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61화 (261/325)

제261화

(12)

텐징과 샤오롱이 체포된 이후, 그들의 조직…… <죽음으로 가는 빛>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놈이 날 죽이려 했소!

“죽진 않았잖아?”

화면 속에서 정장 차림이었지만 손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범죄자에게 편의를 봐주란 말이오?!

“그럼 수용소에 폭탄이 터져서 모든 수감자들이 탈출……이란 결말을 원하는 걸까?”

-그, 그건…….

“패트리어트를 부른다면 대부분은 되찾겠지만…… 둘은 얘기가 다르잖아? 그냥 잡았다고 자랑하게 해 줄게.”

-……알겠소. 조치하도록 하지.

“그래, 고생 많았어. 상처는 잘 관리하고. 의료계 각성자가 치유해도 하루 정도는 주의해야 한다는 건 알지?”

-…….

화면은 이내 검게 물들었고, 정장 차림의 사내……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던 선지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통령이란 녀석이…… 적당히 너그럽게 타협해 줄 때 넘어갈 것이지.”

“눈앞에서 총을 맞을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자신을 지켜 주던 이들이 모두 방 안에서 자신이 총 맞는 것을 뒷짐 지고 지켜보는데.”

선지자의 옆에는 파드레가 있었고, 그는 ‘그럴 만했다’는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그보다, 엄청난 괴물이 있었다고?”

이미 텐징이 체포된 지도 시간이 지났고, 샤오롱과 함께 블랙 펜타곤으로 보내지려 할 때였기에 파드레가 보고하는 것이 늦었다.

하지만 그는 그를 잡으러 날아오던 한 사내로부터 도망쳤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 골목에서 장장 하루를 버티다가 빠져나와 방금 전에 선지자의 곁에 도착한 것이다.

“예. 암살을 해도 이길 수 있을까 싶은…….”

“좋아, 텐징하고 샤오롱은 수용소에서 잠시 휴가라도 보내게 놔두고 그 괴물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어.”

본래 텐징과 샤오롱을 빼낼 생각을 하던 선지자는 파드레의 보고를 듣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다.

텐징 본인이야 탈출에 큰 애로 사항이 없었으니, 샤오롱만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계획을 짜던 도중 파드레가 그에게 도착한 것이었다.

“일단 중국 쪽에서 CCTV 화면은 얻었어. 화질이 별로고, 은색 헬멧 쓴 저 녀석은 아직도 헬멧을 쓰고 있지만…….”

“헬멧이 없는 쪽, 정장 차림인 쪽입니다.”

“그건 나도 아는데…… 일단 저 영상을 닷지한테 보내 뒀어. 조만간 연락이 오겠지.”

뒷세계에서 정보를 찾아내는 데에는 다른 이들이 제일이지만, CCTV 화면처럼 영상이나 사진이 있는 경우에는 닷지가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였다.

“그 알고리즘과 인식 프로그램이 있으면 금방 찾아내겠지.”

닷지가 타인에게 알려 주지 않는, 자신만이 가지고 쓰는 고유의 차세대 안면 인식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에서 쓰는 것보다 몇 단계는 위의 기술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닷지 본인과 선지자, 단둘을 빼고서는.

* * *

텐징의 체포 소식이 세계로 퍼져 나가고, 그의 정체와 능력을 익히 아는 이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 무식한 인간이 잡히다니…….”

한 여성과 금발의 소녀가 카페의 테라스에 비치된 테이블에 둘러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꺄하하, 아저씨는 어딘가에 잡히느니 차라리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죽기는 무서웠나 봐.”

“그랬으면 차라리 좋겠는데…….”

여성…… 나연은 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잘라 입에 집어넣으며 우려를 표시했다.

“응? 더 안 좋은 상황이 있어?”

나연의 앞에 앉은 소녀는 커피를 홀짝이며 나연이 우려를 표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대충……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항복한 경우?”

“그건 진짜 안 좋은 상황이 맞네. 싸움에 진심인 그 덩치가 싸우기를 포기했다는 거잖아.”

