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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311화 (311/325)

제311화

(12)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에는 바닷물이 바다로 밀려가 파도가 약해지고, 지진이 나기 전에는 동물들이 모두 대피해 숲이 고요해진다.

그와 같이,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 잠깐의 평화도 거대한 사건이 생기기 전의 전조와도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용신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관련된 정보를 얻어 내지 못했다 해도, 그의 정보 수집 능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집단들을 많이 발견했고, 찾는 순간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후 그들이 선지자와 별 관계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들에 대한 정보를 몰래 흘려서 각국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고, 곧바로 수색을 이어 가는 등 의외로 성실하게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런 용신의 정보망에 <비스트>에 대한 정보가 포착되었다.

예전의 선지자는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해 두고, 변수에 유의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기밀 유지를 거의 최우선으로 했고, 핵심 인원만을 중심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본인의 정체나 조직의 움직임을 알 수 없게 대리인을 쓰고 장기 말로 쓸 부하들을 부렸다.

마치 무협지나 스파이 영화의 암중 세력, 뒷세계의 비밀 조직에서 보일 법한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지금, 선지자가 1개월간의 공백기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그런 치밀한 사전 계획이 사라지고 무작정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대낮에 도시의 대로를 활보하며 난동을 부린다거나 대외적인 성명 발표 같은 눈에 띄는 짓은 안 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행동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CCTV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골라 다니며, 위조 신분증을 열심히 활용했던 <죽음으로 가는 빛> 시절과 달리 여러 조직들을 개편이나 별도의 통제 없이 그대로 부리고 있었으니 해당 조직들의 일 처리가 미숙했다.

애초에 모든 걸 통제하다시피 하는 선지자가 기밀의 유지를 철저한 수준까지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고, 선지자를 도와 기밀 유지나 잡무 처리를 했던 샤오롱마저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흔적을 지우는 데에 어설펐던 조직들의 꼬리가 쉽게 밟히고 말았다.

[<비스트> 소속, 조지 브라운(상해죄로 수감, 5개월 전 출소)]

[<신인류> 소속, 채프 채프먼(가명) (도주)]

컴퓨터의 모니터에 범죄자들의 신상이 기록된 경찰의 기록이 출력되었다.

“보이나? 이 둘의 기록이?”

“네, 보이네요.”

지금, 용신은 다소 손쉽게 손에 넣은 <비스트>의 정보를 <은기사단> 전원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비스트>라는 명확한 단서가 있어서 금방 찾긴 했지만, 이놈들 자기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냥…… 동네 양아치가 밀거래하는 수준으로 숨어 다니고 있어.”

타악!

용신은 테이블 위로 서류를 던지며 작게 불평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쉽게 말해, 경찰이나 민간인들의 눈 정도만 피하고 있지 제대로 숨어 다니지 않는다는 거다.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를 시작하면 잡힐 녀석들이지만 자기들이 잘 피해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팟.

마우스에 손을 올린 뒤, 다음 화면으로 넘기는 용신.

거기서는 방금 전 정보가 나온 두 사람이 뒷골목에서 만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CCTV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만나는 거다. 얼굴을 아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찍혔지.”

“……더 쉬운 거 아닌가?”

“쉬워 보이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멍청한 부하 하나 정도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않나……?”

다른 이들은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지만, 직접 싸워 보고 그 철저함을 겪어 봤던 영의는 침묵했다.

“그게 문제라는 거지. 너무 쉬워. 경찰에 체포 이력과 지문까지 남아 있는, 이렇게 멍청한 놈들이 부하라니. 언제든 자를 수 있는 꼬리일 것 같단 생각밖에 안 들어.”

“가 봐야 아무것도 못 얻고 우리 정보만 노출할 수도 있다…… 이거군요?”

화연은 용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곧바로 알아들은 듯, 상황을 정리할 겸 다른 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정리해서 말해 주었다.

