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8)
처음은 권왕의 기습과도 같은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전차의 두꺼운 장갑을, 건물을 이루는 철근 콘크리트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능히 부수고도 남을 각성자들의 뼈와 근육을 부수고 찢어 내는 강력한 일격.
“흐아!”
어떠한 단어로도 완성되지 못하는 외마디 외침 이후에 날아든 그 일격은 영의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투콱.
하지만 다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세차게 뒤로 날려간 영의는 이내 공중을 박차고 다시 권왕의 앞에 섰다.
“우와! 왜 이렇게 아프지?! 완벽하게 피했는데!”
매서운 바람에 뿌리 깊은 나무가 뽑히더라도 그 나뭇잎만큼은 여유롭게 바람을 타고 날듯, 영의는 권왕의 주먹과 맞추어 뒤로 몸을 날려 공격에 담긴 힘들을 피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영의에게는 큰 충격이 전해졌고, 그는 옷 안에 입고 있는 방어구를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난번보다 더 괴악해졌네.”
그때, 영의와 권왕의 주변으로 큰 결계가 쳐졌다.
“무슨……?!”
“아하.”
권왕은 반투명한 장막이 갑작스럽게 주변에 나타나자 놀라서 둘러보았으나,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싸움을 방해받을 것을 걱정했던 권왕은 영의의 반응과 아무것도 없이 고요한 장막의 내부를 보고는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군. 큰 의미가 없었다고는 해도 복수를 완수하게 해 준 것과 이렇게, 네놈과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까지.”
“그 사람은 그런 감사에 반응하지 않겠지만…….”
영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권왕은 또다시 주먹을 뻗어 왔다.
퍼엉.
주먹에 담긴 엄청난 속력이 만들어 낸 급격한 공기의 이동.
번개도 없고 달궈진 공기도 없는 데다 하늘이 아닌 땅에서 만들어진 아주 작고 간소한 천둥.
그런 천둥이, 권왕이 주먹을 뻗을 때마다 터져 나오고 있었다.
퍼퍼퍼퍼퍼퍼펑.
권왕이 말없이 주먹만을 날리자, 영의 또한 제대로 그와 싸우기 위해 체내의 뇌기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팡, 파앙!
아무런 장치나 수단 없이 단순히 힘만으로 만들어 내는 유사 천둥소리와 작은 규모지만 실제와 같은 원리로 발생하는 천둥소리가 서로 맞붙기 시작했다.
한편, 결계의 바깥에서는 소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인원이 생기자 급하게 현장을 통제하려 나서는 초인 전대의 일원들.
그리고 현장 통제를 위해 파견된 공안들이 시민들을 통제하고 인솔하는 도중 현장 지휘권 충돌마저 일어났다.
“시민들을 현장에서 멀리 떨어트려라! 안전한 곳일수록 좋다! 통제에 불응하면 강제로라도 데려가!”
공안은 그저 이곳에서 사람들을 멀리 떼어 놓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건의 명확한 실체를 몰랐지만, 적어도 폭발음이나 심상찮은 소리들이 조금씩 들려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초인 전대는 그런 그들과 다른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모든 목격자…… 아니, 현장의 모든 인원을 데리고 가서 격리시켜라. 그 누구도 오늘의 이 광경을 본 사람이 없어야 한다.”
목격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건지, 초인 전대의 지휘관은 사람들을 어딘가 밀폐된 곳으로 데려가 격리시키려 했다.
“무슨 짓이오? 시민들의 피난과 치안 유지는 공안의 업무요! 범죄자에 관한 건 몰라도 시민들의 피난과 통제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우선권이 있소!”
제아무리 초인 전대가 당의 총애를 받고, 위험천만하고 영웅적인 업무를 해낸다고 하더라도 이런 부분에서는 서로의 역할이 중요하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비각성자라도 능히 해내는 치안 유지와 군중 통제 및 인솔은 공안이 하고 초인들은 초인들이 할 일을 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논리에 입각한 설명은 별 소용이 없었다.
“초인 전대의 대원이 쓰러졌다. 우리는 그런 추태를 보일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공안의 인원들은 초인 전대의 말에 분노를 보이려 했지만,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누가 공격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용의자를 보낼 수도 없다. 저 틈에 테러범이 없을 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지?”
아무리 봐도 누군가의 습격으로 쓰러진 것 같은 초인 전대의 인원이 있었고, 주변에 수상한 이가 없다면 시민들 틈에 섞여 있다는 의심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격리를 진행하도록 하겠소. 하지만, 공안이 그 업무를 수행할 것이오.”
“일만 똑바로 한다면, 우리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공안과 초인 전대는 두 지휘관이 합의를 본 것 같자, 곧바로 시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와 주십시오!”
“피난을 위한 겁니다!”
공안과 초인 전대, 두 통제 집단이 함께 사람들을 유도하자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랐다.
중국어를 모르는 몇몇 외국인들 또한, 집무실 쪽에서 벌어진 소란이나 작은 폭발음 같은 것은 들었기에 ‘일단 현지 경찰의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지시를 따랐다.
“똑똑히 지켜볼 겁니다.”
“자리나 똑똑히 지켜보시지.”
두 현장 지휘관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시민들의 틈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미안하군, 잠시 지나가도 되겠나?”
그들에게 다가온 남자는 여유로운 태도와 당당한 발걸음으로 지나가겠다고 말했다.
“아, 네. 그러십시오. 진작에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실례했습니다. 부하들에게 모시라고 할 것을…….”
“아니, 괜찮네. 일 처리를 잘하는 걸 보니 오히려 만족스럽군.”
두 현장 지휘관은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노려보던것을 그만두고,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을 잠시 살펴보겠네. 주변에 누구도 오지 못하도록 해 주겠나? 보고할 것이 있다면 자네들이 와서 해 주고.”
