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0화
(16)
다이카를 잡으러 왔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의문의 인물이 그를 상대한다고 하자, 하오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드라와의 싸움이야 예상 범주였으니, 나름의 생각도 해 두고 각오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본 적 없는 상대가, 그것도 창고 안에 여유롭게 의자에 앉은 채 적대적으로 나오고 있지 않은 상태라는 의외의 상황이었다.
‘내가 굳이 왜?’라는 생각과, ‘저건 또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문득 지난 고생이 떠올랐다.
‘잠깐, 내가 전혀 본 적이 없다면…… 저 녀석이 이곳에서의 조력자인가? 잘도 귀찮은 일을 해 줬군……!’
자신과 간부들을 며칠 동안 허송세월하게 만든 것과 동시에, 이런저런 단점을 감수하고 선지자와 파드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만든 범인이라고 생각하자 분노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이곳에 있는 이상 싸우러 온 것은 확실하겠고, 저 녀석이 네놈들의 대장이라고 소개하는 거면 같은 대장끼리 어울려 줘야겠지?”
“주군, 그런 도발에 넘어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한계’다! 내 인내심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야이바! 말 안 듣는 부하, 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인간, 주제넘게 자꾸 도망치는 배신자까지. 하나같이 내 심기를 거스르기만 할 뿐이고! 갈수록 날 분노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하오다는 지금, 침착함과 냉정함을 중시하여 수행하던 평소와 달리 짜증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길거리의 빈집털이범을 거두어 키워 줬더니, 방 안에서 뒹굴기나 하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누가 그렇게 방 안에서 뒹굴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줬는데!’
자신의 수하로 있으면서도 개인적 감정을 내세우며 자신의 명령에 저항하려 했던 료.
‘내가 마치 무능한 남자라고 말하듯이, 오자마자 바로 성과를 보여 주는 그 빌어먹을 선지자 놈!’
파드레와 함께 한국으로 온 당일, 거짓말처럼 다이카가 자신의 단서를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오다로서는 정말 미래를 내다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지만, 애써 그 생각을 부정하며 무언가 수작을 부렸을 거라고 짐작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하루도 안 되어 끝냈다는 점이 그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고 그 점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다이카……! 네년이 순순히 잡히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하오다의 분노는 모두 다이카를 향하기 시작했고, 그의 살기와 분노를 받게 된 다이카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네년……!”
그 눈빛을 받자, 도쿄에 있던 <쇼군즈>의 길드원들을 모조리 도륙했다는 사실과, 실제로 사람들을 눈앞에서 베어 내던 그 모습이 다이카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람을……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마치…… 예전에 먹었던 카츠요리나 스테이크처럼…….’
티틱, 틱-!
그 순간 공포를 느껴 마음이 흐트러진 것인지, 그녀는 무심코 손끝에서 스파크를 일으켰으나 불완전하게 한번 튀겨진 뒤 사라졌다.
그때 보았던 것들보다 더 예리하고, 매서운 칼날이 아무런 자비 없이 자신에게 들이닥치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때 보았던 하오다의 광기가 자신에게 향한다는 사실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나도…… 그렇게 되는 걸까? 칼날 앞의 스테이크…… 아니, 두부처럼……!’
마치 무력한 아이가 면도날로 된 이빨 틈새로 침을 흘리며 그르렁대는 호랑이나 사자를 눈앞에서 마주한 듯한 두려움.
그러한 두려움이 다이카를 급습했지만 다이카로서도 물러나지 못할, 물러나지 않을 이유와 마음이 있었다.
‘가족이 있고, 내 삶이 있고! 무엇보다 명확한 진실이 있어! 밝혀야 할 『진실』이!’
그녀의 부모님과, 그녀 자신의 삶, 그리고 하오다가 죽여 나간 사람들과 숨겨 둔 진실을 밝히겠다는 각오.
그러한 각오, 그녀를 도와준 인드라와 찬드라, 거기다가 한국에서 그녀를 도와준 히어로와 조력자까지.
