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14)
용신은 금방 오겠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정말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안 돼 바로 도착했다.
“좀비라고?”
“아, 네에.”
“그리고 전화 끊기 전에 마지막 말 들었다. 좀비 아니면 네 바이크 내 거다.”
용신은 영의가 꺼냈던 말을 기억하고 있던 건지, 그가 바이크를 걸려고 했던 것을 언급했다.
“말이 다 안 끝났으니 효력은 없는 거 아닌가요……?”
“……쯧.”
하지만 영의는 바이크를 걸겠다는 말을 완전히 끝내지 않았으니 건 것은 아니라고 변명했고, 그 변명에 용신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진짜 먹혔나……?’
용신의 반응에 영의는 자신의 변명이 먹혔나 싶어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안내해. 뭔지는 몰라도 봐야 아니까.”
“네.”
영의는 다시 시체 안치소로 들어갔고, 용신은 영의의 뒤를 따라 시체 안치소에 발을 들이자마자 뭔가를 감지한 듯 위를 쳐다보았다.
“2층에 어떤 놈이 있었군. 불과 얼마 전까지.”
“네?”
“지금은 없어. 저긴 나중에 조사하고 일단은 그 좀비인지 뭔지부터.”
따악.
용신은 복도를 걷던 도중 손가락을 튕겼고, 그의 손짓에 복도에 빛의 구슬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수상쩍은 냄새가 가득하군. 미끼로 쓸 만해.”
바닥에 널려 있는 핏자국과,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뭔가 끌린 자국들은 보기만 해도 수상함이 풀풀 풍겨 나왔다.
“여기예요. 지하로 가는 길을 막아 두긴 했는데, 지금 지하에는 그 좀비들이 가득하고…….”
“그래? 뭐…… 너희 물어서 뜯어 먹으려고 달려들었나? 아니면 야생동물처럼 입질이라도 했냐?”
용신은 지하로 가는 통로가 막힌 것을 찬찬히 살펴보며 영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입질……은 안 했지만 달려들긴 하던데요.”
“흠, 그럼 좀비는 아니네. 재밌을 뻔했는데.”
“……네?”
“아니, 넌 그냥 아까 말 제대로 안 끝낸 거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라. 안 그랬으면 너 오늘 집에 걸어서 돌아갈 뻔했으니까.”
“좀비가 아니라고요……?”
“그래, 진짜 좀비였으면 물어뜯었겠지. 좀비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기본 행동 양식은 손발로 싸우던 인간이라는 거야. 좀비 유사품이지. 그 외에 특이 사항은?”
지하에 있던 좀비들은 진짜 좀비가 아니라 유사한 것이라고 말한 용신은 영의에게 다른 정보를 요청했다.
“어어…… 머리를 부숴야 죽었고, 다른 건 안 통했는데 불은 유독 잘 먹히더라고요.”
“불……? 흐음. 설마…… 에이, 아니겠지.”
용신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지하의 계단에 손을 뻗었고, 이내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틀어막고 있던 계단은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려졌다.
뿌득. 쿵.
계단이었던 콘크리트 조각은 둘로 깔끔히 갈라진 뒤, 책을 덮듯 포개져 복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앞길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사라진 지하의 좀비 유사품(?)들은 곧바로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것들이에요.”
영의는 손으로 좀비 유사품들을 가리켰고, 그것들은 밝은 조명 앞에 모습을 비추니 더욱 혐오스러웠다.
눈과 입에서 검은 액체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음? 어? 어어?”
용신은 그것들을 보며 깜짝 놀랐고, 어지간하면 용신이 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본 적 없는 영의도 덩달아 놀랐다.
“뭐, 뭐예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걸 어쩌면 좋냐?”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처럼, 어떡하지란 말을 연신 내뱉는 용신.
영의는 용신의 반응에 그를 쳐다보았고, 그때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좋으냐……! 미끼라고 생각했는데 대박이었다. 미꾸라지 하나 잡으러 왔다가 가물치를 봤어.”
아까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용신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좀비 유사품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네? 그게 무슨…….”
쩌엉.
영의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하에서 올라오던 좀비 유사품들은 모두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좀비 유사품들이 있던 곳에는 아주 작은 검은색 육면체들이 생겨나 있었고, 그것들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까딱.
용신의 손짓 한 번에, 검은 육면체들은 지하에 있던 것들까지 포함해 모두 용신의 손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게…… 뭐죠?”
