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화
(19)
간만에 베키의 집에 방문한 영의는 집의 입구에서부터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대체……?”
삐익- 삑!
중간에 짧게 끊기는 비프음을 내는 정육면체들이 지면에서 살짝 뜬 채 베키의 집 주변을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육면체들은 도중에 멈추기도 하고, 종종 땅에 내려앉기도 하며 마치 순찰을 하는 것 같았다.
영의는 그런 정육면체들을 보자 문득 생각나는 현대의 문물이 하나 있었다.
‘……로봇 청소기?’
정말 청소기처럼, 정육면체들이 잠깐 땅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할 때에는 그 바닥 부분이 조금 더 깨끗해져 있었던 것이다.
‘흙바닥이라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달라지고 놀라웠던 것은 그런 정육면체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부에 거대한 지하실과 격납고 같은 시설을 구축해 놓긴 했지만 외부는 처음 봤을 때와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대대적으로 개량한 건지, 백색의 3층 건물이 자리해 있었다.
그것도,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정육면체들처럼 직육면체의 형태로 깔끔하고 날카롭게 각져 있는 건물.
“……어디서 현대의 건축이라도 배워 간 건가?”
영의는 베키의 집을 보자마자 마치 학교 건물이나 현대의 호텔이나 아파트 같은 대형 건축물을 떠올렸다.
같은 구조의 방이 여러 개 있어야 하는 시설의 목적과, 복잡하지 않은 설계와 시공을 필요로 하여 유지 보수도 크게 어렵지 않은 단순한 직육면체 구조물.
물론 들어가는 노동력이 더욱 커지지만, 단순히 한 층을 계속해서 쌓아 가는 방식이기에 별다른 복잡한 공정이 필요치는 않은 합리적인 건물들.
그런 현대의 건물 같은 것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이쪽 동네 다른 건물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그러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의가 상공을 지나면서 본 건물들 중 저렇게 지붕까지 직각으로 지은 건물은 없었다.
“그보다, 집에 있으려나? 그래도 애가 나름 똑똑해서 지난번처럼 쓰러져 있진 않을 것 같긴 한데…….”
영의가 베키의 집 문…… 정확히는 그나마 문인 것으로 추정되는 색이 다른 부분을 두드리기 위해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정육면체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삡!
“……어?”
정육면체들은 곧바로 다른 소리를 내며 영의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삐비비비빅.
방금 전이 짧고 간단하게 울리는 일반적인 알림음의 소리였다면, 지금은 경고를 나타내는 듯한 다급하고 날카로운 비프음이었다.
척, 처척. 척.
“뭔데? 대체 뭔데?!”
정육면체들은 로봇 청소기처럼 유유하게 움직이던 아까의 모습과 달리 신속하고 정확하게 서로 결합하며 영의의 주변을 포위했고, 이내 영의는 원통 속에 갇힌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게 방범 장치였나? 그냥 로봇 청소기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수량의 한계인지 아니면 기술력의 한계인지, 어쩌면 발상의 한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원통에 뚜껑은 없었으니 탈출하려면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수지 않고는 절대 탈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영의가 꽉 묶여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것들은 얼마쯤 하려나……? 물어 줄 수 없는 건 아닌데, 문제는 이게 물어 줘서 될 물건이냐는 거지…….’
영의는 잘못 힘을 줬다가는 그를 붙잡은 방범 로봇(?)들이 부서질 것 같았고, 가까이서 대충 살펴보니 일반적인 금속 재질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호엔하임에게 주문을 넣었던, 특수 처리된 비싼 금속이 틀림없었기에 영의는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일단 이 방범 로봇들의 주인과 친구였고, 나쁜 목적으로 온 게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언제 나를 꺼내 주냐는 건데.’
뭔가 하나에 꽂히면 본인의 식사를 비롯한 기본적인 것도 챙기지 않는 베키의 성격과 특성을 잘 아는 영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불안감이 영의에게 희생을 감수한 탈출을 강요하기 직전에, 갑작스럽게 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잡았다! 침입자 녀석! 그대로 잡아다가 멀리 던져……. 어?
