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화
(에필로그)
인적 드문 산속의 공원.
평소라면 운동이나 산책을 하러 나온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지금 이곳에는 반팔과 반바지 차림의 중년인만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산 아래의 도심과 풍경이 잘 보이는 명당자리에 가까운 벤치에 앉은 중년인은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후우…… 날씨 조~오타!”
그는 한 손에 호박색 액체가 든 유리병을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여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중년인이 유리병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낮에 그렇게 술 먹어도 되는 거예요? 거기다가 도수도 높을 텐데.”
그의 뒤에서는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 은색 바이크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후우. 알 게 뭐냐. 일 하나 끝냈으면 술 한잔 정도 해도 되는 거지.”
중년인은 청년의 물음에 한숨을 쉬며 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꿀럭, 꿀럭-
공기 방울이 병 위로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호박색 액체가 중년인의 입으로 쏟아졌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빠른 속도였지만, 중년인은 무언가가 불만인 듯 얼굴을 찡그렸다.
“…….”
뚜둑.
중년인은 술병의 두꺼운 바닥 부분을 손으로 잡은 뒤, 그대로 뜯어냈다.
바깥에서 공기가 들어가 압력을 유지할 출입구가 확보되자, 술은 그대로 빠른 속도로 수직 낙하하였고 중년인은 숨 한 번 쉬지 않은 채 내용물을 전부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콰르르르-
중년인이 그렇게 병을 깔끔하게 비운 뒤, 청년은 병을 가리키며 물었다.
“한 잔?”
아무리 봐도 ‘한 잔’의 분량이 아니었지만, 중년인은 청년의 물음에 허공에서 양동이만 한 잔을 만들어 낸 뒤 그것을 들어 올렸다.
“한 잔.”
“네…… 뭐, 그렇겠죠.”
“너도 마실 거냐?”
중년인은 또 다른 술병을 꺼낸 뒤 청년에게 내밀며 제안했지만, 청년은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저는 용신 아저씨처럼 술을 공기처럼 먹을 수가 없거든요.”
“쯧, 싱겁긴.”
중년인, 용신은 또 다른 술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숨겨진 영웅 최영의냐? 아니면 일반인 최영의냐? 일반인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용신의 물음에, 영의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네?”
“괜히 심연에 발 담가 보겠다고 수작 부리던 머리 모자란 그 관리자 놈은 내가 정리해 놨다만, 이쪽 세계도 상당히 난장판이 됐거든? 어떻게…… 고쳐먹어 볼 거냐? 아니면, 뭐 따로 조치라도 취해 줄까? 천천히 생각해 봐.”
용신은 영의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술을 계속 마시겠다는 듯, 손에 든 술병을 입에 대고 느긋하게 들이켰다.
대답을 기다려 주기 위해 느긋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용신이었지만 영의는 대답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고쳐 보죠. 또 다른 곳에서 애덤 같은 녀석이 생기는 꼴은 못 보니까. 물론 그 부분도 잘 해결하시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여기서 일어난 일은 여기서 해결해야죠. 가뜩이나 민폐 끼치고 다녔는데.”
영의는 애덤과의 싸움 도중 다른 세계에서 그를 제압하려 했고, 그가 제때 그것들을 어디론가 가져가지 않았다면 무림을 비롯한 다른 세계에서도 지구처럼 큰 위기가 닥칠 뻔했다.
영의의 대답을 들은 용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죄인들의 처우를 결정했다.
“그래, 뭐. 알겠다. 그럼 그놈은 잘 가둬야겠네.”
영의는 애덤과의 결전 이후 탈출할 때 그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고, 용신이 그를 인계받아 구속해 놓고 있었다.
“아, 맞다. 그 부분에 대한 부탁이 있는데…….”
“뭔데?”
영의의 말에 처음에는 귀찮은 일이 될까 봐 표정을 구기고 있던 용신.
그러나 그도 점점 대화가 진행될수록 영의의 부탁이 흥미로운지 얼굴을 폈다.
“너, 그냥 내 옆에서 일 계속할래? 일 처리 마음에 드네.”
“원래 계속 시키려던 거 아니었어요?”
영의는 용신이 지금까지 협력해 준 게 그의 직속으로 다른 일을 보조하거나 돕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용신이 그의 물음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 심부름 시키는 건 이제 서비스 종료다.”
“네? 진짜요?”
용신은 술병을 집어 든 손으로 산의 아래, 도심지를 가리켰다.
“괜히 인간들한테 뭘 시키니까 망하는 거야 인마. 인간은 모양 마음대로 변하는 점토야 점토. 흙으로 톱니바퀴 만들고 기계 굴린다고 돌아가겠냐? 인간은 대충 벽돌집이나 회반죽…… 그, 뭐냐? 시멘트처럼 지들끼리 모양 잡게 해야 돼. 그게 나아.”
