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6화
(22)
하오다의 검은 본래 처음부터 여섯 개를 상정하고 사용하던 것들이 아니었다.
그 여섯 개의 이름 또한, 본래부터 그렇게 정한 게 아니었고.
가장 자주 애용했던 검인 인도의 본래 이름은 텐이치몬지(天一文字)로, 텐이치 가문의 가보로 내려오던 검이었다.
그 외에 갑각류나 두꺼운 가죽을 가진 게이트 내의 괴수들을 상대하기 위한 검인 수라도를 주문했고, 그 당시에는 참마도(斬馬刀)로 불렀다.
“그리고 특수한 장치가 있는 아귀도의 경우에는…… 크헉!”
짜악!
하오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검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던 도중, 영의의 따귀…… 그것도 손으로 때린 게 아닌 나무 주걱으로 때린 따귀를 맞고 옆으로 쓰러졌다.
“물어본 거에 답하라니까? 내가 그런 거 물었었나?”
“이 자식…… 그런 걸 쓰는 건 날 모욕하려는 거냐? 아니면, 전통으로 내려온 도구냐?”
영의가 들고 있는 나무 주걱은 별생각 없이 시장에서 사 온 5천 원짜리 주걱이었다.
실제 사용할 용도라기보다는 소품용이나 장식용으로 더욱 어울릴 법한, 곤장을 때리는 매처럼 생긴 물건은 이런 상황에서 쓰기에 좋았다.
“질문을 한 사람한테 질문으로 답변하지 마! 내가 아까 물어본 것만 대답해라. 어디서 칼 자랑이야 칼 자랑은. 여기가 무슨 인터뷰회장인 줄 알아? 아저씨 오기 전에 빨리 털어놔.”
영의는 용신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하오다가 가지고 있던 지옥도의 출처에 대한 것을 캐내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폭력을 휘두를 줄 몰랐던 하오다는 다른 설명을 모두 생략하고 순순히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젠장……. 그래, 나머지는 내가 샀거나, 주문 제작한 물건들이다. 다만 지옥도만큼은 누군가에게서 받은 물건이지.”
“똑바로 말해라. 훔친 거나 강제로 뺏은 다음에 받았다고 사기 치지 말고.”
받은 게 정말 받은 것인지, 강압에 의해 ‘받아 준’ 것인지 확실시하려는 영의.
“받은 거다! 정말로! 받은 거라고!”
따아악!
“크아아악!”
“어디서 큰 소리야!”
하오다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 나무 주걱으로 얻어맞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큭큭…… 아깐 머리가 잘 안 돌아갔지만, 지금은 다르다. 피를 흘리니 몸이 좀 개운해지더군.”
“……미친놈인가?”
취조나 심문에 대한 경험은 없었지만, 일단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줄곧 강하게 나가고 있었던 영의였지만 상대가 여유를 부리니 괜히 불안해졌다.
“너…… 나를 죽일 수 없을걸? 네놈이 빌린 장소에 대한 영상을 본 뒤에 컴퓨터에 따로 옮겨 두고 왔거든. 내가 죽거나 행방불명되면 경찰이 그걸 찾아볼 테고, 그리고 네놈에 대한 단서까지 밟겠지.”
하오다는 묶인 상태에서 최대한 머리를 굴렸고, 그 결과 자신이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태는 아니란 걸 깨달았다.
“다른 부하들은 몰라도…… 아니, 내 길드는 몰라도 정치권에는 확실하게 약점을 잡고 뇌물을 먹여 둔 녀석들이 있지. 나를 수색하러 나설 게 틀림없다. 자, 납치범으로 체포당할 건가?”
‘이겼다! 이런 점에서는 애송이나 다름없군! 세상일은 싸움만 잘한다고 능사가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나는 이 나라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게 없지. 그 어디에도 법을 어긴 정황이나 증거는 없단 말이야. 해 봐야 다소의 기물 파손? 작은 화재? 다 덮을 수 있다고! 응? 당황했나? 이렇게 될 줄 몰라서?”
하오다는 반쯤 놀리는 투로 질문하는 등 여유를 부리며 자신이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의의 얼굴에 혼란과 당황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뭔 소린진 모르겠고,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뭣……!”
딱, 딱, 따악.
하지만 영의는 하오다의 말에 휘말리지 않았고, 계속 그의 머리에 나무 주걱을 내려칠 뿐이었다.
“크으윽……! 멍청한 놈이……!”