그리고 그런 둘을 자연스럽게 지나쳐 시민들의 틈에서 바깥으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샤오롱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샤오롱은 두 지휘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장막과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고, 이내 지휘관들이 그의 주변을 비운 뒤 통제를 위해 사라지자 샤오롱은 곧바로 장막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지의 순간 이동 능력자가 이 주변에 와 본 경험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 하지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국에서 파드레와 함께 현장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텐징의 실종으로 인해 파드레의 뒤를 따라 백업 인원인 순간 이동 능력자의 도움으로 중국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중국으로 오자 그가 GPS와 위성 화면으로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달리 장막이 쳐진 현장의 모습에 당황한 샤오롱.
그는 일단 장막의 내부에 있는 텐징이 멀쩡한지부터 확인하려 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샤오롱은 제법 강한 각성자이긴 했지만 마력에 따른 신체 강화가 있음에도 시야가 비약적으로 좋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기 있는 건 틀림이 없는데……!’
내부에서 무언가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이런저런 충돌음이나 파열음, 가끔씩 여기서도 느껴지는 진동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장막으로부터 소란의 진원지와의 거리가 제법 멀었고, 당장 현장에서 접근할 수 있는 거리도 멀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한 텐징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가장 도움이 될 만한 휴대폰을 꺼내 들어 확대 기능으로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휴대폰을 꺼내어 반투명한 장막 쪽을 향한 뒤, 확대를 하여 저곳의 상황을 살피려 하는 샤오롱.
“젠장…… 안 보이잖아.”
방금 전 육안으로 볼 때는 장막 내부의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보였다.
무언가 움직이는 모습도 멀리서 확인할 수 있었고.
하지만 휴대폰의 화면으로 볼 때는 거짓말처럼 장막이 반투명이 아닌 완전한 불투명, 아예 흑색의 반구체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화면의 대부분이 검게 물든 휴대폰을 눈앞에서 치우려던 그때, 그의 휴대폰 화면에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이 들어왔다.
화면의 테두리에서부터 천천히 들어온 그것은 붉은색을 띠는 살구색이었으며,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의 손과 같은 색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노력 하지 말자고, 젊은 친구.”
샤오롱은 갑작스럽게 그의 옆에 한 사내가 나타난 것에 깜짝 놀랐다.
분명히 샤오롱은 공안과 초인 전대, 두 부대의 지휘관들에게 주변에 사람을 물리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여기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초인 전대나 공안의 인물일 테고, 현장에 사복을 입고 와도 될 정도의 고위직이란 것이니까.
하지만 당의 간부나 중요 인물들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암기하고 있는 샤오롱은 사내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당의 간부라고도 할 수 없었다.
흑발에 갈색 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내는 동양인이라기에는 다소 이질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당신은 누구…….”
샤오롱이 사내의 정체를 물어보려 했지만, 사내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정신 조작이라, 쓸 만한 능력이지. 그것도 아주 제대로 쓸 줄 알고 말이야. 정확히 ‘누구다’가 아닌 ‘자신의 상관 격 인물’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인식시킬 줄은.”
“……?!”
자신의 능력과, 그 수준을 정확히 꿰뚫어 본 사내의 통찰력에 놀라는 동시에 경계심을 끌어 올리는 샤오롱.
그는 급하게 뒷주머니나 허벅지를 더듬어 습관적으로 무장을 찾으려 했다.
대부분을 지휘관이나 작전 참모 수준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적어도 직접 현장에 나설 때에는 무기를 가지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한국에는 작전보좌역으로 갔었던 것이라 무기라고 할 것은 바지에 있는, 그나마 자신의 신체보다 조금 더 튼튼한 수준에 불과한 벨트의 버클뿐이었다.
“진정해, 젊은 친구. 그리고 무기가 있어 봐야 뭐 해? 쓸모없을걸.”
사내는 샤오롱에게 여유를 보이며 말했고, 샤오롱은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했다.
‘……저 말이 맞다. 나는 대항할 수 없어.’
텐징을 따라다니며, 선지자 휘하의 강자들과 어울리며 느낀 것이 있다면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었다.
파드레, 하오다, 그 외에 여러 강자들은 강함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눈앞의 사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는,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지켜봐. 재밌을 거야.”
사내가 장막의 앞에 손을 휘젓자, 반투명하던 장막이 거짓말처럼 잘 닦은 유리같이 투명해졌다.
“대체…….”
“원래, 실력 비슷한 것들끼리 싸우는 게 재밌잖아? 특히 못 싸우는 애들이랑 잘 싸우는 애들. 중간쯤 되는 고만고만한 것들은 별로긴 해도…… 그래도 비슷하면 나름 박진감 있어.”
사내는 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돌을 중간쯤 되는 고만고만한 이들끼리의 싸움이라고 칭하며, 팔자 좋게 음료수까지 꺼내 들었다.
“저거 다 보고, 네 뒤에 누가 있는지만 말해 주면 별 탈 없이 보내 주도록 하지.”
사내의 말에, 샤오롱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건…… 고문 없이 깔끔하게 죽이겠다는……?”
물론 삶에 큰 미련은 없다.
당장 5년 전에 반쯤 자살과도 같은 작전을 결행하고 원수를 죽인 뒤에 곧바로 죽을 각오까지 했었으니까.
그리고 텐징이 저곳에 있었다면, 자신과 그의 공동 원수에게 빚을 갚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대체 뭐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런 것부터 먼저 떠올리는 거지?”
사내는 고개를 젓고는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저 녀석의 뒤에도 말이지.”
샤오롱은 사내의 손짓에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건물과 건물 틈새에 숨어 장막 쪽을 노려보는 파드레의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