히어로가 나오는 전대물을 좋아하고 그 주인공들을 동경했었던 그녀에게, 기적같이 나타나서 목숨을 구해 준 적 있었던 인물이 그녀를 돕고 있었다.
-하오다라고 말한 그 대장 격 녀석을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는 제압정도로 끝내 줘.
더군다나, 히어로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에 있는 공포의 상징을 직접 맡겠다고 말했었다.
그 모든 상황에, 다이카는 두려움의 순간에 한발 앞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무, 무섭지 않아! 아니, 사실 무섭지만! 그래도 나는, 여기서 그 공포를 극복하겠어!”
파짓, 파지직-!
의지를 다지듯이 손에 전류를 두르기 시작한 다이카는 하오다의 살기 가득한 시선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본인도 하오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짝짝짝-
다이카가 하오다에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옆에 서 있던 인드라가 그런 그녀의 의지에 감탄한 듯 박수를 쳐 주었다.
“훌륭하다. 본래 공포라는 감정은 무언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지. 총의 위험성을 모른다면 총을 두려워하지 않고, 뱀의 독을 모른다면 뱀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말이야.”
파직!
박수를 끝낸 인드라는 양팔에 번개를 둘렀고, 하오다의 뒤에 늘어선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들을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옛 명언이 있지. ‘인간의 위대함은 공포를 견뎌 내는 그 당당한 모습에 있다.’ 네가 어떤 인물이건, 과거가 어떻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포를 이겨 내는 그 용기는 위대하다!”
인드라는 그 말을 하고서는 곧바로 하오다에게 돌진했고, 하오다의 수하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제지하려 했으나 인드라는 그들보다 훨씬 빨랐다.
텁.
곧바로 달려들어 하오다의 옷깃을 잡은 뒤, 그대로 창고 쪽으로 던져 버리는 인드라.
터엉!
하오다가 창고의 안, 벽 쪽으로 날아가자 창고의 벽을 이루고 있는 패널에서 충돌음이 들렸다.
“주군?!”
“대장? 왜 아무렇지 않게?!”
야이바를 비롯한 이들은 하오다가 별다른 저항 없이 날려진 것에 대해 당황했지만, 그를 던진 인드라의 팔뚝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젠장…… 살기 없이 덤빈 건데도 그 틈에 세 번이나 긋다니.”
“그만큼 안 다쳤으니 상관없지. 그럼, 그동안은 우리끼리 해결을 봐야 하지 않겠어?”
드르륵- 타앙!
찬드라가 손짓하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기라도 한 듯 창고의 미닫이문이 닫혔다.
창고의 내부에서 나오는 빛이 가려져 주위가 조금 어두워짐과 동시에, 창고 바깥에서 대치 중인 이들은 자세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한편 창고의 안에서는 영의와 하오다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하오다는 인드라에게 내던져진 후 벽에 충돌하기 직전 내부의 벽을 차고 바닥에 착지했고, 그 때문에 입구를 등졌던 영의가 얼굴을 드러낸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까드득-
마치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떨거나 손톱 아래를 매만지듯이, 손에 낀 수갑을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 영의.
그는 하오다를 앞에서 대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오다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영의의 모습에, 찬찬히 그를 관찰하며 떠오른 감상을 나지막이 내뱉었다.
“……어리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와, 의자에 앉아 있기에 짐작하기 힘든 신장.
더군다나 하오다 본인은 30대였기 때문에, 적어도 신체와 나이에서 오는 신체 능력만큼은 저쪽이 우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리진 않은데. 젊게 봐 줘서 고맙긴 하네. 그보다…… 있지?”
영의는 번역기 없이 말을 할 수 있었으므로 하오다에게 여유롭게 말을 걸었고, 하오다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상대에게서 유창한 일본어가 나오자 살짝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영의의 물음에 그는 역으로 질문했다.
“뭐가 말이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건 별로 예의가 아닌데. 아저씨, 학교 안 나왔나 봐? 영어 시험 같은 데서 대화 순서 맞추기 잘 못하지? 질문엔 대답이 따라와야지.”
