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4)
인드라와 다이카의 공식적이지만 공식적이지 않은 만남은 금방 성사되었다.
찬드라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메일을 확인한 데다가, 다이카 또한 메일과 그 내용에 상당히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공항의 지붕이란 다소 생소하고도 위험한 장소에서, 대형 길드의 간부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이 성사되었다.
“반갑습니다, 일본의 젊은 영웅.”
인드라는 공손하게 두 손을 합장하듯 모아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고, 다이카는 그런 공손한 태도에 엉거주춤 상대방의 자세를 따라 했다.
“영웅까진 아닌데……. 아무튼, 대체 왜 만나자고 한 거죠?”
일단 만남을 원했으니 만나기는 했지만, 다이카는 어째서 인드라 정도 되는 인물이 그녀와 독대하고 싶어 하는지 의문이었다.
‘아무리 같은 전격계로 유명하다고 해도 뭔가 다른 생각이 있겠지…… 그래도 길드장인데. 아마 우리 대장의 이상을 눈치챘다든가, 하다못해 실력 교류라든가……?’
다이카는 인드라 정도 되는 거물이 굳이 개인적인 자리를 만들며 자신을 만나러 올 적당한 이유를 생각해 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찬드라가 옆에서 거들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저희 아스트라 길드에서는 아직 테러가 일어나지 않은 일본 최대의 길드인…….”
상당히 사무적이면서도, 뭔가 그럴듯한 명분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말로 시작하는 찬드라.
하지만 그런 찬드라의 노력과 단어 선택이 무색하게 인드라는 곧바로 용건을 얘기했다.
“별건 없다. 단순히 만나러 온 것이니까. 언젠간 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모임을 만들 구성원 하나가 죽고 나니 행동하게 되더군.”
인드라는 미사여구라는 개념을 처음의 존대 표현과 함께 잊은 것인지, 다짜고짜 본론을 말하며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단도직입적인 태도는, 말을 돌려 하는 경우가 잦은 일본인인 다이카에게 다소 어색했다.
“그게 무슨……?”
애초에 내용부터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태도가 바뀌니 더더욱 혼란에 빠진 것이다.
“우선, 협약도 나쁘진 않겠군. 찬드라가 말한 대로…… 상호간 조약도 그리 나쁘진 않겠어. 두 나라 다 습격을 받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야.”
인드라도 지금 자신들이 인도를 떠난 것이 정부와 권력자들에게서 들어오는 귀찮은 요청을 ‘어쩔 수 없이 듣지 못해서 해 줄 수 없었다’는 변명을 만들기 위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절받을 생각으로 굳이 간부를 불러 협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그 말은, 본론이 따로 있다는 뜻인가……요?”
“있긴 하지만 조약을 말한 김에 조약부터 하지.”
두 사람은 진작에 통역기를 준비해 왔기에 의사소통에 지장은 없었지만 대화에는 약간의 지장이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조약이라는 게…… 으음.”
비교적 어린 나이에 길드에 들어와 간부의 자리에 올랐지만 지시를 내리거나 독자적으로 판단해 본 경험이 적은 데다 조약이라는 낯선 상황에 버벅거리는 다이카.
“쉽게 쉽게 가자고, 뜻만 통하면 되는 거잖아. 복잡하고 귀찮은 문제는 나중으로 생각하고.”
인생 경험과 사람을 이끌어 본 실무 경험이 풍부했지만 너무 여유로운 데다 거절받기 위해 무작정 조약 얘기를 들이미는 인드라.
그런 둘의 사이를 중재한 것이 바로 찬드라였다.
“조약은 나중에 논의하고, 진짜 본론부터 얘기하지? 근래에 일어난 습격에 대한 수상함 같은 거. 그렇게 마구잡이로 들이대면 밥 사 준다는 사소한 부탁도 못 들어줄걸?”
찬드라의 개입이 있자, 인드라는 그제야 자신의 용무와 적절한 협상이란 게 무엇인지 제대로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랬지.”
인드라는 조약에 대해 설명할 겸 공항의 옥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현재 국제사회의 흐름, 그리고 거기서 느낀 몇몇 불안감을 이야기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그 와중에 습격받지 않고 넘긴 나라들.
물론 지명도가 없거나 옆에 더 매력적인 타깃이 있다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여기기에는 너무 멀쩡하게 넘어갔다.
