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300화 (300/325)

제300화

(1)

한 달 뒤.

러시아 당국에서는 알래스카에 생겨난 정체불명의 흑색 게이트에 대해서 한 달이나 넘도록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이들부터, 보고서를 작성한 뒤 상부에 보고를 올린 인원들 모두가 제거당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보고서를 받은 사람마저 암살당하기까지 했으니 러시아 정부에서는 사라진 문서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각 지역에 테러를 위장한 폭발과 메인 프레임의 해킹 시도 및 자료 파기 행위가 다수 있었다.

그러한 종류의 범죄가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으니, 러시아 정부에서도 사라진 보고서의 내용 하나하나를 찾는 데에 주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핵무기의 발사 코드를 비롯한 주요 무기 정보, 구소련 시절의 기밀문서를 스캔한 복사본까지 있었으니까.

러시아 정부는 모든 힘을 동원하여 유출된 정보들을 되찾고, 피해 입은 시설들을 복구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로 인해 새롭게 올라온 보고서는 완전히 잊혀 버렸다.

더군다나, 습격당하고 폭파된 시설 중에는 러시아의 각성자 수용소도 있었다.

그런 수용소의 복구와 도망친 수인들을 잡아 와야 하는 일이 있었기에, 러시아 정부는 골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악명 높은 각성자 수용소.

흑상어 수용소라는 정식 명칭이 있었지만, 미국의 수용소가 블랙 펜타곤이라 불리는 것처럼 별도의 별칭이 있었다.

고래 배 속.

한번 집어삼켜지면 살아 나올 수 없다는 뜻으로, 똑같이 나올 수 없다는 흑돌고래 교도소와 달리 정말로 나올 수 없었다.

어떠한 사유로 재심을 받으면 나올 수는 있는 흑돌고래 교도소와 달리, 그 어디에도 교화나 반성의 여지가 없고 확실한 죄를 지은 이들만 집어넣는 수용소였다.

사형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라면 범죄자 인도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체면치레하듯이 지은 수용소였고, 그런 만큼 시설이 상당히 특이했다.

전원 독방에 수감되고 감방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문은 용접되며, 기본적인 생활마저 보장되지 않는다.

각성자들을 수용하는 만큼, 수용소도 대응이 확실했다.

별도의 건물을 짓는 대신, 감방의 바닥과 벽들을 모두 두께 30mm의 강철판으로 제작하며, 콘크리트로 그 철판을 둘러싼 형태로 만든다.

침대는 방의 중앙에 위치하며, 천장은 쇠창살로 만들어 간수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해 둔다.

문 하나를 제외하면 쇠창살 뚜껑이 달린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 안에 갇힌 것과도 같은 상태.

만에 하나라도 내부에서 수상한 낌새가 보이거나 감방 밖으로 신체 부위를 포함한 그 어떤 물건이라도 나오는 것이 감지되면, 그 순간 감방이 폭파된다.

시베리아의 광활한 평야에 만들어진 수용소인 데다 폭파를 상정한 만큼 다른 요건은 고려하지 않았기에 추위에 동상을 입는 죄수가 많았지만 그 어떤 간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수감된 전원이 더 이상 개선의 여지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흉악범인 데다가, 여차하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각성자들이었으니까.

그런 흑상어 수용소가, 테러로 인해 폭파되고 내부에 있던 범죄자들이 탈출하게 된 것이다.

“아하-하하하하! 자유다! 거기서 풀려나다니, 정말 최고야!”

큰 덩치에, 정돈되지 않은 수염과 머리칼을 휘날리며 불꽃을 두른 주먹을 휘둘러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남성.

그는 살인, 방화, 암살 미수로 인해 흑상어 수용소에 수용된 각성자, 미친 불곰 로시코프였다.

불곰…… 그리즐리란 뜻의 불곰이 아니라, 화염을 온몸에 둘렀기에 불곰이었다.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로시코프의 옆에는 두꺼운 코트를 입은 채, 하늘을 올려다본 자세로 두 눈을 감은 여성이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누군진 몰라도 찾으면 키스라도 진하게 해 주고 싶네!”

“이미 죽었잖아! 총 맞아 죽은 녀석도 있고, 우리한테 죽은 녀석도 있으니까! 물론 우리가 죽인 게 더 많겠지만!”

