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3화
(24)
한창 사랑을 받던 아이가 동생이 생기고, 그 동생이 자신에게 오던 사랑을 모두 빼앗아 가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자신의 동생을 질투하거나, 그래도 동생이니 어쩔 수 없다며 넘어가거나.
어지간해서는 그렇게 될 것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자의식이 성숙해질수록 후자의 경우가 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고 예측하기 힘든 만큼 종종 질투…… 때로는 살의까지 치솟기도 한다.
전직 왕실 수호 기사 메리 클리어워터가 바로 그 경우였다.
겉은 어려도 성인인 메리가 그렇게 쉽게 이성을 잃고 폭주한 것이 이상하겠지만, 그녀의 정신 상태는 상당히 옛날부터 불안정했었다.
12세에 가족을 잃고, 그 충격과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성장을 멈추어 가족을 잃었던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으로 시작된 성장의 정체였지만,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그것이 그녀에게 애정에 대한 갈망을 유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메리에게 그런 애정을 준 것이 바로 왕실과 여왕이었다.
그렇게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메리였지만 경호에 집중하게 되면서 대외적으로 나설 수 없게 되었고, 그런 만큼 교류도 한정되었다.
은둔하지 않았지만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게 된 메리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원래 친구나 가족은 없었고,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왕가의 인물들과 수호 기사라는 직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쏟아지던 사랑을 갑자기 다른 곳에서 나타난 외부인인 티모르가 채 갔다.
이웃집에 이사 온 가족의 아기가 부모님의 관심을 빼앗아 간 상황.
거기까지는 ‘그래도 우리 집 애가 아니니까’ 싶은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웃의 아이를 우리 집에 입양한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 그것에 대한 파티를 열며 공개 석상에서 그 아이를 호적상 첫째로까지 만들어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어른들 틈에 안긴 아기가 자신에게 혀까지 내민다면…… 제정신으로 버틸 아이는 없을 것이다.
메리는 그렇게 이성과 평정을 잃었고, 무의식중에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죽인다면, 아예 없애 버린다면…… 공식적인 수호 기사 자리, 여왕 폐하의 총애, 모두의 관심! 그 자리는 내 것이 되지 않을까?
그녀가 무의식중에 내린 결론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고, 그때부터 메리는 더 강해지기 위해 범죄의 길에 발을 들였다.
-티모르를 죽인다. 그것만 해낸다면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갈 거야.
마력량을 늘리기 위해 불법 마력 주입 시술도 받았고, 그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적으로 삼았던 테러 조직에도 들어갔었다.
그런 방황의 세월 도중, 그녀를 찾아온 한 남자와 노인이 있었고…… 남자는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남자…… 선지자는 약속을 지켰다.
암시장에서 할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마력량의 증대, 조잡한 사제 장비가 아니라 장인이 만든 게 틀림없는 양질의 장비들.
그렇게 준비의 세월이 지나고, 선지자는 그녀의 지금껏 해 준 노력에 보답하듯 의문의 약물을 그녀에게 주었다.
“이게 뭐야? 먹는 종류의 강화제는 없는 걸로 아는데.”
선지자가 건넸던 종이봉투 속 내용물을 들여다보며 의문을 표한 메리.
“특수한…… 약물이지. 단순한 마력량 증대가 아닌…… 사용자의 잠재 능력과 재생력, 체력을 극한까지 일깨워 주는 전투용 자극제랄까.”
메리는 지금껏 들어 봤던 그 어떤 도핑용 약물보다 뛰어난 성능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극제? 그런 게 왜 암시장에 안 풀리고?”
“일단, 쓰면 부작용이 엄청나. 말이 자극제일 뿐이지 실제로는 수명을 깎아 내는 물건이야. 노화를 강제로 촉진한달까? 1시간 잘 싸우자고 10년을 날릴 순 없잖아.”
선지자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탈진, 영양실조, 노화, 각혈 등 여러 가지 치명적인 부작용을 언급했다.
“그리고 만드는 것도 각성자를 이용해서 만드는 거라, 생산량이 적고 정보가 안 알려졌어.”
“근데 그걸…… 아. 당신이면 뭐…….”
