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2)
용신은 식사 후에 영의를 친절히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곧바로 떠나갔다.
“자, 그럼 난 간다?”
그의 집 앞에서 손을 흔들며 멀어지기 시작하는 용신과 그를 바라보는 영의.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영의는 무의식적으로 인사를 했지만, 용신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거기에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까지 가는 건 아니고, 나중에 또 볼 거야.”
‘와, 무슨 40대나 50대 아저씨같이…….’
그 말을 들은 영의는 그냥 장난기 많은 아저씨들이 말꼬리를 붙이며 놀리거나 농담하는 빈말인 줄로만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전까지만.
“자, 일어나. 출근해야지?”
용신은 자고 있는 영의를 찾아와 알람이 울리기 2분 전에 그를 깨웠다.
“예? 어, 어어…… 네?”
어째선지 반사적으로 알람이 울리기 직전의 시간, 그것도 가장 깊은 잠을 자는 2분 전쯤에 그를 찾아온 용신 때문에 깜짝 놀란 영의.
“그러면 못 쓰지. 출근을 안 하다니.”
용신은 이미 양복까지 차려입은 채로 영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는 거의 자유 근무인데요. 그리고 대체 누가 아침 6시에 배달을 시켜 먹어요?”
아직 자신이 업무를 할 시간은 아니며, 또 세상 누가 새벽부터 배달을 시켜 먹냐고 묻는 영의.
새벽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시각인 6시였으니 거기서부터 이미 야식의 개념이 아니었다.
“아니, 그쪽 업무 말고. 이쪽 업무를 하러 가야지?”
“뭐라고요……?”
용신은 당황한 영의를 그대로 들어 올리고는 강제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 저 아직 옷도 그대로고 씻지도…….”
“그 부분은 해결해 주지.”
영의는 용신의 손에 붙잡혀 끌려가는 동안, 몸이 깔끔해지는 느낌을 느꼈고 이내 머리를 만져 보자 머리카락까지 정돈되어 있었다.
“옷은…… 나랑 맞게 챙겨 주지.”
딱!
용신은 반대쪽 손으로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영의의 옷 또한 그가 입은 것과 비슷하게 정장으로 바뀌었다.
“……대체 무슨?”
물론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못할 사람은 아니지만, 영의는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옷이 바뀌는 것을 직접 보자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술, 기적, 그런 이름으로 간단하게 행해지는 자연법칙의 무시라는 지독한 행위. 그냥 동화나 전설 속에서 나오는 마법이라고 생각해.”
“마술이나 마법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영의는 용어의 혼용을 한 건가 싶어 물었지만, 용신은 고개를 저었다.
“둘은 명백히 다르지. 너한테도 마술하는 친구가 있으니 어느 정도 알겠지만, 흉내 낼 수 있으면 마술, 가르칠 수 없으면 마법이란 말이 있지만 대충 여기까지 하자고. 다 왔어.”
용신은 또 영의가 알 수 없는 말을 꺼냈지만, 이번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차도 있어요?”
“그럼 들어가.”
어느새 그의 집 앞까지 끌려나온 영의는 집 앞에 서 있던 검은색 세단을 목격했고, 이내 용신의 손길에 강제로 탑승당했다.
텅.
용신은 영의를 집어넣은 뒤, 자신도 차에 타고 곧바로 문을 닫았다.
“자, 그럼 일단 가도록 하자고.”
나란히 뒷자리에 타게 된 용신과 영의.
“어디로요?”
“네 반려의 집으로. 반려 맞나?”
용신의 물음에, 앞자리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다는군.”
운전기사까지 있는 건가 싶어 앞좌석을 본 영의는 룸미러에 비치는 운전기사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림이?”
운전기사의 외모는 온몸이 순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새하얀 외모를 하고 있던 알림이와 똑같이 생겼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지만 본 개체는 ‘알림’이라고 호칭하는 특이 개체가 아닙니다.”
일전의 알림이보다 더욱 딱딱하고 기계 같은 음성으로 대답하는 운전기사.
그때 알림이도 자신이 운전하는 건 아니라는 듯 영의에게 말을 걸었다.
[맞습니다, 사용자. 저는 여기 있습니다.]
“네 곁에 있는 아가씨랑 같은 종류의 것이긴 한데…… 다른 거지. 잠깐 빌렸어.”
용신은 운전기사로 쓰기 위해 알림이와 같은 인공 관리자를 하나 빌려 온 것이었다.
