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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75화 (275/325)

제275화

(1)

일본, 교토.

일본의 수도는 도쿄이지만, <쇼군즈> 소속이 아닌 각성자들과 청년들에게 있어서 수도와도 같은 도시.

시각상 제법 늦은 밤이었지만 여전히 손님이 오가는 한 선술집의 테이블에 여러 명의 남녀가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은 좁은 자리나 카운터 주변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테이블에는 그다지 사람이 없었다.

거기다가, 그들이 있는 곳 주변에는 TV가 있었고 가게의 사장은 TV의 소리가 잘 들리게끔 볼륨을 높여 놨기에 테이블의 말소리는 주변으로 잘 퍼져 나가지 않았다.

[미국 와이오밍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지난주 수감된 흉악범을 목격했다는 신고가…….]

“요즘, 대장이 너무 이상하지 않아?”

뉴스에서 나오는 보도의 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슬쩍 묻어 두며 말을 꺼내는 소녀가 있었다.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이자, 라이진(뇌신)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시라이시 다이카.

그녀는 지난번 도쿄에서 보았던 살육 장면과 그때 보였던 그녀의 대장, 하오다의 광기가 줄곧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광기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경우, 또는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이 그 광기를 맞이해야 할 경우가 우려되었다.

다이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상당히 티가 났는지, 그녀의 동료들도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다이카 네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해. 물론 대장이 그런…… 과격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 대장은 꽤 전략적인 인물이잖아. 쇼군즈에게 강경 대응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나도 그 현장 사진은 봤지. 본래 아무리 명경지수를 유지해야 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화산과 같은 격렬함과 흉포성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길드의 간부 중 ‘산’의 겐지와 ‘화’의 이오리가 걱정을 덜어 주려 했지만, 그럼에도 다이카는 걱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대장의 모습을 못 봐서 그래. 대장은 그때 정말로…… 모두를 죽일 기세였어.”

다이카가 계속 꺼림칙한 느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자, 과묵히 겐지의 옆에 있던 야이바가 입을 열었다.

“세상은 언제나 피를 피로 씻는 복수와 항쟁의 역사였다. 검을 수련하고 누군가를 이끄는 자로서 주군은 필요한 판단을 하신 것일 뿐. 쇼군즈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고려하면 그게 옳았다.”

야이바의 말에, 다이카는 어느 정도 납득했다.

본래 야쿠자와 각지 불량배 출신이 대부분 섞여 있고, 내부로 갈수록 더더욱 야쿠자 같아지는 <쇼군즈>라면 제압 정도로는 씨알도 안 먹혔으니까.

다이카도 무력 진압의 필요성과 현장의 급박함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 한구석에 존재하는 의문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나도 쇼군즈는 싫어! 엄청 싫은데! 그래도 뭔가…… 꺼림칙하단 말이야…….”

계속되는 다이카의 불안에, 다른 이들은 결국 그녀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받아들이게 하기로 했다.

“자, 자. 그래도 믿고 따라온 세월이 있으니까 그만큼의 신뢰는 보내 보자고. 실수 한 번으로 완전히 못 믿게 된다면 대장도 억울할 거야!”

“그래, 좋든 싫든 우리 대장이잖아. 혹시 알아? 지난번 습격 때에 대한 대장의 복수일지?”

겐지와 이오리는 함께해 온 세월이 있으니 한 가지만으로 너무 단정 짓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며 술을 주문했다.

‘그래도 그때 보였던 모습은 꼭…….’

다이카는 술을 마시지 못함에도 이들 사이에 끼인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안전 문제 때문이었다.

간부들 중 자유분방함은 자신 이상이지만 행동 범위는 최하 중의 최하인 ‘음’의 료와 언제나 하오다의 곁에 붙어 있는 ‘풍’의 시즈카를 제외한 이들은 한국행 이후로 종종 어울리며 함께 다니고 있었다.

