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3화
(4)
선지자가 사라진 후, 한 달이 지나며 그에게 약점을 잡혀 있던 이들은 모두 도주나 손절을 계획했다.
텐징이나 메리, 파드레 같은 규격 외의 강자들이 모이진 않았지만 평균적인 전력과 인원수가 상당했던 각성자 집단.
<혁명군>이 그중 대표적인 집단이었다.
선지자가 가장 자주 이용했으면서, 그와 동시에 소모품처럼 사용되어 현장에서 체포당하는 경우가 가장 잦았던 이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텐징처럼 눈앞의 모든 걸 박살 낸다거나, 비밀리에 상대를 암살할 수 있는 파드레처럼 중대한 전략적 요소로 쓸 이유가 없을 정도의 인물들이었으니 소모품……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는 병사처럼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아카데미를 습격할 때 사용했던 테이밍 내지는 매혹 관련 능력자들도, 이 <혁명군>에서 차출해 온 인원들이었고.
그들의 능력이 매우 강대하거나 잠재력이 있었다면 선지자가 진작에 접촉하여 빼 갔겠지만, 선지자가 직접 고른 팀에 닿을 정도의 인물은 없었다.
그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가 공개 석상, 양지에서 활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그럴 만한 사연을 가진 이들은 진작에 선지자가 채 갔으니까.
그렇게 선지자의 군대로 이용당하던 경험이 있는 만큼 잦은 접촉을 겪었던 <혁명군>이 가장 먼저 손절의 기회를 눈치챘다.
-어째서 연락이 없지? 지금까지는 2주가 가장 오랜 연락 두절 기간이었는데?
선지자만큼의 정보력은 없어도 나름의 정보력은 있었던 <혁명군>의 수장, 바스티유는 그 순간 자신의 직감을 믿고 곧바로 선지자에게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들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거나 혹사를 당하지는 않았다.
감옥에 들어간 이들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약조 받았고, 실제로 지급받은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기밀 유지와 명령 복종만 해 준다면, 선지자는 좋은 상사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원래 <혁명군>에서 리더 노릇을 하고 있었던 바스티유에게는, 지금이 자신에게 있어 영향력을 더 키울 기회라고 판단된 것이었다.
-지금 어째서인지 ‘그 인물’의 연락이 없어졌다. 지금이 도주해서 숨을 때야! 각자 도망쳐라!
바스티유는 근거지를 버리며 잠수를 시도함과 동시에 자신만 배신하고 도망치면 금방 추적당할 것을 우려해 함께 일한 적 있던 다른 이들에게도 모두 연락을 돌렸다.
그가 연락을 돌린 조직들은 제법 다양했다.
전직 밀수업자들의 모임이자, 미등록 순간 이동 능력자들의 모임 포트 패스.
순간 이동 능력을 깨친 다음, 그것을 곧바로 범죄에 이용해 푼돈을 만지던 잡범에서 마약이나 총기를 밀반입하던 상당한 거물들까지 모인 조직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지? 전부 순간 이동 능력자들밖에 없고, 대부분은 밀수범에 그마저도 초보라서 죄다 떼먹혔던 사람들뿐인데.”
그러나 선지자의 휘하로 영입된 후, 그를 비롯한 간부들의 이동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던 이들.
“충성을 바치고, 개처럼 굴러서 어엿한 밀수 단체가 됐고 돈도 제대로 받게 됐는데…… 여기서 빠져나가자고?”
언제 단속이 뜰지 불안해하며 거래하거나, 자신에게 검사를 받으라고 강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숨어 살던 과거를 잊은 건지 그들 중에는 과감하게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루트들은 이미 확보됐잖아! 경쟁자들도 없어졌고! 마피아? 야쿠자? 갱단? 전부 다 정리됐잖아! 밀수에 있어서 만큼은 지금 우리가 시장을 독점 중이야!”
그들에게도 합당한 보상이 주어졌고, 선지자가 그들을 영입할 때 손길이 닿는 나라의 밀수 루트 확보 및 보존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존재했다.