“아니, 대체 왜요? 뭐 어딜 갈 거면 어제처럼 이동하거나 하면 될 텐데…….”
그리고 영의는 신체 능력으로도 자신보다 빠를 것이 분명하고, 순간 이동 같은 능력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용신이 이렇게 번거롭게 차까지 동원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까 말했잖아? 네 반려를 데리러 가야 하니까 차를 쓰는 거야.”
“네? 반려라면…… 화연이?”
알림이를 통해 정보를 입수했다면 반려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화연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영의.
“음, 일단 너랑 관계된 사람들 중에 더 아는 사람은 없을 거고. 그건 아가씨가 얘기해 줬으니 알아. 그래서, 네 반려라는 그 여자를 찾아가기로 한 거다.”
“네? 아니, 대체 왜요? 원격으로 기억 조작도 하면서?”
영의는 원격 조작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조정하거나 지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굳이 화연에게 직접, 그것도 차까지 대동하면서 찾아가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나도 그냥 기억을 지우고 깔끔하게 끝내고 싶었지. 덜 귀찮으니까. 근데 이 세계는…… 조금 특이하단 말이야.”
“세계가 특이하다고요?”
뜻밖의 대답에 놀라는 영의.
용신이 보여 준 행동으로 생각해 보면 단순히 궁금해서라든가, 이렇게 가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래, 원래대로라면 순탄하게 흘러가야 하는데…… 이래저래 복잡해졌어. 대체 어떤 놈이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시간을 이리저리 건너뛰었고, 그것 때문에 이쪽 세계는 잠시 격리하고 당분간 손을 봐야 하는 상태야.”
“시간을 건너뛴다고요? 그런 능력 들은 적 없는데?”
영의는 지금까지 시간과 관련된 각성자를 본 적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도 없었다.
“너는? 세상 천지에 네가 그런 능력 가지고 있다고 들은 사람도 없을 텐데. 거기다가 시간 계열이면 더 감추기 쉽지. 숨기려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어.”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덧 차는 화연의 집 앞에 도착했다.
“……뭐 해? 가서 데려와.”
“제가 데려오라고요?”
“일면식도 없는 내가 갈까? 그리고, 네가 설명해서 데려오는 게 더 맞겠지.”
“그냥 혼자 가서 데려오거나 같이 가실 줄로만 알았죠.”
“내가 왜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어야 하는 건데? 그냥 갔다 와.”
용신은 귀찮다는 듯 영의의 등을 떠밀며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화연의 집 문 앞에 서게 된 영의.
그는 전화를 걸어 일단 화연부터 깨웠다.
-……선배?
막 자다 깬 듯, 낮고 불명확한 목소리의 화연.
영의는 그런 화연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찾아온 용건에 대해 말을 꺼냈다.
“어, 다른 게 아니라…… 일단 지금 나가야 할 일이 조금 생겼어.”
-언제……. 지금요?
“……응.”
뚝.
화연의 전화는 곧바로 끊겼고, 그로부터 약 30분이 지나자 화연이 다급히 문밖으로 나왔다.
“기다렸죠!”
“아니, 얼마 안 걸렸어. 그보다…… 나오게 해서 미안.”
영의는 단장을 모두 하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화연의 머리칼에 아직 습기가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영의의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막 일어난 목소리였으니, 30분 만에 씻거나 옷을 갈아입는 등의 준비를 대부분 마치고 나온 것이다.
“일단, 탈까?”
영의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며 뒤에 주차된 차를 가리켰고, 그 차를 보자 화연은 영의에게 질문부터 했다.
“……선배, 차 샀어요?”
“아니…… 내 차는 아닌데.”
“빌렸어요? 누구한테? 주변에 저런 차 타고 다니는 지인 없잖아요.”
“일단 타 보면 알 거야.”
이내 화연의 손을 붙잡고 차에 올라타는 영의.
뒷좌석으로 영의와 화연이 타자, 어느새 앞좌석으로 자리를 옮긴 용신이 몸을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반갑군.”
용신과 눈을 마주치자, 당황하여 살짝 물러나는 화연.
“어…… 반갑습니다. 근데 누구시죠?”
화연의 말에, 용신은 잠시 대답을 고르려는 듯 뜸을 들였다.
“그래, 여기 이 녀석의…… 상사쯤 된다고 생각해.”
