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18)
자신을 선지자라 밝힌 애덤과의 전투가 벌어진 지 10여 분.
영의와 화연은 자신들을 1:2로 상대하면서도 의외로 여유 있는 애덤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고수인데……?’
‘천재적인 센스가 보이는 기술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들어가는 공격을 대부분 받아 내고 있어. 대체 어떻게?’
화연의 검격과 영의의 공격을 대부분 정석과도 같은 방법으로 대처하면서도, 때때로 주변의 기물을 이용해서 방어해 내는 모습을 보여 준 애덤.
그러나 그는 영의와 화연의 공격 경로가 겹칠 때 약간의 수고로 둘의 공격을 충돌시킬 수 있는 찬스가 있어도 그것을 활용하는 대신 피하거나 주변의 도구로 막는 방법을 택했다.
정작 공격하는 당사자인 영의와 화연이 ‘이건 서로 부딪쳐서 막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공격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애덤이라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덤은 그렇게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굳이 몸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고, 영의는 그것을 보고 애덤이 전투적인 센스가 그리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경험은 엄청나게 많은 것 같은데. 주위에서 쓸 만한 물건을 바로 집어 들고 방어에 쓰고 부서질 것 같으면 바로 던지거나 공격에 쓰는 게 싸움에는 확실히 익숙해.’
마치 나름의 능력도 있고 경력도 있지만, 재능이 없어 우직하게 배워 가며 수련해 가는 열등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영의가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 영의와 다른 쪽으로 의식을 집중한 화연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근데, 왜 적극적인 공격을 안 해 오죠?”
애덤의 전투 방식에서 센스만을 판단했던 영의와 달리, 화연은 전체적인 운용을 판단했다.
“응?”
“2:1에서 막기 급급하면 몰라도, 여유가 있는데 그 짧은 여유 시간 동안 공격을 해 올 만하잖아요.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숨만 돌리고 다음 공격을 대처하려는 듯 관찰만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애덤은 그들과 대치하며 일진일퇴만을 반복했을 뿐, 아주 잠깐의 여유 시간에 공격을 가해 오지 않았다.
비록 안 통할 걸 알더라도 내지를 때가 있어야 하지만, 애덤은 여유가 생기더라도 이길 생각이 없다는 듯 그저 가만히 서 있거나 자세를 가다듬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영의가 애덤의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때, 비로소 애덤도 그들이 눈치챘다는 것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야 눈치채는군. 아무래도 둘 다 싸움을 시작하면 주위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타입인가 본데? 내 목적은 그저 시간 벌기. 이미 계획은 시작됐고, 그걸 막을 순 없지.”
본인의 목적이 단순 시간 벌이일 뿐이었다는 말을 담백하게 털어놓기 시작한 애덤은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방어해 온 것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곧바로 둘의 틈새로 달려들었다.
짜악!
하지만 누군가에게 공격을 가하는 대신, 애덤은 그저 손뼉을 한번 치며 둘 사이를 지나갔다.
‘짜악?’
‘박수 치는 소리?’
영의와 화연이 애덤 쪽을 돌아보기 위해 몸을 돌리려 했을 때, 둘은 자신들의 발치에 있는 검은색의 무언가를 눈치챘다.
“이건?”
마치 검은색의 담쟁이덩굴이 발목을 휘감고 올라온 것과도 같은 모양새.
누가 봐도 발을 묶기 위한 용도의 함정이었다.
“미안하지만, 직접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손을 썼지. 그럼 난 도망가겠어!”
애덤은 도망가겠다는 말을 당당하게 외친 뒤, 허공으로 뛰어오르려 했다.
그러나 그때,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누군가가 애덤을 찍어 눌렀다.
콰앙!
“이 X끼…… 드디어 잡았구만.”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나듯 나타나 곧바로 아래쪽으로 팔꿈치를 내려찍고 애덤을 제압한 인물은 바로 용신이었다.
“아저씨……!”
영의는 용신의 얼굴을 보자 매우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용신은 영의의 상태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한 놈이 발목이나 잡히고…….”
따악.
용신은 허공에서 마치 딱밤을 때리듯 손가락을 튕겼고, 그 동작에 영의와 화연의 발을 묶고 있던 검은색의 덩굴이 풀렸다.
