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3)
용신은 영의와 화연에게 선택지에 대한 대답을 들은 뒤,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저 아저씨,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화연은 용신의 정체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그냥 아저씨라고만 호칭했다.
외모는 젊었지만, 하는 행동이나 말투, 그리고 영의의 상사라는 점에서 나이가 제법 있을 거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의는 화연의 그 질문에 얼굴을 굳혔다.
“이것저것, 많이 하는 사람. 그리고 반항하면 안 되는 존재.”
영의의 진중한 말에 화연은 흠칫하고 놀랐다.
‘선배가 학창 시절에 사고 쳤을 때 말고는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영의가 상대할 수 없는 인물…… 특히 부모님의 분노를 마주할 때 이외에 보여 준 적 없는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괴물이라고는 했는데, 얼마나……?”
화연은 조심스레 ‘괴물’이란 말의 수준을 물어보았다.
“어…….”
영의는 용신과 처음 마주했을 때 그가 보여 줬던 것들을 떠올렸다.
아무렇지 않게 공격을 받아 내거나, 용들에게 신으로 추앙받던 것, 그리고 그에게서 잠깐 보았던 투신이라는 상징까지.
“껍데기만 인간이지, 속에는 드래곤이 한 천 마리는 들어 있을걸?”
어찌 보면 사실에 그나마 근접한 비유로 설명하는 영의.
“드래곤이요? 그, 반지 찾는 영화에 나오는 그런 거?”
화연은 갑작스럽게 나온 드래곤이란 말에 놀랐고, 그나마 본 적 있는 드래곤이 나오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드래곤이랑은 직접 싸워도 봤어. 그에 비하면 저…… 아저씨는 견적이 안 나올 정도더라.”
“만났어요? 드래곤을? 심지어 싸우고?”
화연이 계속하여 자신의 말에 질문하자, 영의는 대화를 여기서 끊으려 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더 하면 난쟁이 이야기까지 가야 돼.”
“네? 난쟁이는 또 뭔데요?”
“아까 우리가 선택한 걸 하려면 시간이 빠듯해. 일단 가자.”
설명을 더 이상 할 생각이 없었던 영의는 재킷 주머니에 늘 넣어 두고 다니는 바이크를 꺼낸 뒤 그녀를 태웠다.
“어디를요? 저 급하게 나와서 준비도 덜 됐는데……!”
화연은 갑작스러운 이동에 목적지를 물었고, 영의는 익숙한 장소를 입에 담았다.
“용산.”
영의는 화연을 데리고 곧바로 용산으로 향했지만 그는 용산의 옥션이 아닌, 그 옆에 있는 다른 건물들로 향했다.
“……공방? 공방에는 왜요?”
부산물과 마정석으로 무기나 방어구, 그 외에 여러 가지 장비를 만들어 주는 공방 거리.
옥션 내부에도 소규모 공방들과 지석 같은 실력자들은 있었지만, 대부분 부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공방들은 수많은 기술자들이 모여 있었고, 자연스럽게 경쟁에 돌입하게 되어 누군가에게 밀려서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되었다.
그렇게 본인만의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다른 장인들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 주는 장인들만이 살아남게 되었고, 공방 거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화연은 그런 공방 거리에 영의가 온 것이 의문이었다.
본인은 주문 제작한 장비가 이미 있었고, 영의는 굳이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네 무기 하나 만들어 주려고.”
“……무기요?”
이미 괜찮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화연은 무기라는 말에 의아해했지만, 영의는 그 정도 수준의 무기가 딱히 성에 차지 않았다.
그룬이 만들었던 검을 보고 휘둘러 보기도 했었고, 또 화연의 경우 공격의 대부분을 검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공격에 주로 쓰는 속성계 각성자들과 달리, 화연은 능력을 보조 격에 가깝게 사용했다.
얼음은 그저 발을 붙들거나, 견제용으로 쓸 뿐이고 실질적 공격은 검으로 하는 화연.
물론 검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검을 그저 방어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그래서 영의는 화연의 검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직접 데려가서 이것저것 따져 보고 만들려고 했지만…….’
본래 계획은 그룬에게 직접 화연을 데려가서 장인에게 수치 측정과 사용 시의 습관, 재료와 무게 등 모든 것을 논의하려 했었다.
