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화
(5)
옛 방식으로 지어지고 옛 정취를 고스란히 담은 전통 방식의 저택이었지만, 보안도 전통 방식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당장 집주인인 하오다부터가 강한 인물이었으니, 경비병을 빽빽이 세워 둘 필요도 없었다.
거기다가 주위에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하는 그의 특성상 정문 경비 및 방문객이나 기자들을 대응하기 위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경비를 아예 안 세워 두는 수준이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아예 보안이 안 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담장에는 적외선 동작 감지기와 압력 감지 센서가 있었고, 그 민감함의 수준은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질 때 담장 위로 나뭇잎 하나가 스쳐도 무수한 경보음이 들릴 정도였다.
실내에도 이런저런 장치가 있었다.
전력이 끊길 때를 대비해 평소에 충전을 해 두다가 전력 공급이 끊기면 켜지게 되어 있는 비상 조명이라든가, 벽 인근에 설치된 동작 감지기, 언제나 켜져 있는 문 열림 센서까지.
기계로 해 둘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대체한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 보안도 전통 방식대로 하기 위해서인지 담장 사이사이에 못을 박아 두기도 하고 복도의 마루들은 모두 꾀꼬리 소리마루로 이루어져 있었다.
약간의 공정을 통해 누군가가 걸어갈 때마다 소리가 울리게 해 두었으니, 침입자가 있다면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보안들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다소 허점이 있었고, 다이카 또한 하오다의 집 보안을 뚫을 방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과거, 길드의 간부들이 신년을 맞이해 하오다의 집에 왔을 때 동료 중 한 명인 료가 다이카에게 한 말이 있었다.
끼익, 끼익-
복도에서 울리는 꾀꼬리 소리마루 특유의 소리를 배경음 삼아 입을 여는 료.
“잘 들어 봐, 대장 집에 보안장치들이 많지? 근데 그것들, 정작 뜯어보면 별 쓸모 없다?”
“뭔 소리야? 뭐, 옛날 것 좋아하는 취향대로 마루는 꾀꼬리 소리마루로 했네.”
끼익, 끼익-
지금 같았다면 ‘또 헛소리한다…….’라고 생각하며 별 가치 없는 말로 치부하고 넘겼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우정이 너무 짙어지기 전이었기에 시답잖은 말을 어느 정도 존중해 주었다.
“그것도 있지만, 담장이나 문에 경보 시스템이나 감지기…… 뭐 이런저런 물건들이 많더라고.”
“그 정도는 있어야지? 집의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데.”
다이카는 료의 말에 방범 장치가 있는 것이야 별문제 될 것이 없고, 그게 조금 많더라도 부족한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대부분이 전자식인 게 문제잖아. 물론 몇몇 개는 전력 차단에 대비하기도 한 것 같지만, 정작 전기 그 자체를 다룰 수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는 트랩들이야.”
료는 배선에 연결된 몇몇 장치들과 배선이 없는 장치들을 번갈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갔고, 의외로 그럴듯한 소리에 다이카는 이야기를 계속 듣기로 했다.
“……그래서?”
“뭐, 전자식은 그렇게 무력화하거나 무시하고 오면 아무 위험 없이 여기로 진입이 가능하단 거지. 경비도 없겠다, 마루 빼고 주변은 거의 다 전자 장비들뿐이니 마루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안 들키고 지나갈 수 있다고.”
료가 즐겁다는 듯이 웃으면서 이야기할 때, 경비란 말을 들은 다이카는 문득 료의 말에 있는 결정적인 문제점을 발견했다.
“경비가 없는 이유는 신경 안 쓰고? 일본 제일의 검객이 집의 주인으로 버티고 있는데? 본인 자체가 경비인 걸 어떻게 하려고?”
하지만 그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료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에이, 언제 도둑이 집주인하고 싸워서 훔쳐 가나? 없는 틈에 훔쳐 가는 거지. 도둑이 들기에는 너무 좋은 환경이라는 거야.”
강도나, 암살이면 몰라도 좀도둑 같은 경우에는 경비가 없는 만큼 오히려 더 편한 환경이라고 말하는 료.
다이카는 료의 과거를 조금 알고 있었기에, 그가 그런 말을 해도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역시, 옛날에 좀 털어 봐서 잘 아나 보네. 안 그래? 악마 소년.”
과거, 고급 아파트와 저택을 몇 번씩이나 털고 [악마 소년이 불의의 도둑이 되어서 가져갑니다]라는 쪽지를 써 두고 사라졌던 빈집 털이 사건.