하오다는 영의가 법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단순무식하고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사건을 덮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창고야 뭐…… 무단으로 썼으니…… 잡힐 일은 없고. 병찬이네 할머니 집은…… 병찬이가 허락해 줬고. 그래도 나중에 과일이나 음료수라도 사 가자. 그거 말고는…… 딱히 불법적이거나 꼬리 잡힐 일은 안 했는데.’
하지만 영의는 지금 하오다가 생각하듯이 별생각이 없다거나 한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사항을 모두 고려해도 걸릴 염려가 없었기에 그를 계속 걷어차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과, 병찬이라는 지인을 통해 얻은 뜻밖의 행운, 그리고 과감한 창고 무단 사용까지.
그런 세 가지 요소가 합쳐져 영의에게 추적할 만한 단서를 없앤 것이었다.
‘뭐…… 기억이라는 불안한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다만 그와 함께 행동했던 인드라와 찬드라, 다이카의 기억을 지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지우긴 했지만,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들과 맞서 싸우기 이전까지의 기억만을 지웠을 뿐이었다.
영의는 그렇게 기계적으로 하오다를 때리던 도중, 아까 질문하던 것을 떠올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칼 어디서 났냐고 물었잖아, 이 자식아.”
“크흑, 선지자가…… 준 검이다.”
“선지자? 예언자 뭐 그런 건가? 아깐 검 자랑하더니 이젠 점쟁이를 팔아먹네?”
영의는 하오다가 계속 자신을 놀리려는 듯하자 짜증이 쌓인 듯, 나무 주걱 대신 직접 손으로 때리기 위해 주걱을 던졌다.
땡그랑.
“진짜 아파 봐야 뭘 얘기할 마음이 들겠지?”
“아, 아니 이번엔 진짜다! 진짜라니까!”
“간절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진짜라고 믿어 줄게.”
영의가 주먹을 위로 들어 올렸을 때, 방 안에 갑작스럽게 용신이 나타났다.
“진짜다. 녀석들의 배후에 선지자라는 놈이 있어. 내가 생각하는 놈이 맞는다면 그런 검이 오게 된 것도 납득이 간다.”
용신은 이곳에서 나눠진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 나타나자마자 영의에게 선지자에 대한 말을 꺼냈다.
“진짜……라고…….”
“……이미 때렸는데.”
다만 영의가 이미 하오다를 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조금 문제였지만.
“아무튼, 그 녀석은 풀어 줘도 된다.”
“네?”
“……?”
풀어 줘도 된다는 말에 놀라는 영의와, 아직 아무것도 실토한 게 없는데 풀려난단 말에 당황하는 하오다.
“정보 수집은 끝났다. 그리고, 증거들도 챙겨 왔지. 원래 쥐새끼를 잡으려면 말이야, 굴에 불을 좀 질러 봐야 하는 법이지. 확실히 일을 조금 키우니 단서가 바로 잡혔어.”
“실제로도 불을 좀 지르긴 했지만요.”
용신의 비유에, 영의는 얼마 전 있었던 창고 주변에서 일어난 화재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간에, 저 녀석 집 지하에 있는 지하실 문을 뜯어내고 그 안에 있던 컴퓨터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뽑아 왔다. 확실히 뒤가 구리긴 한 건지 몇 미터짜리 문을 설치해 놨더군. 뭐…… 쉽게 뜯어냈지만.”
하오다는 자신의 집 지하에 있는, 지하실과 그곳에 있는 거대한 문을 뚫고 들어가 정보를 빼 왔다는 말에 놀라 무심코 입을 열었다.
“그걸…… 찢어?! 핵 방공호로도 쓸 수 있는 문인데?!”
“찢은 게 아니라, 뜯었다. 구조가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의외로 공략할 구석이 있더군. 열쇠 구멍이라니, 너무 구닥다리 취향 아닌가? 되게 옛날 사람처럼 만들었던데.”
하오다를 보고 옛날 사람이라고 말하는 용신의 모습에, 영의는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다시 안으로 삼켰다.
‘저 아저씨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뭐…… 난 그런 취향 싫어하진 않지만. 어쨌든 통짜 철문이었으면 조금 더 까다로웠겠지. 어쨌든 그 안에 있던 컴퓨터나 이런저런 장부는 챙겼다. 돈이나 금괴, 서류 같은 것도 있긴 했지만 시시한 비상금이나 약점잡이용 증거들이었어.”