“그래, 이제 우리들도 혼자 바로 설 때가 됐어. 언제까지 택시 기사 노릇이나 하고, 뒷골목 약쟁이들처럼 사람 한 명이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해? 우리도 조직을 굴려 볼 때가 됐어!”
그들은 회의 끝에 바스티유의 설득과 한낱 택시 기사들로만 취급받았던 과거, 그리고 들키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선지자에 의해 규제당했던 밀수 규모에 대한 반감에 독립을 선언했다.
그 외에도 여러 범죄 조직들이 활동을 시작하려고 슬슬 눈치를 봤다.
“파드레의 연락이 없군! 우리를 까먹었나 봐!”
“으하하하! 가만히 숨어 지내기만 해서 몸이 찌뿌둥했는데!”
“안경잽이들한테 연락해! 강화 시술 한 번만 더 하자고!”
불법적인 강화 시술을 일삼는 극단주의적 강화계 각성자들의 모임 <비스트>.
“짐승 녀석들이 날뛰려고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마력 주입 패턴을 시험해 볼 때가 왔군.”
“그동안 눈독 들이고 있던 마정석들도 훔ㅊ…… 아니, 제공받으러 가야겠지요?”
마력의 비밀을 파헤치겠다며 희귀한 마정석들을 위주로 강탈하고 도둑질하는 과격 연구 집단 <탐구자들>.
“드디어…… 우리들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때가 왔다. 일어나라, 동지들이여.”
“선지자는 방식까진 좋았지만 사상이 글러 먹었어. 힘을 가진 부하들이 있고, 부와 권력을 가졌으면서 뒷세계까지만 지배하다니.”
“우리가 모든 세력을 집어삼키고 각성자들만의 세계를 만든다.”
“각성이란 것은 신에게 선택받은 것. 그리고 우리는 옛 인류들을 모두 지워 버리고 진화한 인류만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의 구성원이 된다.”
단순히 강한 힘을 가졌으니 그것을 휘두르고 힘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인류>까지.
상당히 과격하고 괴상한 이념을 내건 범죄자들이 풀려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범죄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국 정부도 그들의 약점을 잡고 있던 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범죄 집단과 달리 양지에서의 모습과 명분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그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제대로 활동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몰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비밀리에 모여 의견을 한데 모았다.
“……팬텀의 활동을 재개하세요.”
미국의 대통령은, 불안에 떨면서도 공포와의 대면이 줄어들어 생긴 한 줌의 용기로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었다.
“고스트 프로토콜을…… 작동시키도록.”
중국 또한, 선지자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물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습격을 당한 경험 탓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살객들을 풀어라. 모든 위험 인자들을 없애 버리라고 전해라.”
유럽의 암살자 집단이자 첩보 전문 단체 팬텀, 미국의 비공인 정부기관이자 정부의 명령을 받고 활동하는 비밀 요원들의 집단인 고스트, 중국이 키워 낸 또 다른 초인전대이자 각성자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활동하던 살객 등의 비밀 단체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선지자나 파드레가 잡아 두고 관리하던 이들의 고삐가 풀렸다.
심지어 각성자들 범죄 조직만이 있는 게 아니라, 선지자가 각국에 테러를 명령했던 기타 등등 범죄 조직들은 여전히 그 명령대로 활동 중이었다.
[오늘도 프랑스에서는 어떠한 성명도 밝혀지지 않은 테러가…….]
[중동에서 일어난 왕족 암살 미수 사건이…….]
하지만 각국의 정부들도 무능하진 않았다.
자유를 만끽하며 해방되었다는 기쁨과 고양감에 무턱대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취하게 된 <혁명군>을 비롯한 조직들.
그런 조직들이 갑작스럽게 활개를 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이런저런 피해들이 생겨났다.
그러자 <혁명군>들을 비롯해 평소에 위치나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해 두고 있었지만 토벌의 리스크 때문에 섣불리 활동하지 못했던 각국의 정부들이 제대로 열받아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토벌 작전 중 하나인, <블랙 호크 다이빙>이 얼마 전 성공리에 끝났다.
미국에 있는 범죄계의 매니저, 닷지를 비롯한 사이버 테러를 주로 하는 범죄 집단 <마스크드 갱>의 소탕.
