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화
(13)
인도, 뉴델리.
두 명의 여성이 고급진 호텔의 입구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한 여성은 아시아…… 그것도 동북쪽의 출신인 듯 다소 밝은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옆에서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금발의 여성이 있었다.
다만, 그녀의 머리가 금발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녀의 머리 절반은 금발이었지만, 다른 절반은 백색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금발의 여성은 몸의 어딘가가 불편한 듯, 한쪽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도우려는 듯,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 청년이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손님의 안색이나 행동, 옷차림을 살피고 그들이 원하거나 원할 것 같은 사항을 알아내고 곧바로 서비스.
만약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 기색이 보인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뒤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 그러한 것들이 접객의 기본.
청년은 고급 호텔의 직원답게 그런 접객의 기본을 모두 갖추고 있었고, 그런 접객의 기본 이전에 거동이 불편한 이를 돕는 것은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혹시 부축을 도와드릴까요?”
하지만,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너무 명확했던 상황 탓에 청년은 상대방의 기분이 언짢음과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보지 못했다.
타악.
“꺼져, 이 자식아.”
금발의 여성은 친절에는 친절로 답한다는 예의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거친 말을 내뱉으며 청년의 손을 뿌리쳤다.
“들어가자.”
청년의 손을 뿌리친 금발의 여성은 지금까지 그녀를 부축해 온 옆 여성의 도움만을 받으며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했습니다.”
직원의 신분인 청년으로서는 아무리 선의라 해도 손님이 거부했다면 그가 잘못한 게 맞았기에, 작지만 상대에게 똑똑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여성에게 사과했다.
뚜벅, 뚜벅.
그러나 여성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사과를 무시하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
상대방의 싸늘한 대응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직원은 이내 한숨을 작게 내쉬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해 먹기 힘드네.”
직원을 뒤로하고 호텔의 내부로 향한 두 여성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태가 멀쩡하지를 않은데 진짜 활동할 거야?”
두 여성은 선지자 아래에서 일하는 메리와 나연이었다.
지난번, 영국의 토르를 이기기 위해 섭취한 약물의 효과로 인해 어린 소녀의 몸에서 성인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된 메리.
그녀는 그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지금 머리카락의 절반이 백색으로 변하고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에 비해 짧고 약해져 있었다.
“그나마 내가 성장이 멈춰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난 거야. 성인이 먹었으면 무조건 폐인 신세였어. 사지 중에 셋이 멀쩡하면 됐지. 흐.”
메리는 불편한 쪽의 다리를 들어 좌우로 슥슥 흔들며 작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니, 그래도 이건…….”
나연은 메리가 단순히 다리만 절뚝이고 머리만 탈색된 거로 끝난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리 하나까지만 이상한 거면 목발이라도 썼겠지, 사람이 옆에 달라붙어야만 활동할 수 있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잖아……!’
단순히 다리를 절기만 하면 또 모를까, 메리는 가끔 걷던 도중에 갑작스레 휘청거리거나 하는 행동을 보인 적 있었다.
메리가 지금 보여 주고 있는 것 이상으로 부작용을 안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품고 있는 나연.
하지만 그녀로서는 메리가 직접 말해 주거나 보여 주지 않는 이상 부작용에 대해 알 방법이 없었고, 당사자가 입을 꾹 닫고 주제를 돌리고 있으니 더 이상 캐낼 수도 없었다.
“성장하다가 멈춘 다리 하나는 골연장 수술로 늘이고, 머리는 패션으로 살지 뭐.”
엄청난 고통과 훈련이 동반되는 골연장 수술을 맹장염 수술처럼 가볍게 말하며 넘기는 메리.
그녀는 지금 자신이 앓고 있는 부작용이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연은 그런 그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부작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그게 심각한 거란 걸 알고 있으니까 ‘별것 아니라고 믿기 위해’ 저런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 생각은 불행하게도, 거의 적중했다.
“겉은 멀쩡해도…… 몸 안쪽은 안 멀쩡하잖아.”
“알 게 뭐야. 이제 인생에 뭐 목적이 없는데. 병원비랑 노후 자금만 벌면 나도 여기서 손 떼야지.”
노후 자금을 벌고, 은퇴하겠다고 말하는 메리.
나연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메리를 보며 자신의 생각이 어느 정도 맞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역시나 정상이 아니야…….’
거물급 범죄자들의 숨겨진 신분들과 쉽게 알 수 없는 은밀한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교환했었던 조직의 특성상, 은퇴를 쉽게 허락할 리 없었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수뇌부와 접촉하고 그들의 맨얼굴까지 아는 메리를 은퇴시켜 줄 리 없었다.
그녀는 지금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고, 자신을 지킬 능력이 전에 비해 모자랐으니까.
물론 각성자로서의 능력은 확실히 강화되어 있었지만, 신체 능력과 판단 능력 등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
‘여차하면 문제를 일으켜서 체포당할 사람을 왜 풀어 주겠어……! 게다가 정신 상태도 이상해졌는데! 아니, 그 부분은 원래 이상하긴 했지만.’
그렇지만 나연은 지금으로서는 일단 그녀를 챙겨 주어야 했다.
관련된 지시도 받았고, 이대로 놔두었다간 무슨 사고를 쳐도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가능할 거란 생각은 변함이 없었기에, 나연은 솔직히 불가능할 거란 말을 그녀에게 해 주었다.
“그건…… 불가능할 텐데. 기밀 유지에 대한 문제도 있고…….”
메리 또한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의 다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조소했다.
“흐흐. 뭐, 이 꼴이니 은퇴시켜 달라고 하면 시켜 주겠지. 게다가, 이미 내 가치는 다한 거 같기도 하고. 크힛.”