그는 인간에 대한 평을 늘어놓으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불에 구워 도자기처럼 만들어 톱니바퀴로 써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벽돌보다 튼튼하냐? 아니지. 그냥 필요한 건 네 알림 전문 아가씨 같은 거로 충당해야지.”
“알림이를 관리자나 심부름꾼으로 쓴다고요?”
“아니, 그건 융통성이 없어서 못 시켜. 그래도 뭐…… 어떻게든 관리자 보조 같은 수준까지는 키워 봐야지.”
“아저씨가요?”
“아니, 귀찮게 내가 왜? 다른 관리자가 하겠지.”
귀찮다고 업무를 거절하는 모습은 참으로 용신답다면 용신다운 모습이었다.
“일은 언제 해요?”
“안 했으면 좋겠다. 일은 없고, 그냥 놀고먹는 세상에 살고 싶다.”
“나 참. 한심하네요. 그보다 이미 그 상태 아니에요?”
영의는 용신을 한심하게 쳐다보았고, 용신은 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역으로 제안을 해 왔다.
“일이 그렇게 좋으면 진짜 내 옆에서 일하지 않을래? 보수랑 휴가 잘 챙겨 줄게. 주 5일 8시간 근무에 연봉은…… 협상부터 하자.”
“아뇨, 그냥 지금까지처럼…… 배달이나 하면서 살려고요. 제 직장을 옮길 생각은 없어요.”
영의는 용신의 제안을 거절했고, 용신은 그의 거절에 의문을 품었다.
“네 직장은 교관이잖냐.”
지금 영의는 신화 길드의 임시 교관 자리에 있지만, 조만간 길드 그 자체가 있을 이유가 없는 세상이 올 예정이었다.
“글쎄요…… 그 교관직도 곧 없어질 텐데요 뭘.”
“쓰읍, 게이트에 대한 기억 조작을 하려고 해도 이 세상에 퍼진 기록이 너무 많아서…….”
용신이 이 세계에 연결된 다른 차원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고, 과거 영의에게 약조했던 대로 세계가 멀쩡하게 돌아가도록 조치한 것이다.
물론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대신, 점진적으로 게이트가 줄고 그에 따라 세상에 널리 퍼진 마력도 줄어들어 사라질 예정이었다.
“5년 안에는 없어진다면서요? 기억 조작을 할 필요가 있어요?”
“원래 있다 없어지는 게 제일 슬픈 거야. 없던 거로 기억하는 게 제일 낫지.”
영의는 용신의 우려에 어딘가의 인터넷 영상에서 봤던 ‘천연자원 하나로 국민 모두가 부자가 된 국가’에 관한 내용을 떠올렸다.
“천연자원이 발견되어서 부자가 된 나라도 나중에는 망할 걸 알면서도 쓰는 게 인간인데요, 뭘. 그러려니 하겠죠.”
“……역시 인간에 대해서 알 만큼 아는 놈인데. 진짜 일 같이할 생각 없냐?”
용신은 진심으로 영의를 인재로 탐내고 있었지만, 영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진짜 없다니까요?”
“더럽게 매정하네. 넌 나중에 나 볼 일 없게 살아라.”
협박하는 것 같은 어조였지만, 그 말을 하는 용신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결혼식 때는 올 거죠?”
“안 가, 이 자식아.”
영의도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용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쉽네요. 주례는 몰라도 사회는 맡기려고 했는데.”
“네 주변에 사회 맡길 친구 없냐?”
“없는데요. 병찬이라도 시킬까요?”
영의가 사회로 병찬을 제의하자, 용신은 그 이름을 어디서 들어 봤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게 누구인지 떠올리자,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누구? 병찬? ……그냥 네 가족 시켜라. 난 간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시키라는 말을 한 뒤, 용신은 마시던 술을 놔두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볼 일 없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또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네요.”
“……선물은 보내 줄 테니까, 그 허여멀건 아가씨 통해서 연락이나 해라.”
“알림이라니까요.”
“나한텐 다 똑같아.”
용신은 그렇게 말한 뒤, 공기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술병들만이 방금 전까지 용신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영의는 그 술병을 집어 들었고, 얼마 먹지 않고 다시 뚜껑을 닫은 뒤 다 먹고 비어 버린 데다 바닥이 부서진 빈 병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본인이 저질러놓고 간 건 치워야지…….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닌가.”
용신이 두고 간 술병처럼 영의가 다른 세계를 오가며 남긴 것은 많았다.
