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8화
(9)
미국.
블랙 펜타곤.
평소에 살벌한 감시와 엄중한 경계가 이루어지는 미국의 각성자 수용소.
하지만 그런 보안 체계를 가지고 있던 이 거대 수용소는 지금, 그 보안이 무색하리만치 처참하게 반파되어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바깥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굳건한 외벽은 무너져 있었으며.
언제나 주위를 감시하며 불이 밝게 켜져 있어야 하는 감시탑의 조명은 꺼져 있었고.
인간을 대신하여 뭐가 오는지 감시해야 할 CCTV는 망가진 채 전선 하나에 의지해 겨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수용소이니만큼 바비큐 파티나 장작불을 피운 뒤 진행하는 레크리에이션이 있을 리도 없었으나 어째선지 그 안에서는 주황빛의 불빛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주위로 퍼지고 있었다.
왜애앵-
귀를 찌르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모든 복도와 건물 바깥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수용소의 내부는 혼란에 휩싸였다.
“전부 도망쳐라!”
“도망쳐!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는 교도관들과 그 뒤를 맹렬하게 따라가는 수감자들.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수용소를 뒤집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 광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교도관들의 뒤를 따라 쫓아가듯 달리는 수감자들의 얼굴에는 당황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
“젠장!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우리들은 능력도 제대로 못 쓴단 말이야!”
블랙 펜타곤에 각성자들이 수용될 때는 모두 모종의 시술을 받고 수감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마력의 사용을 억제하게끔 하는, 어찌 보면 인체 개조에 가까운 약화 시술로, 관리 난이도의 저하와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최근에 들어온 텐징과 샤오롱은 그런 시술을 받지 않았다.
샤오롱은 본인의 능력을 속인 데다 약간의 거래를 통해 시술을 무마했고, 텐징은…… 단순하게 시술이 불가능한 육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술을 하게 된 계기는 이러했다.
블랙 펜타곤도 처음에는 러시아의 수용소처럼 엄청난 무장과 경비 인력을 상주시켰지만, 계속된 폭동과 폭력 사태에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다급히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내놓은 안건이 의외로 그럴듯한 설득력과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성격까지 띠게 되어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수용되는 각성자들은 어차피 전부 범죄자들이니, 그들의 몸에 시술을 하자! 야만적인 범죄 조직이 포로의 힘줄을 자르듯이, 우리도 힘줄을 약간 끊어 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일반인을 수감시킬 때 힘줄을 끊는다면 인권유린이지만, 인간을 뛰어넘은 초인들을 일반인까지 끌어내리는 것은 인권유린이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의 돈을 빼앗는 건 기본적인 생존권에 간섭하는 것이지만 부자에게서 같은 액수를 빼앗는 건 생존에 지장이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범죄자들의 교화와 그들의 재범 방지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므로 제지하기도 힘들었다.
그로 인해 대공포나 철갑탄 등 인정사정없던 화력의 장비가 일반적인 기관총이나 통상 탄을 쓰는 소총 등으로 바뀌어 버렸고, 거기서 몇 년이 지나자 대인 제압용 고무탄이나 테이저건 등 일반적인 교도소와 별다를 바 없게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본격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의문의 조직에게 습격당한 수용소는 패닉이 일어난 상태였다.
“젠장……! 외부 주둔 경비 병력들이 교대하는 걸 어떻게 알고!”
심지어 그 습격은 한 달에 한 번, 수용소의 주위를 경계하는 부대가 교대하는 빈틈을 노린 습격이었다.
정부도 멍청하진 않은지라, 아무리 예산을 줄인다 해도 방비를 허술히 할 수는 없었기에 수용소 주위에 군대를 주둔시켜 사막 지형 훈련 겸 수용소 방비를 맡겨 왔었다.
매번 다른 시간과 다른 요일에 시행하는 상당히 주도면밀한 교대였지만, 어째서인지 그 시간을 정확히 알고 습격해 온 것이다.
경계에 공백이 생기는 것은 넉넉하게 잡아도 두 시간, 정말 자세하게 알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그 빈틈을 찔러 온 것이었다.
그렇게 습격당한 수용소의 내부에서는 거대한 덩치의 근육질 남성들이 웃으면서 파괴 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햣하! 강화계는 데려다가 안경잡이들한테 넘기고! 나머지는 다 죽이자!”
