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5화
(21)
하오다가 무력하게 고개를 떨구고, 그것을 마지막 패배의 신호라고 받아들인 영의는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그 아저씨는 연락도 안 받고……. 뭐, 각자 맡은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연락 주겠지.’
“자, 그럼 일단 정리를 해야 하는데…….”
영의는 우선 뒷감당…… 정확히는 처리해야 할 안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둘러보았다.
“음…… 저건 그냥 적당히 테이프…… 회색 테이프로 막아 두면 되겠고.”
칼자국이 나 있고 안에 채워진 스티로폼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창고의 내벽.
“저 밖에 저건……. 여기 그래도 아직 뭐 안 심었지?”
“아직 농사 중인 것 같진 않았다.”
“그럼 땅만 잘 정리하면 되겠다.”
창고 바깥에 이리저리 번져 버린 나머지 내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불의 흔적들.
“그리고…… 음…….”
마지막으로, 창고 내부에 이리저리 튀어 버린 혈흔과 폭발에 날린 먼지처럼 비산된 손이었던 것들의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저거 꿰맬……. 아니, 안 될 것 같은데. 으음, 그래도…….”
영의는 일단 최대한 상황을 멀쩡하게 수습하려는 마음에 ‘저 손목 어떻게든 잘 모아 보면 안 되나? 안 되겠지?’ 같은 생각까지 했다.
‘복합 골절도 어떻게든 고칠 수 있으니 병원에 치유 능력 좋은 각성자만 찾으면 이거 어떻게든 잘 모아서 이어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현대 의학과 각성자들의 치유 능력이 있더라도 사람의 근육과 혈관, 신경과 피부 조직 등을 뼈와 같은 레벨에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영의에게 알려 주는 존재가 있었다.
[불가능입니다. 사용자? 사람의 신체는 퍼즐이나 석상처럼 조각을 모은다고 해서 다시 복원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알림이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영의에게 포기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응……? 너 되게 간만에 말한다?’
영의는 알림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보다도, 알림이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것에 반응을 보였다.
[사용자에게 조언할 수 있는 역할을 간만에 맡게 되어 그렇습니다. 여행자가 있는 한에서 저 같은 것의 판단은 고려 사항이 아니기에…….]
알림이는 용신이 있는 이상에 본인의 판단이나 조언은 고려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말했고, 그것은 용신이 그만큼의 통찰력이나 권한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영의는 그 말을 용신이 거물이라는 뜻 대신, 이곳에서의 판단이 자신과 알림이에게 맡겨져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흐음…… 뭐, 알겠어. 네가 여기서 나한테 말을 한다는 건…… 일단 여기서는 내 생각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겠지.’
영의는 우선 하오다의 손에서 일어나고 있는 출혈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손부터 지혈해 둬야겠지. 혹시 붕대나 뭐…… 깨끗한 천 그런 거 있는 사람?”
지혈을 위해 붕대나 천 조각을 찾으려 하는 영의.
“없다.”
“깨끗한 사람이 없습니다.”
인드라는 옷 여기저기가 찢어진 상태였고, 찬드라 또한 그다지 멀쩡한 싸움은 아니었는지 여기저기에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나, 나…… 안에 입은 티셔츠는 그나마 멀쩡한데 이거로는 안 될까? 아니, 잊어 줘. 땀이 좀 묻었어…….”
다이카는 뭔가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자신의 티셔츠를 가리켰지만 이내 티셔츠를 벗거나 찢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기로 했다.
“아니, 그래도 안에 입고 있는 옷은 조금 그렇지. 다른 쪽들도…… 멀쩡하진 않네.”
영의는 포박당한 야이바나 시즈카를 쳐다보았지만, 그들 또한 붕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
하지만 정말 의외인 것은, 하오다의 부하 간부 중에 그런 붕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다.
“내가 있다. 정확히는 비슷한 거지만.”
붕대…… 비슷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겐지.
“그런 걸 갖고 있었냐……?”
그의 동료였던 이오리마저도 그 사실이 의외였는지, 그가 붕대를 갖고 있다는 말을 하자 깜짝 놀랐다.