“이 잡놈이…… 사람 귀찮게 하고 말이야.”
자신의 발아래에 쓰러진 애덤을 그대로 짓뭉개서 뼈와 살을 분리시킬 듯한 기세로 노려보기 시작한 용신은 그의 뒷덜미를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자, 가자. 진실의 방으로.”
마치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옮기듯, 용신은 애덤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옮기려 했지만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흐, 흐흐. 크흐흐흐, 진짜 그대로 됐네? 크흐흐흐흐. 진짜였어…….”
애덤에게서 들려오는, 섬뜩한 웃음소리.
“뭐가 좋다고 쪼개는 거야, 이 미친놈은…….”
용신은 처음엔 애덤의 웃음소리에 잠깐 당황하는 반응과 ‘이놈이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을 했지만, 이내 뭔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냥 한 대 패 버리고 데려가죠?”
영의는 애덤이 아까 보여 준 미친 듯한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에 그를 그대로 제압하고 끌고 가자는 제안을 하려고 했지만, 용신은 애덤의 여유로운 모습에 꺼림칙함을 느꼈다.
“아니, 이놈…… 뭔가 있다. 야, 너. 너 뭐냐? 너 뭐 이상한 거 꾸며 놨지? 내가 여기를 떠나게 하거나 널 풀어 주게 만들 그런 거.”
“정……답.”
애덤은 용신의 말에 비웃듯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고, 용신은 그런 그의 웃는 얼굴에 열이 받은 건지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후두둑, 투둑.
“크헉, 커억.”
용신의 주먹은 마치 탈곡기에 집어넣은 벼처럼 애덤의 치아를 우수수 털어 냈다.
바닥에 떨어진 애덤의 치아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고, 애덤의 입에서는 붉은 피와 검은색의 액체가 섞여 떨어지고 있었다.
“으흐, 흐흐…….”
애덤은 자신의 이가 거의 다 떨어져 나갔음에도,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웃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용신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 너희, 이 자식 잡아 두고 있어라.”
용신은 애덤을 바닥에 집어 던진 뒤, 영의와 화연을 쳐다보며 애덤을 잡아 두라고 지시했다.
“네?”
“이 망할 놈…… 세상을 아주 뒤엎으려고 작정했구만. 그거 좀 수습하고 올 테니까 잡아 놓으라고.”
용신의 말에 영의는 그냥 용신이 애덤을 데려가서 어딘가에 가둬 둔 다음에 일을 해결하러 가면 안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붙들고 데려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미 만신창이인데.”
“그사이에 튀면 안 되니까 그러는 거지.”
퍼억.
애덤을 발로 차서 영의에게 날린 용신은 곧바로 나타났을 때처럼 허공으로 사라졌고, 이내 이곳에는 애덤과 영의, 화연만이 남게 되었다.
“크흐, 크허, 크흐흐, 흐흐흐흐…….”
영의와 화연은 발아래에서 피거품을 물며 웃기만 하는 애덤을 보며, 두렵다는 마음까지 가졌다.
* * *
뉴욕, 맨해튼.
대도시인 데다 미국의 상징에 가까운 도시인 만큼 수많은 영화와 예술 작품들에서 부서지고 불타거나 사고를 겪는 도시.
물론 그거야 전부 미국을 배경으로 하려고 할 때 미국인 것을 가장 빠르고 쉽게 알 수 있는 도시가 뉴욕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이라는 대표적 상징물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타임스 스퀘어 등 ‘미국을 안 가 본 누군가가 보더라도 여기는 미국!’이라고 할 만한 대표적 상징물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 뉴욕의 맨해튼 섬에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꺄아아악!”
“으아악, 살려 줘!”
수많은 시민들이 패닉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뒤로 온몸이 검게 물들고 피를 쏟아 내는 살아 있는 시체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탕! 타앙!
그리고 총기 소지가 합법인 나라답게, 길거리의 시민들 중 일부와 경찰관들이 권총으로 대응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몸에 총알이 수천 발씩 주렁주렁 달려 있지는 않았다.
철컥, 철컥.
총알이 떨어진 한 남자가 약실에 총알이 다 떨어진 자신의 권총을 내려다보고는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총알도 없군. 경찰들! 지원을 요청해! 여기에 기동대…… 주 방위군…… 아무튼 아무나 좀 불러 봐!”
