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8화
(24)
창고에서의 싸움 이후 시간이 조금 흘렀다.
파드레가 억제 중이었다던 범죄 조직 등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거나, <죽음으로 가는 빛>이라는 불법 단체에 대한 보도나 선언이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뒤에서 그들과 손을 잡거나 약점을 잡혀 있던 정부 관료나 범죄자들의 수가 상당했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억제가 사라져, 고삐가 풀린다면 슬슬 누구 하나라도 몸을 움직일 만도 했건만 파드레를 포획하는 과정이 너무 은밀해서인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영의는 용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테니 알아서 대처하라고 경고한 것과 다르게 세상이 너무 평화로운 것에 대해서 물어봤다.
‘평소에도 왕래가 그리 잦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아무리 꽉 잡고 있는 억제책이라고 해도 뺀질 나게 드나들면 오히려 반감만 커져. 월간이나 연간으로 잡고 감시하고 있었겠지.’
용신의 말대로, 평소에 왕래가 잦지 않은 듯 연락이 다소 두절되어도 세계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으니, 현재가 아무리 평화로워도 미래가 엄청나게 불안했다.
정체불명에 가까운 그들의 대장이자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나긴 했지만 핵심 중의 핵심인 선지자를 잡지 못한 상황.
-재능과, 그걸 알아보고 이용해 먹으려는 놈과, 마음가짐이 삼위일체를 이뤄서 만들어진 골치 아픈 경우다.
용신은 선지자를 일컬어 골치 아프다고 평했다.
영의는 심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기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일을 끝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할 수 있었다.
[네,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10시 29분경, 경상남도의 한 지역에서 화재가…….]
주변에 광활한 논밭이 있고, 그 구석에 반쯤 무너진 채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한 창고 건물.
금속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있어 뼈대는 어느 정도 멀쩡했지만 벽과 천장을 이루는 패널 내부의 충전재 등은 모두 불에 탔기에 균형을 잃고 무너져 있었다.
창고 하나가 불탄 것치고는 피해액이 천만 원도 안 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화재 사고.
그런 사고가 오늘의 속보인 만큼, 오늘은 평화롭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름 평화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오늘에도 평화롭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후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네.”
영의는 뉴스를 듣던 도중, 안심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범죄 조직이 들고일어날 거라는 불안한 미래가 있었고, 그것이 오늘이 아니었다는 안심이 공존하는 상황.
‘그냥 아주 시원하게 사건이 터졌으면 좋겠다……. 좀 멀쩡하게 살고 싶을 때는 사건 사고가 터지고 사건 사고가 나왔으면 할 때는 평화롭냐?’
근래에 영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화 길드와 집을 오가는 매일매일의 일과를 소화하는 도중에도, 휴대폰을 쥐고 있거나 수시로 무슨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나 확인하는 습관이 생겨 버린 것이다.
‘행님, 휴대폰에 뭐 귀신이라도 있어예? 무슨 1분에 한 번을 쳐다보고 그카네.’
‘주식이나 코인…… 뭐 그런 거 하는가 보지. 그런 거 하면 시세를 계속 봐야 하거든.’
‘오후 6시 20분에 주식 그런 게 되나? 은행도 문 닫았는데?’
‘몰라? 나도 주식은 안 해 봐서.’
둔감한 병찬과 병민마저도 그런 행동에 이상함을 느낄 정도였으니, 영의가 상당히 변했다고 볼 수 있었다.
우웅.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그런 상황에도 도움이 될 만한 점이 있었다.
[다이카 - 오늘도 똑같은 질문 해서 미안하지만, 히어로 활동 해 보지 않을래……?]
[인도라 - 길드 생활…… 하지 않겠는가?]
[찬드라 - 아스트라에 들어온다면 월급이 39,800달러! 39,800달러!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연락할 시! 수당을…….]
기억을 지우거나 조작하기로 했던 인드라와 찬드라, 다이카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놔둔 것이었다.
