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2화
(13)
국제적 범죄자 텐징의 체포와 중남해 습격 이후, 세계는 또 다른 국제적 범죄자를 맞이하게 되었다.
[극도의 위험인물! 체포된 텐징보다 강한 각성자?!]
[텐징의 체포, 그것은 단순히 먹다 남은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와도 같았다…….]
[두 차례의 격돌 이후 남겨진 패자, 승자는 어디로 가는가?]
[은색 헬멧을 썼던 첫 번째 등장에 이어, 은색 옷까지 챙겨 입고 나타난 두 번째 행보와 그 결과물에 세계가 흔들렸다.]
[실버 맨, 그는 누구인가?]
온 세계가 은색 헬멧을 쓴 남자…… 영의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의도와 행동, 그리고 결과물은 영웅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여러 강대국들이 발 벗고 나서서 그를 악당으로 포장하기 시작하자 전 세계가 그를 악당으로 믿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가 보여 준 행동이 영웅적이었기에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영웅적인 행보는 보여 줬잖아요. 실제로도 얼마 전까지는 영웅이라고 언급했었고.
-그게 안티히어로라는 겁니다. 본인은 다른 건 상관없고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건데 우연찮게 악당이 걸려들어서 영웅이 되는 것.
-그렇다고 보기에는 사례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겨우 두 번, 아니. 세 번 나타났어요. 세 번 다 범죄자랑 맞서 싸우거나 사람들을 구했고요. 특히 두 번째인 신화 길드 게이트 소멸 사건의 경우…….
-여기서 제가 자료를 제시하겠습니다. 본래 신화 길드와 정부 측에서 비밀로 은폐했었는데, 여기를 보시면…….
정부는 영의를 확실히 범죄자로 만들기로 작정했는지,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그를 찾아 나서던 과거를 부정하고 있었다.
신화 길드에서 조사했고 대외비에 부쳐진 게이트 소멸 사건 당시의 진상마저 공개했고, 그것을 신화 길드 내부 유출이라고 변명하기까지 했으니까.
물론 사람들 중에서 신화 길드가 유출했다고 하는 말을 진실이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등장 당시 홀연히 사라진 것과 두 번째 등장 시에 게이트를 억지로 열고 들어간 것, 세 번째에는 한 나라의 중요 시설을 파괴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 영웅이라면 나타나서 정체를 공개하라는 무대까지 만들어 운영했던 것이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거기에 나갈 리 없었으므로, 영의는 꼼짝없이 악당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었다.
반쯤 억지로 만들어진 악당 프레임이었지만, 의외로 세상에는 그런 억지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인터넷에서만 해도 그가 저질렀던 범죄행위들을 열거하며 얼마만큼의 형을 집행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영의는 태연했다.
“……정말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 저거 입으면 의외로 덩치가 커 보이거든.”
영의는 지금 부모님의 집, 정확히는 체육관의 안에서 지연과 함께 있었다.
주말을 맞이하여 영의의 집에 온 지연과 수연, 그러나 수연이 부모님과 함께 백화점에 가 버리며 집에 지연과 영의를 남겨 두었다.
“그렇지만, 여기 CCTV에 찍히셨는데…….”
지연은 휴대폰을 꺼내 일본에서 촬영된 용신의 사진을 보여 주었고, 거기에는 흐릿하고 왜곡되었지만 영의의 모습이 용신과 함께 찍혀 있었다.
물론 영의는 지나가는 사람 A 정도로 생각되었는지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사진이 제법 흐리기도 했다.
“괜찮아. 그리고 여기 나온 게 혼혈 외모의 중년인이라고 돼 있잖아? 내 모습은 제대로 안 나오게 다 조작해 놨어. 애초에 이 화면에서 날 구분하는 거도 내 정체를 아는 주변인들이나 가능하고…….”
실제로도 일본에서 찍힌 CCTV 화면에는 용신의 모습만이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달려들어 만든 복원의 결과물로 그럭저럭 나오고 있었고, 그 외의 부분은 노이즈가 심하거나 아예 지워져 있었다.
