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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307화 (307/325)

제307화

(8)

메리가 은기사단을 내쫓은 이후, 영의는 집 밖에서 헬멧을 다시 머리에 썼다.

“……후우, 그래도 소득은 있었네.”

“선배, 저 둘…… 아무리 봐도 관계자 같은데 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화연은 집에 있던 메리와 나연이 수상한 듯, 더 캐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그렇겠지만…… 지금은 아닐 것 같아. 이미 다른 조직을 만들었다잖아. 보스였던 선지자랑 가까운 것 같지는 않았으니 인적 사항이나 기타 다른 정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아낼 방법이 없어 보이고.”

하지만 영의는 둘이 가진 정보를 캐내는 데에 쓰는 수고가 그 성과에 비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지자에게 가장 가까웠고, 그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법한 인물은 파드레였기에 저 둘에게서 얻어 낼 정보가 파드레의 것보다 가치 있는 정보일 리는 없을 테니까.

진작 은퇴했다고 선언한 메리와 같은 시기에 은퇴한 나연에게서는 현재 선지자의 정보에 대해서도 더 알아낼 것이 없을 게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검은 옷의 새로운 조직, 그리고 <비스트>인가? 조사할 대상은 찾았네.”

영의는 그래도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에 만족했다.

그동안 그들이 얻은 성과라고는 영웅이라는 이미지와, 가끔 날뛰는 범죄자들과의 싸움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들었던 인드라는 검은 옷이라는 점에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검은 옷이라…… 너무 대놓고 악의 조직같이 진부한데?”

“그으……래서 더 조흔 거…… 아니까아……?”

그런 인드라의 의문에는 그 등에 업혀 있던 다이카가 반쯤 비몽사몽한 상태의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더 자라.”

“미아……내에…….”

아까 흡입한 수면 가스가 생각 외로 독했던 것인지, 소량만 들이마셨던 다이카가 계속 자다 깨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이걸로 끝인가?”

“그렇지, 정보를 알아냈으니 또 이걸 얘기해 줘야 하고 그런 다음 건덕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하루 만에 끝나다니, 인드라? 얼른 돌아가서 밀린 업무나 하지.”

“아…… 젠장, 빨리 끝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간 업무가 더 늘어나 있었겠지?”

“그래, 그래. 미안하지만 우린 먼저 돌아가 보겠어. 찬드라, 가자고. 이 친구는…… 가는 길에 내려다 주지.”

찬드라는 순간 이동을 사용하면 심한 체력 소모와 거리 제한이라는 다소 큰 페널티를 안고 있었지만, 그 부분은 용신이 해결해 주었다.

-이동 수단…… 아니, 활동이 불편하면 안 되는 법이지. 그 부분은 내가 좀 고쳐 봐야겠어.

라는 말과 함께, 찬드라의 순간 이동만큼은 다른 A급 순간 이동 능력자들 못지않게 먼 거리와 동행 인원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세 명을 데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간 것만으로도 탈진에 가까울 정도로 힘을 소진했던 찬드라.

그는 이제 다섯 명을 데리고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정도가 되어야 탈진하는 정도가 되었다.

선지자에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용신이었지만 이 조치는 아마 이동의 불편함과 본인의 귀찮음을 덜기 위한, 그의 작은 편법이었을 것이다.

셋이 떠나려는 분위기를 풍기자, 화연은 그렇게 하면 영의와 자신만이 남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인드라가 그녀와 영의를 슬쩍 쳐다보고는 손을 까딱이는 것을 보았다.

까딱까딱.

마치 둘이서 잘해 보라는 듯, 영의와 화연을 번갈아 가리키고는 손을 흔드는 인드라.

“자, 가자.”

“다음에 보도록 하지.”

“잘…… 가아…….”

파앗.

인드라와 찬드라, 다이카가 사라지고 영의와 둘만 남게 되자 화연은 영의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 그럼 이 주변의 영화 촬영지를…….”

화연이 아까 다른 이들에게서 전해 들었던, 유명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그곳으로 함께 가자는 말을 꺼내려던 찰나.

“아아, 나 참. 너무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만 깜빡했었네.”

집 안에서 나연이 걸어 나왔다.

“……뭐야? 왜 나온 거죠?”

