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5화
(6)
은기사단의 육체적 활동…… 즉 출동과 제압은 다섯 명의 인원들이 나누어서 했으나, 출동 지시는 대장인 영의가 내리는 게 아니었다.
“주시 중인 지역 중에서 자금 흐름이 이상한 게 하나 있다. 유령 회사나 뒤가 구린 기업 같은 곳에서 돈 빠져나가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어째선지 개인 명의로 들어갔다. 기존에 범죄 쪽 자금이 주로 오가던 회사가 아무 연관 없는 일반인에게 돈을 보낸 게 수상하니까 한번 가 봐라.”
알림이와 그 배후의 시스템과 지구의 정보 통신 시스템, 거기다가 본인의 마법과 이런저런 신비한 수단을 동원해 정보를 모으는 용신이 지시를 내렸다.
미국 서부.
워싱턴주 북서부의 올림픽 국립공원.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의 주변에는 몇몇 마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을들 중에는 미국의 수많은 소도시 중 한 곳치고는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포크스라는 마을이 있었다.
“여기가 바로 그 뱀파이어 나오는 영화의 무대래. 멋지지 않아?”
포크스는 바로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이 등장하는 유명 로맨스 소설과 영화의 무대가 되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다가 소설인 걸 아니까 그렇게 멋지진 않은데…….”
“멋지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우리는 우리 할 일만 끝내면 되는 것을. 물론, 일을 끝냈을 때에는 여유를 가져도 되겠지.”
그리고 그런 포크스를 찾아온 은기사단.
“선배, 혹시 일만 끝나면 촬영지라도 한번…….”
화연은 이곳이 유명 영화 촬영지라는 소리에 살짝 마음이 동한 것 같았다.
“그래, 일만 끝내고 가자고. 일만 끝내면 말이지…….”
영의가 이곳에 올 때 얻은 정보는 집 주소와 대략적인 인적 사항이었다.
마을 외곽, 남쪽 끝의 집.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한 여성을 다른 여성이 매일같이 차로 태워 외출한다는 정보였다.
둘은 일주일 넘는 기간 동안 같은 생활 패턴을 보여 주었으므로, 다른 사항은 없다고 판단되었다.
“좋아, 빨리 이동하자고. 수상하면 잡아 넘기고 저항하면 잡아가는 거고.”
“어느 쪽도 결국 잡아가는 결과라고? 만약 아니면?”
“정보를 의심하긴 싫지만…… 뭐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자고. 아니면 그때 가서 생각하고.”
백색과 은색이 가득한 복장을 입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은기사단 다섯 명이 마을을 가로질러 이동하고 있는 모습은 위압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을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이 바깥에 관심을 가지거나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찬드라가 베껴 온 능력 덕분이기도 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변의 광경을 그대로 본인들에게 비춰 보이게끔 하는 의태.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티 나고, 사진을 그대로 찍은 옷을 입고 움직이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서 그다지 좋은 능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 숲과 평원이 있고, 길거리의 행인이 드문 작은 마을에서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길을 건너갈 수 있었다.
“……여기다.”
영의는 이내 마을 진입로 주변에 있는 붉은 지붕과 푸른 벽, 곳곳에 하얀 포인트를 가진 작은 집 앞에 멈춰 섰다.
“색상이 참 특이한데…….”
“왜? 난 익숙한데.”
“파란색과 흰색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흠.”
은기사단 멤버들은 집을 쳐다보며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고, 이내 진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 돌입 준비하자.”
“좋아, 그럼 일단 문부터 부수면 되는 거지? 이렇게 걷어차고 들어가는 거.”
다이카는 흔히 특수부대나 경찰들이 문을 발 차기로 부수고 들어가는 걸 생각한 듯, 다리를 들어 발 차기를 하는 시늉을 했다.
“그건…… 아니지 않아?”
“영화에선 다 문 부수고 들어가던데?”
“잠깐, 영화? 지금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어딘가로 들어갈 때 문을 강제로 열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을 거 아냐.”
“그런 경험 없는데……?”
다이카와 영의는 강제 집행 같은 일을 해 본 적 없었으므로 잠긴 집 안으로의 돌입 같은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은기사단이 활동한 건 바깥에서 활개 치는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는 것이었으므로 숨어서 농성하는 이들을 마주친 적도 없었다.
그때, 찬드라가 입을 열었다.
