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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66화 (266/325)

제2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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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시내의 도로.

연식은 다소 오래되었지만 매일 잘 관리했기에 지금도 잘 나아가는 클래식 카의 안에 토르가 있었다.

“그만 움직이십시오, 햄스워스 경. 불안한 건 알겠지만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토르는 차 안에서 옷의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창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며 어딘가 흐트러진 부분은 없는지 찾으려 했지만 그 움직임이 너무 부산스러워 제지를 당했다.

그리고 이 차림에서 아무리 잘 다듬어 봐야 청바지였으므로, 토르는 이내 가꾸기를 포기했다.

“……알겠네.”

여왕의 앞에 정말 캐주얼 차림으로 가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티셔츠를 뒤집어 입을 생각까지 했었던 토르.

‘뒤집으면 무난한 흰색 티셔츠 정도로 보이지 않으려나……?’

안쪽과 바깥쪽 면이 아닌, 앞과 뒤를 뒤집을 생각을 한 게 안타까웠지만, 그가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면 더더욱 안타까워졌을 것이다.

“응? 궁으로 가려면 이 방향이 아닌데?”

그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는 스태튼과 탄 차가 자신을 버킹엄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당연하죠. 궁으로 가는 것부터가 공식 석상이잖습니까. 공식 석상으로 부르신 적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스태튼은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대영박물관에서부터 미리 공식 석상이 아니란 언급을 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선지를 묻는 토르.

“그래, 그랬었지. 그럼 어디로 가는 건가?”

스태튼은 인내심이 다한 듯, 이제는 토르의 얼굴마저 쳐다보지 않기 시작했다.

“MI6로 갑니다. 그쪽이 아무래도…… 설명하기에 더욱 적합하니까요.”

“설명? 무슨 설명? 그리고 MI6라니, 나는 첩보원이 아니란 말일세.”

토르는 그저 받아들이거나 납득하는 대신, 계속 뭔가를 되물어 오며 스태튼을 번거롭게 했다.

결국 그 질문 공세에, 스태튼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나고 말았다.

“누가 당신에게 제임스 본드 같은 활약을 기대한다고 했습니까? 거기에 정보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요청드리지만, 잠시라도 가만히 있어 주시면 안 됩니까? 저 같은 늙은이는 그런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마저도 지친단 말입니다.”

스태튼은 왕실에 충성을 맹세한 귀족 가문의 일원임과 동시에, 대대로 왕실을 수호해 온 군인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수호의 역할이 다른 이들에게 넘어가고 나이를 먹으며 은퇴한 몸이었다.

아무리 노쇠해도 한 사람의 대화를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이 심각함에도 철없는 철부지처럼 구는 토르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알겠네. 내 사과하지.”

토르는 스태튼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지만, 스태튼은 그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

“침묵인가? 사과를 받아 줄 때까지 나도 말 한마디 하지 않겠네.”

그렇게 다 큰 사내 하나와 나이 지긋한 노인 사이의 유치한 신경전이 펼쳐졌고,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기사는 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

“…….”

귀족 가문의 고고한 프라이드와, 젊은 나이의 치기 어린 자존심의 대결은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백작님,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의 도착했다는 말에도, 둘은 말없이 차에서 내리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니, 그 순간부터 사과를 하는 건 상관이 없고 그저 누가 먼저 입을 여는가의 싸움으로 바뀌었었다.

심지어 MI6의 건물에 들어갈 때도, 신원을 묻는 경비원과 내부 인원들의 질문에 신분증을 꺼내 보이기만 할 정도였으니.

그래도 둘의 자존심 앞에 의무마저 까먹은 것은 아닌지 스태튼은 길을 잘 모르는 토르에게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안내를 했고, 토르는 괜히 반항하거나 혼자 갈 길을 가는 대신 그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둘 다,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눈빛과 손짓만으로 MI6, 영국 비밀 정보부의 지하에 있는 비밀 회의실에 도착했다.