소녀는 해맑게 웃으면서 다시 커피 잔을 기울였고, 나연은 그런 소녀의 미소에서 섬뜩함을, 이어 소녀 본인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음료수가…….’

나연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다급히 자신의 음료인 레모네이드를 찾아 손을 더듬었다.

툭.

“앗.”

그러다 실수로 음료가 담긴 컵을 엎어 버렸지만, 음료는 다행히도 테이블의 옆으로 쏟아져 내려 누군가에게 끼얹어지는 일은 없었다.

“…….”

“…….”

나연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 상황에 입을 다물고 테이블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레모네이드 방울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카페의 직원이 다가와 테이블 위를 닦기 시작했다.

“너무 성급하게 먹으려고 했나요, 꼬마 아가씨?”

직원은 소녀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고, 나연은 그 모습에 자신의 앞을 쳐다보았다.

‘어?’

자신의 앞에 커피가 놓여 있었고, 레모네이드 잔은 소녀의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레모네이드를 놓쳤어요. 새로 하나 갖다주실래요?”

“아하하, 알겠습니다. 꼬마 아가씨. 예의가 바르네요.”

직원은 내용물이 비워진 컵과 레몬 조각을 젖은 행주와 함께 들고 갔고, 나연은 소녀를 쳐다보았다.

“방금 건…….”

자신이 쏟아지는 레모네이드를 보고 있을 때 잔의 위치를 바꾼 것에 대해 물어보려 한 나연.

“임시웅변. 어때?”

소녀는 양손을 펼쳐 보이며 마치 마술이라도 보인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임기응변이에요.”

“대충 맞잖아, 넘어가.”

소녀의 앞에는 커피, 나연의 앞에는 레모네이드와 케이크.

겉으로 보자면 둘이 바뀌어야 했겠지만, 둘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배치가 더 적절했다.

37세, 영국 출신.

호르몬 이상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그 모습을 여전히 유지 중인 메리 클리어워터.

겉모습이 성장하지 않은 만큼 평소에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비상 상황에 직면하자 그녀의 나이에 걸맞은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 어렵게 대하지 않던 나연도 지금 그녀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듯, 메리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튼, 덩치가 잡혀갔으니 그 녀석이 화 좀 내겠네.”

“누구요?”

“닌자. 아, 사무라이가 더 맞나? 걔 부하 중에 닌자도 있지? 그럼 뭐 상관없겠네.”

“……하오다?”

메리의 말대로, 지금 일본에서는 하오다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강연이나 방송 출연같이 본인이 원하거나 행사 참여 같은 리더의 참여가 필수적인 일이 아닌 이상 도쿄에는 거의 발을 들이지 않았던 하오다.

그가 큰 목적 없이 도쿄에 올 때에는 출장을 하지 않는 전통 있는 장인들의 식사를 먹거나 할 때밖에 없었다.

일전에 다이카와 료 등을 데리고 함께 신주쿠에 왔던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정확하게는 그 둘이 도쿄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울려 준 결과였지만.

하지만 지금 그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유명한 음식점의 내부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액자와 기념사진 및 사인들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서진 액자와 사진들 위로, 중년의 사내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크흑, 끄으윽…….”

깨진 액자의 유리 조각과 하오다의 폭력에 휘말려, 피투성이가 다 된 사내.

사내의 피가 묻기 시작한 사진들 중 자신과 길드원들의 사인이 있는 사진이 있었음에도 하오다는 개의치 않았다.

“말해라, 이놈은 어디에 있나.”

하오다는 오히려 길드원들이 찍힌 사진을 발로 밟으며,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

“……말을 안 하겠단 거지.”

뿌드득.

“으어어! 크아아아악!”

하오다는 사내의 새끼손가락을 밟아 부러뜨렸다.

“다른 손도 부러지기 전에 얼른. 요리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곳의 사장이자 주방장인 만큼, 손이 중요할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죽어도 말할 수 없소.”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오다는 사내의 손에서 발을 뗀 뒤, 뒤를 돌아보았다.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자신과 사장을 번갈아 쳐다보는 종업원들.

