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화
(21)
용신이 집어 던진 직후, 영의는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정신을 바로 다잡았다.
‘무슨 말을 했었더라? 회복을 반복할수록 그 구멍이 커진다고 했던가? 일단 회복 못 하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잡아 두라는 건 알겠고.’
애덤의 회복을 막고, 그런 다음……
‘그다음엔 뭐였지?’
그 이후엔 뭘 할지에 대해서 들은 게 없었다.
하지만 이후의 일은 이후의 일이었고, 일단은 애덤을 잡아 두고 회복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부터 하려고 했다.
‘일단 잡아 두고 생각해 볼까. 아까처럼 잡은 뒤에 어떻게든 움직이지 못하게만 만들어 두면…….’
우선 붙잡은 뒤 생각해 보기로 한 그때, 영의의 귓가에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자, 하나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 있습니다.]
언제나 든든하게 도움이 되어 주었던 알림이의 목소리였다.
‘알림이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도움이 될 만한 게 뭐야?’
영의는 그녀의 조언을 듣는 것이 아무런 대책 없는 자신의 계획보다는 쓸 만할 거라 여겼다.
최소한, 무작정 싸우는 것보다는 스마트한 아이디어일 게 틀림없었으니까.
[조사 결과, 지금 이곳은 다른 차원과의 틈새입니다. 명확한 데이터를 측정할 수 없는 차원에서의 에너지가 사용자의 차원 주변에 퍼져 있어 특이 개체가 공간과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신이 보여 줬던 이미지를 첨부해서 설명하거나 최소한 글로 설명해 줬더라면 영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말로 설명해 오니 중간 부분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자기 힘은 아니다 이거군.’
그래도, 알림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정확하게 짚어 냈다.
[정확합니다. 그리고 해당 에너지는 사용자의 차원에서 균열을 만드는 것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차원으로 간다면 개체명 애덤이 공급받는 에너지의 양이 급락할 것입니다.]
‘좋아, 그럼 한번 가 보자고.’
영의는 알림이의 설명을 듣고 쓸 만한 작전이 떠올랐고, 이내 애덤과 다시 결판을 내기 위해 그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직후, 영의는 아까처럼 어딘가의 외딴 장소에 애덤과 함께 떨어졌다.
툭, 터억.
쏴아아아-
손에서 느껴지는 모래의 감촉과 코에서 느껴지는 짜고 비린 향,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까지.
이곳은 어딘가의 바닷가에 있는 모래사장이었다.
애덤은 모래 바닥을 딛고 일어선 뒤 영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흐, 하하. 아까는 그 괴물 같은 인간이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 이번에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
이미 뉴욕에서 한번 싸워 봤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명확히 제압할 수단이 없다는 걸 아는 상태였으니 이제 일이 수월하게 풀릴 일만 남았다고 판단했다.
“글쎄…… 오래는 안 걸릴 거야.”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 뉴욕시에는 이미 생겼다가 땜질된 균열이 다시 찢어진 상태였거든.”
뉴욕시의 균열은 애덤 본인의 작은 수작으로 인해 상당히 커진 상태였고, 자연스럽게 벌어진 게 아니라 잡아 찢어지듯 열리기까지 했으니 수습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영의는 그런 뜻에서 말한 게 아니었다.
“아니, 아저씨가 오는 게 아니라 널 정리하는 게.”
“뭐?”
애덤은 영의가 자신을 정리하겠다는 말에 당황하였고, 아까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던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뭔가 있다고 짐작했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겠지. 적어도 무기라든가, 아니면 뭔가 다른 수단이…….’
싸우는 도중 변화가 없던 상대방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면 대부분 허세라고 생각하겠지만, 애덤은 언제나 백업 플랜을 세워 뒀던 경험 탓에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서 온 것은 다름 아닌 전력 질주.
“으아아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기술을 주고받으며 싸웠던 상대가 무작정 덤벼 오자 애덤은 원래의 싸움 스타일을 포기하고 다른 방식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저렇게 들어오면…… 그라운드 싸움 아니면 힘 싸움인거?’
타격으로 단순히 대미지를 쌓는 게 불가능했으니, 전술의 전환은 틀린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애덤이 회복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수를 숨겨 놓았듯 영의도 애덤이 생각지도 못한 수를 숨겨 놓고 있었다.
덥석.
