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15)
하오다가 한국에서 수색을 시작한 지 4일째 되던 날, 선지자와 파드레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반가워, 직접 얼굴 보는 건 첫 번째인가?”
선지자는 하오다를 만나자 매우 반갑다는 듯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선지자는 하오다와 직접적인 만남을 가진 적이 이미 있었다.
“직접적인 대면은 이미 있었을 텐데. 그것도 이 나라, 한국에서.”
지난번 한국 방문 당시, 대구에서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던 둘.
하오다가 그 점을 짚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지만, 선지자는 그의 말을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 사실 화상으로 너무 자주 봐서 그만 헷갈렸지 뭐야. 아무튼, 가자고. 신부님이 찾기 시작하면 금방 찾을 테니까.”
선지자는 마치 본인이 손님을 맞이하듯이 하오다의 등을 천천히 떠밀며 앞장섰고, 파드레가 그런 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숙소는 어디로 마련해 놨지? 난 개인적으로 TV에 나오는 그런 전통 가옥 숙소가 좋은데…… 네가 그런 곳을 쓸 리는 없고.”
마치 관광을 목적으로 초대받은 손님처럼 들뜬 모습을 보여 주며 걷는 선지자.
하오다는 그런 선지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그렇게 자신의 말에도 침묵으로 응수하는 하오다의 모습에, 선지자도 놀러 온 것처럼 들떠 있던 모습을 감추고 차분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뭐, 말하기 싫으면 됐어. 어차피 네가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는 건 텐징이 봐도 알았을 테니까. 언제부턴가는 말도 대충 했었고. 뭐…… 사실 난 공포정치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일만 끝내면 나가고 싶을 때 나가.”
선지자의 말에, 하오다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하오다는 본래 타인의 말을 듣거나 명령에 복종하는, 부하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리더의 자질을 타고났고, 본인 또한 그것을 자각했기에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려 했다.
그 과정에서 오만함과 자존심이 끝을 모르고 커져 갔지만, 그의 능력과 주변 환경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선지자를 만난 이후로, 정확히는 그에게 충성하는 파드레를 만난 이후로 조금씩 바뀌었다.
한 번의 패배와 절망적인 무력감 이후, 그는 엎드리는 법을 배웠고 선지자의 지시를 들어가며 충분한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기회만 된다면 선지자의 아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력을 제대로 구축하려 했고, 그 아래에서 벗어날 기회만을 틈틈이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독립의 기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배신까지 고려하고 있었던 하오다는 언제라도 떠나도 좋다는 그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어차피 처음부터 너도 날 이용하고, 나도 널 이용하는……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로 생각했거든. 대부분 그렇지. 대체 어떤 정신 이상자가 이런 수상하고 알 수 없는 조직에 충성을 다하겠어? 그러니까 젠틀하고 조용하게 끝내자고. 괜히 뭐 터트리지 말고.”
처음부터 그다지 믿지 않았다는 말과, 그가 품고 있던 생각 같은 건 진작에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한 선지자는 말없이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난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생각해 보니까, 전에 여기서 네 부하들과 만난 적 있었거든.”
예전에 한국에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들이 방문했을 때, 하오다는 다이카와 료를 제외한 간부들과 마주친 적 있었다.
그때는 즉석에서 비즈니스차 방문한 기업인으로 위장했었고,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앨리스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 이름까지 댔었다.
“게다가, 회사명까지 댔었고 말이지.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지만…….”
그 회사는 선지자가 자금 융통을 위해 만든 직원 0명의 유령 회사였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였고, 엄연히 각국 정부에 세금까지 내고 있는 회사였다.
어찌 되었건 그런 가상의 기업인 신분을 대었기 때문에, 선지자가 공개적으로 그들의 수색에 협조해 줄 순 없었다.
“그럼, 신부님? 뒷일을 부탁해요.”
선지자는 파드레에게 본격적인 업무를 맡기겠다며 떠나가 버렸고, 파드레는 떠나는 선지자의 뒤에 대고 고개를 숙인 뒤 하오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럼, 가 보도록 하지요. 처신을 잘하시길 바랍니다. 당신과 달리 저는 계산적이지 않으니까요.”