료는 그 빈집 털이 사건의 악마 소년이었다.
“흐흐, 어릴 땐 그렇게 먹고살았거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건 능력뿐인데, 어떻게든 먹고살아야지. 그리고 집 안에 꽁꽁 숨겨 둔 현금을 사회에 환원했으니,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됐고.”
“넌 매번 소액으로 훔치지만 않았어도 진작에 경찰에 잡혀갔을 텐데.”
그렇게 다이카와 료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거, 듣자 하니 너무하네. 말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너희는 집주인이 듣는 곳에서 집을 털겠단 얘기를 하냐?”
다른 간부들, 풍림화산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 말에 약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뭐 어때? 올 이유가 없는데. 대장이 집에 금이나 돈다발을 쌓아 놓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래, 그리고 나도 이런 집은 재미없어서 안 털 거야.”
그때는 그렇게 농담 겸 심심풀이 삼아 해 본 이야기였지만…… 이제 와서 도움이 되고 있었다.
다이카는 우선 의심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끼익, 끼익-
응접실에서 곧바로 복도로 나와 소리를 조금 요란하게 내기 시작하는 다이카.
“무슨…… 일로……?”
소리를 들은 시즈카는 곧바로 다이카가 있는 응접실 쪽으로 다가왔고, 이내 복도에서 태연하게 걷는 다이카를 발견했다.
“간식.”
“다과는…… 넣어 드렸습니다만……?”
응접실에 간단한 다과와 차를 이미 들여보냈지만, 다이카의 취향에 맞지는 않았다.
“난 차보다는 주스나 콜라가 좋아. 주방 냉장고에서 가져갈게. 있는 건 대충 아니까.”
실제로 평소에도 다이카의 취향이 차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하오다의 집에는 손님을 위해 여러 가지 음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시즈카는 다이카의 평소 취향과 행동을 고려하고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가 주방으로 갔다 다시 응접실로 돌아갈 때까지 동행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이카의 잦은 외출이 시작되었다.
복도에 꾀꼬리 소리가 울리자, 시즈카가 응접실로 다시 돌아왔다.
끼익, 끼익-
“이번엔 무슨……?”
“나 편의점.”
다이카는 곧바로 조금 떨어진 편의점에서 과자와 간식 등을 사 와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그건…… 준비를…… 해 드릴 수 있는데……?”
“편의점에서 사 먹는 게 특유의 맛이 있잖아.”
편의점을 다녀온 지 10분 뒤, 또다시 복도에 꾀꼬리 소리가 울렸다.
끼익, 끼익-
“무슨 일……?”
“이번엔 화장실.”
5분 뒤.
끼익, 끼익-
“…….”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만 보는 시즈카.
“…….”
다이카 또한 시즈카처럼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마주 보았다.
“왜 아무 말도……?”
“말을 안 하길래 그냥.”
다이카가 침묵에 침묵으로 대응하자, 시즈카는 결국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디를 가는 거죠?”
인내심이 거의 바닥난 건지, 평소의 느릿한 말투가 거의 사라진 시즈카.
“여기, 밖에서 먹을래. 기다리기 심심한데 정원이나 보면서 먹으려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나갈 일이 없겠지요? 그렇죠?”
음료수도 원하는 거로 먹고 있고, 간식도 원하는 걸 사 와서 먹고 있다.
화장실도 다녀왔고 심심함까지 풍경을 보며 해소하려 하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뭔가 용건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시즈카.
시즈카는 다이카의 입에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그녀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음…… 글쎄. 나 슬슬 밥도 먹어야 하는데.”
하지만 다이카는 쉽사리 그렇다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럼 식사 준비를…….”
방 안으로 식사를 준비해서 들여가면 나올 일이 없어지니, 식사를 빠르게 준비시키려 한 시즈카.
“아냐, 괜히 미안하게. 내가 사 먹고 올게. 기다리는 거 생각해 보면……. 아, 피자 시켜 먹을래?”
“아닙니다……. 마음대로 하시죠. 주군께서는 금방 오실 겁니다.”
다이카 본인이 직접 여기서 하오다를 기다리겠다고 했으니 시즈카가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고, 어차피 조금만 더 있으면 하오다도 업무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었기에 시즈카는 그냥 방치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 더 신경 썼다간 위염이 도지겠어…….’
