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24)
무림에서의 사건 사고와 그 수습에 대한 것은 무림인들에게 맡기고 도망…… 아니, 무림을 잠시 떠났다.
그는 지구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혁련운의 머리칼을 다수 뽑았고(어째서인지 당세진의 반발이 있었다), 그것을 호엔하임에게 전달해 주었다.
혁련운의 머리칼을 받은 호엔하임은 영의에게 의문의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주문을 한 이유가 궁금해져 이내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
“잘 받았네만…… 정말로 영구적인 치유가 아니어도 괜찮겠나?”
영의의 주문은 치료제의 치료 기능을 제한해 달라는 것.
“네, 그 부분은 그럴 수밖에 없어요.”
기껏 세상을 바로잡았는데, 또 다른 혼란의 씨앗을 만들지 않기 위한 영의의 결단이었다.
“……알겠네.”
그런 영의의 강행에, 호엔하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치료제를 사용하게 될 사람이 오래 살기를 기원했다.
살려 줄 거면 제대로 살려 주는 게 옳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세계에서 개입한 사람이 어떤 재앙을 초래하는지 눈으로 보고 온 참이었기에 영의는 변수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호엔하임에게 다녀온 이후에는 그룬에게 방어구를 비롯한 이런저런 주문을 맡기러 갔고, 거기서 숙취에 시달리는 그룬을 만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마셨던 거예요?”
연회는 끊기는 일 없이 계속 이어졌고, 거기에 드는 비용이 국고에서까지 나왔지만 영의는 그것을 몰랐다.
하지만 공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숙취를 겪고 있는 다른 난쟁이들을 보아하니 다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마신 것 같았다.
“……기억이 안 나네. 그래도, 자네의 주문을 적어 두기는 했으니 나중에 찾으러 오게. 우으으…….”
영의는 그룬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이내 다른 난쟁이들이 국밥을 들고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 판단한 영의는 곧바로 지구로 돌아갔고, 다시 그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보다 아저씨는 차 안 사세요? 아무리 집이 가깝다지만…….”
“마정석 자동차 나오면 사야지. 개발은 바이크보다 빠르게 됐는데 법안이 문제니…….”
“그러다가 환갑잔치를 먼저 할 것 같은데요.”
“에이, 자식아! 그거보단 빨리 통과되겠지!”
늘 하던 것처럼 배달 일을 하며 중간에 호찬의 가게로 들러 그와 수다를 떨거나.
-야, 영의야.
“어, 형. 왜?”
-너 아카데미에서 임시 강사 해 볼 생각 없냐?
“아카데미에서 임시 뭐?”
형인 영웅에게서 전화로 아카데미에서 임시 강사 초청을 제의받기도 하고.
“선배.”
“어, 어? 왜? 이번엔 숨기는 거 없어.”
“아니, 그건 대충 알겠는데…… 그 일은 언제 끝나요? 그, 여기서 안 하는…… 그 일.”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화연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중요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또한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럼 오늘 주제는…….”
“오른손이 옳은 손이란 말이 변형된 거라면, 왼손은 대체 뭐 어떤 말이 변형된 건가? 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 보자.”
“이야…… 참, 이번에는 윽수로 특이한 주제 아이가?”
한 카페에서 병찬, 병민과 함께하는 토론의 장이 열렸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 주제에 주변에 있던 손님들 중 일부가 무심코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기도 했다.
“왼, 외따로 할 때의 그 외자 아닌가? 외롭다, 외길, 외다리 같은 거.”
병민이 먼저 발언을 했다.
“내도 그런 단어들은 안다. 근데 그건 와 말하는데?”
“그러니까, 오른쪽은 오른쪽이라고 이름 붙였으니까 남는 쪽을 갖다가 이런 이름을 붙인 거 아니겠냐 이거지.”
옳은 손, 오른손과 반대쪽에 남는 손이 또 있으니 남아 있는 손이라고 해서 왼손이라고 주장하는 병민.
“그럴듯한데예?”
“한쪽엔 이름이 정해져 있으니까 하나 남은걸 외손, 왼손이라고 한 거라…….”
영의 또한 그 말이 그럴듯하다는 병찬의 주장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자신도 뭔가 떠올라 이야기했다.
“아, 생각났다.”
“뭐를예?”
“뭐가요?”
