변을 둘러본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호원 한 명이 조수석 뒷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리는 경호 대상이 과연 누굴까?

한국의 특수부대 출신으로 보이는 경호원을 이렇게까지 대동하고도 모자라 흑인 경호원을 별도로 고용할 정도의 인물이 누군지 강성태마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침내 조수석 뒤쪽에서 중년 남자가 내렸다.

“어?”

지켜보던 강성태가 놀란 소리를 냈고, 가까이 있던 이은주가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놀랐다.

심지어 이게 말이 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멕시코의 정유 재벌 곤잘레스 이두안이 신월동에, 그것도 커피알리고 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에서 내린 곤잘레스 이두안이 승용차 안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직후에 금발에 갈색 브릿지를 넣은 듯한 머리칼을 허리까지 기른 교복 차림의 여자아이가 내렸다.

“로라?”

이은주는 강성태의 반응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짧은 시선 안에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알아요, 하는 놀라움도 담겨 있었다.

차에서 내린 로라는 건강해 보였다.

‘다행이다, 로라.’

우울하고 겁먹은 로라를 떠올렸던 강성태가 옅게 웃을 때였다.

곤잘레스 이두안과 로라가 카페 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성태를 발견한 이두안이 얼굴에 미소를 담았고, 그 직후에 눈을 동그랗게 만든 로라가 카페를 향해 뛰었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멕시코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이 찾아왔는데 “주문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방을 빠져나온 강성태를 발견한 로라가 환하게 웃으며 문을 밀쳤다.

딸랑.

“성태 옵빠! 옵빠!”

어설프게나마 한국말도 배운 모양이었다.

팔을 벌리고 달린 로라는 곧장 강성태를 향해 뛰었고, 폴짝 솟구쳐 안겼다.

로라가 뛰어드는 바람에 상체 곳곳에서 찢기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글자 그대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재회였다. 그러나 밝아진 로라를 보는 대가라면 충분히 감당할 만했다.

“I miss you(보고 싶었어).”

품에 안긴 로라의 뒷머리를 쓸어주며 인사를 건네는 강성태를 이은주와 손님들이 아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사이 곤잘레스 이두안이 웃는 얼굴로 강성태를 향해 다가왔다.

“Long time no see(오랜만이군).”

“어떻게 된 겁니까? 이곳은 어떻게 아셨구요?”

강성태는 영국식 억양의 영어로 답을 건네고는 조금은 진정된 로라를 내려놓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나이였다.

“어떻게 연락을 한 번도 안 해?”

어설프게 배웠으리라 짐작했던 로라가 정확한 발음과 억양으로 우리말을 쏟아냈다.

서양인형이 우리말로 인사하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로라가.

“한국말은 언제 이렇게 배웠어?”

로라는 자랑스럽다는 투로 씩 웃었다. 대신 대꾸는 지켜보던 곤잘레스에게서 나왔다.

“세 명의 대학생에게서 일대일 레슨을 했고,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방송을 집에서 시청한 결과지. 또 영화, 오락, 드라마의 VOD를 모두 구매해서 우리 집을 털면 지난 3년간 한국의 방송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있다네.”

강성태는 자세를 낮추고 로라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

“오빠가 가고 나서 석 달 뒤부터.”

짧은 대화의 끝에서였다.

“자네가 가고 나서 우울해하던 로라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고서는 저렇게 밝아졌으니 말릴 수가 있어야지.”

이두안이 넉넉한 음성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로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준 강성태는 곤잘레스 이두안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앉으시겠습니까?”

“방해되지 않는다면.”

“원하시는 음료가 있다면 서비스하겠습니다.”

“미스터 강이 커피를 만들다니.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라도 부탁하고 싶군. 설마 화약 냄새가 나는 건 아니겠지? 로라에게도 적당한 음료를 하나 부탁하네.”

음료를 당부한 이두안이 앉을 자리를 찾는 얼굴로 안쪽을 둘러보았다.

“안쪽으로 앉으십시오. 그리고 경호원들은 저쪽 입구에 두 명, 오른쪽 창 밖으로 두 명, 나머지는 차에서 대기하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믿음직하군. 보다시피 내가 데려온 사람은 한 명뿐이고, 다른 경호원은 한국에서 고용했으니 자네가 직접 지시해주겠나?”