“본래 야쿠자들은 싸움에 나서기 전에 몸통에 천을 두껍게 두르고 갔었지……. 출혈 억제와 약간의 방어 기능, 내장이 튀어나오는 일을 막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그런 용도 대신 테이핑 용도와 비슷하게…….”
겐지는 자신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지만, 그걸 형편 좋게 들어 줄 영의가 아니었다.
“아니, 그런 설명 필요 없고 있으면 빨리 줘. 출혈 억제를 위해 쓸 때가 왔잖아. 저것 봐, 피가 줄줄 샌다고.”
“……알겠다.”
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려 했던 겐지였지만, 지금 상황에 뭔가를 더 말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곧바로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붕대로 쓸 만한 천을 꺼내 주었다.
마치 의류 공장에서 쓸 법한 대형 원단을 일부 잘라 온 듯한 크기.
“붕대…… 라기엔 조금 큰데.”
“몸에 둘러야 하니, 클 수밖에.”
일반적인 붕대와 비교해서 세 배 정도 큰 크기에 잠시 당황한 영의였지만 일단 응급조치를 위해 하오다의 손목에 천을 감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잠깐 지혈할 동안 저기 땅 좀 엎어 주지 않을래? 여기서 사고 났다는 거 알려지면 조금 곤란하거든.”
영의는 창고의 바깥, 불이 난 흔적과 여기저기 뒤집어진 지면을 가리키며 수습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수습 부탁에, 인드라가 의외라는 듯이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없냐며 되묻기까지 했다.
“뭐……? 미리 준비해 둔 것 아니었나?”
“사전에 고지라든가…… 적어도 사후 처리가 가능한 팀이 있을 것 아닌가? 우리…… 아니, 인드라처럼 저지르고 보는 타입의 인물이라도 사후 처리를 맡아 주는 조직이 있어야 할 텐데?”
게이트에 관한 것이야 국가가 먼저 나서서 통제와 사후 처리를 맡고, 각성자 개개인의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나름의 뒤처리 담당들이 있다.
길드의 경우에는 일반 직원들의 상당수가 그런 일을 담당하는 인원들이고.
간혹 한 번씩 있는 경합이란 명목의 경쟁이나 개개인의 결투 등에는 사전 공지를 하지만, 대부분 뒤처리 담당들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수습하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인드라와 찬드라 또한, 영의에게 그런 팀이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 거 없어. 당장 여기도 대충 빌린 거야. 허가는…… 안 받았지만.”
“……?”
그들을 너무 빠르게 찾아내고 은신처(?)로 옮기는 것도 매우 신속한 데다 은신처의 위치나 요건 등이 너무 적절했기에, 인드라와 찬드라는 모종의 세력이 배후에 있는 줄로만 알았었다.
순식간에 은신처를 수배하거나, 그런 은신처들을 여럿 마련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세력을 상상했던 둘.
“그럼, 소속된 세력이 없다는 건가?”
“있긴 하지. 규모도 좀 크고.”
“그렇다면 그쪽의 도움을 받는 게…….”
“근데 거기에는 비밀로 하고 온 거야. 당장 오늘 출근도 째고 온 건데.”
“……일단 알겠다. 확실히, 비밀을 요 하는 일이긴 했었지…….”
인드라는 영의에게 더 많은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은폐를 중요시하는 것만 같아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자, 조금 아플 거야.”
파지직.
“크아아아악!”
영의는 무림에서 했던 것처럼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하오다의 손목 부분을 전기로 지지기 시작했고, 인드라는 저렇게 지져서 출혈을 막을 거면 붕대는 왜 찾은 건가 싶은 생각을 했지만 자신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럼 정리부터 하자고.”
창고의 바깥으로 나간 뒤, 흙더미를 발로 차 땅을 고르기 시작하는 인드라.
파악!
그의 발차기에 담긴 힘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긴 했어도 겨울 동안 제법 굳은 땅을 모래처럼 파헤칠 수준으로 강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옆에서, 마치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로 땅을 갈아엎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깨어나는 대지.”
쿠구구구궁.
찬드라가 손을 뻗는 곳마다 땅이 들썩이며 뒤집히고 있었다.
옆에서 잔불들을 끄던 이오리가 그 광경을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젠장…… 저것 때문에 불이 힘을 못 썼지.”
“그 이전에 네가 날린 불의 통제권부터 빼앗기지 않았나?”