“내 말은 고래 배 속의 폭파를 지시한 녀석을 뜻한 거였지만, 그것도 그렇겠네. 죽이기야 하겠지만 고맙긴 해!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간수의 것이 아닌 코트를 주고 갔으니까.”

여성의 이름은 아나스타샤로, 로시코프와 마찬가지로 수용소에 갇혀 있던 범죄자 중 하나였다.

눈과 얼음의 나라인 러시아에서 그 누구보다 큰 힘을 쓰는 빙결계 각성자, 눈의 여제 아나스타샤.

군사기지를 얼린 뒤, 핵잠수함 탈취를 시도하였으나 당국에 의해 저지당해 체포되어 있었다.

온몸에 불을 붙였기에 옷을 입을 의미가 없는 로시코프는 그렇다 쳐도 아나스타샤는 빙결계의 능력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수용소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폭파범들 중 하나를 죽인 뒤 빼앗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 둘 이외에도 여러 명의 각성자 흉악범들이 각지로 도주했다.

전원이 살을 에는 추위와 언제 죽을지 모르며 심지어 죽기만을 기대하는 부당하고 혹독한 수용소 생활에서도 목숨을 이어 가던 독종들이자 강자들이었다.

눈보라와 나란히 달려 눈보라보다 빠르게 도시를 벗어났다는 전설을 세웠지만, 그와 동시에 중간에 있던 마을의 사람들을 살해한 적 있는 쾌락 살인마 소콜로프.

그리즐리에 버금가는 육체파 각성자였지만 크렘린궁 전복을 위해 맨몸으로 땅굴을 파며 지하로 접근하다가 실수로 배관을 건드린 바람에 아깝게 체포당한 인간 굴착기 보리스 등.

한 명이라도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키기에는 충분한 힘이 있었고, 또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결단력과 도덕관을 가진 흉악범들이었다.

본래라면 국가에서 최대한 노력하여 그들을 잡아 혼란을 안정시켜야 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러시아의 최대 전력은 본래 그리즐리였지만, 그 그리즐리가 누군가에게 암살당하고 그 뒷면에 숨겨진 비리와 추악한 비밀이 온 세상에 드러난 적이 있었다.

[그리즐리 암살! 그와 동시에 전 세계에 생중계된 그의 비밀들!]

[러시아의 국민 영웅 그리즐리, 사실은 추악한 범죄자로 밝혀져……!]

그때의 일로 국민들은 러시아 정부, 특히 정부가 직접 고른다거나 지원하는 각성자들에게는 모두 불신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원래 각성자들이 범죄 저지르는 걸 정부가 적당히 덮어 주는 거야 그러려니 했지만, 어린애들 상대로 저지른 걸 눈감아 주면 안 되지!

-이 나라가 정말 무섭다. 물론 죽었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만약 계속 살아 있었으면 무고한 피해자가 더 많이 생겼을 테니까.

정부의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시위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시위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 민심은 이미 모두 정부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로 인해 러시아의 각성자들은 입지가 좁아지자 대부분 다른 나라로 떠났고, 약점을 잡혔거나 조국에 충성하는 이들만이 남았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 그런 이들 중에서 가장 강했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가장 강했던 그리즐리가 죽었으니 정부로서는 지금 탈주 중인 흉악범들을 잡을 수단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을 잡아넣은 게 그리즐리였으니, 대책이 없을 수밖에.

결국 현재, 흉악범들이 각 도시를 지나가며 난장판을 쳐도 막을 수단이 없었다.

일단 울며 겨자 먹기로 군 병력을 출동시켜 놓은 정부였지만, 눈보라보다 빠르게 달리는 소콜로프나 땅속을 물속처럼 헤엄치는 신체 능력을 가진 보리스를 군대로 잡을 순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로시코프와 아나스타샤는 서로 2인 1조로 행동하고 있어 체포가 더욱 난감했다.

“사격해라!”

투타타타타-

두 각성자에게 쏟아지는 군대의 무자비한 총탄 세례.

파바바바바박.

공기를 가르며 매섭게 날아든 납덩어리들은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공중에 정지했다.

“군대? 특수부대도 아니고…… 그냥 수비군? 진짜 망해 가고 있구나? 그리즐리가 죽으니까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나 봐?”

