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23)
제자인 장우형의 천진난만함에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쉬는 독고휘나, 세진의 기습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받는 혁련운 등을 뒤로하고 지구로 돌아온 영의.
그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럼 조심히 가……. 없어졌네.”
예의상 도중까지 함께 왔던 용신에게 인사라도 하려고 슬쩍 돌아봤지만, 이미 용신은 사라진 후였다.
“나 참.”
영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고,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없는 동안 지구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져 있었다.
[영국에서 일어난 습격으로 ‘토르’ 사망…… 습격자는 추가 범행 예고까지]
식당의 TV에서 얼마 전, 이상기후가 일어났다는 영국에서 유명 각성자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 * *
영국. 런던.
영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런던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습격…… 일종의 테러 사건이 발생했었다.
예로부터 테러를 종종 겪어 왔던 영국이었다.
당장 런던만 해도 지하철 폭탄 테러, 웨스트민스터 테러, 런던 브리지 테러 등 여러 번의 굵직한 사건에 휘말려 왔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의 테러는 지금껏 겪어 온 것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폭탄이나 칼, 총기 등의 인간으로 초래되는 테러 행위가 아닌 자연이 도시를 공격하려는 듯한 거대한 재해.
얼마 전 맑게 개었던 하늘이 마치 예고라도 된다는 듯, 다른 지역은 모두 평온하거나 일상과 다를 바 없었던 것에 비해 런던만이 엄청난 광풍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이클론, 허리케인, 토네이도, 태풍 등 수많은 바람 관련 자연재해들이 있지만 그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광풍.
그런 광풍의 중앙에, 현직 영국 왕실 수호 기사와 전직 왕실 수호 기사의 싸움이 있었다.
“꺄하하하! 어때? 널 죽이기 위해 단련해 온 이 칼바람의 위력이!”
지금의 왕실 수호 기사 ‘토르’가 있기 전, 영국 왕실에게 인정받고 그들의 호위였던 각성자 메리.
메리는 평소의 소녀 모습이 아니라, 거기서 조금 더 성장한 10대 후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소녀 때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 알아보기 어려운 건 아니었기에 그녀를 마주한 이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커졌다.
“……미쳤군.”
그리고 메리의 뒤를 이어 수호 기사의 자리에 오르고, 함께 일하다가 그녀와의 갈등 및 충돌 이후 홀로 수호 기사의 자리를 맡고 있는 토르.
“그만큼 엄청나다는 말이지? 고마워!”
“넌 정말로 미쳤어. 한때 네가 지키던 곳을 이렇게 파괴하다니.”
“뭐 어때? 네 고향도 아니잖아! 그리고, 난 너만 죽이면 된다고! 너만 없어지면 나머진 해결할 수 있어!”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입고 바람에 날려 가지 않게 자세를 잡고 버티는 토르와 광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머리칼 하나 흔들리지 않는 메리.
“대체 어떻게 저런 힘을 얻은 거지? 나 하나 죽이겠다고 무슨 짓까지 한 거냐……!”
엄청난 바람에 차가 끌려가고 바닥의 연석들이 들썩이거나 날아오르는 와중에도, 런던의 하늘은 쾌청했다.
습격 전, 메리는 자신의 상사이자 스폰서인 선지자에게서 어떠한 물건과 지령을 받았다.
“텐징이 수감당해서, 어쩔 수 없이 너한테 일을 맡기게 됐지만…… 네가 좋아할 만한 일이야.”
“난 대부분의 일을 하기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란 거 잘 알고 있잖아?”
텐징의 수감 이후, 메리를 직접 찾아온 선지자.
“영국, 런던. 임무는 암살. 뭐…… 암살이 아니라 그냥 피살도 나쁘진 않겠지만 일단 임무로 누군가를 죽이는 거니까. 암살이 어울리겠지?”
메리는 위치와 임무를 듣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뭐…… 누군데? 원탁? 리버풀? ‘토르’는 아닐 거 아냐?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1:1로 이기기는 힘들단 거 알고 있어.”
“토르가 맞아. 그리고……그걸 돕기 위한 물건도 구해 왔지.”
선지자는 메리에게 종이봉투에 싸인 무언가를 건넸고, 메리가 그것에 대해 묻자 선지자는 비장의 수단이라고 답해 주었다.
“이걸 쓰면…… 토르를 이길 수 있다?”
“그래, 그리고 그다음에 너에게 돌아가게 될 명예와 영광…… 사랑…… 칭송…… 전부 네 것이 될 거야.”
