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6화
(7)
선지자의 존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이 관여했던 인물을 만난 데다, 심지어 은퇴까지 했다는 뜻밖의 사실에 은기사단의 일원들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반가워, 나는 메리. 메리 클리어워터야. 전직……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전직 범죄자는 확실하군.”
범죄자라는 영의의 말에, 메리는 살짝 자극받은 건지 영의와 그 뒤의 은기사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따지듯 물었다.
“그러는 넌 이게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해? 대낮에, 남의 집에. 이렇게 여럿이 몰려온 건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 건 그쪽인데? 오라고 해서 온 거면 초대받아 들어온 거 아닌가?”
영의는 메리에게 자발적으로 들어오란 말에 들어왔으니 침입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문 부수겠단 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오라고 했지. 협박도 범죄야.”
하지만 메리는 그것도 따져 보면 범죄로 취급할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거기에 흔들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헬멧을 슬쩍 들어 올리고 그 틈새로 기어코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다이카는 깜짝 놀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FBI에 잡혀가려나? 나…… 나 경찰은 좀 무서운데.”
히어로 활동(?) 중에는 들뜬 마음이 되는 건지, 다소 귀가 얇아지고 행동이 가벼워지던 다이카는 예전에 쫓기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공권력에 대한 묘한 두려움을 보여 주었다.
“애초에 이런 복장으로 다니는 것부터가 수상함의 극치야. 아까 하던 일이나 계속해.”
그리고 그런 다이카를 챙기며 어른의 관록을 보여 주는 인드라.
“그래, 저쪽에서 나온 말처럼 이렇게 정체 숨기고 다니는 시점부터 그런 걸 신경 쓸 순 없지.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해 주지? 은퇴 생활이 불편하고 힘들어질 수도 있는데.”
“내 신분은 제대로 만들어진 거라, 어딘가 잡을 건덕지가 없을 텐데? 사회 보장 번호도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
영의의 경고에 메리는 자신의 신분이 완벽해서 무언가 트집 잡을 구석이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영의는 합법적이거나 흔하디흔한 수단만 동원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이 아니었다.
“방법이야 많지. 오히려 그쪽 소속이었으면 알 거 아닌가? 이름이…… 뭐더라? 권왕이랑, 칼잡이랑, 영감님 한 명까지. 다 잡혔는데.”
“잡혀……? 그 노친네가? 거기다가 칼잡이까지?”
“파드레라고 했던가?”
“그 노친네가 순순히 잡힐 인물이 아닌데…….”
‘뭐야, 모르는 건가?’
권왕, 텐징의 체포는 국제적으로 매우 큰 파장을 퍼트렸다.
그가 일단 덩치부터 엄청나게 눈에 띄는 인물인 점도 있었고, 어지간한 일에는 전부 완력으로 돌파 가능한 그가 투입되었으니까.
그리고 하오다는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들에게 맡겨져 묶인 채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그런 다음, 하오다는 일본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 만에 체포 후 구속되었다.
그의 집에서 나온 비리 관련 비밀 장부와 정부 관리들의 약점을 기록한 문서로 의원들과 기업인들에게 거래를 제안했던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하오다가 도쿄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스캔들을 터트렸고, 곧바로 교도소에 수감시킬 수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의 기억은 용신이 살짝 만져 둔 상태였고, 각종 비리와 도쿄에서의 학살극에서도 확실한 물증이 있었으니 하오다는 수감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내에서만 일어난 일이고 국제적으로 보도한 건 비리 관계 사건뿐, 살인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재판하여 사형을 선고받았다.
아무래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을 참살한 건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될 법한 일이었기에, 살인극에 대해서는 정부가 은폐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오다의 구속은 유명하진 않아도 체포 사실 자체는 한국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알려졌다.
그 둘이 체포된 것은 국제적으로 보도가 되었지만, 눈앞의 여성…… 메리는 텐징은 알아도 하오다의 체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하아~ 진짜겠지? 그 노친네가 잡혔다면 나는 손도 발도 못 쓴다는 건데.”
메리는 파드레를 잡았다는 소식에 뭔가 포기한 듯, 휠체어에 등을 기대었다.
“가르쳐 줄 의리도, 의무도 없지만 일단 뭐 알려 줄 건 알려 줄게.”
그 말을 하며 메리는 손을 휘저었고, 그녀의 손짓에 집 안의 창문들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득.
“뭐야?!”
“뭐긴 뭐야. 공격 준비였지. 내가 몸은 불편해도 힘은 건재하거든. 안심해. 단순한 위협이니까.”
“위협?”
“내가 그렇게 허수아비는 아니다~라는 거지.”
메리는 다시 손을 휠체어의 손잡이 위로 올렸고, 영의는 팔짱을 끼며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얘기할걸. 그냥 실력을 보여 주고 나왔어야 했는데.”
