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6)
다이카는 하오다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 나머지 팔에 힘이 풀렸고, 환풍구 안에서 균형을 잃었다.
‘이런!’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자세를 바로잡은 다이카였지만, 그 과정에서 아주 작은 소음이 발생하고 말았다.
쿠웅.
“……!”
다이카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고 숨까지 참으며 소리를 죽였다.
그런 다음, 잔뜩 긴장한 그녀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보안 문 내부의 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이 일본 내에서 완벽한 권력 장악과 기밀 유지가 가능해진다.”
‘모르는…… 건가? 대화 중이라서?’
정말 다행스럽게도, 하오다는 회의에 집중하는 듯 이상한 소리를 들은 낌새를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이카는 이곳에 계속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고 또한 나중에 하오다의 앞에 섰을 때 평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나중에 만에 하나라도 이상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어. 육감만큼은 이상하게 발달했으니까…….’
다이카는 도망가야겠단 생각과 함께 곧바로 환풍구를 빠져나가 자신이 왔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환풍구를 원상태로 되돌리고, 주변에 있던 그 어떤 물건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 다이카.
살금- 살금-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고, 소리가 나지 않게 은밀한 움직임으로 올라갔다.
저벅, 저벅.
그러다가 어느 정도 멀어졌다 싶었을 때에는 일반적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타다다다닥-
마침내 뛰어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그녀는 계단을 두 칸이나 세 칸씩 밟으면서 올라갔다.
‘증거……! 지울 증거는?!’
다실에까지 도달한 이후, 다이카는 자신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려 했다.
‘지문? 아냐, 스위치나 전자 장비에 대한 문제는 다 능력으로 해결했어. 지문이라고 하면 벽이나 문 정도. 있을 법한 범위야. 발자국? 어차피 난 아무 데나 돌아다니잖아? 없애지 않는 게 자연스러워.’
아직 들키진 않았지만 들키기 직전의 수준만큼 급박하고 긴장되는, 절체절명의 상황.
초보 좀도둑이나 큰 작업에 들어간 범죄자들이라면 당황하여 실수를 하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다이카는 침착하게 행동하고 다음 움직임을 계획했다.
이내 다실을 벗어나 방범 장치가 달린 문이 가득한 곳에 도달한 그녀는 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좋아, 수상한 부분만 다 지웠어. 이럴 때는 깔끔하게 나가기보다는…….’
그것도, 능력을 발동시키지 않은 채로.
삐이이이이이익-
열기 전 경보 장치를 무력화하지 않았기에, 큰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음에, 시즈카가 반응하여 곧바로 달려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분명 소리가 나는 꾀꼬리 소리마루의 위를 달려오고 있었음에도, 그 어떤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 그냥 지나가려고 해 봤거든? 근데 이게 울리더라?”
“대체 왜 여기로 지나가려 하신 거죠?”
“글쎄? 그냥 여기에 문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보였던 다이카의 돌발 행동들이 있었으니, 시즈카는 또다시 다이카가 무슨 짓을 했구나 하며 넘겨짚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저도 함께 있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다이카의 돌발 행동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시즈카는 이제 붙어서 감시 겸 하오다를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다이카는 지금까지 그랬듯, 시즈카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응? 나 갈 건데?”
뜬금없이 가겠다는 말을 내뱉는 다이카.
“……네?”
지금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이런저런 난리와 무례들을 저지른 것은 생각지도 않는 건지,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어. 나 내일 올래. 밥도 먹었으니까 졸리고. 자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다이카는 자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말을 했고, 시즈카는 그녀의 말에 살짝 화를 낼 뻔했다.
‘그 외의 부분에서는 예의를 지켰다는 건가요?!’
하지만 이내 분을 삭인 뒤,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배웅하기 시작하는 시즈카.
시즈카는 다이카를 문 앞까지 데려다준 뒤 반쯤 내쫓듯 그녀의 등을 살짝 밀었다.
“그럼, 가는 길 조심히 살펴 가시길 바랍니다.”
쿠웅.
