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 16화 (103/513)

5권 - 16화

제7장. 끝까지 양아치 짓을 했다, 이거지?

고영주의 머리칼을 움켜쥔 덩치가 또다시 손을 거칠게 놀렸다. 벌써 다섯 번째였다.

퍼윽!

목덜미의 가장 아랫부분을 손날로 내리치는 순간에 고영주는 혼이 반쯤 나간 듯 눈이 풀어지며 축 늘어졌다.

“하! 이 씨발년이? 죽은 척을 해?”

덩치가 머리칼을 위로 들어서 고영주의 얼굴을 똑바로 세웠다.

“야, 이 쌍년아! 광준이 형님 동생이라며? 그런 년이 회장님 이름을 팔고 다니는 게 얼마나 죽을 짓인 줄 몰랐어?”

얼굴 바로 앞에서 매섭게 노려보는 덩치를 향해 고영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촌오빠 이광준이 알아주는 깡패라서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 그다음으로 뜨고 싶다는 욕심에 앞뒤를 재지 않은 점도 뼈저리게 후회했다.

꽈악!

멍한 상태로 있는 고영주의 입술에 엄지를 집어넣은 덩치가 볼까지 움켜쥐고 길게 당겼다.

“끄윽! 끅!”

“사람은 있잖아. 이 입! 입을 조심해야 해, 입을. 안 그러면 찢기는 수가 있거든. 어디 씨발 팔 게 없어서 우리 회장님 이름을 파냐고, 어?”

입을 당긴 덩치가 거칠게 흔들자 찢어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과 함께 섞여 고영주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이, 더러운 년.”

입에서 손을 뺀 덩치가 엄지와 검지를 가슴 부위에 문질렀는데 반항은 생각조차 못 했다.

“이제 알아들었어?”

뭔 소리인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고영주는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뭐가 뭔지 모를 상황에서 엉뚱하게 강성태를 떠올렸다. 이렇게 무섭고 거친 덩치들 수십 명을 강성태는 혼자 상대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강성태를 떠올리자 고영주는 단박에 힘이 솟아났다.

‘두고 봐. 강성태에게 말해서 김동팔하고 너! 둘은 죽었어!’

고영주가 시선을 든 직후였다.

“아, 이 씨발년. 아직 눈에 독기가 남았네?”

퍼윽!

무자비한 매질이 고영주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퍼윽! 퍽! 퍼윽!

까무룩 고영주가 의식을 반쯤 놓았을 때였다.

스위트룸의 문이 열리며 덩치 둘이 급하게 들어왔다.

제법 서열이 높은 놈인 모양이었다.

고영주의 머리칼을 붙들고 있던 덩치가 얼른 손을 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털썩 옆으로 쓰러진 고영주는 스위트룸 입구에 들어선 덩치 둘의 발을 멍한 눈으로 보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참 오래 했었다. 그런데 사람 심정이 우스워서 지금은 이곳을 빠져나가서 강성태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적당히 하지, 이 새끼야! 뭘 저렇게까지 했어?”

“독기가 남은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뭐라는 거지?

왕왕 울리는 대화는 또렷하게 들었는데 모로 쓰러진 고영주는 생각이 완전히 멈춘 사람처럼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모르니까 저년 일으켜 놔.”

“예? 형님?”

“두 번 말하게 할래? 이년을 써먹을지 모르니까 일으켜 놓으라고.”

“알겠습니다, 형님.”

아직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뭔가 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고 짐작했다.

내내 매질을 해대던 덩치가 곤란한 표정으로 고영주에게 다가올 때, 긴장이 풀린 고영주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왜?”

“기절한 거 같습니다, 형님.”

“에라, 이 새끼야! 하여간 다시 올 때까지 깨워 놔. 알았어?”

“예, 형님.”

지시를 마친 덩치 둘이 급하게 스위트룸을 나섰다.

**

백여 명이 둘러싼 상태여서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강성태와 조태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김동팔. 특실까지 길을 열어.”

오른팔로 조태완의 목을 감싼 강성태는 왼손에 든 회칼을 턱 아래에 바싹 당겼다.

“길을…, 끅. 열어.”

조태완의 지시를 받은 김동팔이 독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 엘리베이터로 가는 화단을 치우고 사람들이 못 보게 둘러싸서 움직여.”

김동팔의 지시가 떨어진 다음이었다.

커피숍의 경계를 위해 세워두었던 나무 화단을 덩치들이 밀쳐서 길을 열었다.

준비가 끝나자 김동팔이 독한 눈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저런 새끼는 틈이 보이면 반드시 달려든다.

