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1화
(7)
하오다의 전화를 받은 의원들과 경시청의 간부들은 곧바로 다이카에 대한 수배와 협조 요청을 내렸다.
도쿄의 길거리에서 순찰 중인 경찰관들, <부시도 스피리츠>의 입김이 닿는 길드의 길드원들이 모두 다이카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이카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포위망이 구축되어 있었지만, 다이카에게는 뜻하지 않은 행운이 작용했다.
만약 <쇼군즈>의 길드원들이 살아 있었다면 의원들의 압력으로 뒷골목의 루트까지 장악할 수 있었겠지만, 하오다가 도쿄 쪽의 <쇼군즈> 핵심 인원들을 모두 쓸어버렸으므로 그쪽은 감시의 눈길이 잘 닿지 않았다.
그리고 다이카 또한,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탓에 밝은 대로보다는 어두운 골목과 <쇼군즈>의 하부 조직들이 주로 관리하던 거리들을 거쳐 집에 갔다.
정말 우연의 일치이자 하오다의 인과응보와도 같은 결과.
그렇게 다이카는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그녀가 집에 들이닥쳐 느닷없이 문을 열자,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그녀의 부모님은 화들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다이카!”
너무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는 것까지는 그녀의 예상 범주 내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말은 그녀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너 어떻게 된 거니?”
“무슨 일을 한 거야?”
걱정이 담긴 엄마의 물음과, 의문이 가득 담긴 아빠의 물음.
“어?”
이내 다이카는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그녀의 수배 명령을 볼 수 있었다.
[시라이시 다이카(19) - 길드 내 보안 강령 및 각성자 보안법 위반으로 수배 중]
“수배?!”
물론 수배가 불가능할 거란 낙천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곳은 일본, 관료주의의 잔재와 인맥, 유착 관계란 게 뭔지 제대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활용되는 나라였으니까.
‘없는 죄도 만들어 내서 수배를 내릴 줄은 알았지만, 너무 빠르잖아!’
하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수배가 내려질 줄은 몰랐던 다이카.
그녀는 이제 가족을 데리고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내리고 곧바로 집에서 나가려고 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서 가족이 휘말리는 일은 피해야……!’
그러나 그때, 그녀의 손을 붙잡는 거칠면서도 따뜻한 손이 있었다.
“다이카, 일단 자수부터 하자.”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그녀의 부친, 시라이시 쥰페이.
“아빠, 나는 지금 죄를 지은 게 아니라……!”
“죄를 지었건, 아니건 중요한 건 지금 네가 쫓기고 있다는 거란다. 일단 오해를 풀어야지.”
쥰페이는 지금 다이카가 무언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너무 부풀려져서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자신과 달리 당당하고 거칠 것 없는 그의 딸은 자신이 지은 잘못이 있다고 해도 도망칠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너는 결백할 거고 억울함도 있겠지만…… 제대로 마주 보고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단다.”
“…….”
평소라면 어느 정도 귀담아들을 말이고, 다른 경우라면 한 번쯤 고려해 볼 법한 설득이었지만 지금 다이카의 상황은 그런 형편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진짜 죽이려고 쫓아오는 상대가 있다고!’
다이카는 여기선 매정하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쥰페이의 손을 뿌리쳤다.
타악.
비록 양손으로 잡았다고 하더라도, 방심한 중년의 남성과 떨치려고 마음먹은 젊은 A급 각성자의 힘은 차원이 달랐다.
“끄으윽.”
쥰페이의 손은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고, 그 과정에서 다이카의 힘이 조금 과했는지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미, 미안해. 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난 여기에 안 온 거야! 알겠지? 난 여기 안 왔다고 해야 해! 그래야 안전해!”
타앙.
다이카는 곧바로 집의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쥰페이는 다이카가 떠나가고 굳게 닫힌 현관문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은 매정하게 떠나 버린 다이카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그 의문은 몇 분 뒤 집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사내들을 만나자 곧바로 풀렸다.