다이카의 자유분방한 행동에 하나하나 신경을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인 시즈카는 그저 방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전 이만…….”
시즈카는 다이카가 아까 주방을 다녀오거나 편의점을 다녀올 때처럼 금방 알아서 돌아오겠거니 생각하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갔네.”
다이카는 복도에 걸터앉아 조금씩 멀어지는 작은 전기신호를 느꼈다.
시즈카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전기신호가 완전히 멀어지자, 다이카는 시험 삼아 복도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여러 번의 소리가 울려도 시즈카의 휴대폰은 가까워지지 않고, 오히려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됐어, 이제 날 피하기 시작한다.”
다이카는 그렇게 집 안의 위험 요인을 멀리 떼어 놓은 뒤, 곧바로 수상했던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대놓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마치 집주인과도 같은 걸음걸이.
과연 수상한 만큼 중간중간에 늦은 밤이 아님에도 경보가 켜져 있는 문이 있었지만 다이카의 능력으로 거기에 들어간 배터리를 무력화시켰다.
이내 그녀는 집의 한구석에 마련된 다실에 도착했고, 그 다실의 벽 아래에 전기가 통하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여기네.”
벽 안쪽의 무언가를 살짝 건드리자, 다실의 한쪽 벽이 위로 천천히 올라가며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드러났다.
다이카는 지하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실에 도달하기까지의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곳은 안전할 거라 생각한 건지 지하로 들어가는 길에는 별다른 보안장치가 없었다.
“……헤에, 대장도 은근 이런 취미가 있었구나.”
상태로 보아 지은 지 제법 된 지하 통로 같았기에 하오다의 의외성이 신기했던 다이카.
그녀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내려가느라 발밑을 조심하지 못했고, 계단의 턱에 걸려 휘청이고 말았다.
툭.
“으앗?!”
타닷, 탁.
잠시 놀라 당황했으나 두세 개의 계단을 연속적으로 빠르게 밟아 균형을 바로잡은 다이카.
“휴. 멍청했네.”
그녀는 잠시 방심했던 자신을 자책하고는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모두 내려가자, 그곳에는 상당히 육중해 보이는 강철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의 양옆에는 검이 보관된 장식장과 큰 박스가 있었고, 뚜껑이 닫히지 않은 박스의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검들이 쌓여 있었다.
‘대장의 취미들이네. 그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간다……?’
보안장치는 없더라도 문을 허술하게 만들진 않은 건지, 문은 굳게 잠겨 있어 차마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열쇠 구멍도 있고…… 다이얼도 있네. 젠장, 옛날 취향이 여기서도 반영된 건가?”
강철문은 전자식으로 작동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다이얼과 열쇠 구멍이 달린 일종의 금고문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문 앞에서 들어갈 방법을 고민하던 다이카.
우우웅-
“응?”
그녀는 문득 아무것도 없이 조용해야 할 지하에서 묘한 소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고개를 들어 소음의 진원지를 바라보자,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환풍기가 눈에 들어왔다.
[20℃]
환풍구의 아래에는 작은 LCD 액정까지 달려 있었고, 그곳에 온도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에어컨의 기능도 겸하는 것 같았다.
“저거다.”
다이카는 아날로그적인 문에 어울리지 않게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되는 환풍기를 중지시키고 그 구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날개가 달린 옛날 환풍기가 아닌, 날개 없는 최신 환풍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째서 이것만 이렇게 허술하게 한 거지……? 혹시 처음에는 이런 게 없었다가 더워서 추가로 설치한 건가? 어쩌면-’
“……렇게 되었다.”
-그런가?
잠깐 환풍기와 그 보안의 취약성에 대한 생각을 한 다이카였지만, 하오다의 목소리를 듣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장 목소리! 다른 목소리도 들리는 거로 봐서…… 통화? 화상 회의? 그런 건가?’
“그래, 그러니 그쪽 부분은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겠지만……. 하나 요청할 것이 있는데, 가능한가?”
-뭐길래?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뭔가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날 그렇게나 가로막은 건가? 진짜 일하고 있고 바빠서 돌아가라고?’
시즈카의 태도에 대한 의문이 풀리려고 한 순간, 다이카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동 지방을 흡수하는 동안, 지금 국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테러 목표에서 일본을 제외시켜 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중에 발생해도…… 아직 우리의 힘이 잘 닿지 않는 북쪽쯤에 해 주면 좋겠군.”
하오다가 지금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관계되어 있고, 심지어 일본에 중단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