특히 뒤에서 회칼이 날아들면 답이 없었다.

“움직일 테니까 바싹 따라와. 그리고 어떤 새끼든 달려들면 소리부터 질러.”

“뒤는 걱정하지 마.”

이병렬의 답을 들은 것으로 움직이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독기에 수완까지 갖춘 조태완이 중간에 헛짓을 못 하게 눌러놓는 일이었다. 강성태는 조태완의 턱 아래에 걸린 회칼을 다부지게 당겼다.

“끅! 끄윽!”

짜내는 듯한 신음이 들리는 동시에 조태완의 턱 아래에서 피가 흘러나와 재킷과 셔츠를 흠뻑 적셨다.

강성태의 의지가 제대로 먹힌 눈치였다.

“씨발. 뒤에서 덤비는 일 없을 테니까 그냥 좀 가자!”

김동팔이 이를 악문 얼굴로 씹듯이 말을 뱉었다.

강성태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조태완을 힘껏 들어 올렸다. 자연스럽게 오른팔로 목을 조르는 모양새였고, 턱 아래에 바싹 붙인 회칼이 좀 더 파고들었다. 워낙 다부지게 턱 아래에 회칼을 찔러넣은 상태라 천하의 조태완이 반항 따위는 생각조차 못 한 채 강성태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강성태가 나무로 된 화단의 중간으로 움직이자 백 명에 달하는 덩치들이 우르르 걸음을 옮겼다.

강성태에게 등을 맞댄 이병렬이 뒷걸음으로 움직였고, 왼편을 최치곤이, 오른쪽을 김진용이 막아서며 함께 걸었다.

조태완의 목을 감아쥔 강성태는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몇 층이야?”

“12…… 12층.”

강성태가 회칼을 당기자 조태완의 답이 바로 나왔다.

빠르게 시선을 던진 강성태는 엘리베이터 버튼에 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강성태의 시선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문이 열리면 먼저 들어가.”

이병렬의 나직한 권유가 있었다.

앞뒤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짧은 복도였다. 7미터쯤 되는 복도에 덩치들이 가득 차서 손님들은 아예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땡.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언제고 재수 없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라, 하필이면 직장인인 듯한 남자와 팔을 안고 있던 여자 손님이 화들짝 놀라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내려.”

최치곤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리자 고개를 깊숙하게 숙인 두 사람이 쭈뼛대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형님!”

최치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강성태는 조태완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뒷걸음질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진용아. 치곤이랑 들어가.”

이병렬은 먼저 김진용과 최치곤을 들어가게 하고 마지막까지 엘리베이터의 입구를 지켰다. 언제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덩치들을 앞에 두고 이병렬이 뒷걸음질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문 안쪽으로 들어선 이병렬이 왼손으로 12라는 숫자를 누른 다음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러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서서히 닫혔다.

시커멓게 서 있는 덩치들의 모습이 조금씩 가려지기 시작했고, 마지막에 독이 잔뜩 오른 김동팔의 모습을 끝으로 문이 완전히 닫혔다.

“긴장 풀지 마. 중간층에서 세우고 뛰어들 수 있다.”

강성태는 여전히 조태완의 턱 아래에 회칼을 바싹 붙였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여유를 보이는 건 자살행위와 같았다. 멀리 볼 것 없이 숫자를 믿고 여유를 보이던 조태완의 지금 모습이 그 증거였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한 칸씩 바뀔 때마다 숨 막히는 긴장이 강성태 일행의 사이를 휩쓸었는데 다행히 중간에 멈추는 일은 없었다.

9, 10, 11.

“준비해.”

강성태의 말이 떨어지자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이 회칼을 다부지게 들고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때앵.

12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앞을 막아선 십여 명의 덩치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조태완의 비참한 모습을 본 놈들이 이를 드러내며 강성태를 노려보았다.

“비켜!”

강성태가 외치자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덩치들이 길을 열었다. 강성태는 조태완의 목을 움켜쥔 채 엘리베이터의 바깥으로 나섰다.

이병렬은 확실히 냉정한 면이 있었다.

혹시 문이 닫힐 것을 염려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던 그는 강성태의 등에 붙다시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어디야?”

강성태가 묻자 덩치 한 명이 고개로 왼편 복도를 가리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성태는 좌우로 펼쳐진 복도의 왼편을 향해 걸었다. 복도 오른쪽에 문을 열어두어서 굳이 몇 호인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저 문 안으로 들어가면 잠시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강성태는 좀 더 회칼을 바싹 당겼다.