“복수를 못 하게 된 건 아쉽지만, 대신 내가 권력을 잡을 수 있게 됐으니 이름 모름 암살범에게 고마워해야겠군. 그 녀석만큼은 만났을 때 살려 줘야겠어.”

공중에서 멈춘 것처럼 보인 총탄들은, 모두 투명한 얼음 사이에 박혀 멈춰 있었다.

총알에 적중해 파였음에도 주위에 금 하나 가지 않은 얼음들은 모두 아나스타샤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크하하하하! 총알만 없으면 내 세상이지! 방패 잘 유지하라고!”

원거리에서의 총탄은 공기를 극저온으로 얼려 버린 아나스타샤의 얼음 방패에 막혔고, 근거리 진압 병력은 모두 불곰 앞에 있는 나무 인형 수준이었다.

“아하-하하하하!”

로시코프는 온몸을 곰 형상의 불로 휘감고 눈앞에 있는 탱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눈앞에서 불곰이 다가오자 겁에 질린 병사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총을 써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만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뒤는 최대의 전력인 탱크에게 맡기자는 판단이었다.

콰앙!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희박한 확률로 주포를 쏘아 로시코프를 맞혔거나 탱크가 부서진 줄로만 알았던 러시아 병사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로시코프가 뒤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지는 몰라도 로시코프를 쏜 전차병을 칭찬해 주기 위해 뒤를 돌아본 그들은 방금 전보다 더욱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탱크의 주포는 옆으로 꺾여 있었고, 그 대신 탱크의 바로 앞에 은색으로 빛나는 옷을 입은 덩치 큰 남성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 * *

그 시각, 알래스카.

평원과 숲을 가로지르며 동쪽으로 달려가던 소콜로프는 알 수 없는 살기를 느끼고 발걸음을 멈췄다.

“음……?”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인 그는, 인질극이나 살인을 해선 안 되는 제압 중시의 임무에서 가슴속에서 끓어오른 살의를 주체하지 못해 그만 살인을 저질러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살의를 주체하지 못해 몰래 살인을 저지르던 그는 각성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살인은 더더욱 눈에 띄지 않게 되어 살의를 발산하기 쉬워졌다.

살의를 참지 않는 만큼 남들보다 살의에 빠지기 쉬웠던 소콜로프이니만큼, 그는 살기에 민감했다.

“이런 숲 지대에, 살기라니?”

소콜로프는 평원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좋아…… 재미있겠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아함보다 더욱 큰 살의와 곧 생명 하나를 거둘 거란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살의가 느껴졌던 숲속으로 달려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1:1만큼은 누구라도 지지 않는다. 그리즐리한테 잡혔을 때는 도망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사방이 평야! 만에 하나라도 도망칠 수 있지!’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이런 숲에서 그런 살의는 나를 노리고 있는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튀어나온 소콜로프였지만, 그는 숲속에 있던 무언가를 본 뒤 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검은색으로 물든, 불길한 느낌만이 드는 게이트와 그 아래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옷.

소콜로프는 옷은 둘째치고 마치 블랙홀과도 같은 게이트의 모습에 당황했다.

검은 게이트를 보고는 다시 의아함이 더욱 커져 게이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한 소콜로프.

‘저게 뭐지……? 저건 대체 무슨……. 살기!’

그러나 도중에 살기를 느끼고 몸을 피하려 한 소콜로프였지만, 미처 피하기도 전에 그는 누군가에게 목을 붙잡혔다.

“큭, 커억……!”

“소콜로프인가……. 한때는 너도 쓸 만했었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도망갈 정도로 나약한 놈이란 걸 알았었지. 여기 있는 걸 보면 수용소를 빠져나온 건가? 그냥 여기서 죽어라.”

뿌드득.

소콜로프의 목을 붙잡은 누군가는 그의 목을 곧바로 꺾어 버렸고, 그런 다음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을 주워 들었다.

“후우……. 방수라서 다행이군. 앨리스의 사진은 젖지 않았어.”

옷을 주워 든 누군가는 그 안에 사진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은 뒤 소콜로프의 시체를 뒤에 버려두고 숲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숲에서 멀어질수록, 검은색의 게이트는 조금씩 수축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