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9화
(20)
무림에서는 공손환과 이름조차 알리지 못했던 교주가 속해 있던 광혼환세교가 일으킨 소동으로 인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혼란이 빚어졌다.
광혼환세교…… 공손환이 잠깐 언급했지만 그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고 그나마 혼돈이니 뭐니 하는 말 정도를 기억해 낸 고수들이 그 잔당들을 혼교라고 불렀다.
하북에서 광혼환세교가 교주와 간부를 잃은 천하제일 비무대회에서 관리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갈성천과 팽소운과 약간의 갈등을 빚었던 설종려란 이름의 관리가 사망했던 것.
물론 권마의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지긴 했지만, 권마도 나름 손속에 사정을 두어 죽지는 않게끔 날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게 약한 공격을 맞고 의식이 남아 있었기에 날아간 설종려는 병졸들과 다른 관리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기 전에 일어나 도망칠 수 있었고, 그것이 그의 죽음을 앞당기게 되었다.
얻어맞은 충격과 무림인의 힘을 직접 체험한 공포에 혼란에 빠지고 만 설종려.
그는 무의식중에 자신을 아프게 했던 원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곧바로 대회장 바깥으로 나갔고, 하필이면 대회장 밖에서 살육을 자행하던 백룡강시를 마주쳐 사망하게 된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동창의 환관들이 강시를 베어 내고 그를 구해 냈을 때에는 설종려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고, 그의 의복만이 설종려가 죽었다는 증명을 해 줄 뿐이었다.
그렇게 관리가 사망한 데다, 총애하는 학사의 자제에다가 황궁의 금의위에 들여올 생각까지 하던 조온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교 집단의 소속이라는 보고까지 듣자 황제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내 원씨 가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황궁 내에 있는 사교 집단 추종자에 대한 수색이 시작되었고, 일단 심문부터 하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시행된 조사는 의외로 높은 검거율이 나왔다.
동창과 금의위가 그런 쪽으로 특화된 이들이기도 했지만, 교주가 죽었으니 큰 의미 없겠다고 생각한 내통자들이 자수한 것이다.
이내 황제는 대대적인 수색 명령을 내려 모든 산과 비경에 있는 은신처나 거처를 찾으라고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에는 무림인들까지도 가세했으며,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모든 무인들이 광혼환세교의 잔당을 찾는 데에 주력하였다.
그런 압도적인 물량을 내세운 수색과 몇몇 내통자들의 빠른 자수와 실토에 여러 거처들과 비밀 분타 등을 발견하였고, 거기서 상당히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었다.
실전된 줄로만 알았던 여러 일자전승 및 소규모 문파의 비급들.
언제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시신들과 그 시신들의 일부 토막들.
도저히 용도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도구들과 무언가의 의식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제단 등.
옛 고인의 비급이나 유해, 보검 같은 보물이 있기도 했고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 나게 만드는 광경들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의문인 점이, 내통자들은 많았지만 그들 중 중요한 직책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었다.
대부분이 단순한 고용책이나 이득을 보고 접근한 경우 내지는 공포와 협박에 굴복한 이들이었고, 그들은 그리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무림맹과 사도련을 비롯한 모든 고수들은 단 한 명에게 집중했다.
유일하게 살아서 붙잡혔으며 광혼환세교에 몸담았던 데다가 강시를 만들기까지 한, 공손환이었다.
그리고 무림맹 지하의 깊숙한 뇌옥에서 그 공손환에 대한 심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뿌드득, 우드드드득-!
뼈가 부서지다 못해 갈려 나가는 소리가 텅 빈 지하의 공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온몸이 한철과 현철, 묵철로 이루어진 사슬에 결박되어 묶여 있는 사내의 몸에서 나는 그 소리.
무림맹의 관계자가 분근착골을 시행하고 있었기에 나는 소리였다.
뼈와 근육을 갈아 버린다는, 말 그대로 엄청난 고통을 주는 기술이었지만 공손환은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으윽…… 크으윽……!”
고통스러워하는 신음 소리.
“으우우욱……!”
금방이라도 토할 것같이, 숨을 참고 압박을 견디는 소리.
이 모든 소리는 공손환에게서 나오는 게 아닌, 이 자리에 참관한 쪽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뿌득, 뚜드득.