“가치……라고?”
“그래, 지난번 이후로 제대로 된 이야기가 오간 적이 없어. 아무래도 그 약을 건네줄 때 내가 그대로 버려지는 걸로 처리된 거겠지. 그 인간 입장에서도 내가 살아서 잘 활동하고 있는 건 예상외의 일이었겠지만, 이건 나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나연은 메리의 말을 듣자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선지자에게서 직접적으로 지시가 내려오거나,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한테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지시하진 않았어. 어지간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얼굴을 보고 지시를 내리는데도.’
“……그래도, 냅다 버려지는 건 아니잖아. 형무소 같은 곳에 있어도 죽여서 입막음을 하지는 않으니까.”
텐징과 샤오롱은 지금 미국의 블랙 펜타곤에 갇혀 언제든 심문이나 처형을 당할 수 있음에도, 그들의 입막음을 시도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만으로도 최악의 경우에도 죽진 않을 거라 생각한 나연.
“그건 녀석들이 사지 멀쩡하니 그렇지. 뭐…… 나는 애초부터 토르를 잡게끔 기용한 거 같지만, 이제 보수도 돈으로 받을 수 있게 됐으니 상관없겠지. 얼른 들어가서 쉬자고. 우리를 파견한 걸 보면 이번 임무가 가능성이 높은 임무일 리는 없으니까.”
메리는 지금 좋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광기의 원인인 토르의 죽음이 그녀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성장하며 마음도 함께 성장한 건지 몰라도 그녀는 부작용으로 다소 오락가락할 때가 있지만 이렇게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럼, 기다려 보자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이 오겠지.”
* * *
한편, 한국에서는 영의의 수행이 한창이었다.
콱, 콰악!
휘익- 팅!
영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는 두 자루의 검.
그리고 그 중앙에 선 영의는 그 두 자루의 검들을 재빠르게 피해 내거나 쳐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앞뒤로 휘둘러지는 검에도 불구하고, 영의는 긴장하거나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기까지 하는 영의.
“……여기까지 하자.”
텁.
그는 두 자루의 검을 그대로 잡아냈고, 수행은 거기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행이 중단되자, 영의의 수행에 어울려 준 이들이 검을 내려놓았다.
털썩.
“하아, 하아-”
“후우…….”
상당히 지친 듯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지연과, 그녀만큼은 아니라도 지치긴 한 건지 숨을 깊게 내쉬는 화연.
그의 수행에 어울려 준 둘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영의는 지금 이 수행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정말 안 되겠어. 진짜 죽여 버릴 기세로 달려들지 않는 이상……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영의의 소용없다는 말에, 그의 수행에 어울려 준 다른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소용이 없으리란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화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끄덕였고.
“허억, 후우…….”
지연은 많이 지쳤기에 더 이상 할 필요 없다는 뜻을 이해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어떻게 하지?”
“그보다 선배, 갑자기 칼질을 해 달라고 하다니 대체 무슨 부탁을 그렇게 해요?”
화연은 영의가 갑작스럽게 이런 이상한 부탁을 해 온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
영의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화연은 그의 마음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혹시, 그 아저씨랑 관련된 건가요?”
“그래.”
용신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채자, 화연은 옆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지연을 슬쩍 쳐다본 뒤 나중에 물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네, 그렇다면야…….”
대략적인 사정 파악이 끝난 화연은 뒤로 물러섰고, 그들의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좋아, 구경 끝났지? 이제 다 할 일 하러 가!”
지금 이곳은 신화 길드의 지하 훈련장이었고, 화연과 지연은 평소 대련을 하는 링 안에서 영의에게 칼질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 길드원들은 방금 전 목격한 광경에 대한 소감과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며 해산했다.
“아…… 좋았는데.”
“저기서 끝난 게 다행이지. 사고라도 벌어졌으면 큰 문제였어. 교관님 저래 보여도 민간인이잖아.”
“아, 그렇네? 부길드장님이 앞뒤로 휘두르는 검을 다 피하고 마지막엔 한 손 칼날 잡기까지 하길래 순간 까먹었지.”
영의의 활약상을 보고 감탄한 사람도 있었지만,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마음이 꺾인 사람도 있었다.
“……저건 진짜 못 이기겠다.”
“포기해. 아무리 아마추어라고 해도 등 뒤에서 날아오는 칼을 한 손으로 잡은 순간 우리의 능력 밖이야.”
복수의 칼날……이라기엔 애매하지만 끝없는 도전을 반복하는 앨런에게도 그 광경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앨런, 넌 저거 보고도 계속 도전할 거야?”
“Of course! 남자는 될 때까지 트라이하는 거야! 맨땅에 헤딩!”
다만, 그에게는 신선하고도 긍정적인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땅이야 뭐 계속 헤딩하면 박살 나겠지만 저건 땅이라기보단 지하 암반인데…….”
“머리 깨지는 건 앨런이니까 상관없겠지.”
그렇게 길드원들이 해산하고 있을 때, 화연은 지연을 일으켜 세워 줬다.
“이번에는 체험 삼아 보여 준 건데…… 어때, 우리 길드? 좋지?”
“굉장하네요. 다들 실력도 뛰어나고…… 설비도 좋고.”
“그렇지? 나중에 들어올래? 그보다 너도 실력 엄청 늘었더라? 전에 먹은 게 효과가 있었나 봐?”
“윽…… 효, 효과는 있었죠. 다시 먹긴 싫지만…….”
화연과 지연은 서로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길드원들이 지연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할 법도 했지만 영의의 사례가 있었으므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영의는 아직까지, 하오다를 제대로 공략할 만한 수단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