“못 했을걸? 아까 그 어색한 모습 보니까 제대로 못 했을 거야.”
“…….”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선지자 그 양반을 쫓을 거면 내가 말해 줄 게 있는데…….”
메리가 영의에게 무언가를 얘기해 주려던 그 순간, 반쯤 열려 있던 집의 문이 부서질 기세로 열렸다.
콰앙!
“?!”
“뭐지?!”
별다른 문제 없이 대화로 끝날 것만 같았던 느슨한 분위기에 긴장을 주려는 것처럼 누군가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대응하기 위해 은기사단들이 몸을 돌렸을 때, 집 안에 연막이 터져 나왔다.
푸화악!
“뭐야, 연막?!”
연막의 특성상 빠르게 퍼지더라도 총알만큼 빠르진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반응하여 호흡기를 가리는 은기사단.
“쿨럭, 나 들이마셨어!”
하지만 다이카는 헬멧을 들어 올리고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찰나였기에 연막을 조금 들이켜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연막 사이에서 들려오는 한 여성의 목소리.
“이쪽으로!”
“잠깐, 이 사람들은…….”
메리가 연막 속의 목소리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려 했지만, 영의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휘익, 쿠웅.
“꺄앗?!”
연막 틈새에서 난입한 침입자는 영의에게 붙잡혀 바닥으로 던져졌고, 그대로 그에게 짓눌려 제압당했다.
“움직이지 마. 물어볼 게 있……긴 하지만 우선 이쪽의 말을 들어야 하니까.”
“……응?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 봤는데.”
“……?”
영의와 갑작스러운 침입자가 서로 의문을 품은 사이, 메리가 손을 휘저었다.
“미안하지만, 잠시 바람이 조금 불 거야.”
쐐애액.
메리의 손짓이 불러일으킨 바람이 집 안에 가득 찰 것만 같았던 연막을 부엌 쪽의 창문과 환기구로 빠져나가게 했고, 다시 시야가 탁 트였다.
시야가 트이자 영의는 자신이 제압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저기 당신,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때 그 오빠?”
바닥에 눌려서 위를 쳐다보고 있지는 못했지만, 목소리에서 뭔가 파악한 건지 영의의 정체를 물어 오는 여성.
“하아……. 역시, 경비업체랑 계약을 해야겠어. 나연 너도 그렇게 기세 좋게 연막까지 피우면서 들어와 놓고는 너무 허술하게 잡혔잖아.”
바닥에 제압당해 있는 여성, 나연은 메리에게 자신이 제압당한 이유를 댔다.
“나, 나는 그 근육 돼지처럼 육체파가 아니라고. 게다가 수면 가스였단 말이야.”
“수면 가스? 그런 흔적은 없었는데…….”
인드라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방금 전의 연막이 수면 가스였다는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 적어도 한 명한테는 효과가 있었네.”
당황한 나머지 연막을 들이마시고 말았던 다이카가 헬멧을 반쯤 쓴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인드라는 다이카의 헬멧을 다시 씌워 준 뒤, 방심한 대가라는 듯이 그녀를 어딘가에 눕히는 대신 옆으로 치워 놓았다.
“일단, 상황 정리를 좀 해 볼까? 거기다가 집 안에서 나간 연막 때문에 누군가가 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메리는 창문 너머로 바깥을 내다보며 그렇게 말했고, 그녀의 말대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도로에서 누군가가 다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 * *
20분 뒤.
“지난번에도 세 번 정도 얘기한 것 같은 말이지만, 부디 다음에는 태워 먹지 않도록 해요.”
“미안해요, 혼자서 뭐라도 해 보고 싶었는데…….”
“같이 사는 친구 채? 초이? 그 사람한테 부탁하세요. 불을 쓰는 요리는 확실히 위험한 일이 맞으니까요. 아무리 전자 오븐이라도 잘못 쓰면 요리 다 태워 먹어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네, 다른 사람들한테도 또다시 일어난 단순 실수라고 전할게요.”
덜컥.
메리는 연기를 보고 찾아온 이웃들에게 방금 전 피어 나간 연기는 요리 실수로 일어난 사고라고 변명했다.
심지어 예전에도 한두 번 이런 경우가 있었던 건지, 마을 주민들은 과거의 경우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확실히 인심이 좋네. 몇 번씩이나 불을 낼 뻔해도 넘어가다니.”
영의는 방금 전 걱정해서 찾아온 주민들을 슬쩍 쳐다보고는 인심이 좋다며 작게 미소 지었다.
“안 좋게 변하기 전에 빨리 여기서 나가 버려. 꺼져 그냥. 웃지도 마. 짜증 나니까.”
그리고 그런 영의의 미소를 정면에서 불평하며 독설을 내뱉는 메리.