“칭송…… 사랑……. 그래, 전부 내 게 될 예정이었지……!”
메리는 선지자가 건넸던 종이봉투를 잡아채 난폭하게 포장을 찢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지자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텐징과 샤오롱의 고용 조건이 ‘복수’였듯이, 메리의 고용 조건도 비슷했다.
그런 메리의 복수는 앞선 둘과는 달리 상당히 특이했는데, 텐징과 샤오롱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복수하기를 원했다면 메리는 정당하게 맞붙어 꺾기를 원했다.
그 수단으로 범죄 조직을 택한 부분에서부터 그녀가 멀쩡한 사고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어딘가 결여되어 있었다.
몸이 자라지 않게 되어 받게 된 타인의 눈빛에서였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모습에 실망하게 된 것이 자괴감과 피해 의식으로 변하게 되어서였는지.
하필 사고로 가족도 잃었던 그녀는 극도로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다.
10대까지는 그나마 정상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20대에 들어서며 조금씩 마음이 병들어 가던 메리.
2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각성자들이 나타나게 되며, 능력을 각성한 그녀는 강력한 바람 제어 능력을 선보였다.
직경 500미터라는 상당히 넓은 공간에서, 그녀는 그 공간의 내부를 산들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장소에서 거센 칼바람이 몰아치는 위험한 장소로 바꿀 수도 있었다.
단순히 무언가를 쏘아 내고 파괴하기만 하는 행위보다는 더욱 폭넓고 의미 있어 보이는 능력이었기에 영국 왕실은 그녀를 데려가 왕실 수호 기사로 임명하였다.
수호 기사라는 직책과 살상력이 그리 크지 않은 바람 제어 능력은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 인물의 주변 공간에서 국소적으로 몰아치는 강한 바람은 총탄을 비껴 나게 만들 수 있었다.
연설 자리 등에서 청중이나 관계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주위로 날아드는 물체들은 강한 바람에 휘말려 움직임이 크게 뒤틀리게 되는 것이다.
메리와 그녀의 능력은 왕실에서 대접을 받았고, 메리 또한 그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자신의 외모와는 관계없이, 능력만으로 대우해 주고 사랑해 줬으니까.
보안상 그녀의 모습과 직책을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메리는 이해했다.
적어도 여왕과 정부의 인물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고 대우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충분했으니까.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충분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요 인물의 경호를 하던 어느 날, 바람 제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강화계의 각성자를 동원한 극단주의 테러 조직의 자폭 테러.
“각성자들만이 새로운 세계의 질서와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구시대의 왕정은 사라져라!”
각성자 우월주의 단체의 습격.
휘이이이잉!
메리는 가진 힘을 모두 끌어모아 최선을 다해 남자에게 바람을 쏘아 냈지만, 남자는 얕은 물속에 들어간 듯 아주 조금 느려지기만 했을 뿐이었다.
“멈춰어어어어!”
상당히 정예였는지 현장에 있던 경호 인력들을 빠르게 돌파하고 단상까지 올라갔던 테러범은 갑작스럽게 난입한 누군가에 의해 저지당했다.
“으하하! 으랏차!”
번개를 뿜는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한 남자.
남자의 야구방망이는 테러범의 머리에 직격했고, 테러범은 그 자리에서 마비당하며 정신을 잃었다.
경호 인력들이 막아 내지 못했던 남자를 막아 낸 지나가던 시민.
그 시민이 바로, 아이슬란드에서 영국으로 유학 왔던 티모르 호베르센이었다.
여왕을 구한 영웅이 된 그는 곧바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스타가 되었고, 이내 대외적으로 왕실 수호 기사라는 직책까지 받았다.
그 서훈식은 영국 전역에 생방송되었으며, 메리는 그 순간에도 남몰래 숨어 서훈식을 경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메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사랑을 주던 사람을 지킬 수 없을 뻔했는데 티모르가 그런 비극에서 구해 준 것이었으니까.
초기에는 그와 그녀도 상당히 친분을 유지했었다.
총기 저격보다 요원 침투가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 테러범들이 암살자들을 각성자로 구성하였고, 그들의 접근을 메리가 먼저 감지하여 경고하고 티모르가 그 지시에 움직이는 협동을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메리의 활약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부족하고 정보가 밝혀지면 위험했기에 밝힐 수 없었고, 티모르의 활약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어떤 암살자가 어떻게 오더라도 바로 반응해서 대응하는 엄청난 실력자라며 칭송받고, 수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가져가기 시작한 티모르.
