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2화
(8)
일본에서 가장 예리한 검과 가장 위력적인 번개의 격돌은 검의 승리로 끝났다.
“으윽…… 아파……!”
다이카는 복부를 붙잡고 쓰러졌고, 그녀가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과 동시에 온몸을 휘감았던 번개 또한 사라졌다.
그리고 주위에서 구경하던 민간인들과 각성자들, 통제하던 경찰들은 방금 전 하오다가 보여 준 기술을 믿을 수 없었다.
“번개를 베었어……?”
“과연 최강!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답다!”
불과 몇 분 전, 다이카의 라이진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부수고 태워 버렸다.
온몸에 치명적인 전류를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그녀와 충돌한 모든 물체는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도로 위에 전복되어 있던 차량도, 상행과 하행 차선을 구분 짓는 중앙분리대도 구분 없이 수많은 번개 줄기에 불타면서 갈려 나갔다.
더군다나 그런 번개 덩어리로 돌격하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도 더 이상 가리지 않아, 여기서 쓰러져 줘!”
다이카의 명령에, 그녀의 등 뒤에 있는 번개의 구체들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동시에 정확한 조준으로 번개를 쏘아 댔다.
“아무리 대장이라도! 번개를 쳐 내거나 갈라낼 순 없겠지!”
방어와 공격,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면서 별도의 공격 수단까지 갖춘 다이카의 비장의 무기.
“훌륭하군.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다이카가 날린 번개 줄기는 빛과 같은 속도로 하오다에게 날아들었고, 하오다는 다이카의 새로운 기술을 보며 감탄했다.
“하지만 여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 너만이 아니다.”
하오다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발도했다.
촤아악.
물에 대고 검을 휘두르거나, 물기가 많은 무언가를 베어 내는 것과 같은 소리.
그런 소리가 한번 울려 퍼짐과 동시에, 하오다에게 향하던 번개 줄기가 반으로 갈라졌다.
긴 막대를 두 동강 내듯 수직으로 힘을 가해 갈라진 게 아니라, 정면에서 베어 내어 정확히 두 갈래가 되어 하오다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채 뒤로 날아갔다.
“번개, 갈라냈다고? 그것도 깔끔하게 말이지.”
하오다가 우연히 한 것도 아니고 정면에서 날아드는 번개를 정확하고 깔끔하게 갈라내자, 다이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이제 너와 나의 차이를 알겠나? 순순히 투항해라. 목숨은 살려 주지. 시즈카의 몫으로 팔 하나는 가져가겠지만.”
하오다는 그의 애검, 인도를 다이카에게 겨누고 팔을 자르겠단 말을 당당하게 했지만 거기에 순순히 따를 다이카도 아니었다.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몇 분간 다이카의 발악이 이어졌으나, 근거리에서는 그녀가 이길 수 없었고 원거리에서 쏘아 내는 번개는 모두 무력화되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돌진을 감행했던 다이카는 하오다의 검에 베여 쓰러진 것이었다.
“칼등으로 쳤으니 치명상은 아니다. 다만, 찰과상이나 사소한 자상은 있겠지만.”
복부에 출혈은 있었으나, 다이카도 정신을 아득하게 잃을 정도로 고통에 휩싸이진 않았다.
“따라올 마음 따위, 없겠지.”
하오다는 쓰러진 다이카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순순히 따르면 목숨 정도는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다이카는 하오다가 자신을 살려 주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헤, 당연한 말을.”
“그렇군.”
하오다는 이내 검을 양손으로 잡았고, 주변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충성을 다해야 하는 조직에 대한 배신! 동료를 해한 죄! 그 죄에 대한 단죄를…… 지금 시작하지. 사람들을 물려라!”
지금까지 하오다가 다이카와 나눈 말이 귓속말은 아니었기에, 그들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도 있었다.
“진짜 팔을 자르려는 건가?”
지금 하오다가 다이카를 해치려는 것은 알지만, 어디까지나 팔을 자르겠다는 수준으로 알고 있는 이들.
“배신하고 나갔다잖아. 거기다가, 저기 부상 입고 쓰러진 사람도 생겼고.”
시즈카가 쓰러져 있는 모습과, TV에서 나왔던 내용 탓에 처벌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문을 갖지 않는 사람들.
“그런가……. 물론 잘린 부위를 잘 조치해서 치유 각성자에게 보여 주면 다시 낫겠지만 좀 심하지 않나?”
그중에서 처벌의 수위가 너무 센 것에 대한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복구가 가능하니까 과감하게 하는 거 아닐까? 공항에 의료 인력이 있잖아.”
