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19)
맨해튼 이외에도 세계 각지의 대도시에서는 좀비…… 정확히는 그와 유사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도시가 패닉에 빠져 기능이 마비되거나 멸망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인도에서는 뉴델리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인드라를 비롯한 <아스트라>의 멤버들이 열심히 막고 있었다.
한 남자가 입에서 검은 액체를 줄줄 흘리며 다가오는 노인의 팔다리를 붙잡은 뒤, 그대로 꺾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뚜두둑.
“크으…… 으아!”
바닥에 넘어진 노인의 몸 위로 올라탄 뒤, 양손을 묶으려 시도하는 남자.
“어째서 이런 일이……!”
남자가 버둥대는 노인의 몸을 누르며 양손을 묶기 시작할 때, 누군가가 남자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 도움은-”
퍼억.
남자의 옆으로 다가온 이는 남자가 제압하고 있던 노인의 머리통을 그대로 발로 밟아 으깨어 버렸고, 검은 액체와 함께 머리가 터져 나간 노인의 몸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머리를 터트려 버려! 아까 말했을 텐데.”
노인의 머리통을 밟아 부순 것은 <아스트라>의 길드 마스터, 인드라였다.
“그, 그렇지만 길드 마스터? 전부 다 사람이었다고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드라에게 항의하는 남자는 얼마 전 <아스트라>에 들어온 신입인 사미드로, 지금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으로 보이나? 팔다리가 꺾여도 달려들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물체가 눈에 보이는 순간 그걸 찢어 버리려 하는 괴물들이?”
“적어도 묶어 놓고 어딘가에 가둬 둔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격리라도…….”
“정신 차려. 너, 할리우드 좀비 영화 같은 건 봤나?”
“보기야, 봤지만…….”
“지금 이게 딱 그 상황이라고. 이해 못 하겠나?”
인드라는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좀비들과 방금 자신이 터트린 노인의 몸을 가리켰다.
“발리우드의 영화를 깎아내리려는 생각은 없지만, 여기서 중간에 음악이 나오고 춤추는 장면이 나올 것 같아? 미국에서 만든 영화는 처음부터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상황이 심각한 것 자체는 유지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런 재난 영화와도 같다고. 알아들었으면 가서 쓰러뜨려라. 네 힘은 이럴 때 쓰라고 생긴 거니까.”
“……네.”
인드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의 시체에서 멀어지는 사미드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배울 만큼 배운 녀석도 저렇게 어리바리한데, 시골 같은 데에서는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길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해 글을 쓰거나 기본적인 상식을 알지 못하는 시골이나 소도시의 민간인들에 대한 걱정을 하는 인드라.
그는 대도시에서 주로 일어나는 이 상황에 대해 그들이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을 거란 생각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도시에서는 피해가 컸지만 시골에서는 큰 피해가 생기지 않았다.
-알립니다. 지금 곳곳에서 멀쩡하던 사람이 미치는 광증이 발병했으니,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 하는 이를 발견하면 곧바로 죽여 버리십시오.
인도 정부가 라디오나 방송을 통해 전파한 내용.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즉시 죽여 버리라는 과격한 내용에, 의심할 줄 모르는 시골의 사람들은 좀비가 달려들기 시작하면 모두가 힘을 다해 제압하고 죽였다.
인도에서 조금 벗어난 중국도 그와 비슷했지만,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사태를 해결하고 있었다.
-모든 시민들은 들으십시오. 집 안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정부가 해결 중입니다. 집 안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길거리와 공공 기관, 라디오, TV, 인터넷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시민들을 집 안에 격리시킨 정부.
그리고 정부는 그렇게 시민들이 이동하지 못하게 만든 뒤, 군대를 투입했다.
-현재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집 안에서 몸을 숨긴 뒤, 군인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마십시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정부 측에서는 좀비 사태라고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기에, 폭동이 발생했다고만 했다.
-군인이 찾아왔을 때에는 1분 안에 문을 열고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범죄자를 숨겨 주고 있다는 판단하에 강제로 진입하겠습니다.
국민들이 말을 듣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좀비들을 소탕하는 데에 저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다.
모든 시민들의 이동을 막고 격리한 뒤, 군대를 투입해 깡그리 소탕하는 작전.
각 집에도 방문하여 생존자와 감염자를 구별하고, 문을 열지 않으면 감염이나 전멸로 판단해 소탕.
문을 열고 나오면 감염 여부 등을 확인 후 선별.
모든 좀비 사태에서도 그렇게만 한다면 상황이 이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시나리오였고, 중국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물론 몇몇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좀비 소탕 영상과 강제 격리 시도 영상들이 있었다.
