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22)
영의와 팽소운, 장산은 바깥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이 바로 문소길을 재료로 만든 황룡강시.
-여기까지냐! 패기는 좋다만, 젊은 녀석들이 영 못 먹은 것처럼 힘을 못 쓰는군! 그나저나 만쇄문도 다 됐어, 별것도 아닌 잡기술을 가르치다니.
황룡강시…… 문소길은 손에 들고 있던 기절한 종신을 옆으로 내던졌다.
도움을 주려고 달려들었으나, 실컷 얻어맞고 기절해 버린 종신.
그나마 다행히도 문소길에게 동문의 정이 있는 건지 종신은 다른 무인들처럼 죽이지 않고 그냥 던져둘 뿐이었다.
“허억. 젠장, 자기는 강시라고 안 지친다 이거지…….”
“후우, 본인은 나이 먹고 지친 적 없다는 듯이 얘기를 하다니…….”
싸움이 소강상태에 가까워지자 광기에 빠져 날뛰던 문소길도 어느 정도 이성을 찾은 것 같았다.
지금껏 잘 싸우던 권마와 패왕이었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 문소길의 앞에서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상황이 영 안 좋은 모양인데요?”
“그럼 내가 가도록 하지. 다른 곳을 도와주러 가라.”
팽소운은 자신의 웃옷을 모두 벗으며 문소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영의는 팽소운이 혼자 간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예? 영감님 혼자서 돕게요?”
“이건 권에 모든 걸 담는 이들끼리의 자존심 문제다. 가라.”
평소에 보던 모습과는 다른, 진중한 권왕으로서의 모습에 영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산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좋은 후배들이었다. 그럼 죽어 다오.
“미안하오, 선배님! 그건 안 되겠수!”
문소길이 강자성과 갈성천, 둘을 끝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를 때 팽소운이 거기에 달려들어 그를 날려 버렸다.
콰앙!
“빨리도 도착한다 진짜…….”
갈성천은 팽소운이 도착한 것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몸을 다시 부풀렸다.
“대력강체술 마지막 단계는 아직 안 썼지?”
“썼으면 이기고도 남았지. 대신 나도 옆에 같이 누웠겠지만.”
“빨리 나올 것이지, 지존과 독고휘가 있음에도 그렇게 늦게 나오나? 쓰러지기라도 했나 보군.”
강자성은 팽소운을 잠시 째려보며 그를 비꼬는 말을 내뱉었지만, 그의 합류 자체는 반가운지 크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일이 조금 있었으니까. 그보다, 아직 설 힘은 있겠지?”
“이대로 장강 이남까지 걸어가라고 해도 갈 수 있다.”
-좋아, 좋아! 혹시 더 부를 놈 없나? 팔다리 두 짝씩, 네놈은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다고!
문소길은 기쁘다는 듯 웃으면서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오며 더 데려오라는 도발을 했다.
“그런 거 없수! 그보다 네 짝 다 쓰면, 땅에 누워서 발길질하시우?”
“그럴듯한데?”
-없나 보군! 우오오오오오!
그렇게 네 주먹과 네 근육 덩어리들이 맞부딪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런 주먹다짐을 뒤로하고 다른 이들을 지원하러 달려간 영의와 장산.
그들은 먼저 초대 빙궁주 북중연이 있던 곳으로 도착했다.
“와…….”
“엄청난 광경이군. 하지만 이미 끝났어.”
온 사방에 서리가 껴 있어 백색이 가득했고, 싸움이 최고로 격렬했던 중앙에는 얼음 기둥들이 이리저리 난잡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중앙에서 떨어진 곳에서 지친 듯 바닥에 드러눕거나 앉아 있었고, 그 중앙에 혁련무성과 북설란도 지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옆에는 양팔과 목이 분리된 채 바닥에 널브러진 북중연의 시신이 있었다.
아직 몸이 꿈틀거리고 있긴 했지만, 경련에 가까운 수준인지 일어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
“이곳의 날씨가 따뜻해서 상황이 심해지진 않았나 보군. 물론 지금 이 주변은 추울 정도지만.”