“그게…… 돼요?”
지연은 아무리 별 재주가 다 있는 영의라 해도 CCTV 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번호판을 가리듯이 뭔가 하는 걸까?’
마치 과속 단속 등을 피하기 위해 번호판에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게끔 하는 장치를 생각했던 지연.
“처음에는 아저씨까 도와줬지만, 다른 부분은 내가 직접 조작했지. 전자기장으로 지우거나 카메라를 약간 지지라고 하더라고.”
“아, 직접적으로…….”
하지만 영의는 다소 단순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사용했고, 지연은 그 방법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까 하던 거 계속해 봐. 공중에 있는 뇌기를 끌어오는 거야.”
“어려운데요…….”
영의는 지연에게 천뢰검을 익히기 위한 기본적인 훈련을 지도하고 있었다.
“끄으응…….”
“자, 내가 공중에 뿌려 둔 뇌기를 회수해서 끌어온다고 생각하고.”
지연에게 허공의 뇌기를 조작하는 방법을 알려 주면서, 영의는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얼굴 다 팔렸는데, 어떡할 거예요?”
“뭐가?”
화면을 대부분 뭉개 두긴 했지만, CCTV에 용신의 얼굴이 남아 있어 모든 뉴스에 보도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당히 교묘한 편집을 통해 마치 텐징과 한패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 언론들.
“아니, 뭐 그런 거로 곤란해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귀찮아지지는 않을까 해서요.”
영의는 그런 언론의 발표에 용신이 번거로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괜찮다. 그 정도야.”
용신은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가 다시 영의를 쳐다보았고, 그 잠깐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놀라웠다.
“……변신?”
마치 변검을 하듯,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에 얼굴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모습을 바꾸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장 용들의 신이란 이름에, 끝이 보이지 않는 능력들이 있는데 얼굴 조금 바꾸는 정도야 과학기술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과정과 원리는 놀라웠다.
“그건 아니지. 아니…… 단어의 뜻만 추리자면 맞는 소리인가. 몸을 바꾸긴 했으니.”
“예?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용신은 혼혈 같은 외모에서 어느덧 적당한 아시아계 미중년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목소리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얼굴 근육과 골격, 성대의 구조를 살짝만 바꾸면 되는 거지. 마법 같은 걸 안 써도 되니까 언제 돌아갈까 신경 안 써도 되고. 음, 목소리는 별 의미가 없겠군. 얼굴도 겨우 확보했으니.”
말하는 중간에 목소리가 점점 익숙한 그것으로 바뀌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저는 그런 거 안 할래요.”
어지간한 묘기는 거의 시도를 해 보는 영의였지만 방금 용신이 보여준 것은 따라 할 자신도, 따라 할 마음도 없었다.
“누가 시킨대? 아무튼, 당분간 그냥 있어.”
“네?”
“조금만 잠수를 타라고. 이번에 잡고 끝내려 했는데, 일이 조금 틀어졌으니까.”
용신은 그렇게 영의에게 잠수(?)를 지시한 뒤 사라졌고, 영의는 지시받은 대로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이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일상생활의 한 가지로 지연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고.
“그렇지, 잘했어.”
짝짝짝-
자신이 랜덤으로 허공에 흩뿌린 뇌기를 곧바로 잡아챈 뒤 끌어오는 것에 성공한 지연을 보며 박수를 쳐주는 영의.
“허억, 헉…… 해냈다……!”
“23번 만이긴 해도 금방 해냈네.”
“근데, 이건, 어디에, 후우. 쓰는…….”
지연은 많이 지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문을 던졌다.
“허공에 있는 뇌기랑 하늘에 있는 구름을 이용해서 번개를 만들고 그걸 무기로 쓰는 거랄까?”
구름이 있다면 그걸 이용해서, 없다면 뇌기를 쏘아 올려 구름을 끌어모으고 만들어서 번개를 불러내어 사용하는 게 천뢰검이었다.
“……네?”
물론 독고휘의 경우에는 정말 검처럼 그런 번개 덩어리를 들고 사용했고, 영의는 일종의 폭격처럼 썼지만.
