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49화 (249/325)

#제249화 (25)

카페에서의 짧은 만남 이후, 영의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를 기다리는 용신과 마주칠 수 있었다.

영의가 자취방으로 돌아오자, 거기엔 용신이 자취방의 바닥에 앉아 뇌영을 쓰다듬고 있었다.

“구루루룩(으어어어)…….”

뇌영은 용신의 손길이 좋은지 그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고, 그 주변에 있던 전룡은 영의가 오자 인사를 했다.

“주인, 집에 왔다.”

“……팔자 좋네.”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경계는커녕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영의.

물론 전룡이야 용신이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경계를 안 한다 하더라도 뇌영은 누가 주인인지도 모를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반면 용신은 영의가 오기를 기다렸기에 그가 오자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 재미있는 둘과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나 봐?”

카페에서 영의와 함께 있었던 병찬과 병민을 보고 ‘재미있다’고 평하는 용신.

“재미있다고요?”

“뭐든 간에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며 친분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들과 함께하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만날 이유가 없잖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영의는 용신에게 슬쩍 반대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안 그럴 수도 있겠죠.”

“물론 그렇겠지, 이득이나 은원관계…… 때로는 별 이유 없이 가까이 지내기도 하지만. 그 둘과의 관계는 초면인 내가 보기에도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지.”

이내 용신은 쓰다듬던 뇌영을 옆에 내려놓은 뒤, 몸을 앞으로 숙여 양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렸다.

그는 양반다리로 바닥에 앉아 있었으니 그런 자세를 취하자 자연스럽게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다.

그 자세는 꼭 뭔가 말할 것만 같은 자세였기에, 영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보기에 앞서서…….”

용신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말의 끝부분을 살짝 끌었다.

“앞서서……?”

“조금 나가서 걷자고. 가볍게 산책도 하고, 식사 같은 거라도 하고.”

뜻밖에도, 바깥에 나가서 대화를 하자고 하는 용신.

“왜죠? 뭔가 얘기할 거라면 여기서 하는 게 낫지 않나요?”

영의는 비밀이나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한 사실들을 이야기하기에 이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밖에 없으며, 지금까지 뇌영과 살며 이런저런 소음이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항의하러 오지 않았다.

사람이 없거나 그만큼 집의 방음 성능이 좋거나, 또는 들리더라도 항의할 성향이 아닌 사람이 사는 걸지도 모르지만 영의 또한 다른 집의 소음을 잘 들은 적 없는 것으로 보아 방음이 잘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용신이 바깥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봐, 너는 바깥에서 친구들과 잘 놀고 재밌게 왔겠지만 난 여기서 새나 쓰다듬고 있었다고. 그리고 집에 먹을 것 좀 사다 놔. 먹을 게 없더라.”

용신은 나중에 찾아오겠다는 말을 한 뒤 곧바로 영의의 집으로 온 것 같았다.

영의는 먹을 게 없었다는 그의 말에 그가 자신의 자취방을 여기저기 뒤졌나 싶어 방을 둘러보다 싱크대에서 고개를 멈췄다.

“……우리 집에 들어왔었어요? 그것도 거기서 나가자마자 바로?”

당장 그가 카페에서 나갈 때 가지고 갔던 레모네이드 잔이 싱크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세척되어서 물기를 빼기 위해 거꾸로 뒤집은 채로.

물기는 제법 말라 있었고, 싱크대의 바닥에도 물기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여기 온 지 제법 오래된 것 같았다.

“뭐, 그렇지. 달리 갈 곳도 없고. 또 네가 여기로 올 거란 걸 알았으니까.”

“그건 어떻게……. 아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네. 집 도어락도 따고 들어올 정도니.”

물론 드래곤들의 신으로 추앙받는 만큼 이런저런 능력이 있을 것이고, 한낱 인간의 도어락을 못 열 수준도 아닐 것이다.

“비밀번호는 네 옆의 아가씨가 가르쳐 주더라. 덕분에 뒷수습할 필요가 없었어.”

용신의 말에 영의는 알림이를 떠올렸고, 그가 알림이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알림이가 먼저 말을 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사용자. 요청에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래……. 그러면 일단 여기로 배달을 시킬 테니까, 밥은 여기서 먹죠?”