료는 뭘 어떻게 해도 방 하나 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안전이 확보된 건물 한 곳에 상주하고, 시즈카는 오히려 가장 안전한 곳인 하오다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간부들도 혼자 다닌다고 쉽게 위험해질 인물들은 아니었지만…… 다이카는 실제 습격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꼭 함께 다닐 실력자가 필요했었다.

그렇게 술 마시는 아저씨들 사이에 끼인 채 안주용 음식만 깨작거리던 다이카.

스윽-

그런 다이카의 앞으로 냅킨이 내밀어졌다.

“……?”

[주군께서 근래에 불안정해지고 과격해진 것은 나로서도 걱정이다. 하지만 언제나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와 가슴속에 품고 계신 신념만큼은 확실하니, 믿고 있어라. 주군의 영특했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냅킨을 내민 것은 야이바였고, 다소 눌리긴 했지만 시원시원하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쪽지는 그가 하오다에게 가지고 있는 믿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을 다이카에게 얘기하며 그 또한 현재 하오다의 불안과 문제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다이카는 야이바와 주변에 있는 다른 동료들을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대장이잖아. 좀 더 믿어 보자.’

함께한 세월과, 당시 대치한 상대가 적대 세력이었다는 점을 고려하기도 하고, 냉철하고 영리했던 하오다의 옛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믿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믿음과 달리, 하오다의 광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크흐으…… 카아앗! 하오다 네 이놈! 쇼군즈에 단신으로……!”

다다미와 장지문, 족자 등이 걸려 있는 전통적인 일본풍 방.

누가 봐도 일본 전통 가옥의 실내라고 생각할 법한 방의 내부가 모조리 난도질되어 있었다.

촤악.

“크아아아악!”

그리고 방금, 방의 내부에 또 다른 칼자국이 생겨남과 동시에 핏자국이 추가되었다.

그런 난도질과 피 칠갑이 된 방의 바닥에, 양팔로 다다미를 짚어 가며 엉금엉금 기어가는 한 노인이 있었다.

“아파……! 살려 줘…… 칸쥬로오~! 야마모토! 아무나……!”

“전부 죽이고 왔다.”

노인은 잠옷 대용으로 유카타를 대충 걸치고 있었고, 상당히 격한 몸부림을 했는지 그마저도 다 벗겨져 있었다.

그런 노인의 등 위로, 검의 날이 서서히 다가와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차가운 금속 재질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검에 등을 찔리는 순간 따뜻함을 느꼈다.

푸욱.

“흐어억?! 어……어억……!”

노인의 등에는 기세등등한 부처의 문신이 있었지만, 나이 들고 쪼그라든 몸에 맞게 문신 또한 수축되고 모양이 바뀌어 마치 고행 중인 승려와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부처의 몸에 정확히 박힌 칼날이 붉은 피를 새어 나오게 하여 부처의 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촤악!

검을 뽑음과 동시에 크게 휘둘러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는 한 남자.

남자는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피와 살, 뼈와 지방을 묻히고 갈라내며 이 방에 왔다.

경비 서는 이들을 베고, 순찰 도는 이들을 베어 내고, 상주하는 이들, 경호를 위해 배치된 이들을 베어 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침입했다면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살육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건물 안에 있었지만 전투 능력이 없는 이들, 싸울 의지 없이 투항하는 이들, 심지어 오는 길에 자신을 본 사람들까지.

그 과정에서 수십의 찌르기, 수백의 베어 내기, 수백의 쳐 내기를 거치며 차가운 금속이 점차 따뜻해져 이내 찔리는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 버린 검.

그런 검이었지만, 수많은 충돌에도 칼날에는 이가 나가거나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처음 뽑았을 때처럼, 서늘한 예기를 자랑하며 은은한 살기까지 풍겨 나오는 하오다의 검.

단 한 번 휘둘러 핏물을 털어 내는 것만으로, 검에 담긴 수백의 살육과 그 흔적이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곳은 <쇼군즈> 길드의 마스터, 시마무라 겐의 자택이었다.

