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22)
마교 인근의 사막에서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 대비되는 검은 복장과 은색 복장으로 차려입은 두 남자는, 온통 검은색의 인영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왼쪽으로!”
“알겠습니다!”
휘익, 파앙!
왼쪽이란 지시를 듣고 곧바로 좌측으로 이동해 손바닥으로 강렬한 일장을 날리는 검은 옷차림의 남자.
“귀인, 아래쪽! 바닥입니다!”
“위로 뛰어!”
바닥에서 올라오는 검은색의 가시를 뛰어올라 피한 은색 옷차림의 남자는 검은 옷차림의 남자가 뛰어올랐을 때 그를 붙잡고 함께 공중으로 뛰어올라 피했다.
“대체 뭡니까? 저건……!”
‘천마군림보를 사용하기 위한 기초 단계로 넓은 범위의 기를 느끼는 감각을 깨워 놓지 않았다면 분명……!’
직감과 본능, 그리고 아버지 혁련무강에게서 천마신공을 배우며 단련된 감지 능력으로 겨우 알아채고 피할 수 있었지만 땅에서 기척없이 솟아오르는 가시는 위협적이었다.
“나도 모른다. 근데 그 혼교인지 뭐시긴지랑 연관되어 있는 놈은 맞아.”
“어쨌거나 죽여야 한다, 이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둘이서 한 몸이 된 것처럼, 아주 짧은 지시에도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그대로 이행하며 싸움을 이어 나가는 영의와 혁련운.
일각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애덤과의 싸움을 이어 간 끝에, 혁련운이 기회를 포착했다.
영의가 양팔을 발 차기로 쳐 낸 직후, 애덤이 균형을 잡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이던 순간.
“지금!”
굉천벽력장.
권마, 강자성이 개발하고 사용했지만 권마의 이름을 얻고 ‘주먹을 쓰는 사나이에게 손바닥질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버린 기술.
다른 것은 몰라도 파괴력 자체만큼은 확실했기에, 혁련운은 체내에 파고드는 타진장의 묘리를 섞어 그대로 체내외를 모두 파괴하려 했다.
쩌엉!
그렇게 일격이 복부에 적중하고, 혁련운은 곧바로 양 옆구리와 흉부에 추가타를 가했다.
흉자파장타(凶字破腸打).
흉(凶)이라는 문자의 모양과 공격 궤도를 겹치게 하여 공격하는 비전 중 하나였다.
여러 방향에서 몸통을 연타한 뒤, 그 파동의 중첩으로 체내의 장기를 파손시켜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기술이었다.
혁련운의 스승인 마의는 그것을 침이나 간단한 점혈로 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 혁련운은 눈앞의 상대를 무조건 죽여야 했고 다급했던 만큼 그것을 장으로 대체했다.
두 최고수의 절기들이 사용된 절초는 충분히 효과적이었고, 애덤은 입에서 검은 액체를 역류하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커어어억! 카아악!”
하지만, 영의도 혁련운도 그의 그런 모습에 기뻐할 수 없었다.
“저거 저래 놓고도 안 죽을 거야 아마.”
영의는 비록 힘의 공급을 끊어 놨음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까지 보여 줬던 애덤의 압도적인 생명력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혁련운도 영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사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왜?”
영의 본인이야 직접 싸워 보고 어지간해선 안 죽을 거란 걸 알아서 그런 거지만 혁련운은 왜 그런 판단을 내리는지 궁금했다.
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요인이 있을까 싶었고, 그런 게 있다면 약점으로 써먹을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공격할 때 어느 정도로 때려야 죽을까 싶어 타진을 이용해 체내의 상태를 확인해 봤습니다. 첫 번째 공격으로 파열되었어야 할 오장육부가 찢어지면서도 다시 복구되었고, 마지막 흉부 공격 때는 이미 찢어 놨던 간과 허파가 회복되어 있더군요.”
혁련운은 공격을 가할 때 타진을 이용해 신체 내부를 조사했고, 그 결과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괴인의 몸에서 이상할 정도로 빠른 회복력을 확인했다.
“체내 재생력은 더 뛰어난 건가…….”
힘의 근원이 검은 기운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당연한 일이다.