“처음 봤을 때의 태도와는 딴판인데.”
영의는 메리가 다소 공손했던 첫 대면과 달리 까칠한 모습을 드러내자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런 영의의 옆에는,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친하게 달라붙은 나연이 있었다.
“저게 저 언니 본성이야, 오빠. 은퇴하고 유해진 거지.”
메리가 이웃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기 위해 나갔을 때, 영의의 정체를 캐물어 왔던 나연.
나연은 영의의 목소리를 비롯해 그와 만났을 때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고, 영의 또한 나연이 어느 정도 기억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헬멧을 벗었다.
물론 파드레도 한국에서 만난 적 있었지만, 지나가다 말 건 노인에 대한 기억보다는 갑자기 작업을 걸어온 여자의 얼굴이 더 인상에 깊게 남았었다.
그 때문에, 영의는 파드레를 처음 봤을 때 그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애초에 정장을 잘 차려입고 단정했던 그때와 달리, 용신에게 잡혀 취조를 겪었던 파드레는 엉망이 된 몰골이었으니까.
나연의 기세에 못 이겨 헬멧을 벗은 영의의 얼굴이 드러나자, 메리 또한 영의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한국에서 본 기억이 났기에 약간의 신뢰가 생겼다.
적어도, 한국에서 봤을 때 그가 악인이라는 인상은 받지 못했으니까.
“시끄럽고, 얘기할 것만 얘기해 주면 되는 거지?”
그 신뢰 덕분인지, 메리는 예전의 까칠하던 모습으로 조금 되돌아갔다.
“확실히, 그 자금은 퇴직금으로 받은 거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굵직한 임무를 좀 해 줬었거든. 거기다가…… 아니다, 선지자가 얼마 전에 찾아왔었어.”
“찾아왔다고……?”
영의는 찾고 있는 상대가 얼마 전에 이곳을 찾았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조금만 일찍 찾아왔으면 직접 만날 수도 있었다는 거잖아……?’
“그래, 시기가…… 아마 무슨 범죄 소탕 뉴스가 있었는데.”
메리는 확실히 집에만 있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어두운지 그때 당시의 날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봤던 TV의 내용으로 떠올리려 했다.
그런 그녀를 대신해서 바깥 동향을 알아보는 게 바로 나연이었고, 나연은 그 뉴스에 대해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마스크드 갱> 소탕?”
“아, 그래. 그거다. 그때 찾아왔었지.”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왔다고 말했었는데…… 옆에 데려온 어깨들이 좀 무서워야 말이지. 나는 덩치 큰 아저씨들은 별로 안 좋아해서, 거절했어. 거기다가 이 언니 나 없으면 은퇴 생활 제대로 못하고 말이야.”
“제대로 살 수 있거든?”
“글쎄, 문도 두 번 세 번씩 열고 음식도 맨날 태워 먹고 그러는 분은 누구시더라?”
“…….”
“아무튼, 그렇게 돼서 못 가게 됐다고 전했지.”
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누군가를 보살피며 사는 게 더 마음에 맞고 좋다는 듯이 메리를 보며 작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갔다고?”
“그냥 갔지. 비밀 엄수에 목숨 거는 인간인데, 그냥 가더라고. 내가 발설하지 못할 걸 알았든가…… 아니면 이제 드러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거겠지? 참고로, 그때 같이 온 녀석들 중에 낯익은 녀석들이 있었어.”
“정보를 아나?”
“근육에 미친 놈들, <비스트>. 옛날에 용병으로 뛸 때 몇 번 만나 봤었지. 기본적으로 멍청해서 재미있는 놈들이지만, 힘 쓸 때만큼은 무서워.”
메리는 선지자와 함께 왔던 이들에 대한 정보를 말해 주며, 영의와 은기사단이 입은 옷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참…… 우연인지 아니면 뭔가 있는 건지. 어떻게 옷까지 이렇게 대비가 될까.”
“뭐가?”
“아니, 기본적으로 일만 잘해 주면 패션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인간이었는데 그때 유독 이상하게 전부 검은 옷으로 맞춰 입고 왔더라고. 닌자처럼.”
“검은색이라.”
“그리고…… 언제나 계획이 있고 자신감과 여유 넘치던 인간이 이상해 보였어. 늘 다녀와 봤던 여행지에 가는 듯한 자신감이 아니라 초행이지만 여행하기 좋은 나라로 가는 듯한 자신감이랄까.”
“그게 무슨 자신감인데?”
“나도 몰라, 아무튼…… 다른 종류의 자신감은 확실했어. 그리고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집 주위에 감시의 눈이 없는 건 알지만, 혹시 모르니까 빠르게 나가 줘. 더 이상 관계되기 싫으니까.”
메리는 곧바로 자신이 해 줄 말은 다 해 줬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