시마무라 겐은 야쿠자 시절부터 번화가인 롯폰기에 위치한 아파트 한 층을 통째로 소유해 집과 사무실을 포함한 여러 목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길드 마스터가 되고 돈과 권력을 더욱 틀어쥐게 되자 아파트 건물 자체를 사들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파트는 조금씩 요새화되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제2의 길드 본부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겐이 사용하는 한 층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정예 길드원과 간부들이 가득 들어차 교대 근무를 서는, 불야성과도 같은 <쇼군즈>의 진정한 최후의 보루.

본부보다 더욱 보안이 강한 건물이자 공성용 요새였으나 하오다가 단신으로 함락시킨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하오다는 건물 한 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도륙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아직 부족해.”

그는 이미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겐에게 또다시 검을 휘둘러 그를 참수했고, 지금까지 흘러나오던 것과 비교도 안 되는 기세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을 보았다.

심장에서 펌프질해서 몸의 구석구석에 보내야 하는 혈액과 산소들 중 가장 신속하게 도달해야 하는 부분인 뇌.

그런 만큼 뇌로 보내는 혈액은 빠르고 강하게 갈 수밖에 없었고, 평소 혈액들을 운반해 주던 통로인 동맥의 다음 부분들이 사라지자 혈액들은 갈 곳을 잃고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슈아아악-

검과 다른 물체들의 마찰로 인한 소리가 아닌, 액체가 빠른 속도로 뿜어져 나올 때 들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바닥을 조금씩 적셔 가는 혈액을 본 하오다의 입가에는, 아주 작은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하아…….”

이내 만족한 듯 한숨을 내쉰 하오다는 겐의 시체를 지나갈 때 발을 크게 들어서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시체에 닿기도 싫다는 듯이 시신을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고 피를 흡사 흙탕물 웅덩이처럼 생각하는, 옷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 땅에 있는 무언가를 피해 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하오다는 자신이 베어 내고 도륙 낸 시신들을 그렇게 묻으면 안 되는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건물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에 바지에 추가적으로 묻은 피는 없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전신이 수많은 살육을 거치는 과정에서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다만 머리와 얼굴만큼은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피한 건지 목 위로는 깨끗했지만.

그는 1층으로 내려와 구석에 놓인 가방을 집어 들었고, 그 안에서 긴 비닐을 꺼냈다.

둥글게 말린 그림이나 포스터, 또는 우산을 보관할 때 쓸 법한 긴 비닐봉투.

하오다는 그 비닐봉투 안에 수없이 많은 피를 묻혔던 검을 넣었고, 그 가방 안에 있던 다른 다섯 자루의 검과 함께 보관했다.

“……됐군.”

그가 보관 중인 검들 중 피를 묻히지 않았던 검이 없었던 데다 조금 전까지 사용했던 ‘인간도(刀)’ 또한 피를 털어 낸 데다 내려오며 물에 한번 씻어 냈다.

하지만 하오다에게는 그것마저도 더러운 것이라 생각되는 건지, 칼집에 넣고 비닐에 포장하기까지 한 것이다.

“옷이 이렇게 더럽혀지다니, 너무 대책 없이 날뛰었나? 뭐…… 어찌 되었건 나는 아직 유능한 부하이니 은폐해 주겠지.”

하오다는 자신의 배후에 있는 인물의 능력과 자신의 능력을 믿고 태연하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챙긴, 깔끔하게 세탁되어 있던 양복으로 갈아입는 하오다.

양복의 사이즈가 살짝 작고 기성품인 것처럼 일부가 조금 답답했지만, 비닐에 포장되어 깔끔하다는 확신을 주는 옷은 이것밖에 없었다.

“야쿠자 놈들이 입은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깨끗이 세탁한 옷은 죄가 없지.”

하오다는 그렇게 정장을 챙겨 입은 뒤, 정장에 어울리지 않는 더플백을 어깨에 메고 유유히 범행 장소를 떠났다.

그런 그의 모습이 CCTV에 목격되어 기록되고 있었지만, 그 기록은 머지않아 누군가에 의해 파기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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