분근착골이 끝나고, 그것을 시행하던 무림맹의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독한 놈. 아니, 이 정도면 미친놈이지.”
그리고 옆에 함께 참여한 사도련의 간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마의도 포기한 놈이네. 단순한 분근착골로 입을 열 놈이 아니지.”
그들의 옆, 황궁에서 나온 관리가 현황을 물어보았다.
“으우욱……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저런 고문을 지속한 거요?”
참혹한 모습…… 정확히는 소리만 들어도 처참한 고문의 현장에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그 괴리감에 토악질을 한 관리.
“잡힌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일이면 딱 한 달째가 되는군.”
“내뱉은 정보는?”
“정보는 무슨, 비명 소리 하나도 없었소.”
관리는 금의위에서 나온 인물로, 직접 피 튀기며 싸우는 것이 아닌 사무직에 가까웠다.
그 사무직이 어떤 일을 하는가 하면, 심문이라고 쓰고 고문이라고 읽는 행위에서 나온 정보들을 기록한 뒤 그것을 취합하는 서기관이었다.
그래서 심문 광경을 자주 보아 어느 정도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분근착골을 당하면서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는 공손환의 모습에는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검황님을 뵈었을 때 딱 한 번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 이외에는 다시 찾아오셔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마의님께서 직접 시행한 고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를 않더군.”
인체에 정통하고 윤리나 양심이란 것이 거의 결여된 마의가 직접 최대 효율의 고문을 시행했음에도 공손환은 무표정을 유지했었다.
“…….”
정파에 속했던 사부가 왔어도, 사파의 뒷골목에서 사람 입 열게 하는 데 정통한 고수가 왔어도, 마의의 목숨만 붙이는 살해 시도가 있어도 입을 열지 않았던 공손환.
그는 그저 무표정하게 주변에 있는 이들의 얼굴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이만 가도록 하지.”
“그래야겠군.”
“뭔가를 더 하지는 않는 거요? 저놈의 입만 열게 하면 지부 몇 개는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을……!”
금의위의 관리는 공손환의 심문을 그만두고 나가려 하는 무인들을 붙잡았다.
그로서는 하루빨리 정보를 얻은 뒤 돌아가야만 하는 입장이었고, 빈손으로 돌아갔다가는 어떤 문책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인들은 그런 관리를 무시하고 뇌옥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럼 당신이 하시오.”
“어지간한 건 우리도 다 해 봤으니, 괜한 헛수고라고 생각되지만.”
거의 형식상으로 하는 데다, 죄수인 만큼 처벌 삼아 매일 고문을 시행했을 뿐이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 분야의 절대고수들과 진짜 절대고수들이 거쳐 가도 입을 열지 않은 놈인데, 자신들이 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무인들.
“으으음, 그건…….”
금의위의 관리 또한 그 말에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인이란 족속들은 남들보다 배는 튼튼하고 몇 곱절은 더 강하다. 고수쯤 되는 이에게 손톱을 뽑고 불로 지지는 거야 아무렇지 않거나 이미 해 본 것들이겠지.’
일반적인 조정의 범죄자나 역모 혐의로 잡혀 온 사람들 중 무공을 익힌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림의 고수급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고문 방법이라고 해 봐야 분근착골만 한 게 없었기에, 금의위의 관리 또한 뇌옥을 나가는 무인들 뒤로 따라붙었다.
드드드득- 콰앙!
뇌옥의 출입구인 거대 석문이 천천히 끌리며 닫히는 소리와 함께, 뇌옥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굳이 죄수들에게 불을 켜 줄 이유도 없었고, 사람을 어둠 속에 내버려 두면 미치기에 딱 좋다는 걸 알고 있는 무림맹은 뇌옥을 어둡게 만들었다.
다만, 무인들은 폐관수련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어둠이 끼치는 효과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이제야, 고요해졌군.”
그리고 공손환 또한, 어둠이 부정적인 효과를 그리 많이 끼치지 못했다.
까득.
“교주님은 패하셨지만, 교가 패한 것은 아니다……! 내 이곳에서 나가기만 한다면……!”
까드득.
공손환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몸을 감싸고 있는 사슬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깎아 내고 있었다.