그 영상들은 시민들에 대한 탄압과 자유 억제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뿌려졌지만, 그리 파급력이 크지는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진짜 좀비 사태가 터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옆, 한국.
한국은 중국과 인도 그 사이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국가의 완벽한 통제와 민간의 좀비 규제 사이의 아비규환.
한국은 국토의 넓이에 비해 과도한 인구밀도로 좀비 사태가 심화되기 쉬웠지만, 현대 사회에는 그 취약점에 대한 대비책이 있었다.
콰앙!
도심지에 있는 한 공원.
공원이라기보다는 광장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지금 이곳에 항구에서 쓰는 거대한 철제 컨테이너가 떨어졌다.
“다 됐지?!”
그리고 한 남자가 그 컨테이너의 열린 문으로 달려들었고, 그의 뒤를 따라 맹렬하게 달려오던 좀비들도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덜컹!
컨테이너의 문이 닫히고, 남자는 좀비들과 함께 컨테이너 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오케이! 다 잡았어!”
그러나 남자는 컨테이너 안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다 잡았다는 말이 들린 직후 컨테이너 위에 나타났다.
“끌어 올려! 끌어 올려!”
남자는 컨테이너를 끌어 올리란 말을 했고, 그러자 밀폐된 컨테이너가 천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떠오르기 시작한 컨테이너 위에 걸터앉은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상대에게 질문했다.
“가둬 놓고 그대로 보관한다라……. 영화에서도 이렇게 하면 좀 좋아?”
남자가 보는 곳, 컨테이너 위의 공중에서는 한 여성이 염동력으로 컨테이너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영화는 그런 작전 나오면 누구 하나가 죽잖아. 꼭 간지 넘치던 중년 아저씨나 노인들이 희생하고.”
“그건 영화니까 그런 장면이 나오는 거지, 실제로는 저렇게 트랩 설치하고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만 던져 놔도 함정이 될걸?”
“실제로는~이 아니지, 진짜 그렇게 하고 있잖아.”
“뭐, 그거야 어쨌든…… 이렇게 보관해 두는 게 진짜 맞는 방식이야? 원래 좀비들은 다 죽여야 하는 거 아냐?”
남자는 자신과 파트너인 여성이 힘을 합쳐 만들어 둔 좀비 보관 컨테이너들을 쳐다보았다.
당장 이 광장에만 해도 사람 수십 명은 들어가고도 남을 컨테이너가 10개 넘게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그 안에 든 좀비들의 수를 대략적으로 추산하면 300명 정도 될 것이었다.
“국민들 눈치가 얼마나 보이냐? 동물에 캐릭터에, 별 권리 다 챙기려고 하는 게 우리나라인데. 좀비도 사람이라고 온갖 시위에 청원에 다 넣을걸?”
여성은 정부가 눈치를 본다고 이런 해결책을 내놓았다고 투덜거리며 지금 들고 있는 컨테이너를 쌓아 둔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순간 이동과 염동력 각성자 단둘로 만들어 낸 깔끔하고도 효율적인 좀비 격리 방식.
총인구수에 비해 과다할 정도의 각성자 인구가 보여 주는 일 처리 방법이었다.
일본에서는 총기나 무기에 대한 규제와 특유의 느린 행정 처리로 인해 사태가 악화될 뻔했다.
-지금 도쿄 시내에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좀비 사태 같은데…….
-같은데? 명확하게 정리해서 보고하게. 보고서도 없이 무슨……
-지금 정리하고 자시고가 안 됩니다. 소요 사태라니까요!
-까요? 자네, 상급자에게 말이 그게 뭔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하급자가 보고하러 가더라도 상급자가 그 사태를 알지 못하고 규칙이나 들먹이고 있었으니, 일 처리가 안 될 수밖에.
당장 도쿄에서 좀비 사태가 벌어지고 1시간이 지나도 수상이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런 탁상행정을 해결해 준 이들이 있었다.
콰앙!
“다 꺼져! 지금부터 비상 상황이다! 대피령이나 발동해!”
“무슨 일이오?! 당신들은……!”
“시끄러워! 대충 쿠데타라고 생각해! 그거면 대피 방송이든 집 안에 틀어박히라는 경고든 뭐든 되겠지!”
다이카를 비롯한 <부시도 스피리츠>의 길드원들이 최선을 다해 정부를 뒤엎고 시민들을 통제하는 강수를 두고 나서야 어느 정도 사태를 진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활약에도, 전 세계의 모든 혼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영국의 런던에서만큼은 알 수 없는 돌풍과 그 바람을 타고 날아온 수상한 빗방울이 좀비를 녹게 만들어 위험에 빠졌던 시민들이 구해진 사례가 있었지만, 그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혼란에 빠지고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 * *
한편, 애덤을 붙잡아 둔 영의와 화연.