“일본이나 한국은 몰라도, 인도에서는 범죄자를 체포할 때 문을 부수지.”
“진짜로?”
“어차피 뒷일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힘이 있는 상대는 애초에 체포하러 들어갈 일이 없고, 뒷배가 없는 이들은 무작정 잡으면 되는 일이니까.”
“그건…… 나라가 좀 막장인데?”
“어쩔 수 있나. 도덕관념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도 있는 법이니, 진압에 과격함이 따라붙을 수밖에.”
인드라와 찬드라의 설명에, 영의는 조금 난감해졌다.
‘진짜 문을 부숴야 하나……?’
“좋아, 그럼 일단 문은 열면서 들어가는 방향으로 가자. 안 열리면 부수고…….”
끼이익-
은기사단이 진입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집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덜컥.
집 안에서 나타난 것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는 갈색 머리칼의 여성이었고, 그녀는 문을 여는 것과 전동 휠체어 조작을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위잉-
덜컥.
“아, 짜증 나게. 부수고 싶네 진짜로.”
문이 휠체어에 가로막혀 완전히 열리지 않고 그렇다고 휠체어를 뒤로 빼자니 손이 닿지 않아 곤란한 상황.
그녀는 문을 노려보며 잠시 혼잣말을 했지만, 문밖에 영의를 포함한 은기사단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문을 부수니 뭐니 했는데…… 그냥 들어오지 않을래? 정작 문이 부서지면 곤란하다고. 내가 몸이 좀 불편해서 말이야.”
이 집에 거주하는 듯한 한 여성의 초대에 은기사단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너무 순순히 들여보내 주는데……?’
‘잘못 온 거 아닌가? 여기 건너편 집이라든가 그런 거 아냐?’
‘왜 한국과 다르게 안쪽으로 열리는 불편한 방식으로 되어 있는 거지……?’
각자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리더인 영의가 문을 붙잡아 열어 주고 발을 들이자 다른 이들도 집 안으로 순순히 들어갔다.
‘그래, 보니까 몸도 불편해 보이는데…….’
‘두 명이 살고 있다고 했고, 가족 모르게 뭔가를 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저 사람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검은 돈을 번 건가?’
다른 은기사단 멤버들은 어디까지나 휠체어를 밀어 주는 쪽이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사람들을 선뜻 집으로 초대하거나 본인의 장애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었으니까.
“실례합니다.”
“다행히도 실례인 건 아나 보네, 젊은 오빠?”
갈색 머리칼의 여성은 영의가 집에 들어서며 의례적으로 한 인사말에 어째서인지 한국말로 대답해 주었다.
지금 영의는 헬멧을 쓴 상태로, 얼굴로 유추할 수 없는 데다가 억양 등으로 구분했다고 하기에는 구분이 너무 빨랐다.
파직!
“……당신, 누구지? 한국인이라는 걸 이렇게 빨리 알아챈다고?”
“범인인가!”
“체포하는 거야?!”
“제압부터 하죠!”
영의가 순간적으로 적대하자, 다른 모든 이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여성은 다섯 명이 노려보고 있음에도(얼굴을 가려 눈을 볼 순 없었지만) 태연하게 대응했다.
“진정해, 나랑 같이 사는 애가 한국인이라서 발음이나 억양이 익숙했으니까. 그리고 그 전기 좀 꺼 봐. 난 감전되는 걸 엄청 싫어한다고.”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소매를 걷어 그곳에 난 번개 줄기 모양의 전기 화상 흉터를 보여 주었다.
“…….”
그 흉터를 본 영의는 뇌기를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지만 우선 스파크를 튀기는 것을 멈추었다.
적대는 멈추었지만 의심과 경계는 늦추지 않은 은기사단.
그런 은기사단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여성은 전동 휠체어를 조작해 천천히 주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위이잉-
“그것보다, 그 누구 하나 초인종을 눌러 본단 생각은 안 해 본 거야? 이 집이 보안업체랑 계약을 아직 안 해서 망정이지, 여차하면 무장한 경비업체와 경찰들이 달려왔을 거라고.”
달그락-
“우리가 그런 걸 신경 쓰고 다녔다면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도 않았지. 여기에 찾는 사람이 있는데.”
“나ㅇ…… 나의 동생, 아마 너희가 찾는 쪽의 인물은 10분만 있으면 돌아올 거야. 오늘이 장 보러 가는 날이거든.”
