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23)
반파가 된 대회장.
이곳에는 수많은 시체 토막들이 모여 있었다.
강시들…… 그중에서도 황룡강시들에게서 나온 시체 조각들을 모아서 짜 맞추는 과정이 한창이었고, 사람들은 토막 난 시체들을 짜 맞추는 데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게 이쪽 건가?”
잘려 나간 팔을 들고 몸과 대조해 보려 하는 한 남자.
“팔에 혈관 튀어나온 걸 봐라. 혈교주 것 같은데?”
그 옆에서 시체를 치우던 다른 남자가 차이점을 대조하며 충고해 주었고, 팔을 들고 고민하던 남자는 치우고 있던 시체를 가리켰다.
“고맙네. 그보다 자네가 옮기고 있는 그건 구분하기 어렵지 않겠군.”
남자가 옮기고 있던 시체는 문소길의 시체였다.
“애초에 구분할 이유도 없잖아. 토막 난 부분 없이 멀쩡한데.”
“멀쩡하다고? 이게? 멀쩡해 보이나?”
비록 문소길의 시신이 머리가 완파되고 온몸에 큰 구멍이 뚫린 상태였지만, 적어도 몸의 일부분이 어딘가에 굴러다니지는 않았다.
“그래, 일단 사지는 다 붙어 있잖나.”
“그렇긴 하군.”
광혼환세교와 그 교주의 등장과 강시의 난동 이후,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무인은 물론이고 조정의 관리, 하북의 성민,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과 새외의 인원까지 어느 하나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나마 절정급의 무인들이 상대를 할 수 있었던 백룡강시들과 청룡강시들이 일으킨 피해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위험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황룡강시들이 피해를 별로 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영의의 경고와 각 세력의 준비 덕분에 고수들이 미리 대비하여 황룡강시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고수들이 다소 힘에 부치거나 계속 결판을 내지 못했던 황룡강시들을 일순에 지워 버린 존재.
광혼환세교의 교주이자 수상한 술법을 부리는 술사를 처단하고 무림에 평화를 찾아다 주었던 두 절대고수, 독고휘와 혁련무강.
그들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바사삭.
“그러니까! 진짜로! 땅에서 엄청난 시신들이 일어나더니! 강시랑 섞여서 달려들었다니까! 쩝.”
독고휘가 입에서 침까지 튀겨 가며 내뱉는 말에 혁련무강이 뒤에서 슬쩍 끼어들었다.
“……해골들도 잊지 말도록.”
후루룹.
“그래! 그거! 막 뼈다귀랑 시신이랑 시신이랑 뼈다귀 그 사이 어딘가처럼 생긴 것들이 우루루-하면서 떼거지로 몰려드는 걸 내가 천뢰검으로…….”
“그래서, 그 교주란 놈이 갑자기 손짓하더니 땅에서 그런 시신들이 그렇게 우루루-하면서 나타나고는 형님한테 달려들었고, 그 모든 걸 번개로 태워 버렸다 이 말이우?”
독고휘의 이야기를 얌전히 듣고 있던 팽소운은 그의 대화 내용을 요약하여 되물었고, 독고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하냐!”
“……못 믿겠는데.”
팽소운이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독고휘는 손에 든 닭 다리를 흔들어 가며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주장했다.
“진짜라고! 내가 혼자 이러냐? 이 녀석도 같이 봤어! 그 뭐였지? 명왕파천무인지 사천왕파천무인지 하는 그거로 다 가루로 만들었다니까! 너도 입이 있으면 말해 봐라!”
후룹-
“진짜다. 시신들이야 물론 다 가루를 내 버렸으니 흔적은 못 찾겠지만, 거기 땅을 보면 시체들이 튀어나왔던 흔적이 있을 거다. 그보다 아수라파천무다. 번개를 다루는 제석천을 잡는 신이지.”
혁련무강은 입에 물고 있던 면발을 모두 삼키고서는 독고휘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는, 자신의 초식명을 제대로 설명했다.
그리고 혁련무강의 말에는 그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권마, 강자성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아, 거짓말도 참…….”
“뭐라?”
“천마라는 권위가 있으니 그나마 진실을 말할 거라 믿었는데, 그새 형님한테 물들었수?”
독고휘와 혁련무강은 틀림없이 그런 시체들의 군단을 상대하였다.
서역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시체나 온몸이 대부분 드러나는 정체불명의 복식을 한 암살자들의 시체, 날아다니면서 불꽃을 쏴 대는 해골까지.