본래라면 영의 혼자 일을 해결해야 했으나, 몸은 하나고 사건은 두세 개가 터질 수 있으니 대략적인 상황을 알거나 협력을 할 수 있을 만한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용신이 그들을 놔준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재밌겠네. 번개 3인방…… 4인방…… 이게 그 사천왕인가 뭔가 하는 건가?’
뭔가 이상한 걸 보고 배워 온 것 같았지만, 조력자가 있다는 사실은 영의에게 나름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 구성원들이 다 개성이 과했다.
인드라와 찬드라는 영의를 지속적으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제안을 해 왔다.
인드라는 매일 한 번씩 이런저런 말투로 가입 권유를 해 왔고, 찬드라는 한국에서 잘 쓰이는 영업 방식을 나름대로 알아보고 활용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방식이 인터넷이나 TV 방송…… 그것도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 어딘가의 방송을 본 듯했다.
[찬드라 - ☆인도의 자랑☆♚♚아스트라 길드♚♚가입시$$승용차 증정※ ♜인도 뉴델리♜ 아파트숙소 무료증정¥§§전용기 렌탈§§★인도 최고의 길드★고위직 취직기회]
인터넷도, 상당히 마이너한 방향으로 알아본 것 같았다.
그래도 둘은 계속 문자나 이메일 등으로 연락해 왔고, 어디까지나 어필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영의가 국제적으로 요란하게 활동하는 대신 한국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었던 것을 보고 그다지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고 명예욕이나 금전욕이 크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래도 영입 시도는 해 봐야 하니 이런저런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그들도 그게 성공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둘과 달리, 실행력과 활동력이 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파트너!”
“파트너 아니다.”
신화 길드의 휴게실에서 TV를 보던 영의를 다짜고짜 찾아올 정도로 활동력이 넘치는 사람, 다이카.
그녀는 영의를 파트너라고 부르며 나타났고, 휴게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 광경에 놀랄 법도 했으나 익숙한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동료!”
“아니라고.”
다이카는 파트너가 아니란 말에 동료라고 호칭을 바꾸며 조금씩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선배님?”
“하지 마.”
“그럼 그냥 친구로!”
“그건…… 애매한데?”
영의에게 가까이 다가오긴 하지만 달라붙지는 않는, 다소 어색한 거리감을 가지고 영의를 계속해서 부르는 다이카.
신화 길드의 길드원들은 그런 기묘한 광경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오늘도 시작이다.”
“이제 한 10초 있으면 부길드장님 온다? 잘 봐, 10…… 9…….”
한 길드원이 10초를 천천히 세기 시작했고, 7초가 되었을 때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벌컥.
“자, 길드 소속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휴게실에 들어온 사람이 여기 있죠? 있을 거예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신화 길드의 부길드장이자, 영의의 애인인 화연.
그녀는 곧바로 영의와 그 옆에 있는 다이카를 찾았고, 이내 그녀를 데리고 바깥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꺄아아! 오늘도 잡혔다아~!”
다이카는 화연에게 끌려 나가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닌지,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럴 걸 알면서 왜 들어오는 거예요? 얼른 나가요.”
“파트너! 구해 줘! 이렇게 끌려가는 날 외면할 거야?”
마치 마왕이나 용에게 납치당하는 공주님처럼 영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끌려 나가는 다이카.
하지만 영의는 그런 다이카의 시선을 무시했다.
“…….”
“진짜 무시했어! 이젠 쳐다보지도 않아?!”
“이쯤 하면 그만할 때도 됐죠.”
그렇게 다이카가 화연의 손에 끌려 나가고, 휴게실의 문이 닫힌 뒤에야 영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화 길드의 새로운 구경거리, 1일 1신파극이었다.
처음에는 진짜 신파극처럼 다소 과한 면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출연진(?)들도 익숙해져 마치 한 편의 상황극과도 같이 흘러가게 된 것이다.