갑자기 나연이 나오자, 화연은 검에 손을 갖다 대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응? 그렇게 가시 세우지 마. 뭐 해코지하려거나 마침 세 명이 줄어든 틈을 타서 공격하겠다거나 그런 게 아니니까.”

화연의 날 선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연은 태연하게 마당 앞에 주차된 차로 걸어갔다.

“그럼 나올 이유가 없을 텐데요?”

한때 적대 세력에 몸담았던 상대라 그런지, 아니면 영의에게 연신 오빠라 부르며 추근대서 그런지는 몰라도 계속 경계하는 화연.

나연은 그런 화연의 태도가 재밌다는 듯, 미소 지으며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나올 이유가 있으신데요?”

부스럭-

나연은 장 보러 갔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큰 사이즈의 종이봉투를 꺼내 들어 올려 보여 주었다.

마치 화연을 놀리듯, 장 본 물품을 하나하나 꺼내 들어 보여 주는 나연.

“설마 정의의 사도님들께서는 베이컨이나 계란 사는 것도 못 하게 막는 건 아니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못 먹게 하는 게 바로 악당 아닐……. 어…… 이런. 조금 녹았네.”

그런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들어 올렸을 때, 종이컵에 담겼던 아이스크림이 단단하지 않고 조금 물렁한 촉감이 느껴지자 녹았다고 직감했다.

집 안에서 은기사단과 대치하고 주민들에게 연기에 대한 설명을 하며 보낸 시간이 조금 길어서인지, 나연이 사 온 아이스크림이 녹아 있었다.

“으~음. 어쩔 수 없네. 식후의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삶의 낙인데……. 냉동실에 넣어 놓는다고 바로 완전해지지도 않을 것 같고…….”

나연은 마치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 아이스크림이 녹은 것에 대한 실망을 대놓고 드러냈다.

“네, 그것참 잘됐네요. 저흰 악당이 아니니까 사러 가는 걸 막지 않을 테니, 어서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다시 사 오시죠.”

화연 또한, 방금 전 나연이 했던 말을 쓰며 까칠하게 대응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 밥이나 먹고 갈래? 나랑 같이 장 보러 가자. 내가 먹고 싶은 거 해 줄게.”

나연은 자동차 키와 그 열쇠고리를 손에 끼운 채 빙빙 돌리며 영의에게 식사를 권유했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 관계되기 싫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언니분이 말한 내용은 분명히 그렇게 들렸는데?”

“그건 언니가 말한 거지, 내 의견은 아니야. 물론 은퇴하고 싶다는 건 진짜지만. 그리고, 진짜 자매도 아닌걸.”

“그건 겉모습에서부터 확실히 티가 났어요. 머리는 그렇다 쳐도 갈색 눈과 푸른 눈은 아니니까.”

메리는 지금 머리를 염색하긴 했지만 영국인이었고, 나연도 밝은색의 피부와 서구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한국인이었다.

“그보다, 존대 안 해도 돼. 나, 당신보다 어리거든. 언니라고 불러 줘?”

“괜찮아요, 그런 호칭으로 부르는 건 두 명으로 충분하니까.”

영의는 이 이상 방치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 다 진정하고, 침착해.”

둘의 싸움이 영의를 중간에 두고 벌어지는 만큼, 당사자의 개입이 혼란을 불러올 줄 알았으나…… 의외로 금방 진정되었다.

“알겠어요.”

물론, 깔끔하게 물러난 건 화연뿐이었다.

“알았어, 오빠. 그보다 진짜 같이 안 갈래? 나 운전도 잘하는데.”

나연은 여전히 영의에게 말을 걸었고, 그 모습에 화연이 나연에게 손을 뻗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았댔죠?”

나연의 몸이 아닌, 그녀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향하는 화연의 손.

쩌적. 쩌저적.

화연의 능력에, 아이스크림은 그 표면에 맺힌 물방울들을 포함하여 안의 내용물까지 차갑게 얼어붙었다.

“으와, 깜짝이야. 역시 신화 길드 부길드장이시네.”

“……나에 대해서도 안다고?”

현재 헬멧을 벗고 있는 영의와 달리, 화연은 지금까지 투구를 벗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연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 언급하자, 화연은 재빨리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개인적으로 조사했었으니까. 오빠랑 언니…… 이 칭호는 싫댔지? 당신이랑 둘이 데이트하는 거, 내가 봤었거든.”