그 검은 기운들은 외부에서 주입되기 전부터 몸 안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혁련운은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영의가 어쩌다가 저런 괴인은 만난 것인지 의아해했다.
“귀인, 대체 저런 걸 어디서 만난 겁니까? 어디서 저런 사술을 쓰는 기이한 존재를 만나서는…….”
“……네 쪽이 저걸 사술이라고 한다고? 너희 기준으로도 저게 사술이야?”
영의는 사술이나 이상한 수법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마교도 저것을 보고 사술이라고 지칭하자 혁련운에게 되물었고, 혁련운은 영의의 물음에 반응하여 소리쳤다.
“저희 교가 강해지는 것에 물불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저렇게 기괴한 것은 사술로 치부합니다! 무공을 쌓아 강함을 증명하여 상대를 이겨야지, 죽지 않는 것으로 상대를 이겨 먹으란 말입니까?!”
아무리 마교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저만큼 괴악한 건 취급하지 않았기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래. 그건 내가 얼마든지 사과하겠는데…… 그보다 저런 거 대처법은 알아?”
“모릅니다. 다만, 저것과 비슷한 무공을 쓰던 이들은 전부 갑작스럽게 늙어 단명했다고밖에는…….”
혁련운은 과거 무림에서 있었던 재생 능력 사용자들에 대한 기록을 떠올려 봤지만,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그것으로 악명을 떨치던 이들은 패배하지 않아서 악명을 떨쳤고, 이름을 알리지 못할 정도의 인물들은 재생 능력이 뛰어나지 못해 죽었기 때문이다.
“초대 천마님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혈마, 그리고 그 혈마의 무공 일부를 배운 혈식귀, 탐혼요녀, 흡정쌍귀…… 거의 다 찔리거나 어딘가를 파괴당해도 다시 회복하던 거마들이었지만 그 최후는 거의 다 누군가에게 죽은 것이 아닌 병사나 주화입마로 인한 사망이었습니다.”
먼 과거에 그런 자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혈마의 무공을 한 자락이라도 익혔던 고수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별 볼 일 없었다.
“그나마 누군가에게 죽은 존재는 초대 천마님에게 기운이 다할 때까지 공격당해 죽었던 혈마 외에는 없습니다.”
“다 단명했다고?”
영의는 혁련운에게 그들의 최후를 듣자 의문이 들었다.
‘고수인데 단명한다고? 전부 뭐 환골탈태해서 반로환동을……. 아, 천마 영감님도 독고 영감님도 둘 다 반쪽짜리 반로환동했는데 그걸 성공이라고 했었지.’
반로환동은 말 그대로 전설상의 경지.
독고휘나 혁련무강의 조금이라도 젊어진 반쪽짜리 반로환동이 성공 사례로 꼽힐 정도로, 이 세계에서 반로환동은 그만큼 불가능한 경지였다.
“경지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치열하게 싸워서 악명을 떨쳤던 존재일수록 빠르게 늙어 단명하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명을 대가로 다시 회복하는 구조이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피나 내공을 갈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공격해서 회복하게 만들면 언젠가는 늙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혁련운은 초대 혈마의 경우처럼 죽을 때까지 죽여 보다 보면 어떻게든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귀인과 저라면 가능합니다. 해가 질 때까지 싸우는 것도, 그리고 본교의 수라대를 데리고 와 싸우는 것도 얼마든지.”
차마 이 무림에 혈마의 재림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혁련운은 영의와 함께 이곳에서 제 2의 혈마가 될지 모르는 저 괴인을 사막 아래에 묻어 버리려고 했지만, 영의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미안한데, 그게 안 돼. 내가 그거 하다가 망할 뻔해서 여기로 끌고 온 거거든.”
혁련운은 잠시 영의의 말에 담긴 뜻을 생각하느라 말을 멈춘 뒤, 거기에 담긴 뜻을 깨닫고 그에게 소리쳤다.
“……대체 왜 데려오신 겁니까!”
“방금 말했잖아? 진짜 미안해! 그래도 그거 그냥 뒀으면 싹 다 망했을 거야!”
“저희들은 망해도 된다는 겁니까?!”
“그래서 사막에 끌고 왔-”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비틀거리던 애덤이 다시 괴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크어아아아!”