하오다와 달리, 자신은 선지자에게 제대로 충성하고 있다는 듯이 위협적인 어조로 중얼거린 뒤 평소의 인자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는 파드레.
“……알았다. 가도 좋다고 허락을 했으니 나도 할 일만 다 한다면 순순히 떠나 주도록 하지.”
“그래야…… 할 겁니다.”
파드레가 다이카 수색에 합류해 주었고, 하오다는 머지않아 이 수색이 끝나고 자신 또한 독립하여 일본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일주일…… 최소 4일이면 끝나겠군. 숨어든 인물들을 찾아내는 데에는 이 늙은이만큼 타고난 인물도 없으니.’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과 달리, 하오다는 그날 저녁에 다이카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
“단서를 잡았다고? 어떻게?!”
다만, 그 과정이 다소 특이했다.
하오다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아까워서라도 그 과정을 듣고 싶어 했지만 그 특이함은 사회 경험 많은 이오리마저도 말을 꺼내기 주저할 정도였다.
“저…… 그게…….”
“간부들이 찾았나?”
“아닙니다.”
“아니면 영상이라도 제보된 건가?”
“그것도…… 아닙니다.”
본인들이 직접 발로 뛰는 다른 간부들도 아니고, CCTV 영상만을 주야장천 찾아다니는 이들도 아니었다.
‘이 녀석들이 아니라면…… 그 영감이 직접 찾고 넌지시 흘린 건가?’
파드레가 합류하자마자 곧바로 단서를 잡았으니 파드레가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파드레마저도 예상외의 상황이라며 놀랄 정도였다.
“……정말, 의외로군.”
정답은 놀랍게도 다이카가 평소에 쓰던 SNS 계정에, 하오다에게 직접 찾아오라며 당당하게 영상을 찍어 올린 것이었다.
[어이! 날 쫓아오고 있겠지? 그리고 또 어떤 수를 써서 내가 나가는 걸 필사적으로 막겠지! 내가 중요한 비밀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야! 어차피 내가 언급해 봐야 금방 삭제되고 은폐되겠지만! 날 잡고 싶으면 직접 와 봐! 난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거니까!]
다이카의 계좌를 비롯한 이런저런 것들은 모두 정지를 당했지만, SNS 계정은 친구 공개만 해 둔 채 사용하지 않은 지 한참 되었기에 정지하지 않고 방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인 료가 업로드 알림을 받고 확인했고, 곧바로 다른 간부들에게 말한 것이다.
<부시도의 사람들은 봐라!>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그 영상 속에서 알 수 있는 단서라고는 한 창고 건물과 도로 이외에는 아무런 건물도 보이지 않는 풍경만이 전부였다.
자세한 지명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창고 건물 하나만 홀로 있다면 오히려 위치를 추측하기에 적합한 수준의 단서였다.
더군다나, 그녀가 추적당하면서 줄곧 꺼 두었던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 놓고 통신마저 계속 연결해 두고 있었기에 대략적인 위치도 위성 지도에 표시되었다.
사람을 써서 얻어 낸 휴대폰의 위치는 경상남도의 한 외딴 지역.
“곧바로 간다. 채비를 해라.”
“바로는 힘듭니다.”
하오다는 그런 다이카를 곧바로 쫓아가려 했지만, 간부들이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안전한지 어떤지도 모르고…… 또 진짜로 거기 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전부 몰려가는 건 안 좋은 선택입니다.”
“네, 만약에 함정 같은 걸 파 놓은 거라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냥 휴대폰만 던져두고 다른 곳으로 도망간 걸 수도 있고요.”
야이바를 비롯한 간부들은 쫓기던 상대가 갑작스럽게 역으로 도발해 오는 것은 함정일 가능성이 크고 휴대폰이야 미끼로 던져 놓고 가면 그만이니 시선 돌리기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하오다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상관없다. 간다.”