사슬을 긁고 있는 그의 손톱은 희미하게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단전을 폐했다고 내가 무능해졌을 거라 생각하다니, 어리석은 놈들.’
교의 몰락 이전, 교주에게서 강시의 제작 방법을 들을 때 배운 또 다른 방식의 기의 운용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교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이능과 기적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가능하지.’
단전을 이용한 기의 운용에 익숙해져 있던 공손환은 그에게서 기본적인 마력 운용법을 배웠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단전이 없어진 것이 장점이 되어 손끝에 작게 응축된 마력…… 유사 검기를 만들 수 있었다.
까드득.
그렇게 아주 조금씩 사슬을 깎아 내며 탈출을 도모하고 있는 공손환.
“이대로라면 앞으로 이 주인가.”
다행히도 그의 단전을 폐한 사실이 제법 알려져 있었고 온몸을 결박한 사슬의 재질이 재질인지라 무림맹의 무인들은 그의 사슬을 확인해 보거나 하지 않았다.
“광혼환세교는 지지 않는다. 세상을 혼돈으로 물들여 말끔히 지운 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리라……!”
공손환은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비장의 수단이 남아 있는 듯 계속 혼잣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죄수 없이 어둠 속에 고립된 지 한 달, 미치지는 않았지만 그 고독함과 외로움에 혼잣말을 하는 시간이 늘고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애초에 누군가 들어올 때면 문이 열리는 소음이 발생하고, 아주 조그만 환기구를 제외한다면 출입구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호남에 있는 총본산에서 강시 군단만 꺼내 온다면……!”
그렇게 혼잣말을 하던 도중,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갑작스럽게 빛이 밝혀졌다.
“무슨?!”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빛이 나기 시작하자 눈을 찌푸리며 빛의 정체를 확인하려 하는 공손환.
어둠 속, 환한 백광과 그 백광에 어렴풋이 비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누구냐.”
공손환은 곧바로 백광이 비쳐 보이는 것에 나타난 게 사람이란 것을 알아채자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호남이라…… 비 내리는 호남선~”
철컥, 철컹!
그리고 거기에 대답하듯 노래를 흥얼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공손환은 격하게 반응했다.
“네노오오옴……!”
“그 호남이랑 이 호남은 다르지, 참. 위치가…… 뭐야, 하북이랑 가깝네.”
머리 쪽에서 밝은 백광을 뿜어내는 사내의 목소리는 바로 한 달 전, 그와 맞서 싸우다가 그를 기절시킨 영의의 목소리였다.
물론 머리에 빛이 나는 무언가를 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체형과 목소리가 정확히 일치했다.
“그래…… 흠. 아, 그게 말이 되네. 가까우니까…… 눈에 안 띄게 그렇게 많은 인원수를…….”
영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대화를 나누듯, 허공에다 중얼거리고 있었다.
“네놈 때문에 교의 대업이……!”
공손환은 영의를 부모의 원수를 보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공손환의 모습에 영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 왜 나 때문인데?”
영의 입장에서는 암중 세력이 있다고 얘기를 해서 대비하는 데 도움이야 줬지만 독고휘와 혁련무강이 있었으니 사건 해결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건……!”
“영감님들이 다 정리했는데 내가 뭘? 너랑 싸워서 이긴 건 맞지만 나머지를 내가 한 건 아닌데?”
“크윽……!”
영의의 말에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 있었기에, 공손환의 분노는 살짝 사그라들었으나 그래도 그를 노려보는 눈빛이 순해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호남이라. 좋은 정보 얻어 간다.”
영의는 이곳에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다시 어두워진 뇌옥 안에서 공손환은 이 뇌옥이 평소보다 더욱 어두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영의가 사라지고 잠시 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흠, 마력과 내공…… 그리고 약간의 시체술인가. 나름 걸작인데?”
공손환은 또 다른 정체불명의 인물에 대해 반응하려 했지만, 그는 온몸을 누군가가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감옥 같아 보이는 곳에 시체로 장난치던 그놈이 없는 걸 보니 죽은 거 같고. 쯧, 아는 게 없겠군. 그냥 공들인 장기 말인가.”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혀를 찬 뒤 공손환을 장기 말이라 평하고는 곧바로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