“이미 해 봤지! 젠장! 여기만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무전도 제대로 안 돼!”
경찰관은 총알을 거의 다 쓴 자신의 권총을 권총집에 집어넣은 뒤, 경찰차에 올라탔다.
“뭐야, 도망가는 거야?!”
“좀비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을 하러 가는 거지! 옆에 타!”
지금 그들로서는 맨해튼에 벌어진 일이 좀비 사태로밖에 생각되지 않았기에, 경찰관은 우선 옆에 있는 시민과 함께 방어선을 구축하고 무기를 확보하기로 했다.
‘총포상은 여기랑 저기…… 그리고 골목 뒤에 밀매하는 녀석이 하나 있었지. 눈치는 빠르니까 살아 있다면 경찰서로 올 테고. 식료품점은…… 챵이 운영하는 곳의 셔터가 방탄이었나?’
경찰관은 경찰차에 탑승하고는 곧바로 자신이 기억하는 지리대로 경로를 짜기 시작했고, 우선 무기를 구하기 위해 총포상으로 가려 했으나 그의 앞에 나타난 남자 때문에 차를 출발시킬 수 없었다.
“이봐! 비켜요!”
경찰차 앞에 끼어든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고, 경찰관은 그런 그를 단순히 대피하던 시민 중 한 명이라 생각했다.
“어디 갈 거면 뒤에 타든가! 아니면 여기서 그렇게 하늘만 바라보든가! 빨리!”
다급한 마음에 말도 중요한 부분만 짚어서 하는 경찰관.
그러나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경찰차 앞의 남자는 허공을 쳐다볼 뿐이었다.
“……심하게도 해 놨군. 아니, 이렇게 하라고 지시를 받은 거겠지.”
남자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 손끝을 좀비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경찰관은 남자가 비킬 생각이 없어 보이자, 차를 후진시킨 뒤 그를 피하여 나가기로 했다.
“알아서 하겠지! 이 동네 미친 인간들 한두 놈 보나!”
경찰관이 차를 후진시키고 남자를 피해 갈 만한 공간을 확보했을 때, 남자의 손끝에서 여러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쩍!
끼익.
순간 차를 몰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브레이크를 밟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섬광.
“뭐야!”
경찰관은 잠깐 눈을 감았다 뜬 다음 앞을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사라진 좀비들과 아까처럼 가만히 서 있는 남자만이 보였다.
경찰차에 함께 타 있던 시민은 눈앞의 남자가 섬광으로 좀비들을 없앴다고 생각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뭔지도 알고 있었다.
“……각성자인가?”
시민의 말에, 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가 보여 준 기행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 만한 힘이 있으니 여유롭게 좀비들을 구경하지 않겠는가.
“그럼 저기서 저렇게 서 있을 만도 하지. 이봐요! 대피소로 함께 갑시다!”
경찰관은 눈앞의 남자와 함께 대피소로 가려고 했다.
공권력에 속해 있고 인원 통제에 대한 훈련을 받은 적 있는 자신과, 힘을 가진 각성자, 그리고 나름대로 뜻이 있는 시민과 함께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비를 없앴던 남자는 경찰관을 슬쩍 한번 돌아보기만 했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길거리를 걸어갔다.
“……뭐지?”
“직접 다 잡고 다니겠다는 건가?”
“일단! 각성자 걱정하지 말고 우리들 걱정부터 해야지! 달려요, 경찰 양반! 총포상이든 약국이든!”
경찰관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남자가 신경 쓰였지만, 일단 자신들이 살 기반도 생각해야 했기에 우선 차를 달려 총포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남겨진 남자, 용신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다른 이들이 보는 것과 달리, 용신에게는 하늘이 마치 비닐처럼 보였다.
매우 질긴 탓에 쉽게 찢기지는 않지만, 찢기기 전에 늘어나며 색과 모양이 변하는 것을 눈으로 확연히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두껍고 질긴 비닐.
용신이 보는 하늘은 그런 비닐에 아주 작은 불똥이 튀어 군데군데 벌레 먹은 듯 작은 구멍이 뚫려 가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진짜 관리자란 놈들…….”
그는 불평을 내뱉으면서도, 일단 현재 닥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뉴욕의 길거리를 가로질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