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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97화 (297/325)

제2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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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의 말에는 상당히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인간은 무언가를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때로는 편견을, 때로는 자신의 방식이나 도구를.

인간이 학습이나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행동하는 것이 바뀔 때, 언제나 과거의 것들을 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가장 알기 쉬운 예로 전쟁이나 전투의 경우.

본래에는 더욱 강한 힘을 가지거나 더 빠른 이, 또는 지치기 전에 모든 적을 쓰러트린 이들만이 살아남고 강자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도구가 발전하며, 뛰어난 맹장도 화살에 목숨을 잃고, 맨손으로 사람 둘을 쓰러트리는 게 가능한 거한도 소심한 겁쟁이의 총 한 발에 죽을 수 있게 되었다.

더 효과적인 살상력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개개인의 강함과 특출 난 강자를 찾게 되는 계기를 잃은 것이다.

그 외에도 간단한 예로 서버와 클라우드에 정보를 저장하기 시작하며 공공기관과 은행 등이 종이로 된 서류와 그걸 보관하는 캐비닛 등을 점점 없애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얻게 된다면…… 무언가가 변화한다면 잃게 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용신.

-너는…… 뭘 버리려 하는 거지? 뭘 잃었지? 그런 게 있기나 한가? 그러면서 무얼 얻겠다고 하는 거지?

용신은 그의 눈앞에 있는 노인, 파드레를 심문하며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의식중에 용신의 말에 반응하여 눈을 번뜩 뜬 파드레였지만, 그의 심문이 이어지자 부정만을 반복했다.

“……그런 건 없다. 모른다.”

사실 용신은 진작에 파드레에 대한 심문을 진행했었고, 그로서는 의외일 정도로 강압적인 수단 없이 대화로만 해결을 하려 했었다.

“이 정도로 모른다고 말했으면 뭔가 다른…… 엄청난…… 그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아무튼 거짓말처럼 진실을 술술 털어놓게 만드는 그런 수단 쓸 때 아니에요?”

영의는 용신이 완강한 파드레와 계속 대화로만 심문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자 답답했던지 다른 수단을 써 볼 것을 슬쩍 권유했다.

그러나 용신은 그럴 마음이 없는 건지, 영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도 심문했었지만 충성의 수준이 상당하다. 은인이나…… 때로는 가족 등에게 보일 법한 끈끈한 인연. 근데 가족은 아닐 거 아냐? 가족이었으면 그렇게 공경할 이유가 없지.”

“그게 궁금해서 계속 물어만 보고 있었던 거예요?”

“사소한 호기심이야. 가끔은 이런 사소한 호기심에 집착해야 따분하지가 않거든.”

계속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것만 같았던 파드레는 의외로 용신의 호기심이라는 말에 입을 열었다.

“잃은 건 없다. 오히려 얻기만 했을 뿐.”

계속 모른다거나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했던 파드레가, 처음으로 다른 말을 내뱉은 순간.

“대답을 했네……? 왜?”

영의는 파드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대답한 것을 의아해했지만 용신은 그 사실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계속 질문을 이어 나갔다.

“아니, 무언가는 잃었을 거다. 아니…… 어쩌면 잃었을 것을 잃지 않게 해 줬을지도 모르지. 내 말이 맞나?”

파드레는 용신의 말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호흡이 불안정해지는 사소한 반응마저 보이지 않았다.

“…….”

맥박이나 체온 등의 변동을 감지해 거짓말을 판별해 내는 거짓말탐지기도 잘 훈련된 사람이 사용하면 속여 넘길 수 있다.

파드레가 마음을 다스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한들, 아주 사소한 반응은 남기 마련이었다.

“정답인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 준 건가. 네 목숨은 아니겠지. 단순히 본인 생명만 구해 줬다면 끈질기게 버틸 이유가 없어.”

“…….”

파드레는 용신의 물음에 아까와 같이 침묵으로 대응하였다.

하지만 그는 정곡을 찌르는 용신의 발언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흐음, 그래. 그래……. 은인이겠군. 본인 목숨보다 중요한 건가……? 가족이군. 그것도 여러 명. 고아원 원장이라도 되나?”

용신은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여러 가지 사실을 늘어놓으며 추측하다가 이내 정답을 내놓았다.

그의 대답이 정답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로, 파드레가 격한 반응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줄곧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뒷조사를 다 하고 오기라도 한 듯 자신과 선지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술술 늘어놓자 더 이상 침묵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저항을 시도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거란 생각을 하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자신의 비밀과 선지자의 비밀 일부를 알아 버렸으니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파드레.

철그럭, 철컥.

하지만 그는 온몸이 사슬에 묶여 있었고, 그 사슬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어째서인지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움직이지 마. 뼈 부러져. 기본적인 신체 능력까지 제한하는 물건이라 의외로 부상이 자주 생겨.”

용신은 파드레가 발작하듯 움직이자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고, 영의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부터…….”

“그래, 이제부터 놀랍고 신비한 자백 매직의 시간이지.”

파앗!

용신은 매직이라고 말하며 정말 마술을 쓰듯이 손에서 불꽃이 튀는 효과를 보여 주었다.

“처음부터 썼으면 됐잖아요?”

“그럼 별 재미 없잖아. 원래 저렇게 뻗대는 놈들 입을 느긋하게 여는 게 더 재밌다고.”

“조금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어 보이는데요.”

“나만큼 살아 보면 결함이 안 생기는 게 더 이상할 거다.”

영의는 용신이 다소 악취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상대가 자신과 적대할 일은 없다며 안심하는 동시에 파드레의 심문을 함께 지켜보기로 했다.

* * *

러시아, 시베리아.

