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1화
(22)
다음 날, 혁련운은 회의를 소집하여 동정호 인근을 조사해 보자는 의견을 냈다.
혁련운의 동정호 재수색 요청에 다른 이들은 의문을 표하고 괜한 낭비라고 생각해 반발했었다.
“이미 찾아본 지역이오. 거기다가, 동정호라니? 그렇게 눈에 띄는 곳에 숨겠소?”
“동네 좀도둑도 그렇게 눈에 띄고 사람 많은 곳에 숨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비야신투의 증언과 옛 경험, 그리고 강시들의 빠른 이동 등의 여러 정황이 설득력을 얻었다.
“혹시 모르니까 찾아보자는 거지! 정 안 되더라도 동정호만 한 곳이면 뭔가 숨겨 놓을 법하기도 하고, 안 그러냐? 크하하하!”
아무것도 없는 먼 지역을 뒤져 보기보다는 확실히 현장 주변을 다시 정밀하게 수색해 보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과 비야신투의 배분에 밀린 무림맹은 동정호 인근을 집중 수색했다.
머지않아 수색에 참가한 비야신투가 숨겨진 기관 장치를 발견하였고, 현재 그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모두 달라붙어 조사 중에 있었다.
동정호 인근, 수색을 위해 파견된 맹의 간부들이 여기저기서 뛰어다니고 고함치는 인부들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동정호에 있었다니. 마교가 뛰어난 후계를 얻긴 했어.”
“저 기관 장치가 놈들의 본거지로 이어지는 단서라는 확증은 어디에도 없지만, 모두가 혼교의 본거지라고 믿고 있다. 확실히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혁련운의 말과 주장이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지자 감탄하는 이도 있었고, 정확한 실체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다만 그들 중 그 누구도 혼교의 본거지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이는 없었으니, 지금까지 혼교를 찾는 와중에 제대로 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내통자들이나 우연으로 찾아낸 분타 수준이었기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기관 장치가 발견되자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편, 정작 수색에 대한 의견을 낸 혁련운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앞에 있는 것은 투명한 병에 담긴 액체.
유리로 추정되는 병의 안에 담긴 액체는 영의에게서 받았으며, 놀랍게도 그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물건이라고 했다.
‘모든 병을 낫게 한다는 신선들의 영약이나 불로불사의 약 같은 거라도 구해 오신 건가 싶지만…….’
약이라는 말에 자신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스승이자 호위인 마의에게 가져가 약간 실험해 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영약처럼 공력 증진에 대한 효력은 없었고, 병에 걸린 동물에게 시험 삼아 소량을 먹여 보아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실험을 모두 해 보았으나, 한정된 양 탓에 제대로 실행하기는 어려웠고 그나마 시행한 것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이성과 감성의 강한 충돌 사이에서 고민하는 혁련운.
실험해 보았지만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았다는 이성, 은인이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영의의 보증이라는 감성.
그 둘의 충돌에 지친 혁련운은 병을 옆에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다른 일부터 하자.”
현재 동정호에서 발견된 기관 장치에 대한 대략적인 보고서의 사본과 다른 보고서들을 들여다보는 혁련운이었지만, 보고서의 글자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투명하고 완전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원통의 유리.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원형 정도야 숙련된 장인이 수십 년간 쌓인 경험으로 제작해 내면 가끔가다 하나씩 나올 수도 있다.
모든 물건의 제작은 대칭과 균형이 기본이었으니까, 수십 년의 경험이 있다면 원도 깔끔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리 또한, 어느 정도 투명한 것은 혁련운도 어렵지 않게 보았다.
서역과의 교역에서 중간이득을 보는 게 마교라는 집단이었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물품을 많이 보았으니까.
유리는 그 가공 난이도와 설비에 비해 만들어지는 수량이 적어 효율상 중원에서는 잘 쓰지 않지만 서역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투명한 것은 혁련운도 살면서 단 한 번 보았고, 대부분은 묘한 녹색이나 투입된 다른 광물의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 귀한 물건에 담아서 가져온 만큼, 설득력도 충분했고…… 또 영의가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대부분 처음 보는 것들이었기에 오히려 자신의 지식으로 판단하는 게 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안 되겠군, 잠시 생각을 좀 해야겠어.”
혁련운은 이내 유리병을 품속에 넣은 뒤,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바깥에 나와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었고, 그 탓에 그의 뒤를 은밀하게 쫓는 덩치 큰 그림자와 그것보다 조금 작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마교의 본단.
혁련운에게 약을 전달해 주었던 영의는 이곳으로 와 혁련무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영감님이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없을걸요?”
영의는 혁련운에게 약을 건네주고 왔다는 이야기와, 그것으로 치료될 거란 말을 전해 주었다.
“고맙네.”
그리고 아들을 살려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기 위해 직접 고개를 숙이는 혁련무강.
“그럼 전 이만.”
“뭔가 감사라도……. 아니, 몸 조심히 잘 살펴 가게.”
혁련무강은 영의에게 감사의 표시로 뭔가 보답하려 했다.
하지만 영의 본인이 그런 것이 필요 없다는 듯 먼저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그저 잘 살펴 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영의는 혁련무강의 집무실 바깥으로 나온 뒤, 그의 옆에 서 있는 용신에게 말을 걸었다.
“진짜 이걸로 된 걸까요?”
“이제 여기서부터가 확률 싸움인 거지. 거의 무조건적으로 유전되던 형질이 약으로 변형될 테고, 열성과 우성 두 인자가 번갈아 가며 유전되기 시작할 거야.”