“영어로도 오른손은 Right, 옳다는 뜻이 있고 왼손은 Left, 남아 있다는 뜻이잖아. 그거랑 비슷하니까 병민이 말이 맞는 게 아닐까?”
그나마 이들 중 아는 게 많았던 영의는 영어 쪽으로 접근하여 분석했고, 병민의 가설을 보충했다.
“영어로도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병민은 영의의 말에 영여로도 비슷하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고 있었지만, 병찬은 심각한 고민을 하는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병찬아, 왜?”
“아이디어가 없어?”
이미 영의와 병민이 매우 그럴듯한 가설을 세우고 그 보충도 충분히 해 놨기에 더 이상 뭔가를 말할 부분이 없기는 했다.
“행님.”
병찬은 굳은 표정 그대로 영의를 불렀고, 영의는 얘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그 표정에 일단 진지하게 들어 보기로 했다.
“어, 왜.”
“Left는…… 좌파라는 뜻 아니였어예?”
병찬의 뜻밖의 대답에, 병민과 영의 둘 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 전에 보니까는 How many left라는 게 을마나 많은 좌파가 있냐는 뜻이라 카는 글을 봐 가지고. How many는 내 알고 있었거든…….”
병찬의 참신하면서도 안타까운 대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병민과 영의.
“아이고 병찬아…….”
“하이고…… 병찬아…….”
“아, 아이가? 좌파가 아니라 배였나? 그, 동강에서 다 같이 고무보트 타고 노 젓는 그거?”
이제는 뗏목, 래프트를 말하고 있는 병찬.
“그건 철자가 달라…….”
“얘 중학교 나온 건 맞아?”
“저야 모르죠, 고등학교 때 만났는데…….”
“아, 맞다. 그랬지? 꼭 둘이 평생지기 친구 같아서 맨날 착각해.”
놀랍게도 병찬과 병민은 함께한 세월이 10년이 넘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둘 다 중퇴 아이가? 내 영어는 쪼매 약하고 그래도, 한국어는 잘한다 안 카나!”
병찬은 영어는 몰라도 한국어는 자신 있다는 듯 가슴을 탕탕 쳤고, 그 모습에 영의와 병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병민과 영의는 병찬이 한국어를 잘한다는 말과 모순되는 그의 방언에 의문을 품었다.
“얘는 경상도에서 산 세월보다 서울에서 산 세월이 더 긴데도 아직 사투리를 쓰는데…….”
물론 사투리를 쓰는 게 잘못된 건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산 세월이 길었음에도 억양이 조금 남은 수준이 아니라 사투리가 사라지지 않은 게 의문이었다.
“내 그건 어떻게 몬 한다. 할매부터 엄마, 아빠가 다 쓰는데 우째야 하노?”
하지만 병찬도 할 말이 있었으니, 집안의 모두가 집 안에서 사투리를 쓴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
“그래.”
그렇게 셋이 한창 사투리에 대한 열띤 대화를 시작하자, 오른손과 왼손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론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에 불안해진 주변 손님들이 불안감에 움찔거리고 있었지만 그들이 알 방법은 없었다.
“그냥 개성으로 받아들이죠. 얘가 표준어 쓰면 그게 더 어색할 것 같은데.”
“그래. 그게 낫겠다. 얼굴부터 사투리 쓰게 생겼잖아.”
“행님, 그거 차별인데예.”
어느덧 사투리에 대한 대화도 마무리되어 갈 무렵, 영의가 방금 전에 끝내지 못한 토론을 떠올렸다.
“진짜 그렇게 생겼으니 그렇지. 그런데, 우리 아까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더라?”
“아, 맞다.”
영의가 주제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자, 그들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영의의 테이블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일어서더니 카운터로 다가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 추가요.”
“바닐라 라테 한 잔 추가요.”
“녹차 라테랑 레모네이드 한 잔씩요.”
아르바이트생들은 카페에 갑자기 주문이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하자 바쁘게 일하기 시작하며 왜 주문이 몰려서 오는지 궁금해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한편 영의와 병병 브라더스는 주문을 더 이상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왼손 오른손이었지, 참.”
“어디까지 했더라…….”
영의와 병민이 토론이 끊긴 부분을 떠올리기 위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쪽 친구가, 대답을 못 하고 고민하던 부분에서 끊겼지. 토론으로 따져 보자면 그 부분에서 맥이 끊겼다고 볼 수 있어.”