용신은 영의를 가리키며 상사라는 말을 꺼냈고, 화연은 그 말에 영의에게 작게 속삭였다.
“어느 쪽 상사예요? 이쪽? 아니면 저쪽?”
그리고 그것을 듣지 못할 용신이 아니었지만, 그는 둘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했다.
“저쪽이지. 너를 보려고 왔대. 그리고,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화나게는 하지 마.”
영의의 대답과 용신에 대한 주의에, 화연은 표정을 관리하며 용신을 쳐다보았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오랫동안 신화 길드의 부길드장으로 근무해 온 경력자답게, 사무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뭐, 확실히 이 녀석이랑 다르게 일을 좀 해 본 티는 나네. 그런데…… 재미는 없어. 신선한 맛이 없달까. 그래도, 말은 잘 통하겠네.”
하지만 용신은 그런 화연의 모습에 재미없다는 말을 하며 동시에 칭찬을 했다.
“일단, 본론부터 얘기하지. 너…… 나중에 우리 쪽에서 일할 생각은?”
“네?”
“일이라고 해 봐야 별것 없어. 이 녀석처럼 여기저기 보낸 다음 사건 터질 만한 걸 미리 수습하거나, 터지는 게 확정된 사건을 적당히 잘 수습하게 만들 뿐이지.”
용신은 그 말을 하며 화연의 반응을 살폈고, 화연은 당연하게도 영문 모를 소리에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모르는 걸 보니, 말을 많이 해 주진 않았나 보네.”
영의는 화연에게 굳이 자신이 하는 일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았다.
위험 요소라든가, 용신이 들려줬던 비밀스러운 옛이야기 같은 것들은 비밀에 부쳤다.
“그게 당연하죠.”
“아무튼 히어로 영화나 만화가 다 망쳐 놨어. 마음을 터놓고 하는 일을 말해 줘야 걱정을 안 하는 법이지. 말 안 해 줬다가는 오히려 더 괴악한 걸 상상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용신은 지구의 문화에 제법 많이 해박한지, 히어로에 관한 말을 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전에 그러다가 바람피운다고 의심받아서 죽은 놈도 있었다고. 일은 나름 잘하는 녀석이었는데, 사람 다루는 법이 서툴렀지.”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요?”
“그래. 아무튼 이제 둘 다 알게 됐으니 세 가지 선택지를 주지.”
용신은 손을 내밀어서 손가락을 펴며 화연과 영의, 둘에게 선택지를 세 개 제시했다.
“첫 번째, 기억을 깔끔하게 지우고 무난하게 살아간다. 물론 그동안의 보상으로 나름 챙겨 주긴 할 거지만 평범한 일상이겠지. 어딘가의 무술 교관 같은 거로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아, 너는 끄나풀 잡는 것까지 협조는 하고 가야 돼. 내가 분장하긴 싫어.”
엄지를 펴며 제시한 첫 번째 선택지는 기억을 지우고 옛날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지금까지 일해 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영의에게 적절한 직업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제의했다.
“두 번째, 둘 다 협력하고 죽을 때까지 비밀을 잘 간직하며 노출하지 않고 사회에 숨은 영웅으로 생을 마감한다. 첫 번째와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나름의 추억 하나 정도는 쌓겠지.”
검지를 펴며 제시한 두 번째는 기억을 지우지 않고 지금과 같은 일상을 유지하되, 능력에 대한 것을 비밀로 하는 것.
“세 번째. 이번 일을 해결하고 그대로 팟 하고 사라져 버리는 거야.”
중지와 함께 제시한 세 번째 선택지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는 것이었다.
“사라진다고요?”
“그래, 가장 완벽한 기밀 유지 방법이고…… 또 위장하기도 쉽지. 너, 그리고 너. 둘 다 위험 요소가 있는 직업군이지? 적당히 꾸미는 거야 어렵지도 않고.”
용신은 첫 두 개의 선택지와 다르게 상당히 극단적인 선택지를 제시했다.
“딴 건 몰라도 세 번째는 별로인데요.”
“네, 그건 조금…….”
“이 세 번째가 보통 사용되는 방법이지.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가끔 존재할 수는 있다지만, 가장 확실한 건 비밀을 가진 사람들을 없애는 거거든.”
용신은 세 번째 방법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네 번째의 약지를 폈다.
“네 번째, 내가 개인적으로 제의하는 게 있어. 손해 볼 일은 없어. 대신 조금 귀찮은 일이 많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