그를 둘러싼 방범 장치의 높이가 상당해서 바깥이 보이지 않았기에, 영의는 베키의 목소리가 조금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베키? 이것 좀 풀어 줄래?”
-어, 그게 말이지. 잠깐. 잠깐만…… 이게…… 내가 이걸 풀어 주는 기능을 넣었던가? 그러니까아-
“어? 뭐라고?! 베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가득한 베키의 말에 영의는 다급히 그녀를 불렀지만, 베키는 서두르느라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음,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일단 직접 가서 살펴볼게! 그동안 죽지 마!
쿠당탕탕.
무언가가 넘어지고 부딪히는 소리를 끝으로 베키의 말소리가 끊기고 잠시 뒤, 베키가 영의의 옆에 도착한 건지 조금 더 명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어! 괜찮지? 어어, 그러니까 여기에 맞는 공구가 뭐였더라?”
절그럭, 철컥!
베키는 공구를 찾고 있었지만 마음이 매우 조급하고 찾는 것이 쉽게 나오지 않는지 이런저런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챙그랑!
이내 뭔가 떨어뜨리는 소리까지 났지만, 베키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다.
“어…… 신경 쓰지 마. 여기에는 안 쓰는 공구야. 아니, 쓰던 건가……? 일단 아직 괜찮은 거 맞지?”
“……안 괜찮아질 것 같으니까, 빨리 풀어 줄래? 그리고 이거 조금 답답해지기 시작하는데.”
영의는 베키가 정신없어하고 덤벙거리는 모습을 보는 게 간만이었지만 지금 그의 주변을 감싼 방범 장치들이 그의 몸을 압박하며 점점 조여 오기 시작하자 반갑다는 생각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방출하지 않으면 조이는 기능을 넣어 둬서 그래. 빨리 풀어야 하는데…… 음, 이쪽을 건드려 보면?”
베키가 공구를 열심히 놀려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긴 한 듯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이내 확실히 무언가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뚜두둑. 팅!
삐비비비빅!
하지만 그 이후로 불길한 소리가 함께 들려왔고, 영의의 몸을 조이는 압박감이 더욱 강해졌다.
“으으윽!”
“어어, 미안! 반대쪽인가 봐!”
그 이후로 베키는 영의를 두 번 정도 고통스럽게 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수습하고 그를 풀어 주는 데에 성공했다.
“휴! 그래도 비살상용으로 만든 거라 다행이야! 뭐, 내가 아무리 천재님이라도 살상용 도구를 막 만들지는 않아.”
사용했던 공구들을 모두 벨트에 끼워 넣으면서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베키.
방금 전 영의가 위험할 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살상이라도 충분히 치명적인데?”
“안 죽으면서 치명적이어야 교훈이 되는 거지! 그건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깨쳤다고!”
“…….”
죽지만 않으면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베키의 말에, 영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튼, 어땠어? 물건을 자동으로 집으로 들여보내 주고, 침입자를 자동으로 박살…… 박대하는 내 새로운 발명품!”
해맑게 웃는 베키는 영의에게 방금 체험한 발명품의 소감(?)을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얘한테 이걸 돌려주는 건 조금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영의는 호엔하임에게 마력 주입기를 돌려주었듯이, 베키에게도 바이크와 헬멧을 주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베키에게 잘못 맡겼다가는 또 무슨 광기의 산물이 탄생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지난번 종종 봤었던 광기를 걱정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 광기가 그사이에 더욱 커져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다.
‘그래, 원래 지구에 있던 걸 개조한 거니까 별문제는 없겠지……? 어차피 나만 타고 다닐 거고.’
공간 확장 주머니야 남에게 섣불리 노출하지 않거나 마법진을 지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헬멧도 나름 가격대가 있는 물건이기는 했지만, 보호막이나 안내 기능 등의 부가 기능이니 뭐니 하는 걸 모두 없앤 바이크 헬멧 수준이었기에 누군가 훔쳐 갈 염려도 없었다.
‘……그래, 그냥 마개조된 물건이라고만 생각하자.’