겉보기에만 공손하고 예의 발랐을 뿐, 거의 축객령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다이카는 오히려 이런 냉대가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상대방이 자신을 찾으러 올 일은 없으니까.
‘……빨리! 여길 떠나야 해!’
다이카는 문을 슬쩍 돌아본 뒤 곧바로 달려 나갔고, 다시 나리타로 향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야?! 난 그냥 도쿄가 안전하기만을 원했을 뿐이라고!’
물론 도쿄는 안전할 것이다.
하오다가 직접적으로 테러를 하지 말아 달란 요청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옳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잘못하면 가족이 인질로 잡히거나 우리도 정신 나간 테러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거잖아……!’
정확한 내막이나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국제 테러의 표적 선정이나 실행 여부에 자신의 길드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파악한 다이카.
그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세한 사정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폐쇄적이고 하오다 중심의 수직적 분위기가 강한 길드의 특성상, 길드 내의 간부라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간부들이 모두 모여서 말한다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두 아저씨는 애매하고 야이바나 시즈카는 무조건 하오다 편이야.’
간부들 중 그나마 믿을 만한 대상은 료뿐이었지만, 그마저도 불신이 없다 수준이었지 신뢰가 가는 수준은 아니었다.
‘누구까지 믿어야 하지? 료? 그 녀석은 히키코모리라 충성도 별로 없겠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기대할 수준도 아닌데!’
결국 그녀는 직접 만난 건 오늘이 첫 만남인 아스트라 길드의 인드라와 찬드라가 그나마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망명…… 아니, 국외 탈출의 도움이라도 받자. 가족들은…… 남는 가족들은 어쩌지?’
혹시 모를 경우에도 아스트라의 도움을 받으면 도망은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다이카.
하지만 일본에 남을 가족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가족과 그리 화목하다고 할 순 없는 다이카였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인정은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나 휴가 얘기를 자주 했으니까 가족끼리 휴가 간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다소 급하게 가면 사정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의문을 품겠지만 자신이 휴가를 요청해 왔던 것은 사실이었고 휴가를 외국으로 가거나 가족끼리 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으니 그럴듯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일단 부모님 집으로 가자.”
가족이 마음에 걸린 그녀는 공항 쪽이 아닌, 도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편, 하오다는 평소보다 회의를 빠르게 끝냈다.
-뭐, 용건이야 전부 끝나긴 했지만. 아, 식사 때문이야? 하긴 그쪽은 시간이 늦긴 했지?
“……일단 가 보도록 하겠다.”
-그래, 다음에 연락할 때는 시간 좀 골라서 할게.
화상 회의 화면이 사라지고, 하오다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덜컥!
육중한 보안 문을 잡고 그대로 열기 시작하는 하오다.
쿠구구구-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다.”
회의 도중, 이질적인 소리를 듣고 무언가의 기척까지 느꼈었던 하오다.
평소였다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근래에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집착과 광증이 혹시나 싶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칼을 보관해 둔 보관함과 그 주변을 뒤져 보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환풍기도, 아무것도 없군.”
다이카가 환풍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조치를 하고 나갔기에, 침입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지만 의심을 하기엔 충분했다.
‘잠깐, 본래라면 저 방은 완벽한 밀실로 만들었다. 지난여름에 전자 기기가 망가져서 일부를 철거한 뒤 냉각용 환풍기를 설치했고……. 그 이후로, 그걸 완벽하다고 볼 수 있나?’
자신이 있던 방의 보안이 완벽하지 않다는 작은 의심이 씨앗이 되었고, 그 씨앗은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에 갑작스럽게 발아했다.
‘계단이…….’
침입자 확인을 위해 계단들 중간에 설치한 밸런스가 맞지 않는 함정 계단.
모르는 사람은 실수로 걸려 넘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하오다나 시즈카처럼 아는 사람이 본다면 누군가 건드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누군가 왔다 갔다. 그것도, 외부인이.”