한편, 휴게실을 나가 길드 건물 바깥까지 나온 화연과 다이카.
다이카는 엘리베이터를 탄 시점부터 끌려 나가는 대신 화연과 걸음을 맞춰 함께 걸어서 건물을 나왔다.
“저기, 얘기 들은 거 있어?”
다소 친근하게 화연에게 말을 걸어오는 다이카의 모습은 알고 지낸 지 몇 년은 된 친구처럼 보였다.
“무슨 얘기 말이죠?”
그러나 친구에게 말을 걸듯 편하게 대했던 다이카와 달리 화연은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
“차~암 딱딱하네. 즐겁게 웃으면서 살자, 응?”
“웃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죠. 언제 어디서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웃음이 나올 리가…….”
용신의 허락도 있었고, 실제로 함께 일을 할지도 모르니 영의는 화연에게 자세한 사정을 털어놓았었다.
헬멧을 쓰지 않고, 뇌기를 눈에 띄게 공격 수단으로 쓰지 않고 하오다를 제압하고 이기라는 용신의 지시에 대한 이야기와 창고에서의 싸움.
그렇게 화연도 대략적인 정보를 알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와 영의가 길드에 지각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 그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잔소리였다.
‘-그렇게 된 거야.’
‘하아…… 할 말은 많지만, 일단 이 말부터 해야겠네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거나 냅다 같이 가겠다고 할 성격이 아니란 건 알죠? 그래도 걱정하지 않게 미리 말이라도 조금 해 줬으면-’
물론 함께 행동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디 갈 때 얘기라도 미리 해 주면 좋지 않았겠냐는 화연의 잔소리와 괘씸함으로 인해 영의는 지각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지각한 것도 아무 말 없이 무단으로 지각했잖아요.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그리고 그 후, 영의의 근무지인 길드로 매일 한 번씩은 꼭 찾아오는 다이카와 마주하게 되었다.
‘나가. 당장.’
처음에는 상당히 적대적으로 대한 화연.
‘그래도 이야기라도 하게 해 주지…….’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요?’
화연은 길드원을 시켜 못 들어오게 막거나 내쫓고 싶었지만, 다이카도 A급 상위 각성자 중 한 명이었기에 어지간한 인재가 아니라면 큰 반항을 하고 있지 않은 그녀라도 데리고 나갈 수 없었다.
나름 실력자인 전훈에게 맡기고 싶어도 남자인 그에게 다이카를 끌어내라고 하기엔 조금 부담이 있었고 결국 화연이 직접 처리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이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 화연.
‘내가 전대나 라이더 같은 게 나오는 특촬물을 좀 좋아하는데-’
‘파트너…… 뭐 아직은 정식이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거야. 파트너가 나를 히어로처럼 구해 줘서-’
‘함께 정의를 구현할 거야! 하오다 같은 악당도 쓰러트렸으니까!’
다이카와 영의 사이에 엮인 이야기와 그녀의 가치관 등을 들은 뒤, 화연은 적대적이지는 않아도 중립에 가까운 태도를 고수했다.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이자, 구해 줄 때의 모습이 평소 마음속에 품고 다니던 영웅상…… 특촬물의 히어로와도 같은 모습이었기에 동경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뭐라고 말할 만큼 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이 일에 휘말린 데다 습격에 길드의 추격까지 대부분 피해자에 가까웠던 입장인 만큼 어느 정도의 연민도 있었다.
그렇게 다이카와 약간의 인연을 쌓은 화연과 영의, 인드라와 찬드라는 알 수 없는 암중 세력과의 싸움이라는 대의하에 하나로 모이게 되었다.
신화 길드 부길드장 신화연, 아스트라 길드 길드장&부길드장 인드라와 찬드라, (전) 부시도 스피리츠, (현) 프리랜서 각성자 다이카.
그렇게 다섯 명의 각성자가 세계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는 선지자의 세력과 맞설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