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1)
용신과의 식사 자리.
와작, 와작-!
바삭한 튀김옷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고, 안에 든 닭고기의 육즙이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음, 좋네.”
레몬즙을 뿌린 가라아게.
후룹, 후루룹-!
채소와 고기를 얇게 썰어 하나하나 겹친 뒤 끓여 먹는 밀푀유 나베.
“이것도 괜찮아. 나쁘지 않군.”
용신은 식사를 하고 싶었다는 말이 사실인 듯,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영의는 본인의 앞에 덮밥 하나만 둔 채 탁자의 나머지를 채운 음식들을 비우고 있는 용신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근데 왜 그런 것만 먹고 있는 거죠?”
문득, 용신이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고 질문하는 영의.
기름진 것을 먹기 싫다고 하고, 탕이나 찌개류도 별로 좋지 않다고 했던 용신이었지만 지금 그가 먹고 있는 건 튀김과 찌개(?)였다.
“맛없는 걸 먹기 싫단 거였지, 맛이 있으면 뭐든 상관없지.”
“그럼 그냥 결국 먹고 싶은 걸 먹으러 온 거 아닌가요?”
영의는 일단 자신도 식사를 할 때였으므로 덮밥에 손을 댔고, 영의가 먹으려는 모습을 보이자 용신도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먹으면서 해야지. 그리고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갈 건데…… 아무튼, 먹으면서 들어. 알아듣는 언어가 나오면 손을 들도록.”
이내, 용신은 영의가 알아듣지 못하는 여러 가지 언어로 말을 꺼냈다.
몇몇 개는 군데군데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말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은 나오지 않았다.
“-Dul rijs! ……대부분 못 알아듣는군. 그럼 어쩔 수 없이 검증된 언어로 해야겠어.”
“검증된 언어라고요?”
“너와 내가 방문한 적 있던 세계의 언어로 하는 거지. 지난번에 난쟁이들을 만났으니, 그쪽 언어로 해야겠네.”
용신은 이내 난쟁이들의 언어로 대화를 시작했고, 영의 이외에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일단, 조만간 일이 하나 터질 거야. 너를 겨냥하고 일을 벌일 테니 다른 사람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겠지.”
“저를 겨냥하고요?”
영의는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래, 그러니까 아까 말한 거잖아. 적당히 행동하라고. 만약 어떤 놈들이 널 노리고 함정을 파 놨다가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었을 때 잡히면 답도 없어. 물론 네가 그만큼 멍청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네 곁의 아가씨가 그 부분을 좀 얘기해 달라더라.”
“아…….”
[이제야 사용자가 행동하기 전에 조금 판단이라는 것을 할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용신이 자신을 굳이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가 식사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영의.
“물론 네가 난리를 쳐 준 덕분에, 잡놈의 위치를 특정하기도 쉬웠지만.”
“잡놈?”
“아아, 있어.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막 활개 치고 난리 피우려는 놈.”
“……그게 절 말하는 건 아니죠?”
영의는 어쩐지 용신이 자신을 교묘하게 돌려서 까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넌 뭐라도 된 것처럼 알긴 하지만 활개 치고 난리를 피우려고 하진 않잖아.”
“그럼 누구죠?”
“음…… 좋게 말하면 태업자고, 나쁘게 말하면 배신자? 그 끄나풀 정도로. 쩝.”
용신은 그 말을 하며 마지막 남은 가라아게를 입 안에 털어 넣었고, 5인분은 족히 될 식사가 사라지고 말았다.
“배신자…… 끄나풀?”
“너한테 설명해 줄 이유는 없지만…… 대충 알아 두는 게 좋겠지. 이미 하나는 잡았잖아.”
“하나를 잡았다고요?”
이미 하나를 잡았다는 말에 영의는 공손환을 의심했다.
‘끄나풀 수준은 아니었는데?’
“그래, 네가 잡은 건 아니지만 잡게 유도하긴 했지.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하면서 별 미친 짓만 골라 하는 놈들.”
“그럼 끄나풀보다 더 위……?”