지연은 그런 무식하고 말도 안 되는 규모의 기술을 쓴다는 말에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번개를 부른다는 건 영국의 ‘토르’가 쓰는 기술이라고는 들었는데. 그걸 직접 쓴다고요?”
물론 아예 없는 기술은 아니었고, 영국의 각성자인 토르가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 직접 시전할 수 있었다.
천뢰검처럼 자신이 발동시키거나 직접 무기로 쓰는 수준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내려치는 번개를 조금 더 빨리 내려치게 하거나 자신에게 유도하는 수준이었지만.
“아, 맞다. 구름 없으면 만들어야 돼. 그것도 어떻게든 할 수 있어.”
“그게 돼요?!”
구름까지 만든단 소리에 지연은 더더욱 놀랐고, 영의는 그 반응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음, 아무래도 너한테는 필요 없겠지. 대신 다른 기술도 있는데.”
“……그거라도 보여 주세요.”
영의는 이내 뇌즉시아를 보여 주었고, 그것을 본 지연은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내가 배워 온 지식은 대체……?”
자신이 배워 오고 알고 있는 지식과 진리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
‘처음에는 나도 이게 무슨 기술인가 싶었어…….’
영의는 충격을 받아 몸이 굳어 버린 지연을 보고는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여기까지 하자.”
“어? 어어, 네.”
영의의 종료 선언에, 지연은 영의를 따라 체육관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아버지가 단군 길드 마스터시라며? 난 몰랐었거든.”
“그렇……죠……?”
말끝을 늘이며 영의의 반응을 살피는 지연.
‘뭔가 권력이나 돈에는 별로 관심 없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지금까지 살아오며 자신의 아버지를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었던 지연.
그 때문에 마찰도 자주 일어났고, 학교에서는 친구들을 멀리하기도 했었다.
“힘드시겠네. 길드장이란 거, 되게 힘들어 보이던데. 일도 많고.”
하지만 그녀의 스승은 우려와는 달리 업무를 걱정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도 있듯이, 권력이나 돈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걱정해 줄 이유나 필요도 없다.
그런 이들 중 하나인 황준이었지만, 지연은 오히려 그런 걱정을 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일이 많기는 하세요. 매일 늦게 들어오고.”
“그래도 퇴근은 꼬박꼬박 하시네. 퇴근도 못 하는 사람이 있거든.”
영의는 비교 대상 중 하나인 신화 길드 길드장, 영석을 떠올렸다.
“진짜요?”
“신화 길드 길드장님은 그러더라고.”
텐징의 습격 이전, 영석과 신화 길드의 협조를 구했던 영의와 용신.
길드장의 사무실에서 영석과 용신이 서로 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영의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었다.
어째선지 구석에 놓여 있는 베개와 이불, 책상 옆에 있는 칫솔과 컵을 보았던 영의.
그때 영의는 영석의 생활과 길드장의 고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퇴근도 못하고 여기서 숙식을 하는구나…….
물론 모든 길드장이 그런 것은 아니었고, 영석도 매번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그 당시 영석이 바쁠 때이긴 했다.
“아무튼, 이번에도 고생이 좀 많으실 것 같으니까 집에도 들어가고 그래 봐. 아니면 길드에라도 찾아가든가.”
영의는 지연이 매번 가르침을 청하러 찾아오는 건 기특하게 여겼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족이 늘 곁에 있었던 영의였기에, 가족이 떨어지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쁘시니까 오히려 안 찾아가려고…….”
“흠…… 그럼 가 보자고.”
“네?!”
“괜찮아, 도와줄 사람도 있으니까. 그리고 너도 아는 사람일걸?”
아는 사람일 거라는 말과, 영의의 주변 지인들의 관계를 떠올린 지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도와줄 사람이라면, 혹시 화연 언니?”
지연의 기대와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화연과의 동행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걔도 괜찮겠네. 일단 가서 샤워부터 해. 그래도 땀은 씻어야지.”
“앗, 네.”
영의는 그렇게 학부모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