스태튼을 따라 회의실에 들어간 토르는, 문득 있어야 할 인물이 없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어?”

토르가 먼저 입을 열자, 아주 작게 승리의 미소를 짓는 스태튼.

“……드디어 말을 했군.”

하지만 토르는 스태튼의 그런 승리의 미소와 승리 소감(?)을 듣지 못했다.

“왜 그러십니까? 여왕 폐하가 안 계셔서 그런 겁니까?”

“……맞네.”

스태튼은 토르를 보며 자신은 거짓말을 한 적 없다고 똑똑히 전했다.

“여왕 폐하께서 직접적으로 햄스워스 경을 부르신 적은 없습니다만? 다만, 부름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했을 뿐.”

“날 속인 건가?”

토르가 스태튼을 못마땅하게 노려볼 때, 지하 회의실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속인 게 아닐세, 햄스워스 경. 다만 조금 일찍 행동한 것뿐이지.

나이 들었지만 여전히 힘차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의 목소리.

영국의 국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왕 폐하.”

토르는 급하게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하려 했다.

-예는 갖추지 않아도 되네. 일단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니.

“사태…… 말입니까?”

-국장? 하던 걸 계속해 주세요.

“예, 폐하.”

여왕의 명에, MI6의 국장은 회의실 내부에 있는 대형 스크린의 화면을 조작했다.

스크린의 안에는 여왕뿐 아니라 영국의 수상도 얼굴을 비치고 있었고, 그 외의 화면에는 <케임브리지 대학>, <원탁의 기사>, <리버풀> 등 영국 내의 이름 높은 각성자들이나 전문가들의 얼굴과 신분이 나오고 있었다.

“전부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군그래……. 물론 이 중에선 왕실 수호 기사인 내가 제일이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사용해 오던 억양과 말투를 까먹기라도 한 듯, 토르는 순간적으로 가벼운 언행을 했다.

그런 토르의 모습을 본 <원탁의 기사> 측의 누군가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 외부인 녀석이 드디어 본색을……!

그러나 뭔가를 하기도 전에 여왕이 나서서 중재를 시도했고, 그 덕분에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정하세요, 명예로운 원탁의 기사여.

-……예, 폐하.

-그리고 라슨 교수? 이제 들어야 할 이도 왔으니 처음부터 설명해 주시지요.

여왕은 화면을 바라보고 또 다른 이에게 설명을 부탁했고, 그러자 MI6 회의장 내부에 있던 한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 햄스워스 경? 저는 옥스퍼드에서 근무 중인 라슨이라고 하며, 기상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런던에서 발생한 이상기후 현상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토르는 라슨의 말을 듣고 의아함을 느꼈다.

“이상기후?”

‘지금 런던은 드물게 해가 쨍쨍하여 매우 좋은 날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상기후라니?’

어째서 맑은 날이 이상기후인가에 대해 생각하려던 그때, 라슨 교수가 회의실 내부에 있는 다른 대형 화면에 자료를 띄우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설명을 드리자면, 본래 진행 경로와는 다른 방향에서 생성된 돌풍에 의해 지금 영국 상공에 있는 구름이…….”

마치 첩보 영화나 세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재난 영화 등에서 나올 법한, 각 계층의 엘리트와 국가의 수장이 모여 설명을 듣고 있는 상황.

때마침 MI6의 지하 회의실에는 그럴 때 쓰라는 듯이 대형 스크린이 몇 개씩 있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어울렸지만 토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라슨이 열심히 가리키며 설명하는 자료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다른 생각에 빠진 모습을 보여 주던 토르는 결국 라슨 교수에게 지적을 받았다.

“이상입니다. 햄스워스 경? 지구과학이나 물리에 그리 소양이 없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전국적으로 흐린 와중에 런던만 구름이 없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현장에서 설명하느라 바빴던 라슨이 토르를 지목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할 정도면, 지금 화면을 통해 보고 있는 누가 보더라도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티가 났을 것이다.