“음…… 아, 그래. 고마워 아가씨. 그…… 교주라는 녀석. 교주 맞나? 아무튼 그 녀석의 배후에 관리자가 연결되어 있어. 근데 어떤 놈인지를 모르고 있어서 잡지를 못하고 있지.”
용신은 정말 의외로, 관리자씩이나 되는 거물이 배후에 있다고 말했다.
“관리자라면…… 그때 말했던, 차원을 관리하는 존재들 아닌가요? 근데 왜?”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세상을 다 관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세상의 수를 줄이려 드는 녀석들이 있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애 버리는 극단적인 녀석도 있고…… 단순히 발전 속도나 팽창이 느리다고 없애는 효율주의자도 있지.”
“그중에 하나가 세상을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건가요?”
영의의 물음에, 용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그런 셈이지.”
“근데 그걸 안 막는다고요?”
영의는 용신과 그가 가진 초월적인 힘, 그리고 다른 관리자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물었지만 용신은 손을 뻗어 영의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온 것 같냐? 지난달까지 오가던 세계가 폐기되는 것도, 본 적 없는 세계가 생겨나는 것도, 관리자가 잘 관리해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세계가 허무하게 심연의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것도 봤어. 내가 세계 하나를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야겠어?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는데?”
용신은 영의의 눈을 노려보다가 이내 그의 멱살을 놔주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계들이 심연에 삼켜지는 건 자연스러운 구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관리자란 놈들이 거기에 차원들을 마음대로 갖다 버리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 그래서 규칙을 설정했지만…… 이제 관리자들이 세계들을 심연에 자연스럽게 삼켜지도록 조작을 하게 된 거지.”
이야기가 점점 난해해지기 시작하자, 영의는 얼굴을 찌푸리며 간단한 설명을 요구했다.
“……조금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순 없나요?”
“쉽게 얘기하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무리가 있고 그놈들이 뭐 어떻게 꼬인 건지는 몰라도 너랑 꼬여서 내가 찾을 수 있었다는 거지.”
용신의 설명에,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조심해야겠네요.”
“아니, 조심할 필요는 없지. 내가 있을 건데.”
“……네? 아까 일일이 다니지는 않는다고…….”
세상 하나를 구하자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수는 없다는 얘기를 방금 해 놓고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용신을 보며 어리둥절해하는 영의.
“이만큼 위치 정보가 확실한 경우는 바로 잡는 게 낫지. 집 안에 어디 있는지 모르는 벌레를 찾아서 죽이는 건 힘들지만, 어디론가 향하는 걸 본 벌레는 잡기 쉬우니까.”
용신은 벌레를 예시로 들었고, 영의는 용신의 수준이라면 뭐든 간에 벌레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찰떡같은 비유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됐으니까, 당분간 뭐 뒤집어쓰고 뛰쳐나가고 싶을 때는 나한테 연락부터 해. 네 곁의 아가씨…… 이름이 알림이랬나? 아무튼 그 아가씨가 말을 해 줄 수도 있지만 직접 연락하는 게 더 나을 거야.”
용신은 그렇게 말하며 양복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휴대폰도 있어요?”
“그럼 뭐 내가 이런 것도 안 들고 다닐 것 같았나?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아니,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꺼내길래…….”
“3일이면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떨어져도 어지간한 행동 양식이나 상식은 학습하지. 일단 이걸 받아 둬. 거기에 내 번호가 있을 테니.”
용신이 자신에게 휴대폰을 밀어 주자, 영의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냥, 저한테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굳이 새로운 휴대폰을 줄 이유까지는…….”
번호만 알면 어떤 전화기로도 통화를 할 수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영의.
하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 번호가 네게 남는 게 문제인 거야. 스윽 왔다가 스윽 사라져야지. 일단 내 휴대폰과 이 휴대폰은 무전기와 다를 바 없지만, 네게 전화번호를 줬다가는 이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될 수도 있단……. 쉽게 설명해 줘야겠군.”
“네, 쉽게 설명해 주세요.”