하지만 용신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고, 화연이 더 이상 깊게 연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영의.
그는 지구에서 최대한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얻은 뒤 그룬에게 그대로 제작 의뢰를 맡기려 했다.
“네 무기를 전에 봤는데…… 그다지 좋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 그래서 새로 하나 맞추려고.”
“제가 쓰는 무기도 유명한 장인한테 주문 제작한 건데…….”
화연의 대답에, 영의는 지연에게 줬던 그룬의 무기를 떠올렸다.
‘……그걸 견본으로 갖고 올 걸 그랬나?’
“그보다 더 믿을 만한 사람…….”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이 있어. 무기 제작은 잘하는 그런 장인이. 일단 여기서 필요한 측정만 전부 해 보고 가자.”
“측정이요?”
“지금 쓰는 게 무기 들 때의 습관이나 편한 손잡이, 무게중심, 이런저런 거 다 맞춰 본 무기는 아니잖아?”
영의의 물음에, 화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게와 손잡이, 쥐는 손 정도는 미리 얘기를 했지만 나머지 상세한 부분들은 제작자가 임의로 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비싼 값을 하는 명품이라 그런지, 사용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 일은 없었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단 비슷한 걸 만든 다음에, 그 견본품을 그대로 갖다 주면 더 끝내주는 거로 만들어 줄 거야.”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화연과 함께 공방 쪽으로 향했고,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공방들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공방 거리 최고의 공방 중 하나인 평화 공작소.
본래 청계천에 있던 공작소였지만 용산 주변으로 옮겨 와 철물점을 하던 가게였다.
그리고 공작소를 하던 경력 탓인지 제작 쪽의 능력을 각성하게 된 사장 주원일.
그는 뛰어난 손재주와 섬세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주문 제작을 전문으로 하고 있었다.
능력을 부여하는 인챈트나 일반적으로 나올 수 없는 강성을 유지시켜 주는 강화 같은 일은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맞는 장비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방어구나 이런저런 장비를 만드는 걸 주로 하고 있었지만, 아침에 찾아온 손님들이 한 주문은 다소 특이했다.
“무기도 주문 제작 되나요?”
한 쌍의 남녀가 찾아와 대뜸 부탁한 무기 주문.
보통 무기의 경우에는 괴수들의 가죽이나 뼈를 한 번에 뚫기 위해 강화나 인챈트를 필요로 한다.
원일이 만드는 장비들은 대부분 그의 능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강화나 인챈트가 겹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제법 많았기에, 원일은 이 젊은 손님들에게 주의 사항을 말해 주기로 했다.
“그게, 제가 만든 무기들은 강화나 인챈트가 안 되는데…….”
“괜찮아요,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뜻밖에도 손님들은 미리 알고 온 건지, 아니면 단순히 무기가 필요하기만 한 건지 상관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럼, 어떤 스타일을 원하시는지? 환도? 직검?”
원일은 무기를 원하지만 성능을 그다지 추구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아 관상용으로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걸었던 남자가 아닌, 남자의 뒤에 있던 여자 쪽이 대답을 해 왔다.
“직검이요. 칼날은 92cm 정도로 해 주시고, 무게중심 때문에 줄여야 하면 최소 80cm까지.”
여자 쪽이 대답해 오자 원일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이내 상대방의 정체를 깨달았다.
“……신화연?”
“네.”
“이야~ 이런 유명 인사께서 제 공방에 다 오시다니! 그보다…… 영국에서 만든 주문 제작품을 쓴다고 들었는데, 왜 새로운 무기를……?”
원일은 뜻밖의 유명 인사가 방문한 것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왜 온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가 알기로 화연이 가지고 있는 검은 강화된 것으로, 블랙스미스로 유명한 동시에 강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가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맞춤 제작한 무기가 필요해서요. 모든 걸 저한테 맞춘, 그런 무기가.”
“강도라든가 여러 가지 유용한 특성이 없을 텐데요…….”
자신이 만드는 작품이 못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원일은 솔직하게 현역에서 뛰기에는 모자란 부분들이 있을 거란 답변을 해 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괜찮아요.”