“그게 사기라고! 능력 여러 개를 쓰는 게 사기라니까! 불합리해!”
“어이, 입 닫고 흙이나 날라.”
“…….”
* * *
그렇게 <부시도 스피리츠>와의 일전이 끝난 이후, 영의는 다시 일상을 회복……할 줄 알았는데.
“아, 진짜…….”
하오다와의 싸움 이후, 그는 다소 귀찮은 문제를 직면하고 있었다.
[인도라 -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우리 길드에 들어와 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아, 또 보냈네.”
인드라라는 대표적인 호칭을, 그의 출신지까지 엮어 인도라라는 나름의 이름으로 저장해 둔 영의.
그는 인드라가 보낸 러브 콜 및 스카우트 제안에 대한 이메일을 옆으로 슬라이드해 지웠다.
“나는 이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지금…….”
영의는 얼마 전 용신과 함께 들었던 정보로 인해 스카우트니 뭐니 하는 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얼마 전, 문제를 일으키고 뭔가를 알고 있는 장본인인 하오다를 제외한 나머지 간부들은 모두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나, 하오다는 잡아 두고 심문했었다.
용신이 따로 마련한 의문의 밀실.
영의는 용신과 함께 순간 이동으로 이곳에 왔기에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밀실에는 이미 심문을 거친 건지 의식을 잃은 노인이 묶인 채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지만, 용신은 그에게서 얻을 정보를 모두 얻어 낸 건지 그쪽에 신경 쓰지 않고 하오다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아…… 얘한테는 딱히 들을 게 없지만, 일단 그래도 재밌어 보이는 구석이 있으니 하나 물어보긴 해야겠지?”
노인…… 파드레와 마찬가지로 밧줄로 묶여 있는 하오다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가는 용신.
하오다는 가느다란 나일론 줄 같은 것으로 묶여 있었지만, 그것을 풀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본래 하오다의 신체 능력이라면 그것 이상으로 두꺼운 밧줄도 뜯어내고 탈출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것보다 가느다란 줄을 풀거나 뜯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너한테는 알아낼 것도 없고 별로 궁금한 것도 없지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이 검들.”
용신은 하오다가 가지고 있던 검들을 가리키며 질문을 시작했다.
“……어디서 얻은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얻은 거지?”
“…….”
하오다는 용신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용신은 애초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을 향해 손가락만 까딱거렸을 뿐이다.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바닥에 널려 있던 하오다의 검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스릉-
용신은 검들 중 하나인 인도를 뽑았고, 하오다는 그것을 보며 작게 조소했다.
“하, 탐이라도 나나?”
“아니?”
빠각.
“무슨…… 무슨 짓이냐?!”
용신은 손에 쥐고 있는 검을 마치 밀가루로 만들어진 과자나 빵이라도 된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쥔 채 가볍게 반으로 부러뜨렸다.
‘저게 그렇게 약한 재질의 물건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영의는 직접 그 검을 쓰는 하오다와 싸워 본 적이 있었기에,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부러뜨린 용신의 힘에 살짝 긴장했다.
뚜둑, 뚝.
용신은 인도를 시작으로 수라도, 축생도, 아귀도 등의 검들을 차례로 부러뜨리기 시작했다.
“그, 그것들이 얼마나 큰 값어치를 지닌 건지 알고나 있나! 하나하나가 최고급이라고!”
“……알 게 뭐냐? 거기다 이렇게 뚝뚝 부러지는데 최고급은 무슨 최고급인지. 원래 고급이라고 하면 내구성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고급이지.”
용신은 그렇게 여섯 자루의 검 중 자루만 있는 천도와 마지막 남은 지옥도를 제외하고 전부 반으로 부러뜨렸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지옥도는, 부러뜨릴 생각이 없는지 그저 들어 올리기만 했다.
“……이것 봐. 내가 한 손으로 꽉 쥐면 이것들처럼 부러질 텐데 이건 멀쩡하단 말이야. 그리고, 제조 방식이…… 아니지. 너, 이거 어디서 얻었냐?”
아니, 부러뜨릴 생각은 있었지만 다른 검들과 달리 매우 튼튼한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용신은 다른 검들과 달리 지옥도에서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점을 찾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