모두 그들의 발아래에 박살 나서 쓰러졌는데 가장 가까운 지인들이 그것을 믿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둘의 무용담을 듣던 각 고수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독고 시주? 그나마 강시라고 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냥 백골이 달려들다니, 말이 안 되지 않소?”
“흘흘, 백골이 어떻게 움직이나? 살점도 근육도 없는데. 비쩍 마른 골강시라는 게 있긴 해도 적어도 살점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그들의 말을 부정하자, 독고휘는 방의 한구석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영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보게, 자네라면 내 말을 믿어 주겠지?”
“그 친구라면 믿어 주겠지.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치관이 다르니.”
독고휘는 이제 자랑보다는 자신의 말을 누구 하나라도 믿어 주기를 바랐고, 혁련무강도 그런 마음이 내심 없지는 않은지 슬쩍 그런 기대를 내비쳤다.
“…….”
하지만 영의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독고휘는 그런 영의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이보게!”
“아, 네?”
자신의 말을 못 들은 것 같자 닭 다리를 잡은 손까지 사용하여 영의의 양어깨를 붙잡은 뒤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독고휘.
“내 말을 믿지?”
독고휘는 영의가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다짜고짜 자신의 말을 믿냐고 물었다.
그리고 영의로서는 독고휘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못 믿을 인물은 아니니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끄덕끄덕-
“후우…….”
영의가 자신의 말에 긍정해 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독고휘와 슬쩍 미소 짓는 혁련무강.
“아, 네. 믿죠. 일단은 믿는 거로 할게요.”
하지만 이어지는 영의의 말에 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
“그것참…… 누구 앞에서도 할 말 다 하는 저 녀석이 동정심에 믿는다고 거짓말까지 하잖수.”
팽소운의 말마따나, 독고휘의 모습이 불쌍해 보여서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영의가 거짓으로나마 믿어 주겠다고 하는 것 같은 대답이었다.
“아, 아니! 이 녀석아! 내 말을 듣긴 한 거냐! 그보다 일단이라니! 나중에는 안 믿겠단 거냐!”
“전 잠시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크하하, 생각할 게 있다지 않냐. 보내 줘라. 그런 시체들이 있거나 말거나, 네놈이 그 교주란 녀석을 이긴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끄덕끄덕.
스스슥, 슥.
[물론 허풍이야 섞이기 마련이지만, 할거면 적당한 거로 해야지 너무 허무맹랑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한번 죽은 교주가 강시가 되어 다시 일어났다고 하면 될 것을]
비야신투와 무성사신은 이제 슬슬 독고휘의 폭주를 막기 위해 적당히 다독이려 했지만, 무성사신의 마지막 문장이 독고휘에게 불을 붙였다.
“그래! 그놈 한번 죽었다가 다시 일어났다니까! 두 명이 두 번씩 죽였어!”
“확실히, 그렇게 죽었다 살아나는 모습은 제법 암중 세력 같은 모습이었지.”
독고휘와 혁련무강은 다소 인상 깊기는 했지만 시체의 군단만큼 인상 깊지 않았던 교주의 부활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미 둘에 대한 불신이 중원의 모든 명산을 더해도 닿지 못할 만큼 높게 쌓인 이들은 그 말마저 믿지 않았다.
“거…… 너무 바로 베끼는 거 아닌가? 사파에서도 남의 것을 베낄 때에 최소한의 수정이나 변화를 가미하는데.”
“아니라니까!”
“아, 알겠수. 알겠으니까 식사나 하시우.”
팽소운은 독고휘를 말리기 위해 튀긴 닭고기 조각…… 치킨을 그의 입에 찔러 넣었다.
“우웁!”
그렇게 노인들이 한참 전투 후의 식사를 즐기는 평화로운 광경을 뒤로하고 나간 영의는 한 전각의 지붕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였지…….”
* * *
칠성진인의 강시를 상대하려 했을 때, 칠성진인은 영의를 보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그래, 자네로군. 도탄을 막고 별의 의지에 따르는 이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네?”
[사용자, 상대가 방금 사용자의 대략적 정보를 읽어 내려 했습니다. 기본에 가까운 수준입니다만……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릅니다.]
칠성진인은 다른 이들과 격렬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던 듯, 주변에 멀쩡한 지형지물이 없었다.
하지만 영의가 온 것을 확인하자 그런 전투는 없었다는 듯 검을 집어넣고 보패마저 품속에 넣었다.