화연은 영의를 슬쩍 쳐다보고는 괜찮다는 대답을 했고, 원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손님의 뜻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죠. 칼날 92cm, 최저치는 80. 폼멜(균형을 조절하기 위해 검의 손잡이 끝부분에 다는 장식)이나 손잡이, 코등이에 원하는 규격은 있으신가요?”
원일은 빠르게 종이를 꺼내어 화연이 말한 부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폼멜은 형태 관계없고, 손잡이는 여기서 기존에 쓰는 게 있나요? 아니면 그때마다 따로 제작하나요?”
화연은 원일의 말에 곧바로 반응하여 필요한 부분을 모두 대답하기 시작했고, 영의는 그들의 대화를 한 발짝 물러나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 * *
모크란.
제3공방에는 오늘도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좋아! 이것만 끝내고 뜨끈하게 국이나 한 그릇 말자고!”
“와아아!”
열기는 용광로에서 나오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고, 난쟁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제3공방의 공방주, 그룬.
그는 지금 한 검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수려하군.”
검을 눈앞에 두고 수려하다는 말 한마디만을 꺼낸 그룬.
하지만 그는 짧은 말과는 달리 손과 눈은 검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정확히 똑같이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그의 은인이자 도시의 은인인 영의가 그에게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있냐고 묻자 그룬은 고개를 저었다.
“똑같이는 아니지. 하지만 더 잘 만들어 보도록 하지.”
그룬은 손안에서 검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반대쪽 손에 던져 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검의 특징을 가늠하고 있었다.
“흐음, 흠. 실용적이군. 하지만 묵직한 맛이 적어. 예리한 기술을 요구하는 건가?”
타인의 몸과 습관에 맞춰 설계된 무기였지만, 그룬은 금방 무기에서 대략적인 흔적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좋아, 금방 되겠군. 이미 견본품이 있으니 똑같이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여기서 뭔가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개선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네.”
“어느 정도 걸릴까요?”
“나흘…… 아니, 사흘만 있다가 오게. 단순 단조까지라면 제자들을 넣어도 될 테니.”
그룬이 의뢰를 받아들인 듯 고개를 끄덕이자, 영의는 다른 용건에 대해 묻기로 했다.
“그럼, 제 방어구는 어떻게 됐죠?”
“아, 그건 저쪽에 다 만들어 놨네. 맞춤으로 한 벌, 그리고 작게 두세 개. 지금 생각해도 그 좋은 비늘들 중 몇 개를 왜 뺐나 싶었더니 검을 하나 만들려고 했군?”
그룬은 영의에게 지난번에 보여 줬던 창고를 가리켰다.
작은 상자 하나만 채울 분량의 무기밖에 없어 황량하던 창고는 지금 용의 비늘과 완성된 무구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좋아요, 딱 좋네요.”
영의는 창고에서 갑옷을 가지고 나왔고, 그것을 입어 보며 몸을 이리저리 돌려 착용감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싱을 할 때 입는 두꺼운 한 벌 옷과도 같은 옷에, 흉곽과 각종 부위에 칼라미트의 비늘 색과 같은 갈색의 판이 붙어 있는 갑옷들.
하지만 그것들과는 달리 영의의 갑옷은 일반적인 갑옷처럼 철판이 붙어 있었고, 어떻게 만든 건지 몰라도 전신에 은색이 가득했다.
“그냥 써도 되겠지만…… 비늘의 바깥에 금속판을 두르고, 비늘과의 사이에 완충재를 넣어 뒀네. 자네의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네.”
비늘 부분이 은색인 거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부분마저 다 은색인 건 의문이었다.
“은색인 건, 조금 걸리는데.”
“벼락에 가장 민감한 금속이 은이니까. 은으로 둘렀네. 금으로 해야 멋지다, 단가를 아끼고 색감을 통일하기 위해 동으로 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었지만, 은으로 했네.”
영의는 자신의 은색 갑옷을 바라보며, 헬멧과 같이 은색으로 통일하게 되면 조금 악취미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색은 안 되겠죠?”
“나머지 두 개야 가능하지만, 그건 안 되네. 자네의 것은 천 부분도 금속사로 짜 넣은 특제라, 염색해 봐야 물이 묻으면 지워질 테니.”
그룬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제작하기 위해 견본 검을 들고 자신의 개인 공방으로 향했고, 색을 바꿔도 의미 없다는 말을 들은 영의는 은색 옷을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