“……언제, 어디서였지?”

화연은 이제 검까지 슬쩍 뽑아 들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감정이 격해진다면 검을 뽑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걱정 마, 개인적인 볼일로 외출했다가 나 혼자 본 거니까. 그리고…… 언니 귀엽다? 쿡 찌르면 바로 반응하는 게 되게 재밌어.”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장난이라는 듯이 화연을 놀리는 나연.

“……돌아가죠, 선배. 식사는 굳이 여기서 할 이유도 없고…… 방금 전에 축객령까지 내려져서 그럴 기분도 아닐 테니까.”

더 이상 나연과 말싸움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건지, 화연은 집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뭐 나는 어디서 먹어도 상관없긴 한데…… 아까 가려고 했던 영화 촬영지는 안 가 봐도 돼?”

영의는 떠나기 전 화연이 관심을 보였던 영화 촬영지에 대해 언급했고, 화연도 그건 조금 마음에 걸리는지 잠시 움찔했다.

“……그건 필요 없어요.”

하지만 이내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흐~음. 저기, 그거 알아? 우리 언니…… 아, 그쪽 얘기는 아니야. 어차피 언니라고 불러 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저 성깔 나쁜 언니가 당신들 쫓아낸 거, 나쁜 뜻에서 그런 건 아니야.”

“음? 그럼 좋아서 쫓아냈다고?”

영의는 좋아해서 축객령을 내린다는 말을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언니가 너희를 나름 아껴서 그렇게 말한 거지. 죽는 게 싫으니까. 저 언니, 겉은 까칠해 보여도 속은 엄청 여리여리해서 주변에 사람 없는 거 무서워하거든. 얼굴 튼 사람이 죽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저거 봐, 창문 틈으로 슬쩍 내다보네.”

나연은 집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다가 창문 틈으로 집 앞을 내다보고 있는 메리를 발견했다.

“아, 말이 좀 길어졌네. 그리고 영화 촬영지는 별로 볼만한 곳이 아니야.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클리어워터라는 길이 있어. 그쪽으로 가 봐. 햇살이 들어올 때 그 숲에 있으면 장관이 따로 없어.”

영의와 화연이 관심을…… 정확히는 화연이 관심을 보였던 영화 촬영지에 대해 별로 볼 것이 없다며 조언하는 나연.

그녀는 그곳 대신 마을 남쪽의 다른 장소를 추천했다.

“클리어워터? 분명 메리란 여자의 성이 클리어워터 아니었나?”

영의는 그곳의 지명과 메리의 성이 동일한 점에 의문이 들었다.

“뭐…… 우연의 일치에 가까웠지만 여기서 오빠를 만난 것도 그리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장소 모르겠으면 나중에 데려다줄게.”

이곳을 도피처로 정한 것은 단순히 인적이 엄청나게 드문 곳이기도 했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메리가 말년을 보낼 장소로 정한 멋진 풍경을 가진 곳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리어워터라는 곳이 있다는 건 마을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연은 꽁꽁 얼어 버린 아이스크림을 종이봉투에 넣고, 차의 트렁크를 닫았다.

“선배, 우리끼리 가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화연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가 불편한 건 변함없었기에 돌아가려 했다.

“아니, 그냥 좀 있어 보자.”

하지만 영의는 여기에 더 있겠다는 대답을 했다.

“네? 진짜 같이 장이라도 보러 가려고요?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는 거예요?”

“그건 아닌데, 우린 거기가 어딘지 모르잖아. 안내 정도는 받아야지?”

“…….”

“표정 풀어. 내가 뭐 바람피우고 그럴 배짱이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

영의가 화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꺼낸 말에, 가장 먼저 답해 온 건 알림이였다.

[맞습니다. 사용자가 가지는 이성 간 대인 관계에서 ‘배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조금 마음이 아픈데.’

화연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긍정했다.

“뭐…… 선배가 그럴 사람은 아니니까요. 확실히. 요령 피울 만큼 머리를 굴리는 타입도 아니고.”

영의는 마음이 많이 아파졌고,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지만 꺼낸 말이 있어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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