여성은 한 손으로 유리잔을 두 개 집은 뒤, 허벅지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런 다음, 다시 휠체어를 조작해 돌아오는 여성.
위이잉-
“……한쪽 팔을 못 움직이나?”
영의는 여성이 두 손을 사용했다면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기행을 하는 것을 보며 여성의 몸, 그것도 한쪽 팔이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한쪽 몸 전체. 들거나 좌우로 움직일 순 있지만 손까지 가면 말을 잘 안 들어.”
“그렇군. 그래서 전동 휠체어를 쓰는 거로군. 한쪽 손만으로도 움직일 수는 있으니.”
인드라는 여성의 몸 상태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고, 그의 말을 들은 여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한 명은 또 인도 출신인가 보네. 얼마 전에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억양이야.”
지금 분위기는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였지만, 영의도 은기사단도 여기서 여성의 말동무를 해 줄 여유는 없었다.
“옆에 냉장고 보이지? 거기서 음료수 아무거나 꺼내서 마셔. 그리고…… 손님 대접도 겸해서 따라서 마시라고 잔도 가져왔어.”
여성이 가져온 두 개의 잔을 받아 든 영의는 그녀의 말을 따라 음료를 꺼내는 대신, 잔을 옆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마시는 건 용건이 끝난 다음에. 거기다가 지금 이게 시간 끄는 걸지, 아니면 함정일지 우리가 어떻게 알지?”
지금 여성의 정체가 명확하지 않고, 이곳에 오게 된 계기가 우연이 아니었으므로 영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좋아, 방금은 살짝 아저씨 같았네.’
용신에게서 다른 건 몰라도 일 처리(?)에 대해서만큼은 곁에서 목격한 게 있었기에 비슷하게나마 따라 한 영의.
“이제 어느 정도 대장 같은 면모를 보이는군.”
인드라는 그 모습을 보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화연도 만족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벌컥-
“우와, 여기 꼭 가게 냉장고 같네. 깔끔하게 다 정리돼 있고.”
다이카는 그런 취조 방식이나 수상한 점 정도는 별로 개의치 않는지 냉장고를 열고 있었다.
“거기서 굳이 열어 봤어야 하나?”
“뭐 어때, 확인만 하는 건데. 근데 안에 있는 건 대부분 캔이나 페트병인데?”
“독 같은 건 없어. 실수로 잘못 먹으면 어쩌려고?”
여성은 양쪽 어깨를 으쓱하려는 듯 두 팔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한쪽이 절반만 올라가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아 묘한 자세를 취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길게 묻지는 않을 테니 몇 가지 질문을 하지. 선지자라는 인물을 아나?”
영의는 더 이상 얘기를 나눴다가는 대화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새 버릴 것 같아 용신이 했던 것처럼 질문을 시작했다.
여성은 영의의 질문 앞부분은 태연하게 듣고 있었지만, ‘선지자’라는 단어가 나오자 얼굴을 굳혔다.
“……그 명칭을 정확하게 아는 건 몇 명 없는데. 무슨 관계야? 전직 부하?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싸움을 시작하는 대신,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성.
“질문은 내가 먼저 했는데.”
“그거야 답해 주겠지만…… 너 이런 거 잘 안 해 봤지? 초짜 티가 팍팍 나네. 분위기가 왔다 갔다 해.”
영의는 여성의 대답을 받아 내기 위해 재촉하였지만, 오히려 여성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지적이었다.
“쓰읍~ 후우…….”
여성의 지적에 잠시 한숨을 내쉰 뒤, 용신처럼 진중한 분위기를 잡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 영의.
“……대답부터 하지? 적어도 알고 있다면 관계자는 맞네. 제대로 찾아온 게 맞았다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어떻게 될지 몰라.”
“하, 초짜 맞네. 뭐…… 말은 해 줄게.”
여성은 영의가 진중한 모습을 내려놓자 작게 미소 지으며 곧바로 대답해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 순순히 털어놓지 않을 거라고는……. 뭐?”
영의는 여성이 전직 조직원이라 순탄치 않을 거란 예상과 달리, 너무 순순히 대답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당황했다.
“난 은퇴했어. 너희가 찾는 선지자란 양반 밑에서.”
여성은 자신의 <죽음으로 가는 빛> 은퇴 사실을 밝히며, 눈앞의 은기사단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옆집에 이사 온 새로운 이웃들을 둘러보듯, 호기심을 품은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