용신은 하오다의 지하실에 있던 비밀 물품들을 이것저것 발견했지만, 컴퓨터와 장부 이외에는 쓸모없다고 여겼다.
“그것들까지……!”
“금괴라…… 조금 아까운데.”
“이미 그 위치를 알려 준 녀석이 거길 신나게 털고 있을 거다. 내가 문을 뚫어 두고 왔으니까.”
그 시각, 일본.
하오다의 자택 지하실에서는 다이카와 하오다에게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던 겐지나 이오리 등이 함께 지하실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문이었던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이거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걸 어디서 봤는데?”
“우주 전쟁 하는 영화 알지? 광선검 나오는 그런 영화. 거기서 철문에 손잡이까지 박아 넣고 문을 녹여서 탈출하는 장면이 있었어.”
“그래…… 거의 그 정도 수준이네. 근데, 이 문은 그런 거 있어도 못 뚫을 것 같은데?”
그들의 앞에는 마치 직경 5m짜리 드릴로 뚫은 듯한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구멍의 가장자리에는 무언가에 녹아내린 듯 바닥이나 천장과 엉겨 붙은 금속들이 있었다.
“녹이다 못해 증발시킬 정도로 가열시켜서 열었거나…… 다 뚫는 과정에서 마찰로 녹았거나……. 어찌 됐건 중앙 부분은 증발했어. 안 그러면 주위에 남는 게 이게 전부일 리가 없어.”
이오리는 불을 다루는 능력자답게, 열에 관해서 나름 공부를 해 둔 상태였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금속 조각을 최대한 가열시켜 보며 분석을 내놓았다.
“이걸 어떻게 뚫은 건지는 둘째 치고…… 료는 어디 갔어? 어디 들어가서 물건 털어 오는 이런 걸 제일 좋아할 녀석인데.”
빈집털이 출신인 료는 금고를 연다거나 하는 행위를 매우 좋아했고, 이런 지하의 비밀 공간이 있다면 기꺼이 방구석에서 벗어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겐지는 그런 료가 이런 장소에 오지 않았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아직 한국에. 기술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잠시 잡아 두겠대.”
“무슨 문제……?”
“몰라, 아무튼 우린 여기서 챙길 걸 챙겨 보자고. 이미 손님이 한 명 있었던 것 같지만.”
그리고 다시 한국.
“뭐…… 이놈도 멍청이는 아니라서 컴퓨터에도 나름 숨겨 두거나 한 모양이다만, 그건 다행히도 한 꼬맹이가 컴퓨터를 잘 만지는 것 같아서 맡겨 두고 왔다.”
자신이 숨겨 둔 모든 사실들, 정치권에 쓸 수 있는 협박용 물품들, 장부들, 그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되자 하오다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외통수로군.”
“외통수는 무슨. 이 녀석 봐라? 자기가 무슨 수 싸움 하다가 진 줄로만 아네?”
“그만해라. 개인적인 감정을 이 녀석한테 풀어 봐야 아무런 쓸모도 없어.”
용신은 영의가 하오다에게 계속 난폭하게 구는 것을 제지했다.
“개인적인 감정 없는데요? 전혀?”
영의는 개인적인 감정 같은 게 전혀 없다며 부정했지만, 단호하게 부정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의혹을 더 키우는 수준이었다.
“이놈 때문에 지각해서 여친하고 상사한테 한 소리 들은 건……. 아니, 나중에 얘기하지. 진짜 중요한 놈이 슬슬 깨어나는 모양이니.”
영의가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 원인에 대해 아는 듯한 용신이었지만, 그들의 옆에 얌전히 쓰러져 있던 노인이 움찔하기 시작하자 대화를 중단시켰다.
“으음…….”
“좋아, 본격적으로 뭔가 묻고 대답해 줄 시간이군. 그 녀석은 구석에 치워 놔. 그럼 선지자라는 제대로 된 정체가 나왔으니, 똑바로 질의응답을 거쳐야지?”
하오다에게서 신경을 끈 뒤,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한 파드레에게 다가가는 용신.
그는 파드레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인간은 무언가를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때로는 편견을, 때로는 자신의 방식이나 도구를. 너는…… 뭘 버리려 하는 거지? 뭘 잃었지? 그런 게 있기나 한가? 그러면서 무얼 얻겠다고 하는 거지?”
“네……?”
용신의 뜻 모를 말에 당황한 영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쓰러져 있던 파드레는 그 말을 확실하게 들었기에 눈을 번쩍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