그리고 탐탁지 않다는 마음을 표정으로 얼굴에 드러내며 그런 종업원들을 붙잡아 두고 있는 자신의 심복들.

“안주인을 데려와.”

“대장! 그건 너무……!”

가게의 안주인이자 사장의 아내를 잡아 두고 있던 다이카가 하오다에게 뭔가 따지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인질로 잡는 건…… 범죄자들이나 할 만한 행위야!’

하지만 그런 자신의 의견을 소리치기도 전에, 하오다가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철컥.

“다이카, 국제적 범죄자가 있고 그 범죄자가 일본에 다녀갔던 흔적이 있다. 정의를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단서를 쫓아야 하나? 아니면, 누군가 해 줄 거라 믿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

정장 차림의 남자가 찍힌 CCTV의 화면을 인쇄한 사진을 내던지는 하오다.

“그, 그건……!”

애초에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음에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는 것이, 실제로 정장 차림의 사내를 수배한다는 공문이 얼마 전 내려왔었다.

그리고 그 사내가 이동했던 경로에 있는 가게들은 모두 수색했고, 유일하게 물증이 없는 곳이 이곳이었다.

가게 내부에 CCTV가 없고, 주변에도 CCTV가 없어 확인하기 어려운 장소.

용신이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띈다고 선택했기 때문에, 오히려 추정하기 쉬워진 것이다.

“여, 여보……!”

죽더라도 말할 마음이 없어 보였던 사장도 자신의 아내가 끌려 나와 고통받을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흔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가게의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쾅!

두두두두두두.

“여기 있군!”

“하오다! 여기가 교토인 줄 알고 있나 본데!”

“도쿄는 우리의 구역이다! 아무리 네가 잘났어도 여기서 난동 피울 수는 없다 이거야!”

험악한 표정과 함께 험악한 말투로 각자 무기를 하나씩 들고 들어온 <쇼군즈>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방해꾼들이 있군.”

하오다는 갑작스럽게 들어온 쇼군즈의 일원들을 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고, 그것을 본 심복들이 그를 말리려 했다.

“대장, 아무리 그래도 여긴 쇼군즈가 꽉 잡고 있는데 소란은 조금…….”

이 일이 가뜩이나 탐탁잖았던 다이카는 기회라는 듯 곧바로 소란은 안 된다며 밀어붙였다.

일전에 그녀가 쇼군즈에게 습격받아 죽을 뻔했던 사실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 그녀가 하오다에게 동참하고도 남았을 정도였지만, 그녀도 상황 분간은 할 수 있었기에 지금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주군. 민심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바깥에…… 눈이…… 많습니다…….”

가장 충직한 부하, 야이바와 시즈카까지 하오다를 제지하려 했고 종업원들은 이때만큼은 쇼군즈 길드가 고마웠다.

야쿠자들이 세워서 만든 길드였기에, 가끔 행패 부리는 야쿠자들의 뒤를 봐주는 이들이었지만 도쿄에 대한 통제권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그렇기에 하오다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물러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하오다는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심란해져 있던 찰나, 그런 소식을 접하게 만든 원흉이 자신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곧바로 도쿄로 달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할 때, 웬 잡것들이 나타나 방해하고 그 탓에 부하들마저도 자신을 말리기 시작하자 하오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촤악, 촤아악-!

“꺄아아악!”

“대장, 미쳤어?!”

“주군……?!”

[쇼군즈 방문]

하오다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달려들어 선두에 선 쇼군즈의 길드원들을 베어 넘겼고, 그들의 목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온 피가 벽에 튀었다.

[■군■ ■문]

그 피는 사방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으며, 그 핏방울을 가장 앞에서 맞은 쇼군즈의 일원들은 따뜻한 피가 입으로 들어와 짭짤하고 비린 쇠 맛이 혀를 자극하자 정신을 차렸다.

“이, 이이이…… 이놈이?!”

“쳐, 쳐라!”

“다 죽어라, 쓰레기들.”

그렇게 신주쿠의 어딘가에서 유혈이 낭자한 살육극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신주쿠의 거리는 평소와 변함없이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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