영의는 일단 용신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다.

정체가 알려져 봐야 좋을 것 없었고, 또 그의 상식이 이곳의 상식과 다르니 일단 격리할 생각이었다.

“글쎄, 이곳의 배달 음식이면 대부분 기름진 것들 아닌가? 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물론 기름지지 않은 탕이나 찌개류도 배달해 주겠지만……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

배달 음식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 하면 대부분 튀기거나, 치즈가 들어가거나, 육류 관련이라 어지간하면 기름진 음식이긴 하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

하지만 영의는 용신이 그것을 상세하게 아는 이유가 궁금했다.

대략적인 정보야 알림이한테 얻거나 오랜 세월 살아온 경험과 눈치로 습득한다 하더라도 찌개나 탕 같은 한식 계열도 배달된다는 것을 알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글쎄…… 그것도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따라와.”

“손은 왜-”

용신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영의의 손을 붙잡았고, 이내 둘은 곧바로 자취방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영의와 용신은 잘 발달한 도시의 번화가 한구석에서 모습을 나타냈고, 둘이 순식간에 나타나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놀랐지만 이내 그들은 갈 길을 갔다.

순간 이동 계열의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은 드물긴 해도 존재했으니까.

물론 용신이 사용한 것은 그런 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술이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게 그거였다.

그리고 영의는 갑작스럽게 다른 장소로 오게 되자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잡……. 여긴 어디?”

[신주쿠입니다.]

영의의 의문에는 알림이가 답해 주었고, 이내 용신이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일본이지. 뭐 어차피 내 말이야 알아듣겠지만, 내가 여기 말을 쓴다고 놀라지는 마.”

용신은 앞장서서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고, 영의는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대체 여긴 왜 온 거죠?”

“말했잖아, 식사라도 하자고.”

영의는 용신의 말에 정말 식사를 위해 온 것인지 반신반의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식사에 대한 대금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갑이 있기는 한데…… 일본 돈은 없는데.’

일본도 카드 결제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한국처럼 대부분의 점포가 카드를 받는 형태는 아니었다.

“돈은 걱정 마라, 이쪽 차원만큼 돈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으니까.”

용신은 영의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고, 이내 불이 꺼지고 문까지 닫힌 가게 앞에 도착했다.

“문 닫았는데요.”

영의는 휴대폰에 있는 시계와 문에 있는 폐점 시간을 보며 비교했지만, 용신은 문이 닫혔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글쎄…….”

똑똑.

용신은 문을 두드렸고, 잠시 후 안에서 한 젊은 청년이 나와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죄송하지만, 오늘 저희 가게는 영업을 끝내고 문을 닫았습니다.”

직원인 듯한 젊은 청년은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입장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용신은 거절할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이 할 말을 했다.

“주인장한테 오늘의 예약 손님이 왔다고 전해 주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뜻밖이라고 해야 할지 용신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예약……이요?”

젊은 청년은 용신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다시 가게의 안으로 들어갔다.

진실이라면 사장님이 직접 관할할 문제고, 거짓이라면 다시 쫓아내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예약에 대한 의구심은 영의 또한 마찬가지인지, 용신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예약이라고요?”

“그래, 여기 온 지 조금 됐거든. 설마 내가 이 차원으로 오자마자 너한테 곧바로 왔다고 생각했어?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다른 말로 도끼병이라고도…….”

용신은 태연하게 영의에게 자의식 과잉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를 듣자 말을 멈추었다.

이내, 가게의 문이 열리며 나오는 나이 든 중년인.

“오셨습니까?”

“그래, 간만에 식사나 하려고 왔지. 동행이 하나 있긴 한데, 괜찮지?”

용신은 영의를 가리키며 동행이 있다고 얘기했고, 중년인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들어오시죠.”

중년인은 용신과 영의를 직접 자리로 안내하기 시작했고, 영의는 도중에 가게의 내부에 이런저런 사진들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시도 스피리츠 방문]

[쇼군즈 방문]

[내각 의원 마츠모토 요시다 님 방문]

이런저런 유명인들의 사진과, 서명이 벽에 걸려 있었다.

“……엄청난 맛집인가 본데요.”

“그거야 그렇겠지. 저 녀석의 요리를 이 내가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용신은 앞서 걷는 중년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갑자기 자신을 추켜세웠다.