메리는 상대방이 어떤 인물인지를 깨닫고 곧바로 납득했고, 선지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왜 벌써?”
선지자가 자신에게 이런 약물을 지원하면서까지 복수에 등을 떠미는 이유를 묻는 메리.
그녀는 복수를 준비하며 토르와 연관되면 감정이 격해졌지만, 적어도 날뛸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할 줄은 알았다.
구분할 줄만 알았지, 멈추지 않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었다.
“텐징이 잡혀갔고……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려고 하거든. 나연과 같이 행동해. 싸움이 끝난 너를 데리고 빠져나올 요원이니까.”
“……알았어.”
메리는 자신의 복수에 누군가가 끼어든다는 것을 허용하기 싫었지만,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쓰러져 허망하게 끝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런던 습격 당일, 메리는 약물의 도움으로 성장한 모습을 한 채 런던 시내에 나타났었다.
“……진짜 신기하네.”
메리와 함께 왔던 나연은 명품 선글라스를 낀 채 메리의 변한 모습을 쳐다보았다.
“뭐가? 약의 효과가? 너도 달라고 하면 줄걸? 대신, 쓰고 나면 아줌마가 되겠지만.”
나연의 반응에 메리는 양팔을 펼쳐 보이며 성장한 자신의 몸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드디어 속옷을 위아래로 입을 수 있게 됐다고! 뭐…… 오래 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인생에 한 번쯤, 어때?”
성장에 대한 갈망도 상당했었던지, 메리는 런던 시내에서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었다.
“아니, 그건 싫은데요……. 그보다 이만큼의 미녀가 될 재목이었는데 왜 줄곧 그런 꼬마의 모습이었을까요, 언니?”
실제로 지나가던 이들 중 메리의 외모에 눈길을 주는 이들이 많았고, 메리도 그런 시선을 즐기는 듯했었다.
하지만 나연이 언니라는 말을 붙였음에도 꼬마란 말이 나오자, 메리는 눈에 살기를 품고 나연을 쳐다보았다.
“입 조심해. 지금 나는 그 근육 돼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쐐애애애-
메리의 왼 손가락에는 마치 치과에서 사용하는 드릴 같은 소음이 발생하고 있었고, 그 모습에 나연은 움찔하였다.
“그건 힘들……. 아무튼, 난 숨어 있을 테니 숨은 곳 주변은 적당히 해 줘요.”
나연이 몸을 숨기고 메리가 그 위치를 확인한 이후, 평화롭던 런던에 광풍의 재앙이 발생했다.
미리 경고하듯이 런던의 구름을 치워 뒀던 덕에, 전전긍긍하며 대기하던 토르는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토르가 마주한 것은, 자신이 함께 일했던 작지만 당돌한 꼬마가 아닌 귀신 같은 모습의 여성이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풍에 휘날리는 긴 금발 머리는 하늘로 솟구쳤고, 눈에는 살기와 원한만이 가득 담겨 마치 저주를 품은 유령을 보는 기분을 느낀 토르.
그는 외모는 달랐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 적 있었다.
“……메리?”
“잘 알아보네, 아이슬란드 촌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미인의 모습이 어때?”
메리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토르를 노려보았고, 토르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빈손은 아니었다.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과거의 동료와 싸우는 건 안타깝지만, 이제 더 이상 불안할 필요는 없겠지.”
토르는 어깨를 돌리더니 손에 든 우산을 바닥에 내리쳤다.
콰릉!
한차례 섬광과 천둥소리가 울리고, 토르는 어느새 도끼로 변한 우산을 쥐고 있었다.
“공 좀 들였네. 근데 멋지다고 강한 건 아니란 걸 모르나 봐?”
“그건 해봐야 알지!”
바이킹식 도끼를 양손으로 쥔 채 광풍에 맞서 달려드는 토르와, 석재를 아무렇지 않게 갈아 내는 칼바람이 맞붙기 시작했다.
수차례의 낙뢰와 수차례의 광풍이 몰아치고 난 이후에, 토르는 피투성이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각성자가 되기 이전에도 엄청난 힘을 가진 스트롱맨이었던 토르였지만, 그는 번개를 다룰 줄 아는 각성자였지 강화계가 아니었기에 장기전으로 가자 체력과 신체의 한계에 부딪혔다.