한편, 다이카는 부모님의 집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격자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시라이시 다이카! 체포에 응해 주십시오! 당신은 자랑스러운 <부시도 스피리츠>의 일원 아닙니까!”
확성기로 그녀에게 투항을 권고하는 경찰과 각성자들.
“……오지 마! 확 튀겨 버린다!”
다이카는 그들을 떨쳐 버리려는 듯 주위에 큰 번개 줄기를 뿌리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탕, 타앙!
뜨거운 번개 줄기가 뿜어져 나가며 총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울렸고, 몇몇 사람들은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끼고 바닥에 엎드렸다.
“으아악! 피해!”
흔히들 일본인들이 두려워하는 세 가지인 번개, 불, 지진 중 하나인 번개.
물론 대부분 현대인들이니만큼 그런 것에 대뜸 겁을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이카가 쏘아 낸 번개 줄기가 꽂힌 콘크리트가 새까맣게 타들어 간 모습을 보고 나면 누구라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심해! 원래 체포 직전이 가장 주의해야 할 때다!”
경찰들은 주의 사항을 크게 외치며 천천히 거리를 좁혔고, 다이카는 곧바로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내가 범죄자라고 단정하고 있잖아!’
쫓기는 와중에 무슨 탈옥수 같은 취급을 받으니 억울하고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해치거나 할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1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도망가고 하오다의 실체를 까발리고 싶었을 뿐.
* * *
그 시각, 나리타 국제공항 주변의 비즈니스호텔.
[지금,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경찰과 시라이시 다이카와의 충돌 및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라이시 다이카는 현재 여러 개의 법을 위반한 중범죄자로, 시민 여러분들은 가능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발견 즉시 신고를…….]
<아스트라> 길드의 인드라와 찬드라는 지금 TV 화면에 나오고 있는 다이카의 사진과 그녀가 번개를 뿌려 대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모습을 보고 움직임이 멎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글쎄, 뭔지는 몰라도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하긴 잘한 것 같네. 미래를 내다본 그 혜안에 감탄했어, 친구여.”
바스락, 바스락-
인드라는 편의점에서 사 온 비닐봉지에 싸여 있는 샌드위치를 꺼내 통째로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린 뒤, 얼마 씹지도 않고 삼켜 버렸다.
꿀꺽.
“이렇게 음식을 들고 와서 먹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슬슬 바깥으로 나가 보자고.”
“나가자고? 어떤 상황인 줄 알고?”
둘 다 번역기를 가지고 있어서 TV에서 나오는 음성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부가 설명인 자막은 일본어였기에 알아볼 수 없었다.
“추측을 한번 해 보자면 우리들과 함께하기 위해 제안을 전달했다가 그 과정에서 모종의 정치 싸움에 휘말려 패배한 뒤 누명을 쓴 거겠지?”
분명히 헤어질 때만 해도 다이카는 자신만만하고도 힘차게 달려 나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간 건지, 중계 화면에 찍힌 그녀의 달리기에서는 절박함과 다급함만이 묻어 나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뭐, 성과의 찬탈이거나 독자적인 행동에 대한 숙청이겠지. 일본 문화는 잘 몰라도, 상명하복이 중요한 건 알아.”
“그럴듯하군. 나쁜 쪽……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뚜두둑, 뚝.
인드라는 찬드라의 말을 들으며 손목과 손가락의 관절들을 꺾는 등, 몸을 푸는 행동을 했다.
“우리가 대상을 잘못 고른 나머지 우리까지 범죄자로 낙인찍히거나 습격을 당하는 경우겠지.”
“뭐, 길드의 인원들을 데려오지 않아서 다행이군. 너와 나 정도면 문제없이 나갈 수 있으니. 체크아웃을 해야겠지.”
“벌써? 일이 잘 풀리면 어쩌려고?”