마치 하오다를 도발하듯 말하는 영의의 태도에, 하오다는 검 쪽으로 손을 천천히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 자식…….”
그러나 그때, 그의 귓가로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발에 넘어가면 안 된다. 한낱 스포츠에서도 저 정도 트래시 토크는 웃어넘길 수준인데 전투를 벌이는 이들끼리 저런 도발에 넘어갈 건가?!
두려우면서도, 분노와 짜증을 유발하는 대상인 파드레의 목소리.
‘이 목소리는……. 젠장. 언제 붙은 거지?’
하오다는 이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 그리고 어떻게 들려오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예전에도 이런 현상을 겪어 본 적이 있었으니까.
다만 그가 의문을 가진 것은 ‘도대체 언제?’라는 점뿐이었다.
-네 발밑에 있다. 출발할 때 붙었지. 다행히 이곳은 조명이 밝으니 문제는 없겠어.
파드레는 하오다의 발밑, 창고 내부의 밝은 조명에 의해 생겨난 여러 갈래의 그림자 속에서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발밑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하오다는 눈을 슬쩍 돌려 자신의 발밑을 쳐다보았다.
‘……있다!’
양발 사이, 다양한 곳에서 비치는 밝은 조명과 상대적으로 반사광을 많이 받는 지역이라 그림자가 옅었지만 확실하게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며 하오다와 창고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렇군……. 창문은 없고, 전도성이 높은 금속제 구조물이야. 만일 네 부하들이 전멸한다면 건물을 주저앉히고 전류를 흘릴지도 모르겠군.
파드레는 하오다가 도망치지 못할 경우, 즉 영의가 이곳에서 그의 발목을 잡고 바깥에서 그의 부하들이 모두 패배했을 때의 경우를 상정했다.
그리고 이 창고 자체가 거대한 덫이나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젠장.’
하오다는 파드레가 말한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고 지금이라도 창고의 벽을 베어 낼까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파드레의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
‘그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노인네지만 그 힘만큼은 믿을 만하다. 암살에 누구보다 특화된 이 노인네라면……!’
텐징이나 패트리어트처럼 전신이 흉기이자 갑옷인 존재들이라면 모를까, 어지간한 인물들이라면 대부분 암살 가능하다고 생각해 온 하오다.
그도 강한 각성자였고 약한 칼날 정도는 몸으로 막아 낼 수 있을 정도의 초인이었지만, 파드레가 직접적으로 가하는 공격을 버틸 순 없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일단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영의를 쳐다보기 시작한 순간, 그는 영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딜 보는 거냐, 네놈은.”
“……있구나? 잠깐 눈이 돌아갔어.”
영의는 하오다가 아주 잠깐이지만 시선을 아래로 향한 것을 보았고, 그 움직임을 따라 그의 발치를 보았을 때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뭔가 있냐는 유도에 걸려든 하오다의 반응만은 확실했기에 그는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싸움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죽-!”
빠직!
하오다에게 말을 끝내자마자 앉아 있던 의자에서 재빨리 일어나며 발뒤꿈치로 의자를 참과 동시에 어깨를 축으로 의자를 휘두른 영의.
“크윽!”
하오다는 의자에 맞아 잠시 비틀거렸지만, 달인답게 곧바로 검을 뽑으려 했다.
스르르-!
“나의 발도는 총보다 빠르다. 손잡이를 잡고 당기는 순간이 네 목이 떨어질 순간이……!”
기습에 사용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발도술.
하오다의 신체 능력과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더한 발도술은 총의 방아쇠를 당겼을 때 공이치기가 격발하는 시간보다도 더 빠르게 눈앞의 적을 베어 낼 수 있었다.
즉, 칼이 닿는 범위이기만 하면 권총보다 빠르게 적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었지만…….
터업.
“그럼 그거 잠깐 넣어 두자고.”
영의가 칼집에서 뽑혀 나오는 검의 손잡이를 손으로 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