이곳의 존재를 아는 야이바와 시즈카는 이 계단의 장치도 알고 있기에 건드릴 일은 없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씨앗에서 발아한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하오다는 올라가던 발걸음을 돌려 아래로 내려갔다.
“육도를 꺼낼 때인가.”
보안 문의 옆, 수많은 칼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을 지나쳐 보안 문의 내부로 들어가는 하오다.
잠시 뒤, 그는 여섯 자루의 검을 가지고 계단을 올라 다실의 바깥까지 나왔다.
‘계단을 제외하면 별다른 흔적이 없다. 사소한 지진이라도 있었던 건가? 어쩌면 요즘 너무 신경이 쇠약해진 건가?’
하오다는 아주 작게, 의심을 거두려 했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남아 있었다.
“나오셨습니까……? 늦긴…… 했지만,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즈카는 여섯 자루의 검, 육도를 꺼내서 바깥으로 나온 하오다를 보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침착하게 평소처럼 대응했다.
“식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혹시 누가 왔다 갔나?”
“그건 어찌……?”
시즈카는 하오다가 왜 갑자기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누가, 왔다 갔냐고 물었다.”
마지막 확인이자, 있을지 모르는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질문을 하는 하오다.
“다이카 씨가, 잠시 왔다가 갔습니다. 주군을 뵙겠다며 응접실에서 기다리다 방금 전 떠나갔습니다.”
방문한 이의 정체에 대해 듣자, 하오다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재빠르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면 될 것을, 여러 번 바깥을 돌아다니고 외출까지 하다가 돌아가는 기행을 벌였지만 평소의 그녀와 별다를 바 없었습니다.”
‘보안장치의 대부분은 첨단 장치다. 전기로 작동하는 전자 장비. 거기다가 여러 번 돌아다녔다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다이카의 옆으로 따라붙었나?”
“지속적으로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 다이카가 방범 장치를 건드린 적이 있습니다.”
시즈카가 곁에 붙었다면 방범 장치를 해제해 주거나 가지 말라고 제지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번은 눈에서 뗀 적이 있다는 거로군.”
집에 온 이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때로는 제지해야 하는 시즈카의 임무.
“그건…… 네, 그렇습니다.”
시즈카는 지금, 본인의 입으로 임무 실패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네 임무가 뭐지? 나의 식사를 준비하는 식모인가? 아니면, 내 주변에 접근하는 존재들을 배제하는 호위인가?”
“……호위, 입니다.”
점점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는 시즈카.
“그런데 식사나 준비하고 있었단 말이지…….”
“……드릴 말이, 없습니다.”
하오다는 시즈카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표정이나 안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야이바는 검이다. 적을 처단할 때만 잘 쓰면 되는 존재이지만…… 너는 날 지키는 갑옷이다. 내가 갑옷을 벗지도 않았는데 갑옷이 스스로 다른 일을 하려고 하나?”
“…….”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무는 시즈카.
“일단, 다이카를 찾는다. 네 처우는 그 이후에 결정하도록 하지.”
하오다는 일단 침입했던 다이카를 찾기 위해 대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말씀은…….”
“찾아와라. 공으로 죄를 씻거나, 죄를 짊어지고 죽거나를 택해라.”
“……네!”
쫘아아악-!
하오다가 두 번째의 기회를 주자, 시즈카는 평소에 입고 다니는 기모노를 찢어 냈다.
그녀가 기모노의 안에 입고 있던 것은,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복장이었다.
흔히 영화에서 나올 법한, 다양한 기능이 있는 슈트처럼 생긴 한 벌 옷.
시즈카는 잠시 그 자리에서 사라진 뒤, 이런저런 도구들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마루이치가의 산하, 아카이가 당주 아카이 시즈카. 죄를 씻기 위해 나서겠습니다.”
“나에게 할 말은 그게 아니란 걸 알 텐데.”
“그럼, 가도록 하겠습니다.”
시즈카는 곧바로 하오다의 눈앞에서 사라졌고, 하오다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래, 나다. 사람 하나만 수배해 주길 바란다.”
다이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녀의 주변을 조여 오는 그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