“네?”

“내가 말했잖아? 재미있어야 사람을 가까이 둔다고. 난 재미있어 보이는 차원을 많이 찾아가거든.”

“그런데, 그게 맛집이랑은 무슨 관계인 건지…….”

“그냥, 재미있어 보이니까 접근하는 경우도 있단 말이야. 이 녀석도 길거리에서 요리를 해서 팔길래 흥미가 생겨서 하나 사 먹어 봤었지. 근데 제법 싹수가 보여서 투자를 해 준 거야. 그랬더니 이런 가게를 차리더라고.”

이 가게의 사장이 젊은 시절, 용신을 우연찮게 만나 투자를 받았고 그 덕분에 이만큼 성공한 것 같았다.

이내 그들은 좁은 방 안으로 안내받았고, 중년인은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갔다.

단둘이 남게 되자 영의는 곧바로 용신에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근데, 제가 왜 일본까지 온 거죠? 찾아온 용건은 왜 말을 안 해 주시는 거고요? 그리고 다른 차원에는 개입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요?”

“질문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대답하는 걸 좋아하는데…… 네가 한 번에 물어보니 한 번에 대답해 주지.”

용신은 손가락을 편 뒤 하나씩 접어 가며 대답을 해 주었다.

“일단, 여기가 눈에 안 띄는 장소인 데다 대화의 내용이 새어 나가도 알아들을 위험이 없지.”

엄지를 접었고,

“찾아온 용건? 그건 조만간 너랑 엮인 골치 아프거나 규모가 큰 일이 하나 생길 건데, 거기서 선택을 잘하라는 조언을 위해서.”

검지를 접었고,

“그리고, 내 입맛을 만족시킬 실력이었으면 언젠가는 뜨게 되어 있었어. 역사 변형까지도 안 가지.”

중지를 접었고,

“마지막으로, 음식값은 낼 필요 없어. 사장과 잘 아는 관계니까.”

마지막 말을 하며 접었던 손가락들을 다시 쫙 편 용신은 물병을 들고 테이블 위에 있는 물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대화가 새어 나갈 염려가 없는 건 집에서 했어도 문제없었잖아요.”

영의는 자신이 일본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대화의 보안을 위해서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굳이 멀리 갈 거라면 정말 아무도 없는 오지로 갔으면 될 것 아닌가.

“그래, 물론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는 칙칙한 방에서 식사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분위기는 갖춰진 식당에서 먹는 게 낫지 않아? 또, 네 동네에 뒀다가 또 머리에 뭘 뒤집어쓰고 나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네?”

용신은 영의의 가슴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요 근래 네가 행동한 걸 돌이켜 봐. 그래, 바로 거기. 양심에 손을 얹고 말이야. 매번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잔! 하고 나타나서 사건 해결. 아무리 봐도 수상하지 않아?”

영의가 헬멧을 쓰고 행동하던 모습도 알고 있는 용신.

“지금 정체를 잘 감추고 있고 들키지 않겠다고 믿겠지만 세상…… 특히 권력을 가진 녀석들은 힘을 가진 녀석들을 경계해. 입이 여럿 모이면 멀쩡한 사람 하나 괴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래도…… 별로 문제 될 건 없죠. 좋은 일을 하는 건데.”

“국민은 영웅을 찬양하지만, 국가는 영웅을 손안에 넣으려고 하지. 네가 강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어.”

용신은 그런 말을 하며 수많은 깨달음과 현기가 느껴지는 눈으로 영의를 쳐다보았고, 영의는 그의 눈을 보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유의는 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네 주변인이 엮인 게 아니라면 움직이지 마. 네 몸놀림이 빠른 건 나도 아니까, 최후의 순간에나 움직이라고. 세상은 세상 돌아가는 대로 움직여야지?”

영의는 몸을 사리라는 용신의 충고가 탐탁지 않았지만 일단 받아들였다.

그보다 한참을 더 살았으니, 영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파멸하는 것도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다음 건 뭐죠?”

“그건…….”

똑똑.

영의의 말에 용신이 대답해 주려던 순간,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식사가 다 준비됐습니다.”

“……아무래도, 나중에 얘기해 줘야 할 것 같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