“내가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만 쓰라고 주는 거야. 내가 떠나갈 때 다시 회수할 테니.”
용신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고,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휴대폰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영의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안 받았으면 네가 자고 있을 때 몸에 연락용 장치를 심으려고 했으니까.”
용신은 손안에서 영의의 검지와 중지를 붙여 놓은 것 같은 크기의 금속판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그딴 걸 심으려고 했다고요?”
“뭐, 그래도 쇳독은 안 올라올 거야. 나름 신경 써서 만든 거거든.”
영의와 용신은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사소한 말다툼을 하며 식사를 이어 갔다.
* * *
그 시각, 서울 근교의 한 창고.
밤이었기에 어두운 창고의 안에는 어슴푸레한 푸른 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 빛의 근원지는 탁자 위에 놓인 한 태블릿이었고, 그 태블릿 주위에는 큰 덩치의 사내와 나이 든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어딜 가도 쉽게 구하거나 볼 수 있는, 플라스틱제 탁자의 위에 놓인 태블릿.
-좋아, 모두들. 말했던 건 잘 기억하고 있지?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기억한다.”
태블릿에서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화면에는 선지자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근데 왜 나를 호출한 거야?
“작전 시간까지는 아직 2시간이나 남아 있지만, 할 말이 있다더군?”
권왕, 텐징은 옆에 있던 파드레를 손으로 가리켰다.
“흐음…… 그런데 사전에 모든 정보를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이곳에 약간의 변수가 생겼습니다.”
-응? 뭐가?
선지자의 물음에 파드레는 태블릿을 들어 창고의 창문 쪽으로 들고 갔고, 창문을 연 뒤 태블릿을 기울여 하늘을 향하게 했다.
어두운 밤하늘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구름들을 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늘이 흐리네. 날이 별로 안 좋은가 봐?
“이곳의 기상정보와 조금 다릅니다.”
쿠르릉-
하늘에서 구름과 구름이 교통사고라도 난 것처럼 큰 소리가 울렸고, 그것은 태블릿을 통해 화면 너머에서 구경하던 선지자에게까지 들렸다.
-비가 올 것 같네. 천둥과 번개도 같이.
“사전에 얘기해 주셨던 계획에 없던 변수가 생겨서 연락드린 겁니다. 어떻게…… 작전을 강행하시겠습니까?”
파드레는 태블릿을 다시 돌려 자신에게 향하게 한 뒤 질문을 했고, 화면 너머의 선지자는 고민하는 듯 손으로 턱을 짚었다.
-으음…….
탁!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느라 시간을 끄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텐징은 태블릿을 빼앗아 들었다.
“이보게, 무례하지 않나.”
“무슨 상황이든 상관없다. 날 보내 주면 소임을 다하지. 물론, 유인하는 것까지도.”
텐징의 자신 있는 행동과 언행, 그리고 사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강행하기를 꺼렸다.
-안 돼. 대기하도록. 명령이야.
선지자의 대기 명령이 떨어지자, 파드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고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탁!
이내 전원을 올리고, 환하게 밝아지는 창고의 내부.
팟, 팟-
“왜지? 나를 못 믿나?”
텐징은 선지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내 주지 않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 듯, 계속 태블릿을 붙잡고 있었다.
화면 속 선지자는 텐징의 물음에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몰라? 무슨…… 그냥 쉽게 설명해 줄게. 비 오면 젖잖아? 젖으면 전기에 더 취약해질 것 아냐? 전에는 비도 안 왔는데 반쯤 죽을 뻔했으면서?
굳이 불리한 전장에 뛰어 들어갈 필요가 없는데 가겠다고 하는 텐징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지자.
“……어지간하면 자네의 의지와 용기를 칭찬해 주겠지만, 자살행위를 권장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네. 종교를 믿어 보게나.”
파드레까지 그를 보며 다시 생각하라고 했고, 자살은 안 된다는 생각을 심어 주기 위해 종교까지 권유했다.
“종교? 한때 믿었지. 다만 신이 내게 믿음에 대한 응답을 주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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