수많은 나무들이 하늘 높이 늘어선 채, 거대한 숲을 조성하고 있었다.

타이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침엽수들의 집합체.

겨울철의 추위로 인해 사람들이 살지 않는 이 지역의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크게 웃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하하! 드디어!”

그의 손에는 황색의 서류 파일이 들려 있었고, 거기에는 극비를 뜻하는 문자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지난번에는 때가 늦어서 찾지 못했었지. 그리고 지금, 내가 찾아냈다……!”

이곳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선지자.

측근인 파드레와 부하인 하오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는 혼자서 이곳에 찾아왔다.

그의 눈앞에는 빽빽이 들어서 있던 나무들의 중앙에 만들어진 텅 빈 공터와, 그 공터 위에서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검은 구멍이 있었다.

숲을 찍어 둔 사진에 누군가가 송곳으로 구멍을 뚫은 뒤, 그것을 검은 벽 위에 걸어 놓기라도 한 듯, 공간이 뻥 뚫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몇 년을 쓴 건지…… 아니, 몇 번을 살아온 건지…….”

선지자는 웃음을 터트리던 도중 고개를 떨군 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내 입고 있던 두꺼운 패딩의 안쪽에 손을 넣었다.

이내 그 안에서 한 장의 낡은 사진이 나왔고, 그 사진에는 남녀가 서로 다정하게 함께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을 잠시 응시하던 선지자는 검은 구멍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그러나 그는 구멍에 도달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손에 들린 사진은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 * *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없는 형편에도 고아들을 보살피며 하루에 한 끼는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매일을 성실히 살던 목사가 있었다.

목사는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진심이었으며, 빈민가에서 자랐지만 목사의 사랑과 믿음하에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의 빈민가 출신이 갱단이 되거나 사고를 당하는 청년기에 엇나가지 않는 삶을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 자신의 앞가림을 하기 시작할 때쯤에는 자신들이 자랐던 고아원에 기부도 하는 등, 목사의 명성이 조금씩 퍼지자 고아원은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아원의 크기가 커지고, 직원을 쓰며 월급까지 줄 수 있을 정도로 재정이 윤택해지는 동시에 목사의 영향력도 커져 갔다.

하지만 그런 좋은 날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지역 갱단이 세력 확장과 사업 확장을 위해 고아원의 부지와, 그 수입들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갱단은 고아원에 불을 지르고 목사를 살해한 뒤, 자신들이 준비한 대역을 내세워 화재 복구를 위한 성금 등을 얻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선지자가 개입하여 목사와 아이들을 빼낸 뒤, 갱단이 고아원에 불을 지르는 광경을 목사와 함께 지켜보았다.

지금껏 열심히 가꿔 온 고아원이 불타는 모습을 보자 목사는 갱단에 분노함과 동시에 그들이 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목사에게는 복수를 할 힘이 있었고, 그가 베푼 사랑에도 불구하고 탐욕에 눈멀어 폭력으로 답해 온 그들을 용서할 이유가 없었다.

그날 아침이 밝아 오기 전 불을 질렀던 갱단을 몰살시킨 뒤, 그들의 상납을 받던 멕시코의 카르텔도 쓸어버렸던 목사는 그때부터 죄를 지었던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목사라는 직함을 이름 대신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드레 상그레스, 피의 신부라는 별칭을 얻은 뒤 브라질과 남미의 범죄자들 사이에서 공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고아들을 제대로 키워 낼 새 고아원을 선지자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이후, 지역의 갱단을 압박해 시설의 관리를 명령한 파드레는 이내 선지자를 따라나섰다.

그와 고아들의 은인이었고, 권력과 힘으로 고아들을 지켜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인물이기도 했으니까.

파드레가 선지자에게 합류한 이후, 선지자는 그의 능력과 자신의 능력 및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거대 세력을 구축하였다.

여기까지가, 영의가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이었다.

심문 도중 용신이 그를 내보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이야기부터는 들을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이나 이어진 심문이 끝난 후.

용신은 다른 내용들을 모두 걸러낸 뒤 영의에게 핵심적인……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만을 전달해 주었다.

선지자라는, 미래를 예지하는 인물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본인들은 <죽음으로 가는 빛>이라는 괴상한 단체명(투표로 만든 이름이라는 점까지 말해 주었다)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는 것.

조직의 목표는 모르지만 그저 선지자가 행하고자 하니 그의 뜻을 따를 뿐이라는 것.

그런 이야기들 중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신경 쓰이는 내용이 있었다.

선지자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해서, 각국의 정부와 뒷세계의 거물들, 모두의 약점을 잡고 있거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약점에 해당하는 억제책 중의 일부가 바로 그놈이었지. 물론 그걸 바로 알아차리진 않겠지만 몇몇 놈들은 눈치 빠르게 알아채고 고삐가 풀려서 날뛸지도 모르고…….”

“그렇네요……. 뭐 그래도 문제는 없겠죠?”

영의는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용신이 있으니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언제나 마음속 한구석에 안심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뭐가 문제가 없어? 뒷세계 거물이라니까?”

하지만 용신은 영의가 너무 안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의문을 표했다.

“아니…… 아저씨도 있는데……?”

“아니지, 너희 세계 범죄자니까 네가 해결해야지. 여기 있는 놈들은 원래 의혹…… 아니, 이제 확실하게 혐의가 잡힌 세력이니까 내가 개입하지만 원래 여기서 분탕 치는 놈들은 내가 개입할 대상이 아니야.”

“……네?”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네가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이제부터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본래 목적인 <죽음으로 가는 빛>에 관련된 안건이 아닌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했으니 용신이 나설 문제가 아니었고, 그 말은 즉 영의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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