“아까 말했지? 같이 가자고. 나도 너랑 같이 갈 곳이 하나 있어.”
“?!”
영의는 무림에서 열렸던 비무대회, 그때 종신이 사용했던 것처럼 상대의 공격을 받아 내며 무작정 잡아채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런……!”
몸으로 밀어붙이며 양 무릎을 당겨 통째로 들어 올리는 슬거.
애덤은 영의가 자신의 몸을 들이받으며 무릎까지 잡아채자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그는 균형을 잃는 와중에도 영의의 얼굴과 몸을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영의는 이미 맞을 각오를 하고 그를 잡아챘다.
“자, 환상의 나라로 떠나자고!”
영의는 그대로 애덤을 붙잡고 바닥에 내리꽂으려는 듯 몸의 중심을 앞으로 이동시켰고, 애덤은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질 거라 생각했다.
‘기절시키려는 건가? 아니면, 파운딩? 뭐가 됐건 붙잡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의 뒤통수에는 무언가가 부딪히는 느낌이 없었고, 오히려 둘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상하군, 체공 시간이 조금 긴데. 점프라도 했나?’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순간, 애덤은 뒤통수에 모래가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뒤통수에 닿은 모래는 바닷가의 습기를 머금은 모래가 아니라 뜨겁고 건조한 모래였다.
“……?!”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애덤이 주위를 돌아보려 했지만, 그를 바닥에 메다꽂은 영의가 애덤의 위로 올라탔다.
“하, 드디어. 이제 그 잘난 재생은 못 쓰겠네?”
양팔을 무릎으로 누르고 상체 위에 올라타 일방적으로 공격하기에 완벽한 조건의 마운트 자세를 취한 영의.
애덤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려 했지만, 몸에 넘치던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몸에 넘쳐 나도록 공급되던 힘이 급격히 줄어든 것 같았다.
‘……힘이?’
“아까는 네가 최고인 세상이었지? 여긴 내 세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내 세상은 아니지만.”
파직, 파지직-!
영의의 팔에 뇌기가 감도는 것과 함께, 사막의 모래가 파도치듯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퍼엉!
* * *
마교.
비무대회 이후 상당한 시간 동안 전 대륙을 돌며 혼교의 잔당을 소탕하고 후계로서의 입지를 다진 혁련운은 소교주의 직위를 도맡아 교주 대리로서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팔락-
‘……참으로 지루하군. 차라리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재미는 있었던 무림맹 인근에서의 생활이 좋았어.’
예전이었다면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방 안에서 차분하게 서류를 읽고 검토하는 일을 더 좋아했을 터인 혁련운.
그는 비무대회 이후 잔당 소탕 등의 일을 거치며 내면에 잠들어 있던 무인의 핏줄이 깨어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 서류 작업을 하는 것에 권태감을 느끼고 있었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 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럴 리도 없지, 몇 년이 갈지는 몰라도 일단 화평을 맺어 두었고…… 아버님을 비롯한 전대 고수들은 전부 다 모여서 어딘가로 가 버리셨으니…….”
혁련무강을 비롯한 최정상급 고수들은 잔당 소탕 이후 세상이 한가로워지자 모두 일제히 모여 어디론가 가 버렸고, 종종 다시 얼굴을 비치긴 하지만 세상은 그것이 전부 은거 준비라고 생각했다.
‘뇌섬문은 후계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독고가의 후손들과 우형이란 제자가 있고, 숙부님과 권마 님도 비급을 천마비고 안에 남겨 두셨으니……. 나머지 고수들도 전부 가족이 있거나 이미 제자가 있으니, 후회 없이 은거할 수 있는 거겠지.’
각 고수들도 제자와 후계를 준비해 뒀고, 후계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고수들도 천하제일 비무대회에 나왔던 전도유망한 후기지수들을 찾아 제자로 들이거나 비급을 전수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은 곧 은거를 준비하는 고수들에게나 좋은 이야기였을 뿐, 후계가 된 이들에게는 좋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혁련운이었다.
소교주란 직위를 얻었으니, 거기에 걸맞은 서류가 들어오고 지도자가 되기 위한 교육도 받아야 하고 또 교주 대리가 되었으니 혁련무강이 처리해야 했던 서류마저 떠맡게 되었으니까.
“후우……. 이러다 얼굴도 잊어버리겠군.”