“역시 아가씨는 신중파라서 마음에 들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 봐야죠. 아니, 가야죠.”

용신과 화연은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고 있었지만, 영의는 메리와 나연의 말을 믿었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거짓말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리고 용신은 그런 영의의 말과 행동을 안 된다며 가로막거나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그 혹시 모르니까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싫지만, 가진 단서가 하나뿐이니 이거라도 물어야지 어쩔 수 있나. 다녀와라.”

지금 가진 게 유일한 단서였고, 뭐라도 해 봐야 했기 때문에 용신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보내야만 했다.

* * *

미국.

시외에 위치하여 오가는 사람이 없고 도시 내에 생긴 새로운 병원에 있는 안치소 탓에 방치되고 버려진 한 시체 안치소.

한밤중, <은기사단>의 일행들이 이 시체 안치소에 발을 디뎠다.

“마지막 목격 정보가 여기를 향했고, 주위 다른 CCTV에 잡힌 게 없으니 여기에 있다는 뜻이긴 한데…….”

시체 안치소는 밤 시간대임에도 내부에 사람이 없는지 불이 꺼져 있고, 정문이 부서진 채 기울어져 있어 섬뜩함이 드는 장소였다.

끼끼깃, 까가가각-

철문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쓴 적이 없는지, 잔뜩 녹이 슬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달칵-

영의가 헬멧에 달린 조명 기능을 켜며,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한데.”

“공포 영화 도입부 같지 않아?”

다이카는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공포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건지, 공포 영화 같다는 말을 꺼냈다.

“지금 인원 구성은 공포 영화라도 귀신이 박살 날 구성인데.”

“액션 영화 배우들 데려다가 공포 영화 찍으면 그게 공포야? B급 코믹 활극이 되는 거지.”

인드라와 영의의 대답에, 다이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귀신이 아니라 외계인이 와도 박살 날 구성인데, 귀신을 무서워하면 안 되지. 게다가 여기는 폐업한 지 오래됐으니 귀신도 안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겠지?”

그렇게 다이카가 마음을 놓고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디뎠을 때, 그들의 앞에 붉은색의 액체가 나타났다.

“……!!”

“피인가?”

세월로 인해 조금 누레지기 시작한 하얀 타일 바닥의 위에, 검붉은 색의 액체가 흩뿌려져 있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갑작스럽게 불길한 흔적이라니, 공포 영화 맞잖아……!”

“범죄자 소굴에 핏자국이 없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은데.”

다이카는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영의는 핏자국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부로 더욱 나아갔다.

“이놈들도 사람인 이상 불은 켜고 살아야 할 거고, 바깥에는 불이 다 꺼져 있었으니…… 지하로 가 봐야 하나?”

“그게 정답이겠지.”

“지하는 탈출할 구멍도 없잖아……! 사망 확정이라고.”

일행은 불안해하는 다이카를 반쯤 강제로 끌고 가듯 지하로 내려갔고, 그들은 지하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건……!”

“이게 전부 내가 생각하는 거라면 미쳤다고밖에는…….”

“미쳤군.”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복도를 비추는 작은 빛.

그 빛이 밝히고 있는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바디 백과 비닐봉지가 보였던 것이다.

바디 백은 그래도 내용물이 바깥으로 삐져나온다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비닐봉지들은 본래의 용도를 벗어난 사용처라서 그런지 내용물이 바깥으로 드러나 있었다.

“이게 다 사람이라고……?”

“범죄 조직답군.”

여러 비닐봉지에서 사람의 팔이나 다리 등이 튀어나와 있었고, 그 피부들은 마치 흑사병에라도 걸린 듯 검게 썩어 들어가 있었다.

“뭔가의 인체 실험 현장인가……?”

“충격적인 광경이긴 하지만, 제대로 찾아온 게 맞군.”

달칵.

인드라는 플래시를 꺼내 들어 켠 뒤, 주위를 비춰 보기 시작했다.