용신의 전문적인 설명에, 영의는 이해하지 못한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
그리고 영의가 그리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용신은 이내 간단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무조건 유전될 일이 없어졌다는 거지. 젠장, 자꾸 까먹는구만. 너는 설명도 다섯 살짜리 꼬맹이들한테 하듯이 해야 한단 말이지.”
“제가 그래도 다섯 살만큼의 지능 수준은 아닌데요.”
아무리 그래도 다섯 살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 영의는 용신의 말에 곧바로 따졌다.
물론 거의 언제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기에 해 봐야 열다섯 살의 수준의 지식이었지만.
“비유지. 내 나이로 고려해 보면 인간은 전부 다 다섯 살짜리로밖에 안 보여.”
용신은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며 설명했고, 용신의 나이가 나오자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세히는 모르지만 따져 보면 공룡급 이상으로 나이가 많은 상대방이었다.
지금에야 의외로 친밀하게 지내고 있지만, 연배로 따져 보면 유인원이 나오기도 전에 존재하던 생물계의 조상 중의 조상.
“아무튼, 이제 여기 일은 대충 해결했지? 젠장…… 내가 일 처리 하나 유연하게 하자고 이렇게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니.”
용신은 영의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감독하는 것에 싫증이 난 듯,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그건 예전에도 그러시지 않았어요?”
“예전?”
예전을 물어보는 영의의 말에 되묻는 용신.
“로버트 관련이요.”
영의의 말에 용신은 예전에도 이렇게 뒤치다꺼리를 하러 뛰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젠장. 너희 심부름꾼 놈들은 진짜 나한테 절하면서 감사해야 해. 내가 진짜 관리자 놈들하고 한 계약만 아니었어도 그냥 방관하는 건데.”
“아무튼 그 덕분에 도움은 되고 있으니까, 감사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 감사하면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돈을 그렇게 밝히는 줄은 몰랐는데요.”
“돈 말고, 내가 덜 귀찮게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일을 마무리 지으란 말이야.”
“아…… 노력은 해 볼게요.”
영의와 용신이 서로 티격태격하며 대전을 떠나갈 때, 영의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귀인께서 오셨다 들었습니다.”
영의에게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혁련연화.
중원 쪽에 남은 동생과 달리, 그녀는 본단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영의가 혁련무강을 보기 위해 찾아왔단 말을 시녀를 통해 들은 뒤, 곧바로 찾아온 그녀.
“……젊을 때네. 그거 나중에 귀찮아지니까 잘 생각해라.”
용신은 영의와 연화를 슬쩍 번갈아 쳐다본 뒤 혼자 먼저 나갔고, 영의는 연화와 단둘이 남겨졌다.
“귀인께서 어떠한 연유로 오신 건지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연화는 상당히 사무적인 태도로 영의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네 동생 약 전해 줬고,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러 왔지. 사후 처리야……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고.”
“운아의 약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혁련운의 병에 대한 약을 구해왔다는 이야기에, 연화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드립니다. 저희 교와 교인들을 구하셨으니.”
영의에게 감사를 표하는 연화.
마교의 교주란 한 가문에서 선정되는, 왕가와 같은 형태로 세습되는 형태가 아니라 강자지존의 형태였다.
그러한 강자의 피를 이은 탓에 자식들도 강자가 되어 세습되는 경우가 잦았고, 가장 강한 이를 뽑는다고 해도 대부분은 교주의 혈육이거나 친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는데, 교주인 혁련무강도 겉모습은 젊어졌다지만 실제로는 노인이었고 그 자식들도 문제가 조금 있었다.
맏이인 강은 비무대회에서 무리하여 힘을 쓴 탓에 부작용으로 쇠약해졌고 둘째인 진은 모난 곳은 없었지만 차기 교주를 뽑기 위한 실적인 비무대회에서의 성적이 낮았다.
와룡은 학자나 책사에는 어울렸지만 강자지존인 마교의 수장에 걸맞지 않았고, 연화는 무공의 수련을 도중에 멈추었다.
결국 남은 것은 비무대회에서도 성적이 가장 높았던 혁련운.
그러나 그에게는 병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고, 교주가 일찍 죽으면 마교가 혼란스러워지고 약화될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위기를 영의가 해결해 준 것이다.
“구하기는……. 난 간다. 잘 지내고.”
영의는 연화에게 적당히 인사를 한 뒤 용신을 따라 나갔고, 연화는 그렇게 떠나는 영의의 뒷모습을 그 자리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네, 안녕히 살펴 가시길. 귀인…….”
그렇게 영의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연화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마음이란 게 이렇게 무겁고 감추기 어려운 것이었구나.”
한편 바깥으로 나간 영의는 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며 기다리던 용신을 만난 뒤 그가 손에 든 것을 보았다.
“……그건 뭐예요?”
영의가 손에 든 것을 가리키며 질문하자, 용신은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돌 조각을 빠르게 집어넣었다.
“뭐야, 그냥 나온 거냐? 재미없게.”
“뭐……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다른 세계니까요. 그리고 한 명이면 충분하고.”
연화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 영의였지만, 화연도 있고 애초에 둘 다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기에 모른 척했다.
“젊을 때 이것저것 해 봐야 하는 건데……. 아무튼 여기에 있던 흔적들은 다 찾아냈으니 이제 돌아가자.”
“네, 그래야죠. 그보다 약은 먹었을라나……?”
“먹거나 말거나 본인 선택이지. 죽으면 그것도 자기 책임이고. 넌 전해 준 거로도 할 일 다 했다.”
영의는 혁련운이 약을 먹었을까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지만, 용신은 그것도 본인의 선택이고 책임이라며 무시하고 곧바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