혁련운은 대체 언제쯤이 되어서야 사천으로 다시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
똑똑똑.
그러나 그때,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본론만 말하도록.”
보고 하나 하러 와도 인사하고 예를 표하고 이것저것 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다는 걸 알았기에 본론만 요구한 혁련운.
그의 말에 방 밖의 부하는 자신이 온 목적을 곧바로 말해 주었다.
“소교주님! 사막에서 누군가가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명성 한번 얻어 보겠다고 찾아온 후기지수인가. 아니면 옛 무인이 개인적인 복수 한번 해 보겠다고 찾아온 건가?’
화평을 맺었다고는 해도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에, 개인적 복수나 명성을 쌓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무인들은 제법 있었다.
혁련운은 또 그런 귀찮은 일이 하나 생겨 자신이 처리해야 할 서류가 늘어나는 게 싫었으므로 대충 아무나 보내서 싸움을 말렸으면 했다.
아니면 그냥 그대로 둘 다 제압해서 처리해 버리거나.
“음……? 그냥 싸움이면 아무나 데려가서 말리면 되지 않나?”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른 것 같았다.
“사막에서 모래가 폭발하듯 솟구치고 거기에 날려 간 모래가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입니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사막에서 싸우고, 모래가 사방 천지로 날리는 상황이라면 일반적인 무인은 아니었다.
최소로 잡아도 절정급 무인들의 사투에, 최대로 잡으면 화경에 이른 무인들의 싸움이었다.
적어도 현경급의 무인은 여기 주변에서 싸울 일이 없다는 걸 아는 만큼, 혁련운은 그 한계선을 화경으로 잡았다.
그리고 화경급 무인이 있다는 것은, 혁련운 본인이 가장 기다리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건 참 이상한 일이군! 내가 직접 가야겠어! 감히 누가 본교의 앞마당에서 난리를 치는지 얼굴이나 봐야겠군!”
혁련운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지으며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의 움직임과 열린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서류가 흩어져 방 안이 어지럽혀졌다.
그 광경을 방 밖에서 소리로 전부 접한 부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괜히 바로 온 건가 후회했다.
“……그냥 수라대 쪽으로 찾아갈 걸 그랬나.”
한편, 사막 한복판.
이곳에서는 영의와 애덤의 싸움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크윽, 후우욱……!”
이전에 밀러가 그러했던 것처럼, 몸을 검게 물들이고 거친 숨을 내쉬는 애덤.
영의는 애덤이 회복에 이어 변신까지 하자 양파처럼 까도 까도 자꾸 뭐가 튀어나오는 모습에 질렸다.
“……차, 포 다 떼도 저런 게 된다니. 진작 납치하길 잘했네.”
초반에는 분명 영의가 우세했었다.
마운트 자세로 그대로 계속 후려쳤고, 얼굴에 안와골절과 각종 출혈이 발생해도 아까처럼 빠른 회복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계속 두들겨 패서 완전히 제압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영의가 마지막으로 주먹을 휘두른 순간, 그의 주먹이 단단한 것에 막혔었다.
애덤의 몸에서 검은색의 액체가 튀어나와 곧바로 굳어 갑옷처럼 그의 몸을 방어했고, 그것이 몸을 점점 더 많이 덮어 갈수록 힘도 강해져 영의를 떨쳐 버린 것이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서로 대치를 하기 시작했는데…… 영의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감히 본교의 앞마당에서 보잘것없는 힘을 보이고 있는가!!”
우렁찬 목소리와 장엄한 말투로 위엄 있게 영의와 애덤의 사이에 착지하는 검은 옷의 남자.
익숙한 말투와 대화 내용으로 상대방을 짐작한 영의는 미소 지으며 그쪽을 돌아봤지만, 이내 살짝 실망했다.
“천마 영감님? 아, 아니네.”
“이 목소리는…… 귀인?”
“크어어, 크아아아아!”
“일단 저거부터 해결하자!”
혁련운은 애덤의 겉모습을 보며 최근 있었던 일의 경험과 조합해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또 혼교입니까?!”
비슷하지만, 일단은 틀린 답이었다.
“아, 일단 해결하자고!”
“알겠습니다!”
혁련운은 상황 판단이 완벽하게 되진 않았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게 뭔지는 알 수 있었기에 양팔을 걷으며 전투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