어느 정도 싼 값에 체크인한 호텔이었지만, 잠도 자지 않고 나가는 것은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는 찬드라.
“우리에겐 내일이 있지만, 저 소녀에겐 내일이 없어 보여서 말이지.”
“……할 수 없나. 알겠다.”
그러나 인드라가 진중하게 이번 일에 대처하려는 모습을 보자, 찬드라 또한 그의 뒤를 따라 객실에서 나갔다.
* * *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진입하는 대형 도로.
평소라면 공항의 이용객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차량이 수도 없이 드나들었겠지만, 지금은 그 어떤 차량도 이곳을 지나지 못하고 있었다.
파직, 파지직-!
도로의 위에서는 빛나는 섬광이 연신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섬광이 뿜어질 때마다 위협적인 전류가 함께 터져 나왔다.
“젠장!”
타앙!
다이카는 지금, 공항을 앞에 두고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긴말하지 않겠다. 순순히 따라와라, 다이카.”
공항으로 가는 그녀의 앞길을 막아 세운 이가 바로 일본 최강의 각성자이면서, 자신의 능력과 약점 등을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상사인 하오다였으니까.
“헤, 그럴 순 없겠는데.”
“시즈카도 따돌리지 못한 네가 나를 뿌리치고 달아나겠다고?”
공항에 도달하기 직전, 다이카는 그녀의 뒤를 쫓아온 시즈카에게 발목을 붙잡혀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하오다와 거의 늘 함께 다니는 시즈카가 왔다는 사실에 급해진 다이카는 시즈카를 과격하게 제압해야 했고, 그 결과 시즈카를 쓰러뜨릴 수는 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주군…… 임무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바닥에 쓰러진 시즈카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신의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반쯤 검게 타들어 간 팔을 하오다에게 뻗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보다 자신이 완수하지 못한 임무가 더 신경이 쓰이는 듯, 필사적으로 하오다에게 무언가의 대답을 들으려 했다.
“그래, 훌륭했다. 쉬어도 된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하오다의 허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 듯, 감사를 표하며 곧바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정말로 범죄자가 되었군.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여유롭게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을 끊고 하와이에라도 갈 생각은 아닐 테고.”
“나도 몰라.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도 성미에 안 맞아서.”
다이카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을 직감하고, 또 동시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도 밝힐 겸 더 이상 여력을 남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하오다는 다이카가 쏘아 보낸 전격들을 모두 주변의 기물들이나 검을 던져 막거나 흘려 보냈었다.
“하, 진짜! 내가 이 기술을 사람한테 쓰려고 개발한 게 아닌데!”
다이카는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짜증을 내며 온몸에 전류를 휘감기 시작했다.
파직, 파직, 파지직!
사람한테 사용할 정도로 출력을 조절하기 쉽지 않아, 괴수들이나 위력 시험용 표적한테나 쓸 법한 단순 무식한 기술이었다.
“내 별명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진짜 빼도 박도 못하게 됐어.”
우연의 일치로, 다이카는 영의의 뇌신무를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온몸에 번개를 두르는 모습이 마치 뇌신무와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진짜로 라이진이로군……. 저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다니.”
그리고 다이카가 보여 주는 모습에 살짝 감탄하는 하오다.
평소에 불리는 그녀의 별칭은 라이진(雷神), 즉 뇌신이었다.
그리고 현재, 다이카는 온몸에 번개를 둘러 푸르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녀의 등 뒤에는 일본의 전통 회화에 나오는 뇌신의 북처럼 여러 개의 구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후우……! 이 번개도 벨 수 있을까!”
다이카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앞으로 튀어 나갔고, 그 돌진은 총알 이상으로 빠르고 맹렬했다.
“번개 또한…… 가를 수 있다.”
콰앙!
그렇게 일본에서 가장 예리하고 치명적인 검사의 검과 일본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위력적인 뇌신의 격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