이름도 제법 알려져 있고 국토도 넓은 편인 데다 사람도 많아 테러를 일으키기 적합함에도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던 나라들.
주위의 대국으로는 중동, 중국이 있지만 국토가 넓어 우선 목표가 될 법한 인도.
강대한 각성자들이 모여 있지만 발달한 교통망과 인재 풀 덕분에 대형 길드들이 주된 거점에만 모여 틈새를 공략하기 좋은 일본.
그 외에도 여러 나라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옆에 더 좋은 타깃이 있거나 한국이나 중국처럼 이미 한 번쯤 큰 사고를 당해 경계심이 곤두선 나라들뿐이었다.
“그나마 테러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라고 해 봐야 미국이지만 거기는 뭐…… 미국이니까. 사실 습격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뿐이지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얘기를 하러 온 건데…….”
인드라는 미국은 미국이니 그냥 넘어가자며 농담을 했지만, 다이카는 그런 농담을 받아 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럼 머지않아서 일본에도 테러가 일어난다는 건가? 아니면, 이미 뭔가가 진행 중……?”
“응?”
‘젠장, 하필 이럴 때! 왜 하필 지금인 건데?!’
미국이야 나라가 나라인 만큼 틈새를 못 찾아서 넘긴다고 해도,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관동 지방을 담당하던 <쇼군즈>의 수뇌부가 공중분해된 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으니.
다른 때야 모르겠지만 지금은 국가의 치안 유지에 큰 공백이 생겨 있었다.
‘인도는 아스트라나 다른 길드들이 있고, 도시가 한쪽에 몰려 있으니 괜찮겠지만 우리는……?’
자신의 집이야 교토이지만, 가족을 비롯해 옛 친구들과 친척들은 도쿄의 주변에서 살고 있었다.
수도인 도쿄야 어찌저찌 막더라도, 외곽 지역은 다소 소홀할 게 틀림없었으니.
“그 조약, 지금 맺을게! 서로 도우러 가거나 함께 싸워 주는 조건으로!”
다이카는 갑작스럽게 조약을 맺겠다고 소리쳤고, 일이 갑자기 뜻하지 않게 흘러가자 인드라와 찬드라는 당황했다.
이내 서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둘.
‘……진짜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거절받게 하려고 구구절절 설명한 게 오히려 설득이 된 건가? 찬드라, 나 의외로 이런 자질 있는 거 같지 않나?’
‘내가 적당히 떼어 내서 거절하게끔 만들지. 길드의 마스터를 데려오지 않은 걸 봐서 관계가 그리 원활하지는 않은 것 같아.’
찬드라는 이내 적당한 핑계와 명분을 예시로 들며 협약을 맺지 않게끔 하려고 했다.
“두 조직 간의 상호 보호나 협력 등의 협약은 조직의 장이나 그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만이 가능합니다. 당신이 명령을 내렸을 때 그 말을 따를 길드원들이 대부분이라면 모를까.”
인도는 정말 지킬 곳만 지키면 되는 일이지만, 일본의 경우는 얘기가 다른 데다 거리도 상당히 멀었으니까.
협약을 맺었을 때의 손해를 고려하면 자신들이 조금 더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명분이니까…….’
거기다가 여기 온 이유도 거의 진심 없이 단순히 국내의 문제를 잠시 피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정말 문제가 생기면 찬드라가 인드라를 데리고 곧바로 귀국할 예정이었으니까.
하지만 뜻밖에도, 상대방이 협약에 대한 의지가 넘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대장만 불러오면 된다는 거지? 알겠어!”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다이카.
“어, 시즈카! 난데! 대장은? 뭐? 없어? 왜? 맨날 옆에 있잖아!”
비록 꺼림칙하고 치안의 공백을 만든 주범으로 의심되는 하오다였지만, 지금 이렇게 외부 조직과의 협약이라는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으니 그런 하오다라도 있어야 했다.
“그러면…… 내가, 내가 바로 데려올게! 숙소 잡고 기다려 줘!”
거대 길드 <아스트라>, 그것도 단순 간부가 아닌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상대로 존대를 잊고 반말을 다급히 쏟아 낸 다이카.
그녀는 곧바로 공항의 아래로 뛰어내렸고, 이내 번개 줄기를 뿜어내며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이카가 저 멀리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인드라와 찬드라는 시야에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빛줄기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참, 종잡을 수 없군.”