말을 마친 이두안은 고개를 돌려 흑인을 찾았다.

“인사해. 자네 이후로 경호를 책임지는 존 보스만. 존? 이쪽이 자네가 보고 싶어 하던 미스터 강.”

“반갑소, 미스터 강.”

“나도 반가워.”

강성태는 존 보스만과 악수하며 그의 선글라스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손이 정말 커서 어른과 악수한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 미스터 강이 지정해 준 자리에 앉기로 하지. 존?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카페 안에 미스터 강이 있다면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존 보스만이 굵직한 음성으로 답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커피?”

“경호 중이라서요.”

이해한다. 강성태도 그랬으니까.

우리말을 하는 서양인형같이 생긴 여학생, 멕시코인과 서양인의 혼혈로 보이는 곤잘레스 이두안, 영국식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강성태, 바쁘게 시선을 돌리던 손님들이 어떤 관계일지에 관해 의견을 속삭이고 있었다.

주문대로 움직인 강성태는 이은주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표정 역시 손님들과 비슷해 보여서였다.

“은주 씨.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를 따듯하게 한 잔씩, 그리고 딸기 주스를 시원하게 한 잔 부탁해요.”

“예.”

당황한 기색을 감춘 이은주가 음료를 만들기 위해 몸을 돌린 뒤였다.

강성태는 입구로 움직였다.

“곤잘레스 이두안 씨의 지시입니다. 두 분은 창 왼편의 건물 진입로를 지켜주시고, 다른 두 분은 입구 오른쪽의 계단 근처, 그리고 남은 분들은 차에서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확인처럼 이두안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경호 책임자인 존 보스만도 차에서 기다릴 겁니다. 필요한 지시는 그분에게 들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차를 뒤로 빼주세요. 입구를 저렇게 막고 있으면 괜히 시선만 집중됩니다.”

“존 보스만에게 확인하고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경호를 맡은 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강성태는 평소보다 더 예의를 갖췄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본 강성태는 이두안과 로라가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앉아도 됩니까?”

“물론이지. 자네 카페 아닌가?”

반가운 감정만큼이나 황당한 방문이었다. 자리에 앉아 로라를 보는 순간, 강성태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잘 지냈어?”

“연락을 안 해서 못 지냈어.”

어쩌면 저렇게 당돌한 대꾸를 우리말로 하는 건지, 강성태는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한국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어제 오전 10시경.”

한국과 멕시코의 시차가 14시간 정도니까 이두안과 로라의 체감 시간은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가 연락했던 친구에게서 들었네.”

뜻밖의 대꾸였다.

물론 이구안이 마음만 먹는다면 강성태의 위치 정도는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아닌 정보원이 강성태의 연락을 알렸다는 사실만큼은 조금 놀라웠다.

“사업 이야기는 나중에 할까?”

강성태를 향해 이두안이 말을 돌렸다.

아무렴, 수십조 원의 자산가인 데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갤 만큼 바쁘게 사는 이두안이 단순히 보고 싶어서 강성태를 찾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더라도 강성태와 일 이야기를 나중에 하자는 말을 들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일과 관련된 대화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로라는 신기한 눈으로 카페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카페를 한다는 말을 듣고 좀 놀랐네.”

“저도 이 일이 적성에 맞을 줄은 몰랐습니다.”

“카페를 하는 것에 놀란 게 아니라 이렇게 작은 규모인 점에 놀란 걸세. 자네는 어쩐지 대형 카페를 할 것 같았거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화가 오간 다음이었다.

“매니저님. 음료요.”

쟁반을 가져온 이은주가 분위기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르라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이 그 특별한 상황인 것을 알아챈 이은주의 배려에 어색함이 반쯤 사라졌다.

“자네가 만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나?”

“믿고 드셔 보십시오. 물론 댁에서 드시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어디 맛을 볼까?”

이두안이 잔을 잡는 것을 본 강성태는 로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셔봐.”

“고마워, 오빠.”

“존댓말은 안 배웠어?”

“친한 사이에는 하는 거 아니랬어.”

“누가?”

“선생님들도 그랬고, TV에서도 그랬어.”

웃음을 터트리는 강성태를 행복한 바라본 얼굴로 로라가 잔을 들었다.