장산은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고, 영의는 꿈틀거리는 북중연의 시신을 잠시 쳐다보았다.
일반적이라면 죽고도 남았을 몸이었지만, 따로 분리된 머리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원래 좀비…… 강시…… 뭐 아무튼 이런 것들은 머리가 끊어지면 못 움직이지 않나? 물론 팔은 움직임이 멈췄고 소리도 못 지르고 있긴 한데.’
그가 알고 있던 상식과 다른 상황이었지만, 알림이가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시신은 강령술에 의한 일시적인 활동 상태입니다. 물론 육체의 강화 등에 모종의 약품과 이 세계의 술법들이 활용되어 있습니다.]
무림의 강시술과 강령술을 합쳐서 만든, 강화된 몸에 본연의 정신을 넣어 둔 고급 강시여서 목이 따로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혁련무강과 독고휘 앞에서는 먼지가 되어 사라졌지만.
[인물의 정보만으로 출신 차원을 추적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이 마술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금방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령술…… 네크로맨서? 흑마법 같은 계열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영의는 교주라는 인물이 마법을 쓰면서 동시에 강시에 손을 댔다는 시점부터 어느 정도 그쪽 계열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싸움 도중에 흔히 생각하는 시체의 군대나 해골 등을 소환하는 모습을 못 봤기에 단순히 흑마법 같은 걸 잘 다루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 시각, 실제로 그런 걸 쓰고는 있었다.
“크윽, 나의 군대를 상대해 보아라!”
드드드드.
대회장의 안, 이런저런 시신들과 관이 땅에서 튀어나왔고, 수많은 시체들과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괴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강시를 일으키는 건가? 하지만 별 볼품은 없군.”
“가라! 나의 군대여! 저놈들을 쓸어버려라!”
죽음의 군대가 달려들어 산 자의 온기와 생기를 강탈하려 했다.
“아수라파천무.”
하지만 아수라의 여섯 팔이 한 번씩만 움직여도 여섯 번의 광풍이 몰아치고.
“천뢰검.”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뢰가 검이 되어 의지대로 움직이며 군대를 반토막 내기 시작했다.
물론 영의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천뢰검 많이 쓰시네.’
다만 독고휘와 혁련무강이 요란하게 싸운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혁련무성은 북중연을 처리한 현장에 도착한 영의를 발견하자 그를 불렀다.
“이봐, 늦었군. 이미 이곳은 정리했다. 누군가를 도우려면 폭혈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거야. 운광 쪽에는 마귀…… 아니, 마의 할멈이 붙었으니 끝났을 거다.”
모두가 지쳐 주변에 뭐가 있어도 신경 쓰지 못할 상황이었으나, 혁련무성이 영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있었다.
“아, 귀인…….”
“은인?”
얼어붙은 사람들을 최대한 살려 보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던 혁련운과 당가의 인물들.
하지만 그들은 많이 지쳐 있었고, 영의는 그런 그들에게 쉬라고 말한 뒤 다음 장소로 향했다.
마의와 운광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혁련무성의 말대로, 상황이 끝나 있었다.
다만, 그 광경이 상당히 참혹하면서도 괴이했는데 강시의 시체가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무량수불…… 왔는가?”
운광은 못 본 사이에 오 년에서 십 년 정도 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 시체가 왜 몇 구씩 있는 거죠?”
영의의 물음에 대답해 준 것은 옆에서 운광의 등에 침을 놓아 주고 있던 마의였다.
“혈교의 사술이지. 대체 무슨 수를 쓰는 건지는 몰라도, 잘린 몸이 다시 생겨나거나 죽어도 몸속에서 기존의 몸을 터트리고 다시 태어나더군.”
“아악! 아프네!”
짜악!
“참아! 엄살쟁이 같으니라고.”
마의는 운광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때리고는 참으라며 일갈했다.
다른 곳은 무인들이 몰려 있거나 여러 명이 달려들어 제압했지만, 이곳은 마의와 운광 단둘이서만 상황을 해결했다.