본래의 역사대로 예정되었어야 할 마교와 정파무림의 대립, 그로 인해 거기서 생겨날지도 몰랐던 영웅들과 죽지 않고 살아서 힘을 세습하는 무인들.
화해할 일 없이 척을 지고 본업에 몰두하여 마공학을 발전시켰어야 할 베키와, 또 다른 영감을 받아 새로운 마도의 길을 개척하지 않고 그저 대마도사 본인으로서만 남았어야 할 일라이저.
인간과의 접점 없이, 원래대로라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삶을 이어 갔어야 할 영원의 숲 인근의 숲요정 시라와 미딜.
마치 바닥에 깨진 유리병처럼, 그런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영의의 손에는 조금 비워졌지만 아직 내용물이 남아 있고 온전한 상태의 병도 있었다.
하나의 새로운 적 앞에 재빨리 협동하여 적을 격퇴한 뒤 평화를 되찾은 무림.
새로운 마도의 길을 개척한 스승과 외도를 걷는다 하더라도 스승과의 연을 잊지 않은 제자의 화합.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겼지만, 그렇기에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이미 있는 인연을 더욱 아낄 수 있게 된 숲요정들.
영의는 두 개의 병과 파편을 주섬주섬 집어 들고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이건…… 내가 잘 관리해야겠지.’
내려가던 도중 산을 오르던 노인에게 대낮부터 술이나 먹는다고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는 내용물이 남은 술병을 고이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크리스마스의 길거리.
한 쌍의 커플이 팔짱을 끼고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애덤, 집에 가면 뭐 할 거야?”
“글쎄? 피자 시켜 놓고 맥주 마시면서 영화나 볼까?”
“살찔 텐데.”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앨리스. 너무 걱정하지 마.”
앨리스와 애덤은 서로 사이좋게 대화하며 길을 거닐고 있었고, 둘은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 보였다.
“후후, 하긴 그렇네.”
앨리스가 웃으며 애덤의 몸에 자신의 몸을 더욱 밀착시킬 때, 그녀의 뒤에서 그들을 부르는 누군가가 있었다.
“애…… 앨리스……!”
전혀 작지도 않고, 이름을 똑똑히 부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 앨리스와 대화를 나누던 애덤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앨리스는 애덤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그것을 듣지 못한 듯했다.
“응? 누가 날 불렀나?”
그래도 무언가 듣긴 한 건지, 주위를 둘러봤지만 앨리스는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직후, 애덤의 목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나야……! 나라고……!”
“글쎄?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자신을 봐 달라며 필사적으로 외치는 목소리와, 의문만을 표할 뿐인 목소리.
“흐음, 기분 탓이었나 봐.”
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떠나가는 그들의 뒤, 한 남자가 바닥에 무릎 꿇고 주저앉아 있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있었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긴 했지만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대로 떠나갔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도 가능한데 어째서 앨리스는 나를……!”
남자는 애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얼굴과 몸은 애덤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자가 주저앉아 있는 곳의 상공에서는 용신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과거의 자신과 연인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삶이라……. 지박령이나 유령이 되어서 눈물콧물 질질 짜며 지켜보는 건 몇 번 봤지만 사람의 몸을 준다니. 발상이 참신해.”
영의는 용신에게 애덤을 별도로 처벌하는 대신, 다른 평행 세계 같은 곳에서 평범하고 멀쩡하게 잘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끔 해 달라고 부탁했다.
“타인으로, 자신이 잃은 것과 그것을 누리는 또 다른 자신을 보면서 피눈물 흘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고 만질 수 있지만 둘한테만 이야기를 꺼낼 수 없게 만들라니.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그 발상이 진짜 참신하네.”
지금 애덤은 살아 있었을 때의 앨리스가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자신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둘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둘은 그를 볼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다른 이들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더군다나 둘이 사는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애덤은 그럼에도 앨리스를 보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피눈물을 흘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도, 앨리스를 눈앞에 두고 고개를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무림.
검황과 천마를 비롯한 전대 고수들의 합동 은거 이후, 무림의 한 야산에 등비각이라는 출신과 은원을 모두 잊은 이들만을 받아들이는 고수들의 은거지가 생겼다.
그곳만 찾는다면 전대 고수들의 무공들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소문에 모든 후기지수들이 무림초출의 치기에 한 번쯤 찾아보려 나섰지만, 그들 중 그곳에 도달하는 행운을 가진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마교의 교주로 올라선 혁련운은 당가의 여식과 혼인하였고, 그의 벗이자 숙적인 뇌섬문의 장우형은 뇌섬문주가 되었다.