조명이 하나만 있다면 표적으로 집중받기 쉬웠고, 어쩌다가 깨지거나 꺼졌을 경우 빛을 잃기 때문이었다.

확실해 보이는 증거를 발견했으니 <은기사단>은 시체 안치소의 내부를 재빨리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의 문을 열어보던 중, 전기가 들어오는지 불이 켜진 방인 부검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 안에서 하얀 방이 검은색 페인트를 끼얹기라도 한 듯 검은색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깥에 시신들이 쌓여 있었던 데다가, 내부 인테리어가 조금 이상한 것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봐. 여기에도 시신이 있어.”

부검실의 내부에서, 몸에 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시신이 운반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아직 출혈이 멈추지 않은 상처도 있군……. 이 사람이 위층에 있던 혈흔의 주인인가.”

“그보다 죽은 지 얼마 안 됐다면 죽인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시신의 혈액은 아직 채 굳지 않았고, 그것은 이 사람이 방금 전에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간 건가……? 올 때까지 기다려 보는 건 어때?”

영의는 이 남자를 죽인 범인이 올 때까지 이곳에 잠복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인드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저기 있는 시체 더미에 던졌을 테고, 뭔가 할 생각이 있으니 여기 둔 거겠지. 좋아, 숨어 있어 보자고.”

그렇게 각자 운반대나 선반, 벽 뒤에 숨어 문에서 들리는 소리와 인기척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다이카는 시신이 있는 운반대에 걸린 천 뒤에 숨어 있다가 시신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저기…… 방금 시체가 움직이지 않았어?”

시신이 움직인다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다이카는 눈물을 글썽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소리야?”

“다이카, 물론 시체를 보는 게 조금 꺼려지겠지만 현실에 좀비 같은 건 없어. 무서운 영화는 나중에 같이 봐 줄게.”

“일본에서는 영화나 만화 같은 걸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그런가 보군.”

“누, 누굴 료처럼 보는 거야……?! 진짜로 움직였다니까?”

다이카는 동료들이 자신의 말을 거짓말이나 공포에 잘못 본 착각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자 울먹거리며 시신과 동료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니…… 그러고 보니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이면 사후경직 같은 걸 일으킬 수도 있지.”

“정 무서우면 자리라도 바꿔 줄까?”

덥석.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인 점을 고려한 동료들이 다이카와 자리를 바꿔 주려 하던 그때, 시신이 손을 꿈틀거리더니 바로 옆에 있던 다이카의 손을 붙잡았다.

“엄마야?!”

다이카는 시신이 자신의 손을 붙잡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고, 다른 동료들도 시신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기에 그것을 곧바로 목격했다.

와장창, 챙강-

다이카가 부딪힌 선반에 놓여 있던 수술 도구들과 기자재들이 떨어지며 나는 쇳소리 사이로, 동료들의 다급한 말소리가 오갔다.

“살아 있었나!”

“상처로 죽은 걸 텐데, 어떻게……?!”

그러나 누군가가 도와주기 이전에, 다이카는 시신의 팔목을 잘라 내고 있었다.

빠지직!

“날 속여?!”

귀신이나 좀비 같은 건 무섭지만, 죽은 줄 알았던 상대가 알고 보니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무서울 것이 없었던 다이카.

그녀는 분노에 눈이 멀어 사람의 손을 자른다는 행위도 서슴지 않고 행했다.

팔을 자른 뒤, 뒤로 물러난 다이카는 상대를 바라보며 전격을 지져 넣기 위해 힘을 끌어 올렸다.

파지직, 파짓-!

그러나 상대는 팔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비명이나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

“잠깐, 저거 좀 이상한데?”

“고통을 못 느끼는 훈련이나 시술이라도 받은 건가. 잘린 데다 전기로 지져졌으니 쇼크사도 할 법한데.”

<은기사단>은 팔이 잘렸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두 다리로 굳건히 서 있는, 시신이었던 남자와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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