양복 차림의 남자는 그들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대화에 끼어들었고, 영의는 익숙한 목소리에 자신의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인물이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어?”
영의의 옆에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앉은 것은 다름 아닌 용신이었다.
모크란에서 칼라미트를 살리기 위해 그의 부름에 응해서 왔고, 영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준 뒤 선물까지 챙겨서 돌려보냈던 첫 번째 차원의 심부름꾼이었다.
“여긴 왜…….”
“오랜만에 보는군.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은 잘 즐겼겠지? 작은…… 전쟁이라든가?”
용신은 영의가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 말을 꺼냈고, 그가 영의와 아는 관계 같아 보이자 병찬과 병민은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내 둘이서 작게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는 병찬과 병민.
“행님 지인……이겠제?”
“나도 모르지. 근데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데 저렇게 친하게 구는 거 보면 형 지인이 맞지 않을까?”
병찬은 그럴듯한 병민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얌전히 앉아 있기로 했다.
“여긴 어떻게 오신 거죠?”
“내가 뭐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니고…… 또, 아가씨가 얘기를 해 줬으니 왔지. 날 알 만큼은 알 텐데.”
영의가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으로 봐서, 절대 만만하거나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 같았다.
“되게 조심스러워하는데? 빚쟁인가?”
“전에 행님이 말하던 그 사람 아이가? 개인적으로 주문한다 카던 그?”
과거, 영의가 변명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의외로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병찬의 말에 병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지도……?”
“돈도 많아 보인데이. 그것도 윽수로 많아 보인다. 일단 정장부터가 고급지다 아이가?”
용신은 지난번처럼 정장 차림이었지만, 겉보기에도 상당한 고급품임을 짐작게 하듯 때깔부터가 달랐다.
“그래, 둘이서만 계속 얘기하지 말고. 나도 좀 끼워 주지 그래? 정장은 고급인 걸 알아줘서 고마워.”
병찬과 병민이 서로 그러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용신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괘안심다! 지랑 임마는 면식도 없고……!”
“뭐, 나도 이 녀석이랑 처음부터 면식이 있던 관계는 아닌데. 내가 알기로는 둘 다 각성자일 텐데?”
용신은 이미 병찬과 병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렇죠.”
“왜 간단한 일로 재능을 낭비하느냐……는 말은 딱히 하지 않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펼칠 뜻이 없는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테이블 위에 올려 뒀던 자신의 머그컵을 들어 안에 든 음료를 마신 뒤 표정을 찡그리는 용신.
“……맛이 별로군. 재료가 안 좋은가?”
용신이 들고 있던 음료는 레모네이드였다.
“대부분 맛이 거기서 거기일 텐데요.”
“그래도 내 입맛에는 안 맞아. 차라리 차로 시킬 걸 그랬어.”
용신의 투정에, 병찬과 병민은 다시 자신들끼리 속삭이기 시작했다.
“역시 부자데이. 레모네이드를 맛없다 카네.”
“단순히 신 게 입맛에 안 맞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용신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레모네이드가 든 잔을 들어 올려 내용물을 쭉 들이켰다.
“그래도 남길 순 없지.”
“아까워서요?”
“아니, 만들어 준 정성이 있으니까. 지금 보니 저쪽에는 주문도 많아서 고생이 많을 테니.”
갑자기 몰려든 주문을 소화해 내느라 바빠진 직원들을 가리키며 남은 레몬 조각을 슬쩍 쳐다보는 용신.
그는 그제야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 그래. 여길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물었지? 그걸 얘기하러 온 건데, 이것저것 살펴보느라 조금 바빴지. 나중에 찾아가지,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으라고.”
그렇게 말하며 머그컵을 들고 카운터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용신.
그는 입맛에 안 맞는다 말하던 레모네이드를 나갈 때 따로 포장까지 했고, 찾아올 때에 갑자기 찾아왔듯이 떠날 때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났다.
“……뭐 하러 온 거지?”
영의는 용신의 기행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고, 병찬과 병민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수군대기 시작했다.
“행님 주변에 뭐…… 멀쩡한 사람 있나?”
“너랑 나부터가 멀쩡하질 않은데, 있겠냐?”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