바로 옆에 공항도 있었고, 상처 부위와 결손된 신체 부위만 잘 보존하면 신체의 절단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기에 그리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럼, 각오해라.”
하오다는 한쪽 발로 다이카의 등을 밟은 채 머리 위로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젠장…… 참수로 죽다니.’
다이카는 하오다가 목을 자르고도 남을 거라 여겼고, 실제로 하오다도 그러려고 했다.
“죽어라!”
하오다가 내려치는 검은 곧바로 다이카의 목덜미로 빨려 들어가듯 움직였고, 수많은 충돌을 반복했음에도 여전히 예기를 뿜어내는 검날은 다이카의 목을 그대로 베어 낼 기세였다.
타악.
그러나 그때, 검의 날을 막아 내는 손이 있었다.
“거기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을 참수로 죽이다니, 인도 시골에서도 그런 일은 없어.”
다이카와 마찬가지로, 번개를 두르고 있지만 베이는 대신 검을 막아 내고 있는 굵은 팔.
그 팔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그 문신의 형태는 금강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왼쪽은 검날이 없는 둔기 같은 형태의 금강저, 오른쪽에는 중간에 칼날이 튀어나와 있는 창과 같은 형태의 금강저.
“금강저 문신…… <아스트라>의 인드라로군.”
“알아봐 주다니 고맙군, 사무라이. 그런데…… 사무라이가 목을 치는 건 할복할 때 아닌가? 이쪽은 배에서 피가 나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그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카앙!
인드라는 하오다의 검을 밀어낸 뒤, 그것을 멀리 날리기 위해 쳐 냈다.
하오다는 검을 붙잡기 위해 몸의 중심을 이동시켰고, 그 틈에 인드라는 다이카를 끌어내 뒤로 던졌다.
“으윽!”
“진정해, 아가씨. 구하러는 왔으니까.”
찬드라는 다이카의 복부를 지혈하기 위해 손으로 복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도 우리끼리 할 일을 해야겠지? 그냥은 안 보내 줄 것 아닌가?”
“외부인이 끼어들다니…….”
가만히 상대방을 노려보던 인드라와 하오다는 이내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아스트라> 길드의 난입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이지?”
“어째서 끼어든 거지?”
시민들은 물론이고, 경찰과 각성자들까지 혼란에 빠진 상황.
더군다나 각성자들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았으므로, 더더욱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입은 둘째 치고, 개입으로 인해 확인한 사실이 그들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보다, 방금 칼날이 목으로 향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배신한 게 죽어도 할 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진짜 죽이는 건 좀 아니잖아. 야쿠자들도 아니고…….”
하오다가 정말로 다이카를 죽일 생각이 가득했던 것을 보여 주는 참수 시도.
그것을 인드라가 막아서 망정이지, 여차하면 눈앞에서 사람이 처형되는 것을 볼 뻔했다.
그리고 상황이 거기까지 흘러가자, 경찰들은 눈치 빠르게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다들 물러서 주십시오!”
어떤 의도에서였건 간에, 지금부터 살상 내지는 그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각성자들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민간인들을 물러나게 하는 게 맞았다.
“대피하세요! 대피!”
시민들 또한, 분위기가 심상찮아지는 것을 직감했다.
‘길드의 장끼리 맞붙는다고? 우리…… 여기 있어도 괜찮나?’
‘눈빛이 달라졌는데……?’
이내 경찰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이윽고 재빨리 현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민들.
그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콰아앙!
하오다와 인드라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주변으로 그 여파가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번개와 충격파, 각종 파편들이 휘날리며 주변으로 튀었고 그것들은 방금 전까지 시민들이 서서 구경하던 곳까지 날아와 박혔다.
“라이키리(雷切)!”
인드라가 쏘아 내는 번개를 다이카와 싸울 때처럼 베어 내는 하오다.
“하하하! 꽤나 즐겁군! 번개를 직접 베는 게 아니라 죄다 흘려 내는 건가!”
인드라는 하오다가 보여 준 놀라운 기술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분석해 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직선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번개 대신, 마치 채찍처럼 번개 줄기를 휘두르는 인드라.
점이 아닌 선으로 행해지는 공격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하오다는 뒤로 점프하며 번개를 검으로 받아 냈다.
그런 다음, 검을 다시 재빨리 휘둘러 번개를 흩뿌렸다.
“라이한(雷反)!”
일반적으로는 검 한 자루로 할 수 없어야 하는 행동들을, 하오다는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하오다의 능력이라고 짐작한 인드라는 지금까지 본 것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추측을 했다.
“호오. 검에 축적되는 힘을 느리게 하거나 임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나 본데.”