토르는 모든 이목이(화면 너머의 이목마저) 자신을 집중하는 것에, 방금 전 들은 말에 급히 대답하며 주제를 살짝 돌렸다.

“알지, 당연히. 그런데…… 나는 그게 왜 이런 회의를 소집해야 할 사안인지도 모르겠군?”

물론 이상기후인 것은 짐작이…… 아니, 확신을 넘어 뭔가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당장 일기예보 등을 들었을 때에도 ‘대체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원래 날씨라는 게 의외로 쉽게 바뀔 수도 있지 않나? 도시 하나라도 왼쪽에는 비가 오고 다른 쪽에는 비가 오지 않는 것처럼.”

그는 사나운 바닷바람과 변덕스러운 하늘이 힘을 쓰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었으니, 날씨라는 게 그렇게 국지적으로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 런던만 비켜 가듯이 구름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단순한 국지성 호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문제란 걸 잘 아는 토르.

“그래, 각성자가 그랬을 수도 있지. 구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각성자.”

하지만 지금은 과거가 아니었고, 각성자 한 명의 힘으로도 자연을 어느 정도 이겨 내거나 비틀어 낼 수 있는 결과가 충분히 드러난 사회였다.

“누군가 오늘 놀거나 쉴 예정이었던 각성자 한 명이 구름을 걷어 낸 것이지 않겠나? 그것도 아니라면…….”

토르는 최대한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지금 상황이 가리키고 있는 것을 부정하려 했다.

-햄스워스 경.

여왕이 토르를 한번 불렀지만, 토르는 그것을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하려 하는 것인지 열성적으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아, 그렇지! 혹시 도심에서의 열로 인해 상승기류가 발생했고, 그로인한 고기압 형성이 구름을 없앤 게……!”

의외로 토르는 기상에 관해서 나름의 지식이 있었고, 그것을 풀어놓으며 원인을 해명하려 했지만 그가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점점 더 억지스러운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여왕이 토르에게 직설적으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햄스워스 경. 경도 이미 아시지 않나요? 누가 와서 이러는 것인지. 아무리 다른 쪽으로 생각하고 회피하려 해도, 결국 가장 유력한 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

토르는 침묵했으나, 다른 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 도시를 완전히 맑게 유지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

<원탁의 기사> 길드의, 투구 정도만 챙겨 쓴 기사가 입을 열어 한 가지 특징을 언급했고.

-그것도 바람으로 정면에서 날아드는 구름을 흩어 놓게 할 정도로 대범한 방식을 보여 주는 인물.

<리버풀> 길드에서도, 똑같이 한 가지 특징만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굳이 영국, 그것도 런던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인 것은…….

“저를 의식한 것이겠죠. 아니,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도전장.”

토르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경이 작위를 받고, 우리 영국의 일원이 되기 전에 당신과 함께 영국과 왕실을 위해 봉사하던 그녀겠지요.

“메리…… 클리어워터…….”

파직, 파지지직-!

그 이름을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토르의 몸에서는 스파크가 조금씩 튀어 오르기 시작했고, 그를 중심으로 주위에 있는 전자 기기들이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스파크의 기세가 점점 더 커져 가기 시작하자, 스태튼이 급히 나서 그를 진정시켰다.

“햄스워스 경? 기분은 알겠지만, 진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스크린 비싸고 무거운 데다 주문 제작이라 교환이나 환불도 못 받는단 말입니다.”

스태튼의 말에, 토르는 스파크를 튀기던 것을 멈추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기분이 더러워. 과거에 끝났다고 생각한 게 다시 돌아오다니…….”

“햄스워스 경?”

“지금은 그런 경이니 뭐니 귀족이 아니야. 다만 싸움을 끝내지 못한 티모르가 있을 뿐이지.”

토르…… 티모르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에는 묘한 기쁨과 분노, 그리고 불안함이 동시에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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