가장 유명한 각성자인 패트리어트가 직접 참여하여 돌입까지 진행한 대규모 작전이었다.
콰앙!
일반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라면 철근이나 건축 자재를 자를 때 쓰는 대형 회전 톱으로 족히 수십 분은 갈아내야 할 철문을 맨몸으로 뚫고 돌입하는 패트리어트.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 이상의 중무장을 한 특수부대원들의 앞으로, 군복만 챙겨 입은 패트리어트가 돌격하는 모습은 언밸런스하기까지 했다.
마치 특수부대의 훈련 현장에 문제가 생겨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는 관계자 같은 모습.
어울리지 않는 그런 돌입 모습과 달리, 현장에서는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두두두-
퍼엉.
각종 총기와, 폭발물, 각성자들의 능력들이 충돌하는 소리까지.
그러나 그 소리들 중 가장 소름 끼치면서 무서운 소리가 있었다.
떠엉.
떠엉.
마치 타이어를 슬레지 해머로 내려치는 듯한, 공기를 떨리게 하는 파열음.
인간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북을 만든 뒤 그 안에서 북 치는 소리를 들으면 그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타이어도 없을 만한 안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올 리는 없었다.
“대체 저건……!”
패트리어트의 뒤를 이어 돌입한 특수부대원들은 패트리어트가 한 번 팔을 휘두를 때마다 그 소리가 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서 농성 중이던 이들이, 패트리어트에게 얻어맞고 벽으로 날아갈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누구 하나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패트리어트의 앞에서 단순히 총기로 무장한 이들이나 B급에 불과한 각성자들은 버틸 수 없었고, 전부 간단히 제압당했다.
이윽고 패트리어트는 건물의 문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히 보강된 문 앞에 도착했고, 이내 문을 벽째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뚜두둑. 뚜둑.
콘크리트를 마치 스펀지라도 된다는 듯이 손으로 파내고 벽에 붙은 담쟁이덩굴을 떼어 내듯 뜯어내는 패트리어트.
와장창!
두꺼운 철문은 그 보강이 무색하게 콘크리트 벽과 함께 떨어져 나갔고, 이내 방 안의 광경이 드러났다.
“이건, 무슨?!”
하지만, 그가 본 광경은 이미 도망치고 없는 빈방이나 도주를 포기하고 결사항전을 준비하는 범죄자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어째선지 가슴이 뚫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러 시체.
패트리어트는 그 시체들을 살펴보았고, 시신들이 모두 일격에 심장이 뚫려 즉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 한 번에 죽었다……. 강화계가 난입했던 건가?”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파악하기 위해 단서를 찾아보려 했다.
이미 이곳까지 오는 길에 있던 범죄자들은 모두 기절시키거나 부상을 입혀 뒀으니,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관찰을 시작한 패트리어트는 이내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그가 방금 뚫은 것보다 훨씬 난폭하고 날카로운 구멍이, 방의 한편에 뚫려 있었다.
중간에 있는 잡동사니들과 급조한 바리케이드에 가려 못 봤지만, 그가 잡아 뜯고 왔던 문과 같아 보이는 문이, 찢겨 있었다.
문을 해체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벽을 뜯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기에 벽을 뜯고 들어왔었던 패트리어트.
하지만 문을 뚫은 누군가는 문을 곧바로 잘라 내거나 주먹으로 뚫어내기라도 한 건지, 금속으로 된 문이 군데군데 깔끔하게 잘려있거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행동을 한 거지? 텐징은…… 이미 수감 되어 있을 텐데. 용해 계열인가? 런던에 나타났었던 누군가가……. 아니, 녹였다기에는 너무 깔끔하다.”
패트리어트는 머릿속에 의문을 가득 담은 채, 일단 분석을 위해 현장을 보존시켰다.
“미국에 있어서 엄청난 적이…… 생길지도…….”
언제나 자신감에 가득 차 있고, 자신의 힘에 의심을 해 본 적 없는 패트리어트였지만 순간 적들이 자신에게 품던 섬뜩함과 공포가 체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