대략적인 추측이었지만, 인드라의 생각은 거의 정확했다.
“그 어떤 불합리한 힘이라도 내 앞에서는 베여 사라질 갈대나 다름없다……!”
콰앙!
인드라와 하오다는 계속하여 서로 맞붙었으나, 제대로 된 결말이 나지 않았다.
단순히 번개를 쏘아 내고 다루는 게 전부였던 다이카와 달리 인드라는 직접적인 근접전을 더욱 선호했고, 그의 발달한 육체와 팔에 두른 번개의 건틀릿은 하오다의 검술에 직접 맞설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하오다 또한, 번개의 건틀릿에서 발생하는 자기장 탓에 검의 궤도가 비껴 나거나 생각보다 힘이 안 들어가는 등 방해되는 요소가 많았다.
이에 하오다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렇다면 다른 수단을 꺼낼 수밖에.”
지금까지 잘 사용하던 검인 인도를 칼집에 집어넣고, 등에 메고 있는 검들 중 하나를 꺼내는 하오다.
“수라도. 이거라면 조금 흔들려도 문제없겠지.”
그가 꺼내 든 것은 전형적인 일본도의 형태를 하고 있던 인도(人刀)나 다른 검과 달리 묵직하고 육중한 양손 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칼날에 톱니까지 달려, 살상과 적을 찢어 내는 데에만 집중한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수라도(修羅刀).
그의 주 무기인 여섯 개의 검 중, 가장 파괴력에 특화된 무기였다.
“……매서운데.”
인드라는 지금까지 잘 막았던 카타나와 달리, 손도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묵직한 검을 보자 살짝 주춤했다.
‘톱니는 조금 까다로운데.’
나무에 칼을 대고 그으면 흠집에서 그치지만, 톱을 대고 그어 버리면 흠집에서 끝나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지금 인드라와 하오다의 대치 상태가 정확히 그런 상황이었다.
단순히 검날 수준이라면 어떻게든 해결되지만, 톱니로 갈아 버리면 아무리 인드라가 열심히 막아 보려 해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둘이 그저 1:1로 대치하고만 있었다면 인드라가 불리해지겠지만 인드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뒤로 물러나라!”
촤아악.
찬드라의 외침과 함께, 인드라와 하오다의 사이에 물줄기가 쏟아졌다.
소방 호스에서 뿜어지는 것보다 강한 압력으로 하오다를 밀어내기 시작해 둘의 거리를 벌리는 물줄기.
“크윽! 잔재주를!”
촤악, 촤아악!
하오다는 말 그대로 물도 베어 낼 수 있는 검사였지만, 압도적인 수량이 쏟아지는 데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쏘아 보낸 물줄기가 바닥에 흩어지기 직전, 찬드라는 물을 조종하듯이 손을 휘젓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얼음의 삶.”
허공에 흩뿌려지던 물줄기들은 찬드라의 손짓에 곧바로 얼어붙었고, 이내 하오다를 가두는 얼음의 감옥이 되었다.
“이제 도망치자고! 깨먹은 수도관도 대충 고쳐 놨으니까!”
그들이 싸우던 곳 옆의 바닥에 깔려 있던 콘크리트가 모두 부서져 있었고, 파손되어 흙이 보이는 바닥에서는 물이 조금씩 흘러넘치고 있었다.
지하에 흐르는 수도관을 파헤친 뒤 파손시켜 거기서 분출되는 물을 갖다 쓴 것이었다.
일시적으로 하오다를 묶어 둔 찬드라는 다이카를 들쳐 메고 하오다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믿음직하다니까. 순간 이동은?”
인드라는 찬드라가 순간 이동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듯,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순간 이동에 대해 물어보았다.
보통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찬드라는 인드라의 믿음대로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인도까지는 못 가! 아무리 내가 잘 베껴도 출력에는 한계가 있어!”
여타 순간 이동 능력자들과 달리, 찬드라는 A급 각성자임에도 거리에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딘데?”
“중국은 싫잖아!”
“당연히 싫지!”
국가 간의 감정으로 인해, 찬드라와 인드라는 중국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밖에 없어!”
“그럼 거기로!”
찬드라는 이동하기 위해 인드라의 손을 잡았고, 그 순간 뒤에서 얼음을 깨고 나온 하오다가 그들에게 검을 던졌다.
“죽어라!”
대포에서 쏘아진 것처럼, 바위에 맞더라도 바위를 썰어 버릴 기세로 날아드는 수라도.
쐐애액-
하지만 수라도가 목표에 닿는 일은 없었고,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수라도는 이내 바닥에 손잡이까지 박히며 움직임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