둘은 전대의 검황과 천마의 뒤를 이어 또다시 무림의 양대산맥을 구축하였고, 20년 뒤 일어난 서역의 원정군에 맞서 중원을 지켜 내었다.
아리안델.
대마도사 일라이저는 어느 날 ‘공간 간섭 마법’에 대한 논문을 학계에 발표, 수많은 관심을 모았으나 이론의 정립과 시연부터 엄청난 초고난도로 밝혀져 아무도 쓸 수 없을 거라 여겨졌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베키가 그 이론을 이용한 텔레포트 장치와 질량 압축기를 만들었고, 마공학계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8년 뒤, 지구.
어두운 밤거리, 수많은 차량들이 붉은 후미등과 전조등을 켜 밤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그런 차량들의 사이로, 한 대의 바이크가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바이크를 타고 있던 누군가는 골목에 바이크를 세운 뒤, 안장 뒤에 있는 짐칸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스락-
봉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치킨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
은색 헬멧을 쓴 남자는 그 비닐봉지를 가지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 속으로 들어갔고,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 손에는 비닐봉지가 없어져 있었고 그 안에 은으로 된 작은 반지 하나가 있었다.
이후 골목을 벗어난 바이크는 밤의 도로를 달려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고, 은색 헬멧을 쓴 남자는 바이크를 세운 뒤 헬멧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아파트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르고, 지정된 층에 내리고, 문 앞에 다가서는 모든 과정에서 남자는 계속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남자는 한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무표정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활짝 웃었다.
“나 왔어.”
남자가 집에 들어오자, 집 안에서 한 소년과 소녀가 달려 나와 그에게 안겼다.
“아빠다!”
“아빠 옷에서 치킨 냄새 나! 치킨 사 왔어?”
그의 품에 안긴 소녀가 아빠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올려다보았지만, 아빠의 손에는 치킨이 없었다.
“아니, 엘리베이터에서 배달하는 사람이랑 만났거든.”
아이들이 나온 이후, 집 안에서 한 여성이 걸어 나왔다.
“어서 와요……. 오늘도 괜찮았어요? ……평소대로?”
여성은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오늘도 평소대로 괜찮았냐고 물어보았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 화연아. 오늘도…… 괜찮았어. 평소대로. ‘사람들’은 잘 지내고, ‘특별한’ 일도 없었고.”
“네, 다행이네요.”
지난 8년간, 세계의 모든 게이트와 마력은 사라졌고 그에 맞춰 발전되었던 과학도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은 여전히 마력과 비슷한 힘을 지니고 살았고, 그는 계속하여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돌아오긴 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혼자만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완결>
(후기)
반갑습니다. 작가 그리좋더라입니다.
우선 지금까지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를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
소설이란 것을 거의 처음 써 본 초짜로 시작했지만, 운 좋게도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몇몇 분은 도중에 마음에 안 들어 하며 멈추기도 하셨고, 몇몇 분들은 그럼에도 끝까지 참고 보셨을 수도 있지만 그분들 모두 다 제 글을 보러 와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사실, 감사하다는 말보다는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작가로서의 데뷔도 처음이고, 장편 연재도 처음이라 여러모로 많이 미숙하여 도중에 엇나가는 경우도 있고 실수한 것도 많았습니다.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글을 쓰는 것을 주로 하면서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면서도 저는 어느 순간 그저 글을 쓰기에만 급급해져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글이 저를 재촉하기 시작하는 상황에 가끔은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도 하고 가끔은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뭘 쓰는지도 모르는 채로 마감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몇몇 독자분들께는 기대했던 것보다 품질이 낮은 글을 보여 드리는 상황이나 뜻밖의 휴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이리 휘청이고 저리 휘청이며 이상해지기도 하고, 도중에 뻗어 나가다가 잘려 버린 가지들도 있고, 결말 부분에서 다소 허무해진 감도 있습니다.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정작 스토리를 망치는 건, 본분을 잊는 일이니만큼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저의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저를 봐주고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 덕분이고, 그 원동력으로는 맨 처음 글을 썼을 때 응원하는 댓글을 달아 준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비록 여기저기 모난 점과 모자랐던 점이 가득했던 작품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였지만 그래도 제가 처음으로 데뷔한 작품이니 많은 애착이 있는 작품입니다.
다음에 쓸 다른 소설들은 더 발전할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 작품이 절대 잊을 수 없는 독자님들과의 추억이라는 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 필명을 보신다면 보러 와 주실 필요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짧게나마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모두 제 글로 조금이나마 쉴 수 있었거나, 재미를 느낄 수 있으셨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래도, 다음에 쓰는 작품부터는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조금 더 개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 제 작품을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