그런 티모르의 인기는 백작 작위 수여와 영국 국적 및 시민권 수여로 정점을 찍었다.
“티모르 호베르센, 그대는 이제부터 햄스워스의 이름을 받아 왕실의 귀족과 영국의 국민으로서…….”
티모르가 백작 작위를 내려받던 그때, 여왕의 한마디가 메리의 마음에 균열을 만들었다.
“언제나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가장 총애하는 기사이자 첫 번째 수호 기사여.”
그 당시에는 티모르가 전 국민들의 인기 스타였기에 그의 작위 수여식 또한 전국에 방송되고 있었다.
여왕은 메리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 그를 첫 번째 기사라고 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대외적인 왕실 수호 기사 1호는 티모르였다.
하지만 메리는 왕실의 인물…… 특히 여왕에 대한 애착과 충성이 상당했기에 그 말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가장 총애받는 게 아니었어?’
그 충격도 잠시, 겉모습은 어리더라도 정신은 성인 여성이었던 메리는 그래도 방송 중이니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진짜 문제는 수여식 이후, 경호실의 인원들과 작은 연회를 거친 티모르와의 대화에서 발생했다.
“이야, 메리. 이것 봐! 훈장이야! 거기다가 작위까지! 나 진짜 귀족이래! 연금도 있대!”
“……축하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몸 좋고 힘 많이 센 대학생에 불과했던 티모르.
그랬던 그가 지금은 영국 귀족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많이 흥분한 건지 훈장과 제복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연회를 하며 술도 마셨겠다, 작위도 받았겠다, 한참을 신나 하던 티모르는 문득 뭔가 생각난 건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바로잡으며 메리에게 말을 건넸다.
“으흠, 작은 아가씨? 미안하지만 잠시 차 한잔을 하는 시간을 가져도 되겠소? 나는 영국 신사라서 말이지.”
영국식 발음과 함께 신사 흉내를 내는 티모르.
아이슬란드 출신이었기에 영어와 영어 발음 둘 다 어색했던 티모르였기에 그 모습은 상당히 웃겼고, 메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아하하하! 재밌네. 그보다 내가 너보다 연상인 건 알지?”
“겉모습은 그래 보이지 않잖아. 그리고 여왕 폐하도 그 모습을 더 좋아하시는걸?”
실제로 메리의 소녀 모습은 여왕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고, 종종 성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공식 수호 기사인 내가 더 좋으실 거야. 하하하! 이미 다른 사람들은 메리가 아니라 내가, 이 토르가 최고라고 하니까!”
티모르의 말에 살짝 감돌고 있던 웃음기를 싹 지우고 되묻는 메리.
“……뭐라고?”
토르로 이름을 바꿀 생각을 하고 있던 티모르는 메리의 말에 다시 대답해 주었다.
“아, 토르! 알잖아? 천둥번개의 신! 북유럽 신화이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이미 인도에는 신의 이름을 딴 각성자들이 많…….”
“그거 말고. 네가 최고라고……?”
“그래! 이미 내 인기도 최고에, 나만 보면 사인을 요청하잖아! 아마 인기투표를 하면 내가 영국 최고일 거야! 당장 왕실 사람들도 그러는걸!”
티모르는 취기와 흥분, 희열감에 자신감에 가득 찬 말을 꺼냈고 허세 담긴 자기 자랑에 가까웠던 그 말은 균열이 가 있던 메리의 마음속에 불안이라는 물을 끼얹었다.
“아마 여왕 폐하께서도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나를 제일 최고라고 하시겠지! 누가 뭐래도 1호니까!”
티모르의 말이 이어질수록, 메리의 마음속은 조금씩 싸늘하게 식어 가기 시작했고, 균열 곳곳에 스며들어 있던 불안이란 이름의 물이 얼어붙으며 팽창했다.
불안이 팽창하며 커지자 균열은 더욱 커져만 갔고, 이내 메리의 마음은 조각나고 말았다.
“아, 맞다. 그래도 메리의 노고를 잊진…….”
메리의 이성과 기억은 그 이후로 사라졌고, 윈저성에서 열렸던 연회는 성의 반파와 성 주변에 있던 초목 전량 훼손과 시가지 반파라는 결과로 끝을 맺었다.
아주 작은 우연과 별것 아닌 사안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의도하지 않았던 대형 재해가 시간이 지난 지금 더욱 큰 재앙이 되어 런던으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