-먼 옛날에 별을 보아 점을 쳤을 때 나온 대로,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을 만나게 되다니. 죽을 때가 되어서야 그 점괘가 틀린 줄 알았건만.
이내 바닥에 주저앉은 칠성진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경계를 잃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자신과 맞서 싸우던 무인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우선…… 진갑인가. 이름이 좋군. 다만 무공을 사용함에 있어 자신의 성정을 무공에 맞추려 하는 모습이 눈에 띄네. 마음에 평안을 되찾고, 주먹에서 힘을 조금 뺀다면 더 많은 것이 보일 것이네.
“뭐……? 내 이름은 어떻게?”
칠성진인은 진갑의 이름을 듣지도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고, 이내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했다.
-흠, 자네는…… 특이하군. 북방에서 왔지만 정신은 남방의 이들이며, 그러면서도 무공은 양쪽의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자유롭군. 하지만 때로는 자유가 독이 될 때도 있는 법. 최소한의 규칙을 세운다면 더 진일보할 수 있을 걸세.
야율천락의 출신지와 행동을 꿰뚫어 본 칠성진인은 그에게도 충고했고, 야율천락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른 둘은…… 하나는 본성으로 적을 참하고, 하나는 이성으로 적을 공격하는구나. 지키는 것의 극과 죽이는 것의 극이로다. 둘은 그저 자신의 길에 확신을 가지면 될 것이야. 너무 성격이 강해서, 오히려 통제하는 것이 독이 되었구나.
장화관은 칠성진인의 충고에 고개를 돌렸고, 혜윤은 합장을 하며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미타불…… 죽어서도 가르침을 주려 하시는군요.”
칠성진인은 자신의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준 뒤,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간만에 보는 이승에다 속세의 풍경이라 그만 들뜨고 말았네. 용서해 주시게나, 후배들. 그래도 자네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했으니, 나름 도움이 되었을 거라 믿네.
할 말을 모두 끝냈다는 듯이 칠성진인이 조언을 멈추자, 장산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그에게 물었다.
“저는…… 안 해 주십니까?”
-자네는…… 달리 해 줄 말이 없네. 하지만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자면…… 길을 잃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라네. 하루에 천 리도 족히 가는 무인이 왜 길을 잃겠나? 마음의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장산은 칠성진인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했다.
그때, 대회장 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방금 소리는…….”
-이제 끝이 났나 보군. 잠시나마 이승으로 돌아왔던 이 혼백도 곧 사라질 시간일세. 흐읍!
보패를 꺼내 들고 기합 소리를 내는 칠성진인.
갑작스러운 행동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그에게 검과 주먹을 겨누었으나, 칠성진인은 보패를 다시 집어넣고 자신의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파스스-
바위에서 모래가 깎여 나오듯, 그의 손끝이 색을 잃고 깎여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생기를 잃고 가루로 변해 가기 시작하는 칠성진인의 손끝을 보자 영의는 방금 전 굉음이 울렸을 때 교주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교주가 죽었나 본데요.”
-이제 나의 옛 시신과 검…… 보패도 사라지게 될 걸세. 과거의 유산은 큰 가치를 가지지만……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하니.
칠성진인이 소멸하기 시작하자 모든 이들이 칠성진인에게 큰 위협을 느끼지 않기 시작했고, 칠성진인은 영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 이제 마지막 순간까지 대화나 잠시 나누도록 하지. 자네들은 다른 곳을 도와주겠나? 이 젊은이와 둘이서만 대화하고 싶으니…….
“……그러죠.”
칠성진인은 이미 양팔이 팔꿈치까지 바스러졌고, 다리도 절반이 사라진 상태였기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이들은 곧바로 자리를 떠나 주었다.
강시의 상태였을 때에도, 살초를 그다지 쓰지 않고 도술 또한 방어용 결계나 환술 등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잘 듣도록 하게. 나는 자네의 미래나, 정보를 볼 수는 없네. 하지만 자네에게 인도되는 별빛만큼은 읽을 수 있었지.
“……네.”
영의는 지금까지 별 특이한 인물들을 다 만나 왔기에 예언가 하나 추가된다고 별 대수로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영원한 운명을 지닌 별 아래에 있는 자와 만나게 될 걸세. 그자와의 만남에서, 자네는 자네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게야.
“네? 그게 무슨…….”
-그리고, 기억하게. 때로는 살상이 정답일 때도 있지만, 자비와 관용이 먼저일……세…….
칠성진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영의는 그 이후로 그가 남긴 말을 계속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