“번개만큼이나 자유분방하고 빠르군. 성격과 능력이 아주 똑같이 됐어.”
말 그대로 번개처럼 달려 나간 다이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찬드라.
그리고 그런 찬드라와 반대로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인드라는 공항의 주변, 버스와 택시가 모여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숙소나 잡을까? 아무래도 정말 협약을 맺어야 할 것 같은데. 위치야 이메일로 알려 주면 되는 거고.”
일이 복잡하게 진행될 것 같자, 찬드라는 머리를 긁적였다.
“터무니없는 조건을 불러서 무효로 돌리면 안 되나? 전력으로 돕는다거나, 우리에게 유리하게 짠다거나.”
찬드라는 어떻게든 협약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었던 건지, 다소 억지를 쓰려고 마음먹었다.
“글쎄? 이미 길드장을 부르러 간 시점에서 그런 행동은 국제 망신일 텐데. 그냥 좀 낮춰서 부르는 건 어때?”
이미 길드장을 부르러 간 순간 이 협약은 공식적으로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인드라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건 나도 알지만……. 젠장, 예산이 또 엄청 빠지겠군.”
그리고 찬드라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에 그런 말들을 내뱉었던 것이다.
“으하하, 조금 빨리 귀국해서 부자들 뒤치다꺼리나 좀 해 주지 뭐. 오늘 부족한 돈은 내일 벌면 되는 일이니까.”
인드라가 본인의 좌우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일이 있으니 오늘 적당히 하자’는 지론을 내뱉자, 찬드라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대신 오늘 식사는 편의점에서 먹어.”
“왜?!”
“예산을 그런 데서라도 깎아야지.”
“내 돈 주고 온 건데?!”
이곳으로 오는 항공기 푯값은 두 자리 모두 인드라가 사비로 지출했다.
“예산은 네 돈으로 메워.”
“너무하네, 그래도 배부를 만큼은 먹게 해 줘.”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라는 다소 무리한 부탁에 인드라가 금방 수긍하자, 찬드라 또한 나름의 정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해 주지.”
참고로 돌아갈 때의 항공기 푯값은 찬드라가 지불할 예정이었다.
* * *
교토.
하오다의 집.
나고야 국제공항에서 교토까지의 거리는 대략 400km의 거리였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달린다면 30분 정도면 도착할 만한 거리였다.
쾅!
“후우, 허억. 나야! 대…… 대장은?”
다이카는 지친 듯 숨을 몰아쉬며 하오다를 찾았지만, 시즈카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안…… 계십니다……. 돌아가세요…….”
하오다가 부재중이란 말을 꺼내며, 다이카에게 돌아가라는 듯 손을 휘젓는 시즈카.
“거짓말하지 마. 대장이 있으니까 네가 여기 있는 거잖아. 나 급해.”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어요…….”
다이카는 상세한 사정을 설명할 시간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급하면 더 서둘러야지! 진짜 엄청난 거니까 불러 줘 빨리!”
거의 생떼를 쓰듯 불러 달라고만 외치는 다이카.
그리고 그런 그녀의 태도에 시즈카가 입가의 미소를 거두고 입을 열었다.
“돌아가라니까? 다이카…… 왜 이렇게 성급한 걸까? 조금 조용히 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평소의 느릿하고 차분한 어조가 아니라, 날카롭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시즈카.
저런 상태일 때의 시즈카가 얼마나 무섭고 잔학한 존재인지 야이바에게 들었던 다이카는 일단 물러서기로 했다.
“……알았어. 대신, 안에서 기다려도 되는 거지?”
다이카가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선택하려는 듯하자, 시즈카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느릿하게 말했다.
“네…… 그래요. 응접실의 위치는…… 아시죠……?”
그렇게 다이카는 시즈카의 감시하에, 응접실로 사용하는 다다미방으로 이동해 거기에 드러누웠다.
“나 잘 거야. 대장 오면 깨워 줘.”
시즈카는 다이카가 여기서 나간다 하더라도 하오다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자리를 비웠다.
“편히 잠들기를…….”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다이카는 이미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헤, 날 너무 우습게 봤어. 지하 공간 어딘가에 전력이 공급되고 있는 건 감지했다고.’
업무나 개인적인 일로 하오다의 집에 종종 왔던 그녀였지만, 기억에 없던 장소에 갑작스러운 전력 공급이 발생한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