“빌어먹을…… 어째서 구름이 없는 거야……?”
A급 각성자이자 본래도 강인했던 토르가 메리보다 빠르게 체력의 한계에 부딪힌 이유는 무리한 능력의 발현.
평소라면 우중충하니 구름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테고, 구름 속에서 인위적으로 낙뢰를 불러오는 게 특기인 토르라면 그 구름을 전력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따라 구름 하나 없이 쨍쨍한 런던의 시내는 그의 장기인 낙뢰를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토르는 본인의 몸을 혹사시켜 가면서 최대한의 출력을 뽑아낼 수밖에 없었다.
“연구를…… 많이 했군…….”
털썩.
토르는 최후의 말과 함께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고, 그 모습을 본 메리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아, 하. 하하! 아하하하하! 꺄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 하-하아……아. 하하…….”
처음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뱉는 헛웃음이었다가 이내 광기와 희열에 가득 찬 웃음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다시 허탈함에 내뱉는 힘없는 헛웃음.
“……이제 의미가 없어졌네. 모든 걸 부쉈고…… 이미 여왕님은 날 싫어할 거고. 이 녀석은…… 아직 안 죽었지만…… 죽이면, 정말 모든 게 제대로 끝날까……?”
메리는 이미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이런 복수가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혈기와 광기에 휩싸여 저지른 짓이 너무 많아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복수에 집착하며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수명까지 깎아 가며 한 복수가, 이런 결말이라니. 얻은 건? 있나? 잃은 건…… 너무 많은데……. 윽.”
메리는 토르를 내려다보고, 황폐화된 런던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보는 행위를 반복하다가 이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메리가 약해진 것을 본 원탁의 기사들과 리버풀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재빨리 진입하기 시작했다.
철그럭, 철걱-!
이름답게, 정말 갑옷을 입고 돌격하는 원탁의 기사들.
“명예와 영광을 위해!”
그들은 비틀거리기 시작하는 메리를 진압하고 토르를 구하기 위해 빠르게 현장으로 돌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싸움에 끼어들 수 없었던 이유는, 토르의 전격이 격렬해지면 피아 구별을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인들이 제작한 갑옷에 의지해 돌격하는 전술을 주로 삼는 그들로서는 번개에 더욱 취약하였고, 갑옷을 벗더라도 메리와 맞서 싸울 능력도 되지 않았기에 대기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메리에게 닿기 직전에, 바닥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취이이이익-!
“멈춰라!”
흰 연기를 비롯해 옅은 노란색이나 녹색의 연기가 치솟아 오르자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물러선 각성자들.
그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연기의 진원지인 바닥은 이미 녹아내리고 있었다.
“부식성 물질인가?!”
오랜 세월 버텨 온 보도가 물에 젖은 설탕처럼 녹아내리는 것을 보자 당황하는 각성자들.
그리고 그런 연기의 틈에서 한 그림자가 메리 쪽으로 다가갔다.
“오오! 누군지는 몰라도 용감하군!”
각성자들은 그 그림자의 주인이 자신들의 아군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림자는 토르의 머리를 내리친 뒤 메리를 들쳐 메고 사라졌다.
“적이었다!”
각성자들은 이내 연기를 애써 무시하고 곧바로 내부로 돌입했지만, 그곳에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숨이 끊어진 토르의 시체와 의문의 편지 봉투만이 남아 있었다.
“이건……?”
원탁의 기사의 대표인 퍼시발이 봉투를 들어 올려 주의 깊게 살펴보려 했지만, 그들이 뚫고 들어왔던 연기는 생각보다 더 위험했다.
털썩!
돌입 과정에서 연기를 들이켰던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퍼시발 본인도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하여 그는 물러나라고 소리치며 현장에서 벗어났다.
“물러나라! 전부 물러나!”
그렇게 런던 습격 사건은 범인을 잡지도 못하고, 영국의 영웅이자 국가 최강의 각성자였던 토르만을 잃은 채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