“그래서, 이번에는 왜 찾아온 거야? 또 뭐 개조하려고? 아니면…… 내 발명품 중에 쓸 만한 거 보여 줄까? 적어도 별 목적 없이 찾아온 건 아닐 거 아냐?”
어느새 공구를 모두 정리한 베키는 자신의 벨트 위에 양손을 걸친 상태로 영의를 쳐다보았다.
다소 어린애 같고 나사 빠진 모습을 보일 때가 있지만, 뒷골목과 마탑을 거쳤던 베키였다.
세상 사는 방법을 모른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인물.
그렇기에 영의가 어떤 목적으로 찾아온 건지에 대해 물었지만, 영의는 그런 목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방금 전에 없어진 것이었지만, 질문을 받은 시점에서는 없는 것이었으니 일단은 맞는 말이었다.
“목적 없어.”
“그렇겠지, 그래도 재미있는……. 뭐?”
베키는 영의가 뭔가 용건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한 것인지, 자신이 생각한 답변을 내뱉다가 영의의 말에 당황했다.
“그냥 온 거야. 그런 목적 없어.”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오히려 어색해하기 시작하는 베키.
“어……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내 새롭고 치명적인 발명품들을……!”
그녀는 말끝에 했던 비아냥거림처럼 영의가 별 목적이 없다고 하자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하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니야.”
하지만 그건 본인의 관심 밖이었던 영의가 그 부분은 거절했고, 베키는 눈에 띄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히잉. 5단 변신을 거쳐서 합체하는 거대한 철제 골렘도 만들었는데…….”
움찔.
5단 변신에 합체까지 하는 철제 골렘…… 로봇이란 말에 혹한 영의가 한순간 움찔했지만, 다행히 베키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베키와의 간단한 티타임과 인사를 끝내고, 영의는 호엔하임에게 찾아갔다.
앞선 인물들과는 혹시 모를 후환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다른 차원의 물건들을 돌려주는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물건을 받으러 온 것이다.
“언제 오나 기다리고만 있었지. 그보다, 내가 줬던 약들은 써 봤나?”
호엔하임은 영의의 방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응접실의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를 맞이했다.
“아뇨,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안 쓰는 게 가장 좋지. 상비약은 그냥 보존하는 게 가장 좋은 거야.”
지난번 호엔하임에게 받았던 치료약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용신에게 받았던 의문의 액체는 마셨었다.
몸에 좋다면 일단 먹고 보는 습성이 있는 한국인의 특성과, 강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곧바로 먹고 보는 최씨 일가의 습성이 합쳐진 결과였다.
호엔하임은 품속에서 투명한 액체가 든 병을 영의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게 지난번에 준 머리칼의 주인에게 맞춘 치료제라네. 유전적인 질환이라도 완화하거나 치유할 수 있지만…… 일단 부탁대로 그 부분은 손을 봐 뒀지.”
혁련운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치료제를 받았지만, 그 성능에 약간의 제약을 두기로 한 영의.
“……그 정도면 됐어요.”
호엔하임이 만든 약과 그의 능력이라면 선천적인 형질을 어느 정도 변형시킬 수도 있었지만 영의는 굳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아무튼, 본래의 능력을 제약하는 것도 나름의 도전이고 재밌는 발상이었으니 나에게도 좋았네.”
“그럼, 이만.”
영의는 용건을 해결했으니 곧바로 떠나려 했다.
애초에 호엔하임과는 그리 오래 인연을 맺지도 않았고, 무림 쪽에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벌써 가려는 건가? 동네 푸줏간에서 고기를 사도 이것보다 짧게 끝나진 않겠군.”
호엔하임은 그런 영의의 태도에 아쉽긴 했는지, 조금 섭섭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조금, 바빠서요.”
“그래…… 그렇다면야 뭐.”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나간 영의는 호엔하임의 저택에서 벗어났고, 떠나던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호엔하임은 지하실로 내려갔다.
“무언가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제약한다라…… 재밌겠어.”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일생일대의 발명품을 만들 아이디어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