용신은 손안에 들어온 검은 육면체들을 꽉 쥐었고, 이내 깔끔히 비워진 손을 쳐다보며 영의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알 것 없……. 아니지, 전에 말했던가? 관리자니 뭐니 했던 이야기.”
“어…… 그러니까, 세계들을 관리하는 신 같은 존재들요?”
일전에, 용신은 세계의 비밀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며 영의의 역할인 차원의 심부름꾼이 생겨난 계기와 그 근원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래, 그중에 또라이들도 있다고 했지?”
“세계를…… 부수거나 없앤다거나 하는 사람…… 아니, 관리자들요?”
“그래. 업무를 줄이기 위해 다른 존재를 기용하는 대신 세계의 수 자체를 줄이겠다는 놈들이지.”
용신은 손을 탁탁 털며 지하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고, 영의는 그 뒤를 따랐다.
“그중에는 단순히 없애거나 통합하자는 온건파도 있지만, 강경파도 있어.”
“강경파요?”
“세계…… 차원 자체를 그냥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듯이 버리자는 놈들이었지. 별 보잘것없지만 멀쩡한 세계 자체를 흡수해서 힘을 키워 더 원활하게 관리하자는 놈도 있었고.”
“버려요?”
“심사를 거친 뒤, 기준에 탈락한 세계들은 심연이라고…… 블랙홀 같은 게 있는데 거기에다 때려 박자는 거지. 통폐합도 귀찮고, 내부에 있는 몇몇 종들만 보내고 남은 세계들을 폐기하는 것도 귀찮으니 통째로 버리자고 한 거야.”
용신은 그 말을 하며 영의를 쳐다보았다.
“네가 자주 접한 것들도…… 아니. 이건 나중에 얘기해 주지. 아무튼 방법 자체는 좋았지. 세계의 찌꺼기나 남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생겼지. 여기에서도 쓰레기를 그냥 갖다 버리면 어떻게 되냐?”
“환경……오염이 생기죠?”
“그게 그렇게 된 거야. 멀쩡한 생태계가 망가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금지하기로 했어.”
“그런데 그게 안 먹혔다는 거죠?”
“그래, 오히려 심연에 세계를 먹여 힘을 키운 다음 지우개처럼 쓰겠다는 놈들도 생기고…… 말썽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진 거야. 심연이 오히려 멀쩡한 세계들을 오염시키기 시작한 거지. 저게 그 흔적이고.”
용신은 쓰레기를 잘못 처리해 환경오염이 생기듯, 세계들에도 오염이 생겼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뒷구멍으로 수작 부리는 관리자 한 놈 꼬리 잡으러 왔는데…… 이거, 이제 보니 심연까지 손댄 것 같은데? 대어를 낚았어.”
“그럼 이제부터 같이 행동해 주시는 건가요?”
“아니, 다른 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나는 이 심연이 어느 구멍에서 새어 나온 건지 확인하러 가야 돼.”
“네? 개입할 여지가 생긴 거 아닌가요? 대어라면서요?”
“상어나 청새치급 대어라서 그렇지. 심연에 한번 제대로 잠식당하기 시작하면 답도 없어. 난 그거 찾아야 된다. 대신, 약점 같은 거에 대해서 나중에 얘기해 주지.”
용신은 또다시 명확한 대답이나 도움을 주는 대신 영의의 눈앞에서 사라졌고, 영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관리자에, 심연에, 용신…… 대체 뭔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뭔가를 연결할 만한 단서가 없었기에, 영의는 그저 아무런 소득 없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됐어요?”
“좀비 맞죠?”
용신에게 뭔가 정보를 얻었을 거라 생각한 <은기사단> 멤버들이 영의에게 다가왔고, 영의는 일단 아는 것만 얘기해 주기로 했다.
“좀비 유사품이긴 한데…… 정확히 좀비는 아니래. 뭔가 다른 힘으로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요?”
“일단 아저씨가 뭘 조사하러 갔으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영의는 관리자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기에, 용신이 단순히 조사를 위해 떠나갔다고 얘기하며 일행들을 해산시켰다.
다른 넷이 귀환을 위해 순간 이동을 준비하고 있을 때, 영의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선배, 안 가요?”
화연의 말에, 영의는 고개를 저은 뒤 바이크를 꺼냈다.
“어…… 나는 바이크 타고 갈게. 생각할 게 조금 있어.”
“……빨리 돌아오세요.”
<은기사단>의 다른 멤버들이 사라지고, 영의는 시체 안치소의 2층을 쳐다보았다.