“아무튼…… 혈교의 사술들은 내가 다 막았으니, 칼질만 잘하면 됐는데…… 그 칼질 하나 똑바로 못하다니. 에잉…… 쯧쯧.”
“혈교주를 혼자 상대하라는 게 더 무리요. 심지어 강시까지 되어 있었던 것을! 아으윽! 팔이!”
짜악!
마의가 혈교주 강시의 술법 등을 막는 사이, 운광이 직접 상대하여 목을 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게 엄살이라는 거다. 가만히 있어라. 부작용이 심해지기 전에 끝을 낼 테니.”
하지만 강시가 된 데다 각종 부활술을 사용하는 혈교주는 쉽지 않은 상대였고, 마의는 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운광에게 약물을 주입했다.
덕분에 어떻게든 승리했으나, 부작용이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됐으니…… 다른 곳을 도우러 가지는 못할 것 같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됐나? 죽은 이는…… 있는가?”
“아뇨, 아직은. 주먹질하는 덩치 큰 영감님 셋이 주먹질로 승부 내고 있는 상대 하나 빼고요.”
“그건 다행……. 으그극!”
짜악!
“그만, 그만! 한평생 공격을 흘려 낸 몸인데 몸 안에서 생기는 고통을 어떻게 참겠소?!”
“말로 하지 말란 말이야.”
짜악!
“따흑, 아무튼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 보게. 그곳에서는 아직도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
“네, 영감님. 몸조심하세요. 그리고…… 좀 참으시고요.”
“……자네도 고생이 많군.”
장산은 운광을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운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도와주러 왔으면 고생이 덜했을 텐데 말이지.”
“그건 어쩔 수 없었지.”
이내 영의와 장산은 마지막 격전이 벌어지는, 칠성진인 강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의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 둘.
“이게…… 무슨…….”
땅에서 솟아올라 있는 거대한 바위와 그 옆에 파헤쳐진 구덩이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뭐 싸우다 보면 땅도 뒤집히고 구덩이도 파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바위 위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구덩이가 연못이 되어 저 옆으로 물이 흘러가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마법인가?”
“술법…… 그것도 극에 달한 도가의 술법이군.”
장산은 이곳의 광경을 보자 곧바로 술법이라고 단정했고, 그 모습에 영의는 장산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뭐 아는 게 있어요?”
오랜 세월 중원을 본의 아니게 방랑하며 보고 들은 식견이 이곳에서 드디어 빛을…….
“모른다. 일단 무공으로는 불가능한 모습에 술법이라 생각한 거지. 다만 사이하지 않고 오히려 맑고 청량한 기운을 내뿜으니 도가의 술법이라고 생각했네.”
……발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식견과 경험이 헛된 것은 아니기에, 정답에 가까운 결론을 내린 것은 맞았다.
그리고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앙!
“가도록 하지.”
스륵-
장산은 검을 뽑아 들고 곧바로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고, 영의는 그 뒤를 따라 뇌룡보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난잡했다.
“크아-하하하하!”
광기에 사로잡혀 부러진 검과 이가 잔뜩 나가 톱에 가까워진 식도로 난도질 중인 장화관.
“여기서 죽고 나중에 윤회나 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손가락 사이에 흙을 채워 넣어 주먹을 더 단단하고 묵직하게 만들어 주먹질을 하고 있는 혜윤.
“카하하, 엄청난 난장판이군그래…….”
지금 그다지 웃을 기분이 아닌지, 짧은 웃음과 함께 힘없는 목소리를 내는 비야신투.
끄덕.
비야신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에서 강기를 뿜어내고 있는 무성사신.
차마 이 싸움에 끼어들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은 예비용 무기나 붕대 같은 것을 들고 지켜볼 뿐이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강시와의 전투 현장 중에서 가장 많은 고수들이 달려들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결판을 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호오! 더 많이 오는 건가! 나쁘지 않군.
칠성진인은 도우러 온 장산과 영의를 보자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크으으으! 빌어먹을 도사 놈이……!”
주변에 있던 이들을 둘러보던 칠성진인은 갑자기 영의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흐음……? 음? 호오…… 별의 인도가 마침내 이곳에 닿았구나.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뭐?”