겁먹은 듯 보이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얼굴에 자신감이 보였고, 무엇보다 내용을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강성태와 로라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두안이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한국말을 모른다.

그저 강성태의 웃음과 로라의 반응을 보며 반가움을 나누는 대화가 오간다고 짐작하는 눈치였다.

“한국에 법인을 하나씩 설립할 생각이네.”

대화가 잘린 틈을 이용해 이두안이 입을 열었다.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했었다.

사업에 관한 한 이두안은 철두철미한 사람이어서 그렇다면 법인을 설립하는 건 그가 한국에 온 진짜 이유가 아니란 의미였다.

“병원에 투자할 생각이라 이미 두 곳의 대학병원과 기본적인 이야기도 마쳤지. 투자를 하는 대신 대학병원에 한 가지 조건을 요구하는 방식일세.”

이건 진짜 뭔가 있는데?

강성태의 표정을 본 이두안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그 일 때문에 당분간 로라가 한국에 있을 예정이네. 학교도 옮길 생각이고, 가능하면 대학도 이곳에서 입학해 나중에 미국으로 유학 가는 것으로 계획했지.”

대화를 듣고 있던 로라가 강성태를 향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태는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그런 뒤에 이두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로라가 많이 위험합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세.’

로라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오간 시선이었다.

얼핏 봐도 레드워터 출신인 존 보스만을 옆에 두고도 불안해서 한국에 머물게 할 정도라면 곤잘레스 이두안 역시 목숨이 위태롭다는 의미였다.

도대체 로라를 한국에 둘 정도로 위험한 일이 뭐가 있을까?

경찰이 테러와 납치에 가담하는 멕시코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이두안의 능력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저어질 이야기였다.

“한국에 오기 무섭게 로라가 졸라대는 바람에 겨우 짬을 내서 들렀네. 오늘은 약속이 가득해서 어렵고, 내일쯤 볼 수 있을까?”

“언제쯤이 좋으십니까?”

“괜찮다면 오후 3시에 내가 묵는 호텔에서 봤으면 싶은데 어떤가?”

조태완에게서 연락이 있을지 모르고, 모레는 태안의 일을 해결해야 했다. 그렇더라도 오후 3시쯤이라면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좋군. 그럼 그때 보세.”

고개를 끄덕인 이두안이 로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만 일어나자는 신호였다.

말만 하면 뭐든 들어주는 이두안에게서 로라가 얻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간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상황이어서 로라도 이런 요구에는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오빠. 내일 시간 되면 서울을 둘러보고 싶어.”

“나도 내일 시간 봐서. 앞으로 며칠은 일이 있거든. 한국에서 학교 다니게 되면 자주 볼 테니까 서둘지 말자.”

코를 찡그린 로라가 입을 내밀었다.

멕시코에서 로라를 경호할 때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시간을 요구하지 못하는 아빠에게는 보이지 못하는, 오빠 같은 강성태에게만 부릴 수 있는 일종의 애교였다.

“그럼 이만 일어나지.”

이두안이 몸을 일으켰다.

감색 재킷에 하얀 블라우스, 넥타이,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로라가 강성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에 있던 경호원들이 빠르게 입구로 다가왔고, 창밖의 좌우를 지키던 네 명 또한 비슷한 동작으로 움직였다.

“다시 보게 돼서 반가웠네. 내일 보세.”

“저 역시 반가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재킷 안쪽에서 명함을 꺼낸 이두안이 강성태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뒤에 강성태와 짧은 악수를 나누었다.

그 뒤에 로라가 강성태를 향해 팔을 뻗었다.

“오늘 봐서 정말 좋았어. 내일 또 보자.”

“내일은 나랑 한 시간은 보내줘야 해. 선물도 있단 말이야.”

“그 정도는 만들어 볼게.”

강성태의 목을 푼 로라가 손을 흔든 뒤에 이두안을 따라 움직였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이두안은 차에 오르기 전에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주었고, 로라는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었다.

정신없는 재회였다.

짧게 머문 덕분에 점심시간 전에 평온을 찾았다. 그러나 강성태는 어쩐지 풀지 못한 숙제를 잔뜩 안아 든 심정으로 주차장을 나서는 승용차 세 대를 지켜보았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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