‘2층에 뭐가 있었다고 했지…….’
용신에게 전해 들은 내용만 없었더라도, 멤버들에게 이야기하고 함께 의논해 봤겠지만 지금은 머리가 복잡했다.
‘일단 2층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영의가 시체 안치소의 2층을 조사하기 위해 한 발짝을 떼어 놓자,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우웅-
‘통행자? 이 시간에?’
지금은 야심한 새벽 시간.
물론 차가 지나다닐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 이 상황에 오는 것은 수상했다.
“일단, 그냥 민간인처럼 있자.”
영의는 슈트를 재킷으로 가린 뒤, 헬멧만을 쓰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야간에 바이크를 타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변장을 끝내자, 뒤에서 들려오던 엔진 소리가 가까워졌다.
부아아앙-
거대한 몸체와, 몸체와 약간 거리가 있는 앞바퀴.
아메리칸 바이크가 전조등을 켜고 도로를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오, 아메리칸 바이크…… 멋지네.”
영의는 바이크를 좋아했기에 이곳으로 달려오는 상대방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숨을 필요는 없겠지……. 어떤 바이크를 타는지나 구경하자.’
이 한밤중에 바이크를 탈 정도의 바이크 애호가라고 생각한 영의는 어깨 너머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전조등을 바라보았다.
“오…… 저거 되게 비싼 모델인데.”
고급 모델의 아메리칸 바이크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영의를 향해 달려왔지만, 영의는 그때까지도 별생각이 없었다.
이곳은 휴게소가 아니었고, 밤의 도로는 넓었기에 마음껏 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크에 탑승한 사람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자 영의는 이상함을 느꼈다.
부와아아앙-
“……왜 사선으로 달리지?”
도로를 그저 질주할 거라면 일직선으로 달리면 그만이지만, 바이크의 주인은 영의…… 정확히는 시체 안치소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설마.”
영의가 설마라는 생각을 품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오던 아메리칸 바이크의 탑승자는 속도를 올려 그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두다다다다-
엔진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머플러를 통해 공기 중에 진동했고, 그 소리의 빈도가 잦아질수록 영의를 향해 달려오는 바이크의 기세는 맹렬해졌다.
“칫!”
영의는 자신의 바이크에 올라타 시동을 걸어 공중으로 떠올랐고, 상대방이 충돌하기 직전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끼기기기긱-
아메리칸 바이크의 탑승자는 영의를 놓치자 곧바로 브레이크를 걸며 바이크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 때문에 바이크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시체 안치소의 벽을 향해 돌진했다.
“하, 그대로 꼬라박아라.”
영의는 바이크의 탑승자가 선지자 휘하의 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사람에게 곧바로 돌진해 오는 게 제대로 된 인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콰앙!
그러나, 아메리칸 바이크를 탄 누군가는 벽에 충돌하기 직전 바닥에 다리를 박아 넣었다.
꾸드드득.
와직.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바닥에 균열을 일으키는 과격한 브레이크 덕에 바이크는 움직임을 멈췄다.
“무식하게 멈추네……. 그보다, 각성자인가.”
영의는 공중에서 상대방을 내려다보았고, 바이크를 멈춰 세운 탑승자는 바이크에서 내린 뒤 쓰고 있던 헬멧을 집어 던졌다.
“너냐? 여기서 기웃거린 놈이! 도움을 요청하기에 와 본 보람이 있군!”
머리를 전부 뒤로 쓸어 넘긴 올백 스타일의 남자는 하늘에 떠 있는 영의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내가 이 안에 들어왔던 것까지 알고 있네?”
“내려와라!”
올백의 남자는 영의에게 내려오라고 소리쳤지만, 영의는 순순히 내려가 줄 마음이 없었다.
“일기토는 무림의 영감님들이나 잘 받아 주는 거지, 나는 굳이 일대일을 선호하진 않는데…….”
하지만 그가 공중에 있는 것을 더 이상 꼴 보기 싫었던 건지, 올백 스타일의 남자는 방금 전 부서진 아스팔트 조각들을 잡아 공중에 던졌다.
후두두둑, 파박!
남자가 던진 아스팔트 조각들은 바이크에 맞아 내부에 파고들었다.
“내려오지 않는다면 사냥철 오리처럼 될 텐데?”
“……내려가 주지.”
일대일의 싸움을 굳이 해 줄 이유가 없는 영의였지만, 지금 이 순간 싸울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