둘은 애덤을 잡아 두는 일을 우선했고, 지금 전 세계에서 좀비 사태 같은 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저 창고 안에서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시를 소홀히 할 수도 없었기에, 휴대폰을 본다거나 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애덤을 바닥에 눕힌 채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화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우웅-
“……?”
화연은 갑자기 울린 전화에 영의를, 그리고 무심코 애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영의는 화연이 자신을 쳐다보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애덤은 어떻게 안 건진 몰라도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아채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아, 받아도 상관없어. 빨리 확인하지 않는 게 더 무례하니까. 그리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내용인지도 알려 주면 안 될까? 그냥, 궁금해서.”
분명히 용신에게 얻어맞아서 날아가 버렸던 치아가 다시 자라나 유창하게 말하는 애덤의 모습에서는 붙잡힌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영의는 그렇게 멀쩡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애덤을 제압하는 게 일이었다.
퍼억.
“어윽!”
무자비하게 날아드는 영의의 발 차기.
사실 처음에는 폭력으로 제압할 생각이 없었지만 뽑힌 치아들이 다시 생겨난 것을 본 영의가 과격하지만 확실한 수단을 택하기로 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라.”
영의의 발길질 이후, 화연은 둘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휴대폰을 꺼내어 무슨 변화가 생긴 건지 확인했다.
[한국에서 갑작스러운 좀비 사태 발생. 안 믿기겠지만 진짜. 인터넷 확인할 것.]
길드의 서울 지부장, 정훈에게서 온 메시지에 화연은 잠시 당황했다.
‘좀비……? 얘가 거짓말할 애는 아닌데.’
“선배,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요……?”
화연은 알 수 없는 소식이지만 일단 영의에게 이야기를 하려 했다.
“뭐가?”
하지만 그녀의 휴대폰은 메시지를 수신하는 것까지가 한계였다.
해외로 나가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로밍으로 문자까진 수신했지만 데이터 통신에는 큰 무리가 있었다.
“인터넷을 잠깐 확인해 봐야 하는데…… 이런, 혹시 선배 휴대폰 해외에서 데이터 통신 돼요?”
“폰 자체를 안 들고 왔는데.”
영의는 휴대폰이 필요 없었으니 들고 오지 않았고,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둘의 대화를 들은 애덤이 친절하게 제시해 주었다.
“인터넷? 와이파이 이름은 GATE7. 비밀번호는 ‘Viva corp Alice!’ 앞부분은 대문자, 뒤에 Alice 부분도 대문자로.”
“…….”
애덤의 말이 긴가민가한 화연이었지만, 일단 해 봐서 손해 볼 건 없었고 실제로 애덤의 말대로 하니 와이파이가 연결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확인한 화연은 전 세계에서 수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좀비의 목격담과 혼란에 빠져 가는 도시를 볼 수 있었다.
“선배, 전 세계에 좀비 사태가…… 아니, 못 믿겠지만 진짜로…….”
영의는 화연의 말과 그녀가 내민 휴대폰 화면으로 실제로 전 세계에 혼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그리고 그가 그것을 보고 당황한 순간, 그의 발밑에 있던 애덤이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흐, 하하하하하!”
“이 자식……?”
퍽, 퍼억.
영의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걷어차기 시작했으나, 그의 웃음은 영의의 발길질에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대는 뽑힌 이도 다시 나게 할 정도로 이상한 능력을 가졌다.
뻐엉!
그것을 떠올린 영의는 애덤의 복부를 있는 힘껏 찼고, 애덤은 그 발 차기에 맞고 움직임을 멈췄다.
“……너무 셌나?”
영의는 잠깐 후회하려 했지만, ‘어차피 멀쩡할 것이고 아프니까 멈췄겠지?’란 생각을 했다.
단 2초 정도만.
움직임을 멈췄던 애덤은 갑작스럽게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브우웨에엑!”
검은색 액체와 함께 섞여 나오는 선혈.
“어어?!”
“진짜 너무 셌나?!”
“부, 붕대라도 가져올게요!”
영의는 자신이 목숨에 지장을 주는 부상을 입힌 게 아닐까 걱정하며 순간 애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화연이 붕대를 가져오기 위해 잠깐 멀어지는 것과 영의가 무방비하게 다가온 것.
두 가지의 조건이 달성되자 애덤은 피를 토하다 말고 미소 지었다.
“같이…… 가자.”
“그게 무-”
쩌엉.
애덤의 미소와 함께, 영의와 애덤은 그들의 옆으로 갑작스럽게 생겨난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갔다.
그 구멍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만큼이나 사라질 때도 증발하듯 사라졌으며,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화연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