다이카 혼자…… 기껏해야 셋, 현지의 조력자가 있다는 계산을 하더라도 넷이나 다섯이서 그들 모두를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오만함도 있었지만 절박함과 조급함이 조금 더 컸다.
하루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의 원인은 개인적인 야망이었다.
다이카와 <아스트라>의 둘을 잡아서 기밀 유지에만 성공한다면 그는 선지자의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미 정리한 도쿄를 흡수해 일본을 그의 손안에 쥘 수 있었다.
그러한 개인적 야망과 달리, 조급함은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가 처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이미 그에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도움과 기회를 주었고, 만약 다이카에 의해 <죽음으로 가는 빛>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하오다는 그 책임을 물어야만 했다.
그 책임은 그의 목숨으로 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한 조급함이, 평소 용의주도했던 그에게서 ‘조심성’을 빼앗고 ‘경계심’을 거두게끔 했다.
“곧바로 따라와라! 이곳에 나온 장소로 간다!”
하오다는 그렇게 지도에 표기된 다이카의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다른 간부들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다이카의 휴대폰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 장소가 영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농사를 제대로 시작하지 않아 비어 있는 논과 밭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는 대형 창고.
트랙터나 비료, 모판 등의 물품들을 보관하는 용도의, 샌드위치 패널로 이루어진 조립식 건물이었다.
외따로이 있는 창고라고 해도 전기는 들어오는 건지 창고의 지붕에 달린 외부 조명들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그 조명의 아래에서 다이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왔네. 미치광이와…… 내 옛날 동료들이.”
다이카는 하오다를 향해 삿대질하며 미치광이라고 콕 짚어 얘기했고, 야이바가 그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미치광이라니, 말이 심하군.”
하지만 정작 그렇게 불린 하오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널 도운 녀석들은 어디 있지? 인도의 두 녀석들 말이다.”
드르르륵- 타앙.
하오다가 <아스트라>의 둘을 언급했을 때, 창고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안에서 인드라와 찬드라가 걸어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고와 그 주변이었지만, 창고에는 조명 설비가 충실하게 구성된 듯 창고의 문이 열리자 외부 조명이 비추던 것보다 더욱 밝은 빛이 바깥으로 뿜어져 나왔다.
“우리를 찾았나?”
뚜둑, 뚝!
“언제든지 들어와라.”
그저 선전포고하듯이 기다리던 다이카와는 달리, 인드라와 찬드라는 언제라도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들도, 한숨을 내쉬며 전투를 준비했다.
“후우……. 순순히 따라올 생각은 없는 것 같군요.”
“나는 다이카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양쪽의 의견이 이렇게나 대립하니…….”
간부들 중 진실을 모르는 겐지와 이오리는 그대로 전투를 준비했고, 야이바나 하오다는 그 이전에 창고의 문이 열리자마자 이미 전투를 상정한 듯 검을 뽑아 둔 상태였다.
그중에 단 한 사람, 료만큼은 다이카와 싸울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자 고개를 저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나는……! 안 되겠어, 나는…… 그만둘래. 우리끼리 싸우는 게 무슨 이득이 된다는 거야……. 찾았으니, 난 여기서 빠질래.”
료는 그렇게 말하며 창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를 붙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드라나 찬드라야 싸울 상대가 줄어서 좋았고, 하오다는 싸울 의지가 없는 료를 억지로 싸우게 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휘익!
“그럼, 지난번에 못다 한 결판을 내 보도록 할까.”
하오다는 검을 뽑아 인드라에게 겨누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가 다이카를 확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인드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형 길드의 마스터이면서도, 자신과 상대하여 쉽게 밀리지 않는 전투 능력을 보유하기까지.
누가 봐도 제일 까다로운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인드라는 의외의 행동을 했다.
“널 상대해 줄 사람은 이 안에 있다. 그리고 나보다 더 강한 인물이기도 하지.”
“……뭐?”
하오다는 인드라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말대로 창고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고 바깥에서는 감출 생각 따위 없다는 듯, 창고 안에서 문 쪽을 등진 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고 정면이 보이진 않아도 의자 아래로 그 남자가 양손에 보호대 같은 무언가를 끼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