이럴 때가 정말 위험하다.

다 왔다고 방심하는 순간, 한칼에 상황이 뒤집히고, 이병렬과 최치곤, 김진용 중 한 명이라도 칼에 맞아 쓰러지면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절대 돌이키지 못한다.

“최치곤. 안에 들어가서 숨은 놈이 있나 살펴봐. 옷장, 침대 밑, 냉장고, 화장실, 베란다까지. 고양이 한 마리라도 들어갈 공간이 있으면 모조리 문을 열어. 혹시 숨어 있는 놈이 있으면 소리만 질러.”

“예, 형님.”

최치곤이 앞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잠깐.”

고갯짓을 했던 덩치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섰다.

“형님 심부름을 위해서 애들 두 명 넣어놨다. 바로 뺄 테니까 잠깐 기다려.”

문으로 향하려던 최치곤이 놀라 돌아볼 때였다.

“끝까지 양아치 짓을 했다, 이거지?”

강성태는 정말이지 목을 잘라내는 것처럼 회칼을 무자비하게 당겼다.

“끅! 끄억!”

칼이 턱 아래에 깊게 파고들면서 날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주르륵 호텔 복도에 떨어졌다.

“너는 여기까지다, 조태완. 내가 네놈 목을 못 가를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면 크게 실수한 거야. 이병렬! 엘리베이터 다시 열어!”

강성태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병렬이 버튼을 눌렀고, 곧바로 ‘때앵’ 하는 벨 소리가 울렸다.

이대로 어설프게 물러나면 조태완을 감당하기 어렵다.

차라리 목을 갈라버리고 대가리를 잃어버린 태완이파를 상대하는 게 훨씬 속 편한 일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잘 가라. 조태완.”

독한 한마디를 던진 강성태가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내가 하는 걸……보고. 결정……해.”

죽음을 짐작한 조태완의 절박한 애원이 터져 나왔다.

“이 일을 덮을 테니까……. 끅! 그걸 보고 결정…해.”

절박함을 넘어 처절하게 들리는 조태완의 애원이었다.

슬쩍 시선을 돌린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기회를 줘보자.’

최악으로 달려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이병렬의 눈빛이었다.

“마지막이다, 조태완.”

강성태는 깊게 당기던 회칼을 원래대로 늦춰주었다.

“동팔이에게 말하면 이세종이라는 방송국 국장에게 연락된다. 아우라 호텔에서 영화 촬영이 있었는데 사전에 공지가 소홀해서 소란이 있었다는 뉴스 내보라고 전해. 김종수 프로덕션에 연락해서 같은 내용으로 사과문 발표하라고 하고.”

죽음을 피하고 싶은 절박함에서 나온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조태완의 수완이 이 정도로 뛰어났을까.

위급한 순간에 조태완은 평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능숙한 지시를 토해냈다.

“뭐 해, 이 새끼들아.”

강성태에게 목이 붙들린 상태에서도 조태완은 덩치들을 매섭게 다뤘다.

“안에 있는 두 새끼 얼른 끌어내!”

“예, 형님.”

앞을 막아섰던 덩치가 고개를 돌리자 끝에 있던 놈이 급하게 룸 안으로 들어갔다. 숨 두 번쯤 쉬고 난 다음이었다. 체격이 호리호리한 두 놈과 뛰어들어갔던 덩치가 고개를 처박은 모습으로 나왔다.

“비켜, 이 새끼들아.”

독이 잔뜩 오른 조태완의 지시에 복도를 막아섰던 놈들이 좌우의 벽으로 바싹 달라붙었다.

“얼른 들어가서 방 확인해.”

강성태보다 조태완이 더 서두르는 상황이었다.

“치곤아. 안에 들어가서 다시 확인해.”

“예, 형님.”

지시를 내린 직후에 강성태는 목을 조르고 있는 조태완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을 알아챘다.

서둘러라, 치곤아.

김동팔이 여태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면 무슨 꿍꿍이를 쓰려고 준비하는지 모른다.

뻑뻑한 침묵이 흐른 뒤에 룸에서 최치곤이 나왔다.

“아무도 없습니다, 형님.”

뒤를 슬쩍 돌아본 강성태는 조태완의 목을 끌어안은 채 복도를 걸었다.

이병렬이 또 등을 맞대고 뒷걸음치며 복도를 지났고, 강성태는 마침내 룸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씨발.”

목을 붙잡혀 턱 아래에 회칼이 받혔는데도 룸으로 끌려들어서는 순간에 조태완이 욕을 뱉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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