뻐억.
사람을 맨주먹으로 말 그대로 ‘박살’ 내며 전진하는 남성들.
“안경잡이들이 다른 쪽도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성들 중 누군가가 지금 하는 행동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것은 양심이나 죄책감에서 우러나온 의문이 아니라 까먹은 것에 대해 묻는 의문이었다.
“응? 몰라!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강화계라도 있는 게 좋겠지!”
“그런가? 네 말이 대충 맞는 것 같네! 역시 우리 중에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녀석답다!”
그렇게 근육질의 남성들이 모두 모여서 수용소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탕, 탕!
“젠장…… 머리에 맞아도 안 죽잖아.”
한 교도관이 2층 난간에서 남성들의 뒤를 노리고 총으로 기습을 가했지만, 남성들은 머리도 몸에 있는 근육만큼의 방어력이 있는 건지 총탄을 머리에 맞고도 멀쩡하게 고개를 돌렸다.
“으하하! 경비다! 도망 안 치는 녀석이 있었네!”
“경비가 아니지. 간수잖아.”
간수도 경비도 아닌 교도관을 발견하자마자 웃으면서 벽을 타고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선 콘크리트 벽을 경사진 길을 올라가듯 몸을 조금 기울인 것만으로도 뛰어 올라가는 남성들.
“각성자 아니지? 그럼 바로 머리통을 터트려 주지!”
남성 중 한 명, 머리에 총을 맞았던 이가 교도관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그 순간.
터업.
누군가가 남성들과 교도관 사이에 끼어들어 남성의 주먹을 붙잡았다.
“간수도 경비도 아니다. 교도관이지. 경비 업무는 하지만…… 어쨌든 경비원은 아니야.”
“당신은…….”
“꼴들을 보아하니 그 <동물 친구들>인지 뭔지 하는 그 녀석들 같은데. 여긴 왜 온 거지?”
교도관에게 날아드는 주먹을 잡아챈 것은 다름 아닌 이곳의 수감자 텐징.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밥 가져다주는 친구. 빨리 가 봐. 강화계한테 총질하는 건 도발하는 짓밖에 안 되니까 하지 말고.”
“네, 네!”
“권왕……!”
“<동물 친구들>은 어디 놈들이냐! 우린 <비스트>다!”
근육질의 남성들…… <비스트>는 텐징이 눈앞에 나타나자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쫄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건지 기세 좋게 소리쳤다.
“<비스트>나 <동물>이나 그게 그거지. 그보다…… 평소 하던 대로 매일 운동이나 할 것이지 여긴 왜 온 거지?”
“새로운 힘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비스트>는 힘을 시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고, 텐징은 시험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시험? 그걸 하필 여기서? 너희에게 맞는 시험이라면 초등학교 수학 시험 정도일 텐데.”
텐징은 작게 미소 지으며 <비스트>의 지능이 낮다고 슬쩍 까 내렸다.
“우릴 뭘로 보는 거냐!”
“초등학교 문제 정도는 푼다고!”
“중학교 시험 문제는 가져와야 어울린다고!”
그리고 거기에 발끈하며 이상한 부분에서 화를 내는 <비스트>의 구성원들이었지만, 그중 한 명은 거기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제법 냉철했다.
“권왕…… 강화계의 우상인 동시에, 수치. 그 힘을 가지고 여기에 틀어박혀 힘을 썩히고만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왔다.”
“말하는 걸 보면 날 정말 잘 아나 본데.”
텐징은 여전히 그들을 아래로 보는 듯, 자신을 잘 안다고 칭찬하며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비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스트>는 그 칭찬이 비꼬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잘 알지! 힘과 근육으로 모든 걸 돌파한 강화계 최강자!”
“모든 강화계의 정점! 패트리어트와 맞싸움이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
말만 보자면 적대하는 게 아니라 팬과 스타의 만남과도 같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유일하진 않을 것 같지만…… 날 알면, 여기서 이런 난동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도 알 텐데……?”
조금씩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한 텐징은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에 목을 좌우로 꺾었다.
뚜둑, 뚜두둑.
그리고 지능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직감과 신체 능력만큼은 확실했던 <비스트> 또한, 텐징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를 느끼고 전투를 준비했다.