또다시 싸우게 될 것이라 직감한 영의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좋아, 가자!”
하지만 혁련운은 눈앞의 괴인이 아까처럼 호전적으로 나오지 않고 제자리에서 소리만 지르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귀인! 뭔가 이상합니다!”
“뭐?”
쏴아아!
혁련운의 생각대로, 가만히 서 있던 애덤의 몸 곳곳에서 검은색의 기운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허공으로 흩어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한곳으로 모여 검은색의 구멍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어? 이게 아닌데? 미안하지만, 여기까지야! 나중에 볼일 있으면 또 보자고!”
“예? 귀인, 방금 뭐라고-”
퍼억.
영의는 아까 하려던 대로 애덤에게 달려들어 몸통에 체중과 힘을 모두 실은 발 차기를 날렸다.
그 기세에 애덤의 몸이 넘어감과 동시에 영의는 사막에서 사라졌고, 허공에 생겨나던 검은 구멍은 그 힘의 근원을 잃고 다시 사라져 버렸다.
“……귀인, 또 바람같이 와서 바람같이 사라지신 겁니까.”
혁련운은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있던 영의도, 싸우던 괴인도 순식간에 사라지자 마치 모든 게 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방금 전 싸움이 그저 무료함과 피로로 만들어진 환각이라고 하기에는, 주변에 파헤쳐진 모래들과 바닥에 흩어진 검은 모래들이 그것이 현실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평화에 적응하려 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위협은 존재하는가.”
혁련운은 하늘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리고는, 손끝에서 강기를 뽑아낸 뒤 검은 모래들을 전부 없애 버렸다.
비록 색이 검은색이라 하더라도, 피가 묻은 모래와 다를 것 없는 그것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검은색인 것이 꺼림칙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혁련운은 자신의 옷도 검은색인 것을 보았고, 말없이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
아무 말 없이 옷을 내려다보던 그는, 옷을 잡아 찢었다.
최고급 비단으로 만들고, 마교의 장인들이 최선을 다해 금실로 자수를 놓아 만든 교주의 의복.
보통은 교주 자리에 앉기 전에는 입을 수 없고 그것보다 장식이 덜한 소교주용 복장을 입었지만, 현 교주 혁련무강의 자리 비움이 잦은 데다 후계자가 그 혼자뿐이었기에 입은 옷.
새로 지은 지 한 달도 안 된 데다 옷 무게만큼의 금보다 비쌀 것이 분명하고 권위를 상징하기까지 하는 그 최고급 옷을, 혁련운은 고민이나 주저함 없이 냅다 찢은 것이다.
그가 옷을 찢고 바지만 입은 채 깊게 파인 구덩이를 벗어나 다시 복귀하려고 할 때, 사막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혁련운이 복귀하지 않는 것을 걱정한 이들이 수라대를 보낸 것이었다.
“소교주님!”
“옷이 찢어져 있다!”
“대체 얼마나 격전을 치르신 거지?!”
각 수라대의 대주들은 선두에서 혁련운의 모습을 보고 모두 놀랐지만, 혁련운은 태연하게 그들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전원, 다시 교로 복귀하라.”
“소교주님?”
혁련운은 수라대의 인원들에게 손짓하며 복귀를 명령했다.
“여기서 싸우던 이들은 돌려보냈다. 옷은 뭐가 묻어서 내가 직접 찢어 버렸다. 태워 버리도록.”
영의와 애덤은 실제로 어디론가 가 버렸고, 스스로 옷을 찢어 버린 것도 맞았기에 딱히 거짓은 아니었다.
“……염왕수라대! 복귀한다!”
“금강수라대! 기수를 돌려라!”
수라대주들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복귀를 지시하며, 혁련운이 걸어 나온 모래 구덩이로 다가가 내부를 살폈다.
곳곳이 파헤쳐진 흔적과, 싸움의 결과로 찢겨 나간 게 아니라 직접 찢은 듯 반으로 잘리긴 했어도 형태가 거의 온전하게 남은 옷까지.
“나는 내 발로 걸어가겠다. 전원 각자 편한 속도로 복귀하도록.”
혁련운은 그곳을 가장 먼저 떠나며, 수행을 다시 재개하고 강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무림맹 쪽으로 위협이 다가온다는 서신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