“그래 봐야 이제는 퇴물이지! 우리 다섯 명의 새로운 힘을 봐라!”
<비스트>의 다섯 명 중 손을 잡혀 있는 한 명을 제외한 네 명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고, 손을 붙잡힌 남자도 주먹을 휘둘렀다.
“흐음!”
“으아아?!”
텐징은 싸움이 시작될 때 손목을 붙잡고 있던 남자를 무기로 사용했다.
사람을, 적군을 방패로 쓰는 임기응변 정도야 얼마든지 있었지만 텐징은 사람의 육체 자체를 무기로 사용한 것이었다.
쾅, 쾅!
육체와 육체가 부딪칠 때마다 대형 트럭이 서로 충돌하는 것과도 같은 큰 소리가 울렸다.
콰앙!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그렇게 세 명을 순식간에 정리한 뒤, 텐징은 너덜너덜해진 무기(?)를 버리고 1:1 상황으로 대치하기 시작했다.
“하아…… 역시 전설은 전설이다 이건가.”
“네 몸의 근육은 입에 있는 게 제일 발달했나 보지? 움직이는 게 입밖에 없구나.”
수용소에 들어온 이후, 샤오롱과 함께한 시간이 늘었기에 텐징은 마음의 여유와 학문적 소양이 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입담도 제법 늘어 있던 상태가 되어 이렇게 여유로운 트래시 토크가 가능하게 된 것이고.
한편, 마지막 남은 <비스트>의 생존자는 양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이 힘을 써야 하다니……! 흐으으으읍!”
우드드드득.
기합 소리와 함께 남자의 양팔은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텐징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미소 짓기 시작했다.
“재미있겠어……! 또 다른 낙이 생겼군!”
3분 뒤.
텐징은 방금 전 싸우던 남자의 발목을 붙잡고 천천히 끌고 나갔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몰골의, 안면 부위가 함몰된 남자는 검게 물든 팔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양 손목은 뜯겨 나간 것인지 사라져 있었다.
“후우…… 나도 많이 물러졌군. 전에는 죄다 피떡으로 만들었을 텐데.”
“다섯 명 중 네 명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고 지금 물러졌다고?”
친근하게 말을 거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따라붙은 이는 다름 아닌 샤오롱이었다.
“다섯 명 중 네 명이면 ‘죄다’는 아니니까.”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 근데, 그건 왜 살려 둔 거야?”
“이상한 힘을 쓰더군. 뭔가 이질적이었지만…… 그래도 주먹에 맞기만 하면 됐어.”
텐징은 양팔이 검게 물든 남자와 싸우며 2분 40초 동안 그에게 밀렸지만, 단 한 방의 주먹으로 순식간에 판세를 뒤집었다.
“손목은 왜 저래? 옛날에 잘리기라도 한 건가?”
샤오롱은 남자의 사라진 양쪽 손목을 가리키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양쪽이 없어진 거야 그렇다 쳐도 마치 옛날에 잃은 것처럼 끝부분이 뭉툭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 공격을 막다가 없어졌다. 그래도 출혈 부위를 뭉개 놔서 출혈은 막았지.”
근육과 혈관을 그대로 꾹 눌러다가 압축해서 출혈을 막아 둔 텐징.
“가끔 생각하는 건데 너…… 인간 그 이상의 뭔가가 된 것 같아.”
“하하하! 아무리 그래 봐야 공격이 안 통하는 상대한테는 못 이기지. 그렇게 본다면 나는 언제나 패배자일 뿐.”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검은색으로 물들었던 남자의 팔이 가하는 공격은 사람의 겉보다 내부를 공격하는 성질이 있었고, 어지간한 특수합금 이상의 내구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텐징은 공간마저 일그러뜨릴 만큼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고, 전기 충격을 하도 맞아서 신체의 내부까지 대미지를 견디게 진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별것 아닌 놈들이었다. 이거 넘겨주면 소장이 사식 정도는 넣어 주지 않을까?”
“그것 때문에 생포한 거네.”
당사자와 주변인들마저 모르는, 살아 있는 인간 흉기이자 괴물은 침입자를 수용소 측에 넘겨주러 가며 태연하게 식사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